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 카피라이터로 24년, 그럭저럭 터득한 글쓰기의 기본에 대하여
다나카 히로노부 지음, 박정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대부분의 일본 실용서는 간결하다. 마치 매뉴얼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일본인이 쓴 실용서를 안 읽는 이유다.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뻔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번에 읽은 다나카 히로노부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인플루엔셜, 2020) 은 약간 성격이 다른 책이다. 간결하지만 메뉴얼 같지 않고, 솔직한 고백으로 실실 웃게 만드는 책이다. 표지에 부제처럼 써놓은 부분이 있다. “카피라이터로 24, 그럭저럭 터득한 글쓰기의 기본에 대하여.”이다.

오랫동안 카피라이터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중, SNS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원고 청탁을 받고, 책을 쓰자는 의뢰를 받고, 여기저기서 강연 의뢰가 오는 사태를 겪은 지은이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소개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도 재미나는데, 출판사 기획자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마지못해 수락하고, 원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간신히 쓴 책이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그렇게 해서 써놓은 내용도 별 내용 없다(?). 특별한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저자만의 비법을 공개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무심할 정도로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컨셉이다. 그런데 그게 유쾌하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고, 타깃(특정한 독자) 따위는 없으며, 글을 쓰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순위의 1863위에 해당한다는 둥 실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솔직함으로 자신의 태도를 고백한다. 돈을 벌라면 차라리 직접 돈을 버는 일을 하라기도 하고, 글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한 사람의 한 마디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뼈를 치는 현실감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힘은 그 무식하리만큼 솔직함으로 글쓰기의 환상을 제거하고, 글쓰기는 힘든 일이고, 힘든 만큼 돈도 안 되지만, 일단 재미난 일이고, 글을 쓴 이후에 예상치 못했던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저자의 경험담이 솔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도, 어쨌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저자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이야기하는 글쓰기 책이다. 독서와 자료조사를 충실히 하는 모습, 사상(事象)과 심상(心象)이 교차하는 곳에서 생긴 문장이 에세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솔직함을 넘어 충실성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이 기본기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에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쓴 다나베 세이코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글을 쓰면, 인생 따위, 어느 날 순식간에 변해버려.” 그리고 저자는 그 말을 정말로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나도 해본 것이어서, 거짓이 아님을 안다.

 

<추신> 이 책에서 제일 재미난 부분은 글쓰기가 아니라 취업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썼는지 비법을 공개한 것이다. 매번 취업에 실패한 취준생에게 이 부분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103쪽부터 121쪽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무익한 글쓰기 기술이나 공허한 목표를 향하는 삶보다는, 글쓰기가 갖고 있는 본래의 즐거움과 약간의 귀찮음을 알려주기 위한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모든 글은 자신을 위해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37쪽)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허리 통증을 견뎌가며 키보드를 두르려 글을 쓰고, 자신이 쓴 끌에 스스로 조금 웃는 것,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생활이다.(94쪽)

칭찬해주는 사람에게 ‘다음에도 또 칭찬을 받겠다’라고 생각해서 글을 쓰면 스스로 재미를 잃게 된다. 어느 쪽이든 평가의 노예가 된 시점부터 글쓰기가 싫어진다. 타인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쓰는 것은 자신이다. 아무도 대신해서 써주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산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인 것이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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