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0.

[ 1 ] 어쩌면 그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안내하는, 깨어있는 정치인, 위정자들의 이른바 ‘계몽적‘ 지위를 버린 브라질 최초의 사상가일지 모른다. 28

[ ] 외형뿐인 사회성은 사실 개인적인 것을 압도하지도 못하고, 집단적 질서를 만드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개인주의는 새로운 각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규칙(개인주의와 모순된다)을 따르려 하지도 않고, 대외적 목적에도 전념하지 않은 특징도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친절한 사고방식에서.. 22

[ 2 ] 지식인들은 구체적인 목적을 갖는 지식보다는 지위와 체면을 위한 지식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자유로운 전문직이 개인의 독립성이 인정되고 겉치레 지식을 갖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과대평가된다.....정치에서 이것은 장식적 자유주의였으며,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농업 귀족은 민주주의를 들여와, 그들이 누리던 권리와 특권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용하려고 애썼다. 22-23

[ ]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법의 비인격적 속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이상적인 행정 조직과, (매 순간 이를 무너뜨리는) 가장 극단적인 인격주의(혈연,지연) 사이를 오갔다. 24

[ 3 ] 국가의 과거에 대해 결산하려는 병적인 혹은 나르시시즘적인 습관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아메리카로 옮겨 온 지적 유행이었다....그러나 올란다, 프레이리, 주니오르의 저작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위대한 역사가의 징표, 말하자면, ‘구체적인 것에 대한 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33

1.

[ ] 01 유럽의 경계: 그런 시도들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묻기 전에, 우리가 물려받은 공동생활과 제도와 이념 중 과연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우리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43 ‘개성 중시 문화‘는 까마득한 아주 옛날부터 이베리아인에게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었으며, 그 어느 이웃국가도 이 문화를 그들만큼 강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인간 고유의 가치, 그리고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각각의 자율성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실제로 스페인과 포르투칼 고유의 민족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한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는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얼마나 덜 기대는지, 얼마나 자족적인지다. 인간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산문, 자기 노력의 산물, 자기 덕목의 산물인 것이다. 45 포르투칼과 브라질을 비롯한 이베리아 문화권 국가들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일화는 취약한 사회구조와 조직된 위계질서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제도와 관습의 결합, 혹은 그것의 무력함 때문에 아나키즘적 요소들이 쉽게 출현했다....정부 법령의 우선적인 목적은 으레 순간적인 개인의 격정을 억누르고 제지하기 위함이었지, 사회집단들 간의 영속적인 제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46 혁명적 사상이라는 것이 승리하기 훨씬 전에 이곳은 특정 특권들, 특히 세습 특권의 비합리성과 사회적 부당함을 깨달은 것 같다. 이베리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개인의 명망은 출신 성분과 무관하게 계속 중요했기 때문이다...귀족이 아무리 우세한 시기에도 폐쇄적인 계급이 되지 못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이름을 쓰는 현상은 포르투갈에서 이미 흔한 일이었다. 48-49 상인 부르주아들은 최종 승리에 이르기까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됐으며, 일정 지위에 오를 때까지 경제적 원조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적으로 새로운 행동이나 사유방식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가치척도를 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51 훌륭한 포르투칼인이나 스페인인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건전하지 못한 투쟁보다 존엄한 무위도식이 더 낫거나, 때로는 고상하게까지 여겨졌던 것이다...그들에게는 일보다 여가가 중요하며, 생산 활동은 관조나 사랑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낡은 인식이 우세했다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육체노동을 장려하고 숭배한 것과 다르다. 54 그들에게 연대는 이해관계의 영역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의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독재와 종교재판은 무정부와 무질서를 지향하는 그들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그들의 시각에는, 권력 집중과 순종에 의거하지 않는 다른 완벽한 규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55 모든 문화는 자신의 생활상에 적합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타자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동화하며 따라간다. 이것이 바로 경험과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56

2.

[ 4 ] 02 노동과 모험: 노동자 유형은 전체보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평균적인 영국인은 쉬지 않고 일하는 독일인의 근면함도, 프랑스인의 알뜰한 절약정신도 좋아하지 않는다....태만은 우리가 더운 지역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북유럽의 그 어떤 민족도 이런 특질을 공유하지 않는다. 61-63 그들의 천성은 강요된 규칙성이나 타인의 감시와 신체적 제약 등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 덜 정주적인 활동에 적합했다. 그들은 대단히 다재다능했지만, 유럽인들에게 제2의 천성 내지 사회적, 시민적 삶을 위한 필수 덕목으로 여겨진 질서, 지속성, 정확성과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67 브라질 농업에 만연했던, 쉬운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과 우유부단함은 도시의 직업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사회 계층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곳과 반대로,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가업을 찾아보기란 더욱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에서 진정한 장인 정신이 형성되는 데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확고한 소명 의식을 고취하는 일과 오랜 숙련을 요하는 직업에도 걸림돌이 되었다...개중에 가장 잘 보존되었던 전통은 각 직업군마다 휘장과 깃발을 내걸고 왕실 행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집단적 성격의 노동은 대부분 특정 감정과 집단적 정서가 동시에 충족될 때에만 비로소 받아들여지곤 했다.83-84 우리 사회처럼 애초부터 인격주의(혈연,지연)적인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형성된 단순한 연줄(개인들끼리의 진정한 협력과는 거리가 멀다)이 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러가지가 두서없고 무정형적인 협력으로 귀결되었다...정서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열정적인 특징은 활발하게 고양된 반면, 질서, 규율, 이성과 관련된 자질은 퇴화하고 말았다 85 그들은 심지어 천지창조도 신의 유기내지는 방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87 네덜란드인들과 달리, 포르투칼인들은 유색인종들과 긴밀하고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유럽 민족들보다 토착민과 흑인의 관습,언어,종교에 대해 소통의 접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아메리카화되었다가 아프리카화되었다가 했다.....네덜란드인 침략자들이 들여온 신교는 구교와 달리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감각을 자극하는 면이 전혀 없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종교성을 기독교적 사상에 뿌리내릴 만한 토양이 제공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하다.....포르투칼인들이 고국과 동떨어진 곳에 제2의 조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초인간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혼혈 덕택이었다. 93

3.

[ ] 03 농촌의 유산: 도시 부르주아의 이상과 원칙과 전혀 다른 이 논리에 따르면 혈연, 특히 가부장적 가치가 강조하는 혈연으로 맺어진 파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시되어야만 했다. 이 파벌에는 생물학적 연결 고리나 온정주의가 강조되며, 파벌의 수장 아래 직계 방계 가족들은 물론 각종 연줄로 이어진 이들이 모이게 된다. 즉, 이 파벌은 불가분의 하나로 여겨졌으며 파벌의 각 구성원들은 이해관계나 사상이 아닌 감정과 의무를 공유하며 서로가 묶여 있다고 생각했다. 112 권위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유일한 영역인 식민지 시대의 가족은 권력, 존중, 복종, 사람들 사이의 단결 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을 제공했다. 그 결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가족 공동체 고유의 감성들이 만연하게 되었다. 117 그들이 사변적 사고를 사랑했다고 반드시 생각할 필요는 없다(사실, 그렇다 한들 우리는 지적 사변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적이 없다) 그저 유려한 문장, 달변, 박학다식, 특이한 표현 등을 사랑했을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성‘과 일치한다. 그것은 지식과 행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장식품이자 소양일 뿐이다. 118 독립적인 도시 부르주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 창출된 자리들은 어쩔 수 없이 옛 농장주들로 채워졌으며, 따라서 그들의 사고와 특징, 성향도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도시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이들은 사실 대지주였다. 126-127

4.

[ ] 04 씨뿌리는 자와 타일을 까는 자: 포르투칼인들이 아메리카에 건설한 도시는 지적 산물이 아니다. 자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아서 그 윤곽이 풍경과 적당히 어우러진다. 그 어떤 엄격함이나 방법론, 선견지명도 없었다....기술자의 손자가 귀족과 어울리고 피를 섞는 일이 반드시 막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모두가 귀족의 지위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굴하지 않는 끈기, 절약, 정확성, 꼼꼼함, 사회적 연대 등 제노바 사람들이 숭상하던 덕목들은 포르투갈인들의 입맛에 들어 맞을 리 없었다. 160-162 슬픔은 결코 정돈되게 묘사할 수 없다. 슬픔은 무질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포르투칼 시는 모든 불만에 대한 해법이 될 수도 있을 착란이나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았다. 비록 환멸을 노래하지만, 이를 통해 폭풍우를 몰고 온다든지, 악마를 소환한다든지, 금을 만들어 낸다든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아닌, 태평스럽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만든 질서를 받아들였다. 167 사실, 어떤 외부의 자극도 사건들의 흐름을 심각하게 지배하거나 자연의 질서를 왜곡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68

5.

[ ] 05 친절한 인간: 브라질의 경우, 객관적인 이해관계에 의거하고, 또 헌신했던 행정 시스템과 관료 집단은 예외적으로만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폐쇄적인 울타리들 속에서 사적의지가 지속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사람을 대할 때의 소탈함, 환대, 너그러움 등 브라질을 찾는 외국인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그런 덕목들을...‘훌륭한 매너‘ 내지는 예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사실 넘쳐흐를 만큼 극도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212-213 사회적인 儀式주의에 대한 반감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매사에 균형 잡힌 균일한 인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브라질인들은 상급자에 대한 존경심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기질은 존경심을 어느 수준까지 용인하기는 하지만, 가족처럼 더불어 살 수 있는 가능성만큼은 완전히 억눌리지 않기를 내심 바란다. 214 언어의 영역을 예로 든다면, 우리는 강조를 위해 축조사(크기나 수량의 저금을 나타내거나 대상에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접미사)를 습관처럼 사용하는데, 이 때 그들의 행동 양상이 드러난다...사회적 호칭에서 성씨를 생략하는 경향 또한 동일한 현상이다...상대의 이름만 부르는 현상은, 서로 별도의 가족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행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215 그리고 이 과정세서 혈연, 지연, 영혼의 공동체에 의거하지 않는 사고는 자연스럽게 배격된다. 오직 감성의 윤리에 입각한 ‘더불어 삶‘만이 존재한다는 점은 외국인들이 쉽게 파고들지 못하는 브라질식 삶의 한 측면이다. 216 브라질인들의 가장 특징적인 기질의 하나인, 거리감에 대한 경멸이 종교의 영역으로도 옮아갔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앞서 언급한 일본인들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의식주의가 사회적 행동의 영역을 침범하고 엄격함을 부여하는 반면, 브라질에서는 의식의 엄격함이 느슨해지고 인간화된다. 217 친밀하고 가족적이며, 의무와 엄격함이 없는 숭배, 이런 표현이 부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민주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런 숭배가 신자에게서 일체의 노력, 신실함, 절제를 면제해 주었고, 결국 우리의 신심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스스로 길을 잃고 형태 없이 세상에 녹아들어 가기 때문에 결국 그 세상에 자신의 질서를 강제하지 못하는 그런 종교성인 것이다. 218, 219 교회와 교회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에게서 그 어떤 종교적 열성의 징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20 금욕적인 감리교나 청교도는 열대지방에서는 절대 꽃피우지 못할 것이다...브라질인들의 내면적인 삶은, 자신의 개성을 포용하고 지배해 하나의 사회 단위에 의식 있는 일부로 통합시킬 수 있을 만큼 특별히 응집력이 강하지도, 규율이 잡혀 있지도 않다. 바로 이 때문에, 브라질인들은 삶의 여정 중에 만나는 갖가지 생각, 행동, 형식에 자유롭게 자신을 내맡겨 종종 별 문제없이 동화되는 것이다. 221

6.

[ ] 06 새로운 시대: 스스로를 지적이라고 여기는 브라질인들은 여러 가지 상이한 이념과 신념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이념과 신념을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꾸며 상상력에 호소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해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225 여기에선 아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의 자연스러운 진로를 따라가지 않는다. 모두들 높은 보수를 받는 자리나 더 높은 위치로 도약하는 데 열중한다. 그리고 꽤나 자주 성공을 거둔다.....대여섯 개의 직책을 맡고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227 자유직업에 대한 매혹의 기원은 개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우리의 집요한 애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우리의 정신적 배경은 문서화된 말과 정교한 문구와 완고한 생각의 권위, 그리고 한편으로는 주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거리낌 없는 모호한 태도를 혐오하는 것 등에 의해 줄기차게 형성되었다. 이런 권위와 혐오의 조합은 협력, 노력, 개성의 의존적 태도, 나아가 포기까지 강요한다. 끈질김과 수고가 수반된 지적 노동을 배제하는 것, 명료하고 단호하고 확실한 생각들을 배제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지혜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28, 229 현실 도피의 여러 형태 가운데, 사상의 힘에 대한 주술적 믿음이야말로 정치, 사회적 청소년기를 힘겹게 지나고 있던 우리에게 가장 품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브라질식 생활 여건에 얼마나 들어맞을지, 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지에 대한 숙고 없이, 복잡하고 정치적인 체계를 남의 땅으로부터 도입했다.... 민중들의 발전은 정신적 소인이나 특별한 감정적 소인에서 피어난 것도, 완전한 성숙에 이른, 잘 정의되고 구체화된 삶의 개념에서 피어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사상의 주창자들은 삶의 형식이 항상 개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 삶의 형식을 법령으로 ‘만들‘거나 ‘뒤엎을‘ 수 없다는 점을 종종 망각하곤 했다....대중은 그저 모든 것에 무심했다. 그들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한 당나귀처럼 ˝짐을 평생 지지 않아도 되게 될까?˝라는 질문만을 던질 뿐이었다. 234 우리 또한 문어, 수사, 문법, 형식적인 권리 등 더 고상한 것들에만 매달릴 뿐, 진정한 일상적 존재의 터전인 산문적 현실을 잊고 말 것이었다...어려운 외국 이름들로 점철된 특정 이론들이 갖는 권위와 그런 이론들을 수입하는 행위 자체는 세상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 나태한 이성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수고스럽고 세심한 정신작용이다. 따라서 말의 유혹이나,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듯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거의 초자연적인 덕목은 배제된다. 239, 240 여러 만병통치약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은폐한다. 여러 담론은 저마다 어조와 내용은 다르지만, 언제나 동일한 의미와 동일한 비밀스러운 기원을 지닌다. 브라질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염세적인 보바리즘을 확산시켰다는 이유로 브라질 제정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문제가 세월이 흘러도 완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진 것은 기껏해야 우리가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일 것이다. 242

7.

[ ] 07 우리의 혁명: 진정한 정당의 부재는, 일부 사람의 단순한 추정과는 달리,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원인‘이라기보다 이 부적응에서 비롯된 ‘증상‘이다. 이런 식의 혼돈은 쉽게, 그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우리의 정치 생활에서 인격주의가, 많은 경우 긍정적인 힘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인격주의에 비하면 자유민주주주의 구호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순전히 장식적이거나 선언적인 개념처럼 보일 때도 있을 정도다. 265 이탈리아나 독일 모델이 가진 색채는 상당히 탈색되었다. 그들이 풍기던 거만한 에너지는 여기 브라질에 와서는 신경쇠약에 걸린 지식층의 가련한 푸념으로 변모했다. 결국 브라질에서 파시즘은 공산주의가 밟은 것과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 우리 가운데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낄 만한 이들은 사실 제3인터내셔널의 원칙을 수행하는 데 가장 부적합했다...모스크바가 추종자들에게 요구하는 엄격한 규율보다는 브라질 공산주의의 ‘무정부주의적 사고‘와 혼합된다. 270,271 이 세계를 무시하고픈 바람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자연적인 리듬, 그리고 밀물과 썰물의 법칙을 기계적 리듬과 거짓된 화음을 위해 포기하는 것을 의마한다. 이미 우리는 영적 피조물이 국가가 자연의 질서와 대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서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회적 틀이 내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대조를 통해 대립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사회의 상위 형태는 그 사회 고유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물론, 사회 그 자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어야 한다. 272


볕뉘

0. 우연히 책방 매대에서 손길이 갔다. 직감으로 봐야할 책이 되었다.

1. 해설자는 저자가 이분법의 어느 한 편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을 넘나든다고 했다. 변증의 탁월함이 이 책이 묘미이며 사회학이 아니라 역사서이며 또 다른 두권의 책과 함께 권하고 있다. 유럽의 변방, 이베리아반도의 독특함, 그 가운데 포르투칼의 분위기가 적절하게 스며든 것이라고 말한다.

2. 읽으면서 첫 몇 대목이 새겨진다.( 0.1, 0.2, 0.3, 0.4) 계몽적 지위를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지식인들은 행동과 태도가 아니라 장식과 무늬로 지식에 집중한다는 이야기, 우리가 물려받은 공동생활과 제도와 이념 가운데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우리의 것인지 말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계몽하려고 쓰이는 글들이 남발하는데, 그들은 애써 자성하고 있는 것인지도....그 삶들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그저 여기서 말하는 인격주의....아는 사람들의 연줄에 올인하는 삶들....합리성은 있는 것인지조차 애매하다. 대단하다고 하고 남다르다고 하는 선민의식이 구차하다고 되새기지 않는다. 한번도 돌이켜볼 수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소심한 관찰들의 결과는 그러하다.

3. 책을 읽다가 스페인의 고야가 떠올랐다. 프랑스혁명의 변방으로 물결치는 그곳은 서양사의 줄기와 다르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아나키즘이 각별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는데 변방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발원이 아닌가 싶다. 집시의 삶과 조건...그 배경들이 좀더 궁금해진다.싶다.

4. 우리는 우리를 그래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그림을 그려도 황망하여 망자의 벗에게 전화를 걸고 만다. 상가집이 너무나 비통하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그래 그렇지. 가지 말라 했다. 술로 달랠까 하다가 걷다. 걸었다. 별 생각없이 걷는다. 지난 반찬에 대충 밥을 해먹고 걷는다. 걷다가 소주 생각이 난다. 별일 아니라고 다그친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보니 마트 앞이다. 작은 뚱뎅이 맥주를 하나 샀다. 맛이 없다. 취기도 없다. 참을 청하니 새벽이다. 아침 속이 불편하다. 몇주 챙기다 보니 제법 몸에 익은 운동을 해주며 잠을 깨웠다.

고추와 토마토 지지대를 올린다. 지지대에 묶는다. 사온 바질 흙을 화분에 넣고 씨앗을 뿌리고 얇게 보양토로 덮은 뒤 물을 준다. 퍼플 튜립이 곱다. 시집들 사이 내 마음이 어디쯤 쳐박혀 있는 줄 모르겠다. 조금씩 별처럼 걸린 시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조금씩 꽃처럼 마음을 건져올리는 시편들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마음은 빨래줄에 널려있는 듯싶다.

홍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또 무언가를 맛보고 먹지 않던 과자를 먹는다. 고이 들 가시게. 편히 쉬시게. 꽃을 바치네. 여기서 서성이지 말길. 명복을 비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마리 로랑생 전 - 그리 기대를 많이 하고 가지는 않았는데, 다소 놀라있다. 흑과 백, 그리고 핑크....를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을까? 반려동물과 악기, 그리고 초록과 꽃. 자화상을 눈여겨보다. 터치와 색감을 새겨본다.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이 삶에서 꺽지 않고나 물러나지 않는 선들.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법들. 이런 것들이 지켜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시류와 맞는 분위기인지도... ... 싱싱하게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결코 양보하거나 주춤해서는 안되는 것인지도...

2. 자코메티 전 - 장 주네의 비평?집을 읽거나 작품들을 사진으로 보았고, 나름 아끼는 작가라 더 관심이 갔다. 전시보다는 맥락에 대한 서술들이 집요하게 많았다. 새롭게 들어온 것은 아버지가 화가였고, 천재적인 소묘실력이 어릴 때부터 있었고, 그림들이 외려 관심이 더 갔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무심?한 말이 그를 평생지켜낸 것인지도...보이는대로 묘사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야한다는 말.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배경을 했다는 점. 권진규나 구본주가 떠올랐다. 세상이 그대로 드리우거나 비추이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낸다는 것이 그리 험난하거나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 우리는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어디쯤

3. 김종영 전 - 82년에 타계했다고 하는 그는 고암 이응로처럼 모든 방면에 능통한 듯 보인다. 조각, 서예, 서양화, 마지막 글씨와 그림도 좋았다. 미술관도 따로 있다고 하니 더 살펴보아야 할 듯싶다.

4. 백석우화 - 혹시나 싶었는데 당일 예매가 되지 않았고, 연락해보니 전석 매진이었다. 보조석까지....일말의 희망을 않고 관계자의 일찍 와보라는 말에...시간반이나 일찍 도착하여 대기하였다. 덕분에 30년 된 극단의 이력을 살필 수 있었고, 주연배우들과 눈마춤도 말도 섞을 수 있었다. 연출가가 이중섭과 백석에 눈길을 준 점, 그 생애를 연극화해서 벌써 상연했다는 사실이나, 무수한 작품들의 편린....서울과 대도시가 갖는 장점들이 한번에 확 쏟아져 들어왔다. 이중섬과 백석은 동향이었다고 하고, 한 사람은 남으로...한 사람은 북에 남았지만....이중섭 역시 제주도에까지 처자식 먹여살리기조차 어려웠고, 은박지 그림을 춘화로 매도한 동료작가들에 대한 배신감들....그가 지키고자 한 것들에 대한 작품에도 눈길이 간다. 백석은 삼수갑산 협동농장에서 1996년에 생애를 마감하였다고 소식을 전하는데, 1995년에 찍은 가족사진은 여전히 그 나이에도 순수하고 가녀린 모습인 듯싶다. 때묻지 않은....동시, 동화...그리고 많은 작품들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불쏘시개로 넣어버린 듯... ...


 

 

 

 

 

 

 



볕뉘

0. 이명자 개인전도 챙겨보았다. 첫 개인전이라고는 하나 발문도 그동안 삶의 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77세의 작가의 최근 그림은 더 활기가 있고 좋아보였다.

1. 사무실에 대중교통으로 출근하여, 이것저것 바꾸었다. 담벼락밖에 바꿀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쯤 어떻게 우리는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5-6년전 출마한다고 전화연락이 왔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왔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한 이력은 모른다. 청년회의 짧은 기억만 간직하고, 이후 정치권에서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그래 궁금하지 않다. 그 때 도와줄 방법이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 미안하다. 인연과 끈이 어떤 용도로 쓰여야하는지 알고 움직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하는 수밖에... ...

2.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배우는 시어 한톨 한톨을 되새김질 하여 아이에게 주듯 시를 뱉어내었다.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배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정가, 서도소리, 작창으로 풀어낸 시들은 무척이나 울림이 컸다. 한 시공간에서 반사되어 되울리는 시어들은 향긋했고, 알싸했고, 가슴 속 눈물을 출렁거리게 했다. 시와 삶.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배우들을 따라 천천히 낭독하고 싶어졌고, 어느 새 말투도 곡절이 생기는 듯했다.

3. 홍매화와 개나리, 조팝나무 순을 오고가는 길 추려서 단장을 했다. 하루하루 보는 맛이 남다르다. 마음은...벌써...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우주들

어떤 사람이 ‘세상‘을 그려보고자 작정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지방, 왕국, 산, 만, 배, 섬, 물고기, 주거지, 도구, 별, 말, 사람 들의 이미지로 한 공간을 채운다. 죽기 직전, 그는 그 끈기 있는 선들의 미로가 그려낸 것이 자기 얼굴의 이미지였음을 발견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산마르코 카페는 진정한 카페다. 단골들의 자유로운 다원주의와 보수적 충실성을 확인시켜주는 역사의 주변부다. 착한 신사든, 멋진 희망을 품은 젊은이든, 대안적 집단이든, 아니면 현대적 지성인이든, 단일한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이라면 사이비 카페일 뿐이다. 모든 동족 결혼은 숨막히게 한다......산마르코 파페를 압도하는 건 활력과 생명력 넘치는 다양성이다. 장거리 항로에 나서는 늙은 선장, 시험을 준비하고 사랑의 전략을 연구하는 학생,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감각한 체스게이머, 그 탁자의 예전 단골로서 크고 작은 문학의 영광에 바쳐진 자그만한 이들 명패에 호기심을 보이는 관광객들, 조용히 신문을 읽는 독자들, 맥주나 백포도주에 이끌린 쾌활한 무리, 시대의 사악함을 통탄하는 주름투성이 노인, 아는 체 토를 다는 항의자, 이해받지 모산 천재, 몇몇 멍청이 여피가 있고, 영광의 환호처럼 튀어오르는 병뚜껑들이 있으니, 특히 무엇보다 이런 활력이 넘치는 때는....웨이터가 말대꾸도 못할 어조로 계산서를 모두 자기 앞으로 달아놓으라고 외칠 때다. 16-17

이제 ‘세상‘은 대체로 그 전모가 잘 알려져 있는데다 거기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를 우리 눈앞에 제공하는 책들이 아주 많긴 해도, 그럼에도 단지 한 ‘지방‘을 다루는 경우에는 간신히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니...... 아메데오 그로시, 1791

볕뉘.

0. 화폭이 커지면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멀고 가까운 것의 채도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같은 사진을 작은 화폭에 그리면서 색과 터치 연습을 한다. 떨구던 고개가 조금 들렸다.

1. 1987은 잘 된 영화가 아니다. 페북의 그룹은 요란스럽고 갖은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면서 어수선하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에 대한 한 친구의 일갈처럼 국풍이다. 그저 그럴 뿐이다. 박근혜도, 박정희도 살아나지 않는다. 서서히 자맥질하면서 명멸할 뿐이다. 관객을 영화의 문법대로 거칠게 호흡을 몰아부쳐 ‘감정‘하나는 토하게 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무장해제하게 할 뿐이다. 어쩌다 감정의 해우소가 될 뿐이다. 천만이 봐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감정에 능멸을 당했는지 모른다. 거칠고 전국을 몰아부치는 감정의 위무에 그 심연을 헤아리지 못한다. 국가와 정치에게 다른 것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당연이 아니라, 느리거나 더디거나, 턱턱 막히는 호흡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생체기를 달리 읽고 나누는 연습이 필요로 하다. 국가는 그저 관성대로 간다. 달리 요구하고 말하지 않으면 그대로인 걸 경험하지 않았는가. 거칠고 빠르고 내리누르는 맥박을 가진 것들을 사랑하지 않기로 한다. 부드럽고 설득하고 세세히 달라지는 결들을 살피기로 한다.

2. [코뮤니스트]의 관심있는 장들을 꼽아서 본다. 마르크스 이전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에 대한 도전으로서 바쿠닌과 베른슈타인, 로자와 그람시....보다나니 깔끔하면서도 정리하기가 쉽다. 요점들이 잘 박혀있는 듯 싶다.

3. 어젠 30여분 이곳에도 눈이 푹푹 나렸다. 그리고 말았지만 걸어서 출근하는 맛은 남달랐다. 그제 꺾어온 매화와, 어제 가져온 개나리와 조팝을 사무실 한켠에 두었다. 설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카무라 고타로 - 촉각의 세계

나는 조각가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나에게 세상은 촉각이다. 촉각은 가장 유치한 감각이라고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가장 근원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각은 가장 근원적인 예술이다. 나의 약지 안쪽은 매끈매끈한 거울 표면에서도 요철을 느낀다. 이건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유리에도 가로세로가 있다. 눈을 감고 평범한 유리의 표면을 어루만져보면, 흡사 나뭇결이 살아 있는 오동나무 나막신 같은 무늬가 느껴진다. 잘 닦인 거울 표면 같은 경우는 나막신까진 아니지만, 겨우 15센티도 안 되는 너비에 두 개가량의 물결무늬가 있다는 걸 손끝은 알고 있다. 약지에는 경사를 느끼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거울 표면의 파동을 느낄 땐 흡사 배가 파도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약간 기분 좋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볕뉘.

0. 다카무라 고타로는 ‘촉각의 세계‘란 글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감을 이렇게 촉각으로 하나 하나 결을 다시 음미하고, 그리고 여섯번째 위치감각을 말한다.

1. 처음 읽으면서 글쓴이가 그저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각가다라고 시작하지만 어쩌면 이리 상상력이 생생할까 싶은 의구심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지금 그 글의 말미 뒷장 그 이력을 보니 이렇게 씌여 있다.

˝다카무라 고타로 (1883-1956): 조각가. 시인. 목조 조각가 다카무라 고운의 장남으로 뛰어난 조각가다. 시집 [치에코 이야기] 등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문학사에도 족적을 남긴 시인이다. 이 시집에는 그의 아내이자 영원한 사랑인 치에코를 처녀시절부터 죽기까지 30년에 걸쳐 곁에서 지켜보며 쓴 시와 산문이 수록돼 있다.˝

2. 그리고 탁자 위의 유리를 약지로 느껴보았다. 수직의 결이 몇가닥 들어왔다.

3. 지난 주말에 백석을 읽고 나누었다. 읽다보니 순수한 사춘기 소년소녀가 느껴졌다. 선명하게 과거의 서정을 기억하는 그 결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신형철평론가는 장석남의 시를 읽으며 서정성을 이야기했다. 몸이 안고 있는 서정성.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서정을 찾는 것일까. 왜 이리 늘 갈증에 허덕이는 걸까. 세상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얘기겠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언제나 퍽퍽하거나 팍팍해서, 사람들은 늘 마음의 근원이나 원형을 찾으려고 애쓴다고....굶주림이나 고향이나 어머니가 그 원형이라고 김현은 이야기했지만, 달라진 시대는 거기에서 원형을 구걸할 수 없다고....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사람이다.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그가 쓰는 시어들은 평안도 사투리이긴 하지만 고어들이나 우리말에서 애써 가져왔다고 한다. 윤동주가 그리 갖고 싶어했던 초판본 [사슴]을 읽었다. 노천명을 사슴도 백석을 가르킨다는 말을 좌장은 전했다.

4. 백석은 비와 바람과 햇살, 산, 하늘....을 나누고 나누었다. 고기부위와 산해진미만 나눌 줄 아는 이들에게서 볕과 바람과 시와 구름의 가지가지를 나눌 수 없다. 하지만 그들도 서정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