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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속마음을 듣다 자기를 만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서 반겨야 한다. 내 지난 세월을 누군가에게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도 동시에 공감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들 얘기를 한다지만 실은 계속 자기 얘기를 하게 된다. 아들 걱정을 한다지만 사실은 지난 시절 자신의 상처와 불안, 회한을 무한 반복하게 된다.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수 없다. 자기 모습만을 무한 투사하며 불안해하게 된다. 이미 아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된다. 내 상처 속에 매몰돼서다.

너를 공감하는 일과 내가 공감받고 싶은 일이 있을 땐 항상 내가 공감받는 일이 먼저다. 내가 공감받아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너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든 아니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

누구든 타인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자극돼 떠오르고 뒤섞이면 혼란에 빠진다. 그때의 혼란은 자기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위한 통과 의례 같은 반가운 혼란이다. 어떤 종류이든 혼란은 힘들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 손님이다. 꽃 본 듯 반겨야 한다. 그 혼란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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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속마음에 깊이 주목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자기 내면의 여러 마음들이 떠오른다.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통이자 축복이다. 자기 내면을 알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서 축복이고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고통이다. 그녀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던 끝에 자기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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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각각 개별적 존재, 모두가 서로 다른 유일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 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그것이 공감적 태도다. 공감적 태도가 공감이다.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 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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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 공감을 잘한다는 건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태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 감정결에 바짝 다가가서 그 느낌을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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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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