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요요로 하자.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으로 하자. 그래,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ㅡ <요요> 300
현수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을 모조리 분리시키고 싶었다. 나사들을 하나씩 풀어서 모든 부품들을 늘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짜맞추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다시 짜맞출 수 없대도 일단 해채하고 싶었다. 삐걱거리는 육체를,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진 심장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고통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폭설처럼 다가와 누추한 모든 마음을 덮어줄 것 같았다. 모든 게 텅 비길 원했다. ㅡ <힘과 가속도의 법칙> 261
꿈이나 미래 같은 단어들은 한입에 먹기엔 버거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숭아 같다. 일단 베어 물면 달콤한 즙이 새어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덩어리에 압도당하고 만다. 달콤하던 즙은 점점 시큼한 맛으로 변하고, 복숭아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ㅡ <보트가 가는 곳> 223
태워드려요?
아뇨. 걸어갈게요.
내일 봐요.
네, 내일 봐요. ㅡ <종이 위의 욕조> 198
가 있는 마음을 가져오려면 많은 걸 잃을 것이다. 잃는 게 무엇일지 하나하나 따져보고서 정민철은 류영선을 포기했다. 포기해야겟다고 생각했다. 포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민철은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소리내어 발음해보기도 햇다. '포기'라는 발음에서 쏟아져나오는 한숨은 정민철의 마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ㅡ <뱀들이 있어> 134
술은 물보다 강합니다. 물은 몸에 에너지를 주지만, 적당한 술은 우리의 몸에 초능력을 줍니다.
ㅡ <가짜 팔로 하는 포옹> 109
두개골이 얼어붙었나. 머리끝의 차가운 기운에 놀라서 이호준은 눈을 떴다. 머리를 만져보았다. 두피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현실감각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ㅡ <픽포켓> 47
탁구공은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똑, 딱, 똑, 딱, 규칙적으로 움직이다가 머리에서 뒷덜미를 타고 내려와 차양준의 심장 속으로 들어갔다. 차양준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처럼 탁구공이 손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차양준은 손바닥으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ㅡ <상황과 비율>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