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의 목적은 정이 가득차고, 기가 충만하며, 신을 왕성하게 하는 것이다. 45

 

훗날 도가에서는 이를 직접 정, , 신으로 귀납함으로써 하늘에 세 가지 보물 해, , 별이 있고 땅에 세 가지 보물 물, , 바람이 있다면 우리 몸에 있는 세 가지 보물은 바로 정, , 신이다.” “약 중에서 최고의 약 세가지는 바로 정, , 신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48

 

태극도는 중화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검은색과 흰색의 두 가지 색이 맞물려 있다. 검은색과 흰색은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하는데 마치 검은색 물고기와 흰색 물고기가 서로 뒤엉켜 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를 정, , 신의 개념에 비추어보면 흰색은 이며 양에 속하므로 양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검은색은 이며 음에 속하므로 음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흰색과 검은색이 맞물리는 중간부분에 있는 s자 형태의 곡선은 이다. 음과 양의 중간에 있으므로 으로도 전환될 수 있고 으로도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이에서 교량 역할, 음과 양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태극도는 우주 자연의 법칙을 보여 주는 한편, 우리 몸의 생명의 법칙을 설명해주는 도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태극도는 정, , 신의 특징과 교차, 증감, 변화의 법칙을 형상화하여 보여 준다. 태극도를 잘 살펴보면 흰색이 가장 많은 부분에서 검은색 부분이 시작되고, 검은색이 가장 많은 부분에서 흰색 부분이 시작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의 변화 양상을 설명한다. ‘이 가장 충만할 때 비로소 이 왕성해지고 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이 충만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49

 

동의보감, 과학을 논하다.

 

주역에서는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작용하는데 무언지 제대로 헤아려볼 수 없는 것, 그것을 이라고 한다고 했다. ‘은 말 그대로 귀신이다. 귀신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해서 제대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98

 

음식이 비위에 들어와 소화되면 여기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나온다. 다섯 가지 맛은 요즈음 말로 하자면 영양분이다. 이는 온몸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이 되며 더 중요하게는 정을 만드는 근본이 된다. 157

 

더욱 특이한 것은 단전을 셋으로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각각 정기신을 배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하단전은 정, 중단전은 기, 상단전은 신을 주관하는 곳이다. 신은 기에서 생기며 기는 정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보물, 곧 정기신만 잘 다스리면 양생은 끝나는 것이다. 160

 

인삼은 양기를 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정기신으로 되어 있다. 정과 신은 놔두고 기만 보해준다면 결국에는 균형이 깨져 병을 불러 올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인삼은 자연에 비유하자면 태양이다. 바닷물은 놔두고 태양이 좋다고 해서 태양만 자꾸 늘려가다 보면 바닷물은 마르고 땅은 말라 버릴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예로부터 아이들은 양기 덩어리여서 양기를 보해주는 인삼이나 부자와 같은 뜨거운 약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바닷물에 해당하는 것, 곧 음기를 보충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소아 치료의 대원칙이다. 204

 

한의학은 어떻게 보면 너무 쉽다. 몸이 차면 더운 음식이나 약을 먹으면 되고 반대로 몸이 더우면 찬 음식이나 약을 쓰면 된다. 어떤 음식의 성분이 무엇이고 열량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음식이 찬가 더운가, 단가, 쓴가, 한마디로 그 음식의 기미가 어떤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고 하지 않고 맛을 골고루 먹으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음식을 골고루 열 가지를 먹었는데 모두 단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다면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한 가지 맛만 먹은 셈이 된다. 211

 

마찬가지로 어떤 약이 달다거나 쓰다고 하는 것도 단순히 입에서 느껴지는 맛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몸에 미치는 영향, 효과를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삼은 달다고 하지만 실제 인삼을 먹어보면 오히려 약간 쓴맛이 난다. 인삼이 달다고 한 것은 인삼이 오행 상으로 토에 해당하여 토에 해당하는 단맛과 역시 토에 해당하는 장기인 비장에 작용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68

 

숨을 내쉬면 기가 나가니 이는 양이 열리는 것이며, 들이쉬면 기가 들어오니 음이 닫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음양과 자연의 음양이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호흡의 상하 운동을 잘 다스려 그것이 몸을 돌아 쉼 없이 돌 수 있게 하면 열리고 닫히며 오고가는 변통의 오묘함이 내 몸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는 신과 같은 존재가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맡아 다스리는 이 없이 자연히 그러한 것이다. 302

 

외인은 몸의 밖에서 오는 것으로, 풍한서습을 들 수 있다. 풍으로 기를 상하면 통증이 생기고, 찬 기운으로 기를 상하면 몸이 떨리며 무더위로 기를 상하면 열이 나면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생기며, 습한 기운으로 기를 상하면 몸이 붓고 배가 불러 오며, 건조한 기운으로 기를 상하면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된다. 317

 

소고기, 개고기가 기를 보하는 것이라면 막힌 기를 뚫어주는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생강이다. 생강은 기 중에서도 양기를 잘 뚫어 준다. 흔히 한약을 달일 때 생강 세 쪽, 대추 두 개를 넣으라는 경우가 많은데, 생강을 넣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강에 해독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또한 생강은 기를 잘 흩어주므로 약효가 더 빨리 나게 된다. 341

 

육자기결은 호흡할 때 특정한 소리를 냄으로써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입으로는 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고, 코로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은, 발음 역시 하나의 기이기 때문이다. -, -, -, -, -, -삼초. 간의 기를 돕기 위해 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폐의 기를 돕기 위해 할 때는 두 손을 올리고, 심의 기를 돕기 위해 할 때는 이마 위에 두 손을 깍지 끼어대고, 신의 기를 돕기 위해 할 때는 두 발을 끌어안는데 무릎이 가지런하게 하고, 비의 병 때문에 할 때는 꼭 입을 오므려야 하고, 삼초에 열이 끼어들었을 때는 누워서 히히해야 한다. 343-344

 

황제내경의 인식론 - 사람은 모두 하늘과 땅의 기를 받아 태어난다. 하늘이 사람마다 제각각 부여한 것을 덕이라고 하고 땅이 그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기라고 한다. 이 덕과 기가 서로 작용하여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다. 360 오행으로 파악된 신은 혼신의백지이다. 심은 신을 간직하고, 폐는 백을 간직하고, 간은 혼을 간직하고, 비는 의를간직하고, 신은 지를 간직한다. 여기에서 간직한다는 것은 각각의 신이 각각의 장기에 머문다는 것으로, 사실은 각 장기가 발휘하는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잇다. 각 장기에 머물러 있다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간직하고 있는 은 좁은 의미에서의 이다. 361

   

오장의 정이 심으로 몰리면 지나치게 기뻐하게 된다. 폐로 몰리면 지나치게 슬퍼하게 된다 간으로 몰리면 지나치게 화를 내게 된다. 비로 몰리면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신으로 몰리면지나치게 무서워하게 된다.365

 

 

볕뉘. 근력운동이나 머슬매니아 등등. 마라톤을하면서 운동중독성향이 있는 분들은 사실 건강하지 않다. 감기에 몸살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신체는 건강할지 모르겠지만 소진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은 것 같다. 총명한 기운도 별로 느껴지지 않고 말이다.  컨디션을 얼마나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가? 하루를 산뜻하게 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조건 몸을 혹사시키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다. 간헐적 운동만으로도 충분한 근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봄 건강은 겨울에 미리 챙겨두고...활인심방이나 정기신이란 개념을 갖고 응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확장과 축적된 상태를 보고 확인하는 것도 과학적인 태도가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금이 절실히 필요한 기독교인 통치자가 교회의 고리대금 금지령을 회피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유대인에게 은행업을 하도록 하고 이들에게 세금을 물리거나 수익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사실 은행업은 중세에 유대인이 종사할 수 있던 극소수의 직업 중 하나였으나, 채무자들에게 인기가 없기는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유대인이 끊임없이박해를 받고 1290년에는 잉글랜드에서,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한 것은 이런 탓도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올리버 크롬웰이 상업적 목적을 버젓이 내세워 일부 유대인의 존재를 용인했으며, 그 뒤로 150년에 걸쳐 잉글랜드보다 관용적인 네덜란드에서 돈을 번 유대인이 상업과 금융의 기회를 찾아 잉글랜드로 흘러 들었다. 65

 

자연은 복잡하다. 자연선택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최선의 설계에 따라 단번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한 자리를 덕지덕지 달고서 진화한다. 이 책의 미덕은 노화를 진화의 관점에서 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화는 복잡한 현상이며,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있기에 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라는 물음의 답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 찾아야 한다. 212 옮긴이의 글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는 일본으로, 기대 수명도 가장 높다. 스웨덴은 빈부 격차와 기대 수명 둘 다 일본에 약간 뒤지며, 포르투갈, 미국, 싱가포르는 선진국 중에서 소득 격차가 가장 크고 기대 수명이 가장 낮다. 이 추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대 수명이 부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선진국에서 왜 소득 불평등이 이런 식으로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심리적 생물학적 원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이다. 이 예상치 못한 발견이 가져다준 희소식은 생물학자가 아니어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이여,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211

 

    

볕뉘.

 

1. 진화생물학자인 조나단은 과학이란 사실을 문학과 역사에 담았다. 담기보다는 과학은 변방처럼 느껴진다. 텔로미어와 생쥐의 최신 유전자 조작으로 세포가 젊어지고 재생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더 이상 과학적인 추궁을 하거나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노화가 유전자나 단 하나의 환원론으로 설명하기 좋아하는 과학에 제동을 건다. 그렇게 믿고싶은 것이지만 환경에 따라 곡절을 달리하는 진화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숱한 건강주의자들은 분명 '어떻게하면 죽지 않을까'를 신주단지 모시듯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소득불평등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일이 오히려 기대수명을 늘리는 활동이라고 이 생물학자는 말한다. 환경을 바꾸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자신의 목숨만, 식구들의 건강만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을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이렇게 과학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과학의 쓸모보다 사회의 쓸모가 먼저라는 것이, 내 목숨도 중요하지만 우리 목숨과 늘 연동되어 함께 움직이는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건 아닐까. 

 

2. 씨앗의 자연사도 구미에 당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 길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3-05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너지, 정서적 에너지 그리고 사회적 삶

 

         a²+b²=c², E=mc² 이 수식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가슴이 꽉 막히나요? 누가 생각나나요? 그래요. 처음은 피타고라스, 다음은 아인슈타인입니다. 공식이자 이론이죠. 그저 암기하거나 외우는 것이라면 답답할 겁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조금 더 이해를 하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본다면 어떠시겠어요. ‘각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라는 서술형보다 가슴에 더 다가오지 않는가요. 암기에서 이해로 조금 다가간 것이겠죠.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것과 그것이 정식화되는 과정 속에서 과학자들은 그 아름다움에 멈칫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과물이 핵폭탄이나 원자력으로 이어져 길들이지 못하는 짐승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수학이나 과학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을까요? 물론 현실을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사회라니요? 사회,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는 있기나 한 것일까?” 사회학 세미나 자리에서 사회학교수님들의 자조적인 현실 개탄의 이런 목소리만큼 암울한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삼권분립은 있기나 한 것인지, 대한국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나 한 것인지, 민주주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인지. 그 동안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제도와 시스템의 결과물들은 녹아서 산산이 부서지거나 바스라진지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열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물리현상들을 밝히고 이론화하는 작업들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이제는 조금 더 넓고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의 성과는 IT만이 아니라 현실 곳곳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나 힉스입자 역시 조금 더 다르게 미세하게 우주를 다시보고 현실을 다시 그려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볼 생명체는 자연계의 에너지 흐름과 다릅니다. 생명은 자기조직화를 통해 에너지가 낮은 곳으로 흘러 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것과 반대로 엔트로피(무질서도)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게 됩니다. 생명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물론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또 다시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그 시스템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가정아래서 말입니다.

 

에너지.그래요. 이제 사회를 보는 시선을 달리해보죠. ‘에너지를 줘 보는 겁니다. 복잡한 사회구성이론이 아니라 조금 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그림으로 직감하듯이 느낌에 맡겨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치는 만남이나 모임들, 조직체의 어떤 운영이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뚫고 있는 것을 자연계 현상과 같이 에너지라고 해보는 겁니다. 앞에 감정을 실어서 정서적 에너지라고 해보죠. ‘정서적 에너지의 흐름이 만남과 모임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그러하듯 사회라는 것도, 그 관계에서 정서적 에너지가 큰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해보는 겁니다.

 

 

자본이 집적되고 고도화되는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삶을 단편으로 잘게 썰고 나눕니다. 그 시스템 아래서는 종합적인 시야나 다른 삶들은 볼 수도 없습니다. 서로 아파할 틈도 주지 않으면서 우리 일상과 삶을 옭죄고 있습니다. 사회적 삶을 만들고 해결하는 정치를 복원하고 세계화하지 못하는 이상, 그 상황은 자립적인 나를 지키기도 버겁게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소진되는 나로 침몰하게 만들고 사회와 접촉점이라는 것도 소비하거나 욕망해소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자가발전 하는 자본의 집적은 사회를 밀도있게 만들려는 우리의 작은 노력들을 허망하게 거품처럼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사회나 공동체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점점 더 큰 외로움과 결핍은 사회적 욕구를 강하게 만들면서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간극을 벌려놓습니다.

 

이론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학자는 근육이란 표현을 씁니다. 근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회를 보는 시력과 근력을 키워 함께 사회를 건강하고 활력 있게 만드는 무기라고도 합니다. 이론의 쓸모를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용하다는 관점부터 양자물리학과 수학처럼 문제대상을 확대하면서 적용 성을 넓히는 것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자연과학 공학, , 사물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과도함은 우리의 삶과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의 폭력에서 구해낸 근대과학정신은 애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신민이자 국가권력의 도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 신경과학 등등 여러 자연과학의 성과를 사회와 정치에 적용하는 이론을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도 제대로 바라보려는 관점도 그 만큼,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고도화에 대해서는 사회의 경제-정치적 삶의 이면을 보려는 마르크스의 저작이 요긴할 것이고 응용력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 있어서 고전사회학과 최근 사회학의 성과를 잇고 있는 사회학이론을 다시 접목시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론의 흐름을 서로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소개하는 책의 이론은 단순합니다. “사회적 삶의 에너지는 상호작용의 의례의 사슬에서 생겨나고, 정서적 에너지가 큰 쪽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만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때로는 만남으로 실망하고 에너지를 소진하는 경험이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남이나 모임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에너지를 전달해주기도 하죠. 어떤 사람을 만나면 너무도 강렬해 다시 만남이 이어지기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모임과 조직은 활력과 에너지를 주어 두고두고 찾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책은 이론의 정합성으로 인해 기초적인 개념, 역사적 접근, 실제 적용사례 등을 면밀하게 맹점을 다시 짚어보고 뇌과학의 성과에 대한 반론을 이 이론에 근거하여 펴기도 합니다.

 

아마 당신 곁의 일과 사람, 그리고 사랑, 수많은 관계의 출발점을 다시 살펴보고 다시 시작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론은 비난이나 비평보다 보다 더 오래 관점과 해석, 분석을 지속하게 만들죠. 어쩌면 물리, 화학, 생물학이란 자연과학의 잣대로 사회현상을 보려는 것보다 짜릿한 쾌감을 느낄 줄도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인문사회과학에서 자연과학, 공학으로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관점도 생기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봄이 되길 희망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잊혀질까 두근거린다. 홍매화 걸린 곳도 에둘러 다녀와야겠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기다릴 것을 ㆍㆍㆍ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3-0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