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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책은 주로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다. 젊은 시절 논술강사로 밥을 꽤 벌어먹고 살았지만, 논술이라는 글쓰기는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제한된 글쓰기라 글쓰기 전반을 다루고 있지 않다. 직접 쓴 책이 20권이 넘었지만, 그것은 나의 글쓰기에 한정된 것이라, 이 역시 많은 이에게 권장할 수 있을지 막연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지 꽤나 궁금해졌다. 하여 글쓰기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20권 넘게 읽고 정리한 듯하다. 구입한 책 중에서 너무도 뻔한 실무적 글쓰기는 제외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페미니스트가 쓴 책들이 한참 기억에 맴돈다. 왜일까?
내가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정희진이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나와 거의 비슷한 동년배로서 같은 시대를 다른 무늬로 살았던 점이 인상 깊었던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며 주로 정치적 이슈와 독서에 매몰되어 있었던 시기에, 정희진은 꾸준히 페미니즘을 소개해왔었다. 내가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면 정희진이 책 속에 소개한 책들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몇 해 전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읽으며 나는 막연하게 21세기는 페미니즘의 세기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페미니즘은 21세기 기독교다.”라고 나는 선언적으로 말했다. 1세기의 기독교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래서 사유의 방식과 글쓰기의 문법을 바꾸어 놓았듯이, 21세기는 페미니즘적 사유방식과 문법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이는 근대 마르크스주의와 맞먹는 사건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로 세상을 양분한 마르크스주의만큼 여성과 남성으로 양분하는 페미니즘은 큰 틀에서 새로운 혁명적 사상이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서 출발했다면, 포스트 페미니즘은 이 이분법을 넘어 젠더, 생태, 노동, 환경, 세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진화하고 있다. 페니미즘이 여성만의 이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이 페미니즘적 세계를 새로 배우면서 늘 깜짝깜짝 놀란다. 나에게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불편한 현실로 인식되고, 내가 즐겨 쓰던 언어가 자꾸 걸리고,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얼뜨기 관념 페미니스트에 불과하지만, 중년 남성의 몸으로 페미니즘의 옷을 입는 것은 꽤나 새로운 도전이고 실천이다. 늘상 불편하면서 언제나 각성할 수 있는 인식의 도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홍승은 작가는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물음표(?)를 찍은 것은 ‘대표적인’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권위성 때문이다. 이 형용사를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까 싶다. 저자 소개란에 “2013년부터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을 통해 글쓰기 안내자로 살아가고 있다. 서울, 대전, 대구, 통영, 공주 등 전국 각지의 책방 및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을 다니며 글쓰기 수업을 한다. 타인과 연결될 때 삶과 문장은 단단해진다.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는 글쓰기를 위해 앞으로도 함께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라고 적혀 있다. 이 이력이 만들어놓은 책이 이번에 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어크로스, 2020)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글쓰기 수업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쓰기 수업 모습을 보며 많이 반성하고 배운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가 글쓰기 힘들 때, 또는 신선한 자극을 읽을 때 참고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꽤나 나열되어 있는데, 나의 독서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데 새삼 놀란다. 같은 하늘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구나 싶다. 기록에 남겨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번 책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동녘, 2017)에 이어 단독으로 쓰는 두 번째 책이다. 공동 저술한 책은 《소녀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7)과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프북스, 2017)이 있다. 이 책들 역시 구입목록에 올려놔야겠다. 첩첩산중이라더니 첩첩독서로구나.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62쪽)
각자의 고유한 자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텐데.(92쪽)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142쪽)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166쪽)
글을 마무리하기 막막할 때마다 서두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방심하면 쉽게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일명 깔끔한 봉합의 유혹. 교훈이나 해피엔딩으로 끝맺음하려는 관성.(232쪽)
욕심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내 사유와 문장들. 무한 반복하는 좌절과 읽기와 쓰기의 굴레 속에서 차곡차곡 해나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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