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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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 걸작은 역시 '용의자 X의 헌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게이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다름아닌 '가가 교이치로'라고 생각합니다. 풋풋하던 대학 시절의 가가부터 이제 중년이 되어버린 가가의 이야기까지... 어쩐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와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뭐 어쨌든 참으로 오랜만에 번역되어 나온 가가형사 시리즈네요. 얼마나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그 긴 기다림에 지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이미 봐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휘발성 기억력을 지닌 저는 기린(목이 긴 동물이 아닌 상상속의 동물) 석상이 등장한다는 것 외엔 이 작품의 스토리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고로 마치 처음 접하는 작품인 것 마냥 매우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중년 남성이 칼이 찔린 채 꽤 먼 거리를 이동, 니혼바시 다리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그리고 한 청년이 이 남성의 소지품을 지닌 채 경찰에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지죠. 그 청년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고 마침 청년과 중년 남성과의 접점도 밝혀지며 청년이 중년 남성을 살해했음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이 사건의 수사팀에 배정된 가가 교이치로... 그리고 붉은 손가락에 이어서 또다시 가가와 파트너가 된 마쓰미야. 가가의 사촌인 마쓰미야는 사촌 형인 가가에게 불만이 많은 인물(궁금하신 분은 붉은 손가락을 읽어보세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은근한 케미를 자랑하여 사건의 진실에 점점 다가갑니다. 이는 물론 가가의 끈기 어린 탐문 조사와 통찰력 때문이지만 이제 마쓰미야도 꽤나 성장하여 가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며, 또한 가가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줍니다. 시리즈가 거듭되며 아마도 이 둘의 콤비 플레이는 점점 더 발전하지 싶습니다. 앞으로 셜록과 왓슨을 능가하는 브로맨스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ㅋㅋㅋㅋ;;

 

가가 형사 시리즈 초창기 작품들은 (읽은지 오래 되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주로 사건의 트릭이나 반전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 더 중점을 뒀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되며 가가가 점점 성숙해갈수록 이젠 사건 안에 담긴 어떤 사연들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문제 의식을 담기도 하고, 가족이라는 소재가 자주 부각되기도 하구요. 그리고 그것을 냉철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잔잔하고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자그마한 희망이나 위로 같은 것을 찾아내어 독자에게 전합니다. 마치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쿨하고 차가워 보이는 가가가 사실 알고보면 그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저는 가가 형사가, 그리고 가가 형사 시리즈가 참 좋습니다. 오랜 기다림과는 반비례하게 너무나 빨리 읽어버린 가가의 이야기. 이제 저는 또다시 가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겠군요. 그 기다림이 부디 길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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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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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닭 근성으로 교도소에 갇힌 아빠, 우울증에 걸려 자식을 돌볼 수 없는 엄마. 그들이 방치해버린 두 딸, 재키와 찰리. 결국 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소녀 찰리는 그녀의 이모 부부가 살고 있는 콜비라는 시골로 내려오게 되지요. 부모의 단점만을 빼다 닮아 태어난겐지, 찰리는 보통 성격이 아닙니다. 괴팍하고, 거칠고, 욱하고, 분노조절도 안되고. 그런 그녀가 전학 온 새로운 학교에서 쉽게 적응하리란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전학 온 첫날부터 선생님한테 찍히고, 동급생과 한판 붙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그녀에겐 하워드라는 책가방 짝꿍이 생깁니다. 다리를 절며, 아이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받는 하워드. 하지만 하워드는 매사 모든 일에서 긍정적인 어떤 것을 찾아내는 아무 멋진 소년이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며 삐딱한 소녀 찰리와 긍정긍적 열매와 착함착함 열매를 동시에 먹은 듯한 소년 하워드가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책을 읽어나가며 찰리라는 소녀에게 화가 날 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녀의 처지가 참 안됐고, 어린 나이에 철이 들지 않았으니 저지를 수 있을 법도 하다고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괴팍하고 무심한 몇몇 행동들에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구요. 결코 천성 자체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녀가 안고 있는 상황 때문인지 뱉는 말마다 송곳처럼 주변인에게 비수를 꽂는 까칠하고 철없는 찰리. 그런 그녀를 점점 바꾸어 나가는 건 사랑으로 충만한 버서와 거스 부부, 그리고 하워드였습니다. 찰리의 말도 안되는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버서와 거스 부부. 그리고 찰리의 분노를 '파인애플'이라고 외치며 컨트롤하려고 고군분투하는 하워드. 매서운 바람엔 옷깃을 꽁꽁 싸맸지만, 햇빛을 비추니 자연스레 코트를 벗어 들던 나그네처럼 그렇게 찰리는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유쾌하게, 또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매일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은 소원을 비는 찰리. 그녀는 소원을 비는 방법을 수십가지쯤 알고 있고, 그 방법들이 이 책에 소개가 되고 있는데 목록으로 작성했다가 꼭 따라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찰리의 그 간절한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찰리의 권유로 딱 한 번, 두가지 소원을 빌게되는 하워드도 있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힐 수 없지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하워드는 그의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하워드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앞으로의 전개와 결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어찌보면 굉장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일 수 있었겠지만, 이를 매력적인 캐틱터들을 잘 활용하여 감동과 유쾌함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에, 이렇다할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뭉클하고 따뜻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행복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저도 당장 내일부터 11시 11분이 되면 소원을 매일 매일 빌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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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칸타타
육시몬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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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44 과거가 슬프다고 현재까지 슬퍼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렇게 자꾸자꾸 슬픈 과거만 만들다 보면 평생 그 사람의 지난날은 슬프기만 할 테니까. 』

 

<이 소설은 연애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연애 소설입니다. 그런데 작품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연애 소설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중후반부를 지날수록 로맨스적인 요소가 점점 짙어 집니다. 사연 많은 여주인공, 그녀 주변에 대거 포진되어 있는 꽃미남들. 그래서 형성되는 삼각 혹은 사각관계. 흔한 로맨스 소설, 혹은 로맨스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설정들이지요. 게다가 이 꽃미남들은 하나 같이 다들 매력적인지라 내 자신이 여주인공인 양 누굴 선택해야하나 고민하며 흐뭇해집니다.(ㅋㅋㅋ;) 초절정 꽃미남 한수, 조각 미모 장풍, 모성 본능 자극하는 난파. 그리고... 이 세 매력남...의 사랑을 받는 고양이... 하아... 이 복 받은 그녀 고양희! 과연 그녀의 마음은 누구를 향해 있을까요? (참고로 저는 고양이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ㅋㅋㅋ) 아무튼 이런 요소들덕에 이거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참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맘대로 가상 캐스팅을 해보며, 그 배우들 이미지와 겹쳐가며 책을 읽어더랬습니다. 역시 훈남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드라마는 그저 흐뭇합니다. 저는 얼빠니까요^^;

 

<이 소설은 연애 소설 그 이상입니다.>

이 소설은 물론 연애 소설입니다만, 제게 이 소설은 연애 소설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상처 받은 이들의 소설이며, 상처 받은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소설입니다. 고양희는 국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매니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알콜 중독자입니다. 마한수는 재벌가의 자제입니다. 하지만 그는 폐소 공포증으로 가족들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장풍은 몸에 자해 흔적을 품고 있는 기억 상실증 환자입니다. 홍난파는 난독증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고등학생입니다. 이들은 속초의 육시몬 신경 정신과라는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병원의 원장인 육시몬은 시각장애인입니다.

이처럼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장애가 있고, 아픈 과거가 있고, 마음 한구석에 깊은 상처를 떠안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몰디브를 꿈꿉니다. 그들에게 몰디브란 아마 엿같은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자그마한 희망이었을 겁니다. 때문에 그들은 트로트 가요제에 참가를 결심하고 대상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현대인치고 정신 질환 한가지 정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든지 늘 햇빛 짱짱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태양의 반대편엔 그림자가 존재하듯 누구나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지요. 이 소설은 그런 우리들을 보다듬고 어루만져주는 햇살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연말연시 심란해지는 이 시기에 읽기에 참으로 적절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육시몬의 소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육시몬입니다. 저는 그녀의 블로그 이웃이기도 해서 그녀의 일상을 자주 훔쳐(?)보곤 합니다. 한없이 똥꼬발랄(본인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셨습니다. ㅋㅋ;)한 그녀의 나날. 저는 그런 그녀가 좋습니다. 살기 힘들다고 끊임없이 푸념만 늘어놓고 징징거리는 사람들 보다, 힘들고 지칠수록 이를 웃음으로 승화하려는 사람들이 저는 좋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작가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은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은 몰디브라는 희망의 꿈을 꿈꿉니다. 올해 나의 몰디브는 무엇일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 p.351 하루하루 우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죽어 가고 있는 걸까.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 성큼성큼 죽음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그 걸음걸음이 바로 삶은 살아 내고 있는 중이다. 우린 죽어 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당신들이 떠난 후 우리의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할 뿐이라는 핑계는 이미 죽은 사람들에겐 허용되지 않는다. 열심히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 죽고 싶은가? 그럼 살아라. 너 자신을 벌하고 싶은가? 그럼 살아라. 속죄하고 싶은가? 그럼 살아라. 우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몫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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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무덤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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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중에 서해의 아주 외딴 섬이 고향인 친구가 한명 있었습니다. 섬에는 고등학교가 없어서 뭍에 나와 친척집에 기거하며 학교에 다녔던 친구였지요. 그 친구의 고향인 섬에는 풍장이라는 장례 풍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자연 그대로 노출하여, 자연으로 되돌리는 장례 방법. 뭐랄까 신기하기도 했고,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원시적인 방법이 상당히 경이롭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풍장의 다른 형태인 <초분>이란 것이 등장합니다.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시신을 담아 보관, 육탈하고 나면 뼈를 수습해 묻거나, 가루를 내어 뿌리는 장례 방법. 소설의 배경이 되는 풍도라는 곳은 바로 이 장례 절차인 <초분> 덕분에 섬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피의 다큐로 소개된 풍도의 초분. 때문에 국내를 비롯 전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풍도. 남해의 외딴 섬들은 대부분 낙후되어 무인도가 되고 만다는데, 풍도는 과거 멸치파시로 번성했던 때처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섬 주민들은 이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초분 풍습을 보존, 아니 오히려 더욱 발전시켜 관광 자원으로 삼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영어로 된 수업을 진행합니다. 주인공인 '나'는 영어회화에 능하다는 이유 하나로 풍도 분교장 자격으로 풍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영어를 구사하며, 누구나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고, 마을 어디에서나 초고속 인터넷이 빵빵 터지며, 마을 구석구석 초분과 그 초분의 주인공의 생전 역사가 담긴 QR코드가 존재하는 환상의 섬 풍도. 하지만 한편으론 집성촌이라는 이유로 지극히 폐쇄적이며,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도덕적인 기준은 깡끄리 무시되어 어마무시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곳 풍도.

 

그런데 과연 이런 일들이, 이런 사회가 비단 풍도뿐일까요? 작가가 늘어놓는 조금은 불편하고 심지어 불쾌하기까지한 풍도에 대한 묘사들이 제가 살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 같다고 느낀 건 저뿐일까요? 그런 의문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불편하고 또 불편해지던 소설이었습니다. 연초라 그런지 암담하고 불안한 속에서도 희망이 보이고 유쾌함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워서 더욱 불편했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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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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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명 연예인들의 소설 출간 소식이 자주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데, 전 연예인들의 소설엔 편견을 가지고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전문 소설가의 소설보다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많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선입견 말이죠. 때문에 그들이 쓴 소설들을 단 한편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요즘 또 한명의 연예인이 SF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배우 신동욱이 쓴 씁니다, 우주일지. 저는 SF에 심하게 취약합니다. 우주라는 세계는 좁디 좁은 식견을 가진 제겐 감당 못할 정도로 심하게 광활하니까요. (그러고보니 저 학창시절에 지구과학도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은 끌리더란 말입니다. 연예인이 쓴 SF이니 SF적인 요소는 적고, 읽기 쉬운 로맨스가 더 많은 소설일 거라는 지레 짐작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런 제 짐작은 정말 완벽하게 틀려먹은 것이더군요.

 

이 작품은 분명 맥 매커천이라는 인물과 김안나라는 인물의 러브스토리인 건 맞습니다만...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빙산의 일각 뿐. 이 작품은 오롯이 소설이었습니다. 맥과 안나는 우주를 꿈꾸며, 같은 꿈을 꾸는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고, 또한 우주에 빠집니다. 그들의 우주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 엘리베티어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소행성을 포획하러 맥은 우주로 떠납니다. 이 소설은 3년간의 맥의 우주 일정을 그려놓았습니다.

 

우주를 떠도는 그 긴긴 시간동안, 우주인들은 대체 무얼하며 지내는 걸까?...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무중력 상태니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적일테니까요. 이 작품 속에는 그런 우주인들의 우주 생활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이면서 적나라하게. 특히 응가응가에 대한 숱한 묘사들이란 정말;; 솔직히 우주인들의 배변 활동은 어떠한지 궁금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런 식일 줄이야; 워낙 응가응가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지라 처음엔 으엑~ 스럽다가 웃기기도 하다가 후엔 저도 맥처럼 익숙하고 친근하고 심지어 고마워지고 말았지요. (우주에서 응가응가는 정말이지 중요한 무엇입니다!) 무튼 이런 우주인들의 사소하고 따분하고 평범한 일상 요모조모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이 책 안에 담긴 우주와 우주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이었습니다. 참고 서적을 엄청 탐독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쓸 수 없었을 지식들. 전 그런 묘사들에 상당히 취약해서 이런 부분들을 읽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오롯이 SF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고보니 신동욱은 우주 덕후라는군요.

 

그리고 이 책이 좋았던 건 역시, 우주라는 광활한 미지의 공간을 떠도는 한낱 먼지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외로움과 고독과 두려움과 싸우면서 해나가는 인생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맥은 실제로 '우주'라는 공간을 떠돌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결국 '우주'와 다를바 없는게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인간이 세상에 난 순간부터 우리는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런 우주와도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p.296 어제는 어제일 뿐이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나는 오늘만을 살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에 만난 맥의 이야기에 위로 받았습니다. 앞으로 배우가 아닌 작가 신동욱의 활동을 무한 응원하며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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