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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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야 질문이 나온다. 궁금하려면 내가 내린 진단과 판단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의 틈이 있어야 한다.

내 판단과 생각도 있지만 아들의 마음과 판단도 별개로 있다. 아들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내 안에 아들 몫의 틈이 생긴다. 그래야 아들의 마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그래야 비로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궁금하지 않은데 질문을 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아들에게 묻지 않고 안갯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

관계란 것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홀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내가 전부가 아닌, 나도 있고 너도 있는 판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이미 갖고 있던 그녀가 고심 끝에 던진 질문(혹은 던지고 싶었던 질문)들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결론을 은연중에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긴 ‘질문 형식의 조언이나 계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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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를 때는 아는 척 끄덕끄덕하지 말고 더 물어야 한다. 이해되지 않는 걸 수용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건 공감에 대한 강박이지 공감이 아니다. 에너지 소모만 엄청나다. 그렇게 계속 버티기는 어렵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무슨 수로 공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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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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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들어주는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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