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론
존로크 / 강정인, 문지영 / 까치 / 254쪽
(2017.03.15.)




  나는 '정치권력'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그것은 사형 및 그 이하의 모든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권리이며, 또한 재산(property)을 규제하고 보전할 목적으로 그러한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무력을 사용하는 권리이며, 이 모든 것을 오로지 공공선을 위해서만 행사하는 권리이다.
(P.9)


  자연상태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유를 박탈하고자 하는 자는 그 상태에서는 그 자유가 그밖의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필히 상정된다. 사회사애에서그 사회나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속하는 자유를 빼앗고자 하는 자는 그들로부터 그밖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의도하는 것으로 상정되고 그리하여 전쟁상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간주되듯이 말이다.
(P.24)


  참다운 의미에서 법이란 자유롭고 지적인 행위자가 자신의 적절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기 보다는 인도하는 것으로서, 그 법의 지배하에 있는 자들의 일반적 선(good)을 넘어서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법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면 법은 무용한 존재로서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법이 어떻게 오해되든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능히 법을 이해할 수 있는 피조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이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란 타인의 구속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은 것인데, 법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P.58)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연법상의 모든 권리 및 특권을 간섭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다른 어떤 사람 또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타인의 침해와 공격으로부터 그의 재산, 곧 생명, 자유, 자산을 보존할 권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법을 위반한 것을 심판하고, 그 위반행위가 의당 치러야 한다고 그가 확신하는 바에 따라 다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적 사회도 그 자체 내에 재산을 보존할 권력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 사회의 모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존재하거나 존속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구성원이 이 자연적 권력을 포기하고, 공동체가 제정한 법에 따라 모든 사건에 관해서 그 보호를 호소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중에 그 권력을 양도한 곳, 오직 그곳에서만 비로소 정치사회가 존재하게 된다.
(P.83)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각각 개별적인 동의에 의해서 공동체를 결성했을 때, 그 공동체는 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며, 그 권력은 오직 다수의 의지와 결정에 따르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공동체든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직 그 구성원들의 동의뿐인데, 한 단체는 한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으므로 가장 커다란 힘, 곧 다수의 동의가 그것을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한 단체, 한 공동체로서 활동하거나 존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실상 공동체를 결성한 각 개인은 동의를 통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셈이다. 그러므로 동의에 의해서 모든 개인은 다수가 결정하는 바에 구속된다. 그러므로 동의에 의해서 모든 개인은 다수가 결정하는 바에 구속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정법에 의해서 활동할 권한을 부여받은 회의기구에서 그 실정법이 특별한 수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다수의 결의가 전체의 결의로서 통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즉 다수가 자연법과 이성의 법에 의해서 전체의 권력을 가지고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P.93)


  인간이 처음으로 결합하여 사회를 형성하자마자 자연히 공동체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다수는 그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다수는 그 모든 권력을 공동체를 위해서 수시로 법률을 제정하고 그들이 임명한 관리에 의해서 그 법률을 집행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형태는 완전한 민주정이된다. 또는 그것과 달리 입법권을, 선택된 소수 또는 그들의 상속인들이나 후게자들의 수중에 위임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형태는 과두정이 된다. 또는 그와 달리 한 사람의 손에 맡길 수도 있는데, 그러게 되면 군주정이 된다. 만약 군주와 그의 상속인들의 수중에 맡겨지면 세습군주정이 된다. 만약 살아 있는 동안만 군주에게 맡기고, 그가 죽은 후에는 후계자를 지명하는 권리가 다수에게 돌아가면 선거군주정이 된다.
(P.125)


  정치권력은 모든 사람이 자연상태에서 가지고 있다가 사회의 수중에 넘긴 것이며, 사회에서는 사회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 신탁 - 그 권력이 구성원들의 복지와 재산의 보존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 과 함께 스스로 정한 통치자에게 넘긴 권력이다. 이 권력의 목적과 척도는 그것이 자연상태에서 모든 사람의 수중에 있을 때 인류사회의 모든 성원, 곧 인류 일반을 보존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위정자의 손에 있을 때에도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생명, 자유, 소유물을 보존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이나 척도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최대한 보존되어야 하는 그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이 될 수 없다. 그 권력은 단지 법률을 제정하고 거기에 형벌을 부가하는데, 그 형벌이란 전체의 보존을 위해서 너무나 썩은 부분, 그렇기 대문에 건전하고 건강한 부분을 위협하는 부분만을 잘라내는 것이다.
(P.162)


  자연은 부권, 정치권력, 전제권력 중에서 첫번째 것, 곧 부권을 양찬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미성년기 동안 자식들이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이해력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함으로써 자식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자발적인 합의가 두번째의 권력, 곧 정치권력을 통치자에게 수여한다. 그것은 신민들에게 그들의 재산의 소유와 사용에서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신민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권리의 몰수는 세번째, 곧 전제적 권력을 주인에게 부여한다. 그것은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재산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행사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다.
(P.164)


  각 개인이 사회에 들어갈 때 그 사회에 양도한 권력은 사회가 존속되는 한 결코 개인들에게 되돌아가지 않으며, 항상 공동체에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리가 없이는 어떠한 공동체도, 어떠한 국가도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상태는 원래의 합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가 입법권을 그들의 후계자를 정하는 지침 및 권위와 더불어 일단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회에 부여하고, 그 집회가 그들과 그들의 후게자들을 통해서 지속되면, 통치가 지속되는 한 입법권이 결코 인민에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법부에 영구히 지속될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정치권력을 입법부에 양도한 셈이고 다시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입법부의지속에 일정한 한계를 부과하고 이 최고의 권력을 몰수당한 경우에는 통치권의 몰수나 기간의 종료와 더불어 그 권력은 사회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인민은 최고의 권력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며, 스스로 입법권ㄴ을 계속 자기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부형태를 수립할 것인가, 아니면 예전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입법권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가를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결정한 권리를 가진다.
(P.229)


  로크의 정치사상이 기여한 점은 인민에 대한 저항권의 인정이다. 만약 통치자가 피치자의 이익을 위해서 그 신탁을 이행하지 않으면, 인민의 저항은 정당화될 수 있으며 인민은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 로크는 정부와 사회를 구분하였기 때문에 이 점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의 생애에 그는 내전과 여러 차례에 걸친 정부의 전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을 목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제정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무정부상태일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 전제정치를 감내할 필요가 업다고 로크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로크는 저항권의 존재를 분명히 주장하기는 하였지만,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그 저항권이 행사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명료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다.
(P.248)


  로크의 정치사상은 그것이 최대한 보급되던 그 절정기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18세기 초에 흄은 사회계약이론에 대해 그것이 결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그 이론이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원시적 인간은 근대적인 계약의 관념에 결코 도달할 수 없었다고 흄은 주장하였다. 게다가 그는 역사와 당대의 정부를 검토해보면 그러한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 증가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흄은 계약이론이 근본적으로 인간은 '왜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가' - 나아가 '왜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왜 사람들을 약속을 지켜야 하고 왜 복종해야 하는 가라고 묻는다면, 진정한 답변은 그들이 맺은 약속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지닌 용도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곧 그렇게 해야만 사회와 정부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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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존 로크 정부론
이근용 / 주니어김영사 / 216쪽
(2017.03.11.)

 

 


존 로크 이전에는 국가의 최고 권력의 주권은 왕에게 있고, 그 권력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로크에 의하면 왕도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국가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함으로써, 왕의 전제정치가 옳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치권력은 어디까지나 '모든 개인의 동의'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완전한 자유와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로크는 '개인의 권리를 통치자에게 전면 양도할 것'을 주장한 토마스 홉스와는 달리 '제한된 권력을 지닌 정부'를 이야기 했습니다. 또한 부당한 전제 권력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 부분이야말로 그를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P.8)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란 영국 의회 정치를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문서입니다. 대헌장은 1215년 당시 영국의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맺어진 약속을 문서화 한것입니다.영국의 존 왕은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때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고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러한 왕의 정책은 귀족과 일반 국민의 반발을 불러왔으며, 전쟁에 패하자 이러한 반발이 더욱 커져 결국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한 존 왕은 대헌장에 서명을 하게 되었죠. 사실 대헌장은 귀족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일 뿐,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이었던 왕의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경험은 근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뿌리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이 사건 이후 왕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때 마다 '마그나 카르타'를 외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존왕 이후 영국의 왕들은 즉위할 때마다 새로운 대헌장을 서명해야 했고, 그래서 여러 개의 원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P.34)


  로크의 주장대로라면 소유권은 노동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고 그것을 썩지 않게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화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지. 로크는 노동의 가치와 사유 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 로크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노동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사적인 소유권을 인정한 거야.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지.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소유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와 같은 로크의 주장은 개인의 재산을 신성시함으로써 군주의 권리가 제한되어야 힘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어.
(P.110)


  몽테스키외는 정부의 유형을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권력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따른 분류입니다.
  공화정은 주권이 국민 전체 또는 일부에게 있으며, 권력의 행사는 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정부를 말합니다. 몽테스키외는 이를 다시 민주정과 귀족정으로 나누었습니다. 민주정은 주권이 국민 전체에게 있는 정부이고, 귀족정은 주권이 소수의 귀족들에게 있는 정부입니다. 군주정이란 주권이 군주 한사람에게 있지만 권력의 행사는 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부를 말합니다. 반면 전제정은 주권이 군주에게 주어진 것은 군주정과 같으나, 권력의 행사가 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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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 전영애 / 민음사 / 239쪽
(2017.03.03.)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7)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자기들이 하느님이라도 되듯 그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집어내어 써낼 수 있는 양 굴곤 한다. 나는 거럴 수 없다. 작가들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그리고 내게는 내 이야기가, 어던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한 인간의이야기, 즉 그 어떤 가공의 인물, 있을 수 있는 인물, 이상적인 인물, 어떻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일회적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P.7)

 

 


  사람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기는 한다. 그리고 느끼는 만큼 수월하게 죽어간다. 나도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좀더 수월하게 죽게 될 것이다.
  내 자신을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는 감히 부를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내 피가 몸 속에서 소리내고 있는 그 가르침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 내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꾸며낸 이야기들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 무의미와 혼란, 착란과 꿈의 맛이 난다. 이제 더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모든 사람들의 삶처럼
(P.8)

 

 

 

  구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던 쪽에서 왔다.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계속 작용하고 있다. 우리 라틴어 학교에는 그 얼마 전에 학생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우리 도시로 이사온 어느 유복한 미망인의 아들로 옷소매에 검은 디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나모다 한학년 높았으며 나이도 몇 살 더 들었지만, 곧 모든 학생들처럼 나도 그를 주목했다. 이 이상한 학생은 보기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것 같았고, 그 누구에게도 소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어른처럼, 아니 그냥 어른이라기보다는 신사처럼 낯설고도 성숙하게 우리 유치한 소년들 사이를 오갔다. 인기 있지는 않았다. 놀이에 끼지 않았고 싸움질에는 더더욱 끼지 않았다. 다만 선생님들에게 맞서는 그의 자신감 있고 단호한 어조가 다른 학생들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P.36)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P.64)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유복하게 키워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ㄸ,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난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인 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어 있다.
(P.66)

 


  만약 네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고 느닷없이 아주 힘을 주고 똑바로 그의 눈을 쏘아보는데도 그가 젼혀 불안해하지 않거든 포기해! 그런 사람에게서는 아무것오 이룰 수 없어. 결코!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
(P.76)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잇는지. 사실 그것은 그냥 편안함의 문제거든!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다른 사람들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스스로 느기지. 그들에게는 어느 명예 있는 남자건 날마다 하는 일들이 금지되어 있어.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폄하되는 다른 일들은 허용되어 있어.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P.86)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년은 나의 주변에서 폐허가 되었다. 부모님은 어느 정도 당황하여 나를 바라보셨다. 누이들은 아주 낯설어졌다.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나에게서 각성이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오늘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는 죽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P.91)



  나의 내면의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빙빙 돌며 세상을 경멸하던 나! 정신에 있어서 자부심이 충만했고 데미안과 생각을 함께 했던 나! 나의 모습이 그랬다, 취하고 더렵혀지고, 구역질나고 비열한 인간 페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은 살벌한 야수였다! 모든 것이 정결함, 광채 그리고 우아한 사랑스러움인 저 정원에서온 내가, 바하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를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속이 메스껍고 격분한 내 귀에 자제력 없이 멍청하게 헉헉 터뜨려내는 취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을 겪는 것에는 상당한 쾌감이 있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하여 이러한 자기 고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던 것이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심장이 경련하였다! 나는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 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P.99)



  "이봐 싱클레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너한테 유쾌하지 않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려나 어떤 목적으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은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미안하지만, 난 집에 가봐야겠다"
(P.116)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개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내가 들은 철학사 강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방랑과 똑같이 실체 없고 공장식이었다. 모든 것이 찍어낸 것 같았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하는 게 같았다. 그리고 소년티 나는 얼굴들에 어린 달아오른 즐거움은, 보는 사람이 우울할 정도로 텅 비고 기성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온 하루를 쓸 수 있었다. 교외의 오래된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냈고, 내 책상 위에는 니체가 몇 권 놓여 있었다.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그를 그침없이 몰아간 운명의 냄새를 맡았다. 그와 함게 괴로워했다. 그토록 가차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 행복했다.
(P.178)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물음이 표면에 그치듯이.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가 생성중에 있었다. 새로운 인간성 같은 무엇이.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들 중 어던 사람들은 바로 내 곁에서 죽었다. 그들에게는 미움과 부노, 살육과 말살이 대상에 매어 있지 않다는 통찰이 느껴졌다. 아니다. 대상들은 목표들과 꼭 마찬가지로, 완전히 우연이었다. 원 느낌, 가장 거닌 느김들도, 적에게 향하여 잇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수어져야 했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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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 예담 / 516쪽
(2016. 2. 28.)




  "세상에 좋은 게 다 한정돼 있잖아. 어차피 그 좋은 걸 모든 사람이 다 누리진 못해. 그런데 한번 가져보라고, 시도는 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게 자본주의야. 세상이 사람들한테 다 덤벼봐, 그러는 거야. 얼마나 좋아. 이기면 되잖아. 그 기회를 두 번, 세 번도 줘. 진다고 바로 뒈지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에이런 체제가 어디 있나? 사회가 끝없이 싸울 기회를 주겠다는데 난 싸우는 게 싫소,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싸우지 맙시다, 이게 말이 돼? 끝없이 싸울 기회라는 건 끝없이 이길 기회라는 말인데 말이야, 왜 안 싸워?"
(P.202)



  "질려버린 거죠. 옆집 사람이 매일 집 대문에 칼을 꽂고 욕설을 퍼부으며 살해 협박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그러기를 수십 년인데, 그 옆집 사람이 진짜로 심각한 위협이 된 적은 별로 없다고,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 옆집 사람을 이사를 보낼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냥 지겨워지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자체가 싫어집니다. 짜증만 날 뿐이에요.
  우리한테 북한이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2, 3년에 한번씩 북한은 핵실험을 벌이거나 미사일을 쏘가나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으르렁거리면 부모님이 집에 생수도사고 라면도 사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옛날 일이에요. 그렇게 사놓고,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버리고, 다시 사고, 그러기를 수십 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냥 생수도 라면도 안 사게 된 거죠. 북한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신종 인플루엔자만큼도 위험하지 않은 존재예요. 실제로 얼마나 위험이 되건 말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말건."
(P.226)



  "형제자매가 여러 명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형제자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나가서 매일매일 대형 사고를 치는 거예요.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빚을 지고, 누구는 물건을 훔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형제자매 소식은 더 듣고 싶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음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거죠, 그 형제자매를 다 햅해 놓은 게 북한이에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 해요. 너무 지겹고, 감당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왜 저런 형제를 저에게 주셨나요, 그런 심정이에요."
(P.227)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곡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얽지로 분리시켰죠. 1965년에 싱가포를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어요. 싱가포르는 원치 않은 독립이었고, 분리 당시에도 심지어 싱가포르가 말레이이사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그렇게 갈라선 결과는 말레이시아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았어요. 한 나라로 있었다면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계가 싱가포르 화교 자본에 종속된 채로 중산층이 되지 못한체 살았어야 했을 거예요. 말레이계와 화교 사이 갈등도 지금보다 훨 씬 더 심했을 거고요. 두 나라로 떨어뜨려놓고 나니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대로 똘똘 뭉쳐서 선진국이 되었고,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 없이 자기 힘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왔어요."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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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 읽기
안병웅 / 울력 / 224쪽
(2016. 2. 23.)


 


* 오성(지성)은 깨닫는 능력을 뜻한다 (P.46)
* 오성 (Understanding , 悟性 , Verstand)(지성 知性)
  - 일반적으로는 지성ㆍ사고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감성에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이성과 동일하고 때때로 혼용되기도 한다
  - 넓은 의미로는 사고능력(思考能力)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감성(感性)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협의(狹義)로는 보다 고차적인 인식능력, 혹은 능력 일반으로서의 이성(理性) ·정신(精神)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의미로 사용되건 오성(悟性)은 저차(低次) ·고차(高次)를 불문하고 직관적인 인식능력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추리적 사고(推理的思考)에 의한 인식에 골몰하는 것이고,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의 한 표현이라고 간주되는 면이 있다.

 

  -  '사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지성(知性)은 서양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대상을 직접 받아들이는 오성(Verstand, understanding)과 추리에 의해 간접적으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이성(Vernunft, reason)으로 구별되어 왔다.

 




  존 로크는 <인간 오성론>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지성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를 시작했다.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인간이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인간의 지식은 진정 확실한 것인가?'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주제이다.
  로크는 <인간 오성론>에서 인간의 오성(지성이나 사고의 능력)을 꼼꼼히 살펴본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에는 인간의 오성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인간 오성론>은 모두 4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 '생득관념에 대하여'에서는 인식의 기원을, 2권 '관념에 대하여'에서는 인식의 재료를, 3권 '언어에 대하여'에서는 언어의기능을, 4권 '지식과 의견에 대하여'에서는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로크의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P.10)



  로크는 <인간 오성론>을 세상에 내놓고 두 가지 별명을 얻는다. 하나는 인식론의 아버지이며, 다른 하나는 경험론의 창시자이다. 로크는 통해서 이제 철학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바뀐다. 로크로부터 앎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백지로 태어난다고 선언한다. 즉, 태어날 때는 관념이란 것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경험을 통해서 하니씩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크의 생각은 경험론이라는 새로운 철학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은 인간 인식의 근원을 살피도록 도와주며 경험론 이론의 뼈대를 제공해 준다.
(P.10)



  생득관념: 생득관념은 일반 사람들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념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영혼은 세상에 나올 때 어떤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태어나는 관념이 생득과념이다. 예컨대 우리는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신의 관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때 '신'이라는 관념이 생득관념이다. 철학자들은 생득관념을 본유 관념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라는 본유관념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크가 <인간 오성론>의 1권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러한 생득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이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P.15)



  제1권 "생득관념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사람의 인식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이론, 이른바 생득관념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생득관념 이론에 따르면, 사변적 원리와 실천적 원리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정신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생득관념은 없다"라는 로크의 주장은, 이성을 지나치게 신봉하여 이성만으로 이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본 데카르트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며, 동시에 합리적 이성의 개념을 도외시하면서 신의 실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스콜라 학파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다. 인식의 기원에 있어서 '생득관념은 없다'라는 로크의 주장은 경험만이 유일한 인식의 기원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로크는 인식에 대한 새로운 주장, 즉 경험론을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근대 철학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내놓았다. 이후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은 인식론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고 칸트에 의해 종합되어 철학적 인식론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로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이르렀을 때, 즉 우리의 인식 능력을 뛰어넘는 곳에 다다랐을 때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 오성론>은 인간의 지식이 어떻게 생겨나며, 얼마나 확실한지 그리고 인간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P.45)



  사람은 동물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인간이 생각을 한다는 점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개달을 수 있다. 깨달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성은 깨닫는 능력을 뜻한다. 동물들은 오성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이다. 인간은 깨닫는 힘이 있어서 주어진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기도 하고 환경을 바꾸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이와 같이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 생각하는 능력은 과연 무엇인가? 오성의 기원과 오성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 했던 학자가 있다. 존 로크가 그이다. 존 로크는 <인간 오성론>이라는 책에서 오성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인간이 고귀한 이유는 오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오성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P.46)



  로크는 '어떤 사변적 원리도 생득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사변적 원리란 생각, 즉 사고 활동을 할 때 생겨나는 원리를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려 할 때 사변적 원리에 기초해서 생각할수 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로크도 동의한다.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원리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사변적 원리는 생득적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크는 모든 사고 활동의 기초가 되는 이러한 사변적 원리도 생득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득적'이라는 말은 태어날 때 이미 마음속에 들어 있다는 말인데, 경험해 보지도 않고 관념이 이미 마음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변적 원리는 마음속에 미리 개념적으로 존재하기에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배웠기 때문에 안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이다.
(P.51)



  제2권 "관념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인식의 재료 즉, 관념을 다룬다. 관념은 사람의 오성(human understandig)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로크는 여기서 관념의 기원을 연구한다. 아울러 사람의 오성에 그러한 관념이 어떻게 부여되는지를 연구한다.
  로크의 이론은 관념 이론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의미 있는 이론으로 펼쳐진다. 로코는 관념을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을 구분한다. 우리가 가진 관념들 중에서 어떤 것은 단순하며, 어떤 것은 복잡하다. 단순 관념으 복합 관념보다 더 순수하지만, 복합 관념은 단순 관념들이 모여 우리에게 드러난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사물들은 관념에 있어서 결합되고 혼합된 상태로, 즉 복합 관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의 모든 지식의 재료들은 결국 단순 관념이다. 이 단순 관념은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만 마음에 공급된다.
  우리의 오성은 단순 관념들을 무한히 반복하고 다양하게 비교하며, 관념들을 결합하는 힘을 소유하게 된다. 그 결과, 복합 관념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오성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혹은 아무리 빠르고 다양하게 사고한다고 해도 결국은 마음이 하나의 새로운 단순 관념을 발견하고 그 단순 관념을 구성함으로써 사고는 시작된다.
(P.73)



  로크는 제2권에서 관념들에 대한 자신의주장들을 펼쳐 놓았다. 경험에 기초해서 관념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경험론의 토대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3권 "언어에 대하여"에서 언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언어의 세계는 관념의 세계와는 다르다. 관념의 세계는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개념들의 세계, 즉 생각들만의 세계이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는 관념의 세게와 사물의 세계 모두에 관련성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관념을 언어로 표현하기도 하며, 동시에 언어를 표현할 때 사물의 세계를 제대로 지칭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사물의 세계에 잘못된 이름을 부여하면서 사용되고 있다면 이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언어의 세게에서는 관념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칭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관념들이 사물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 지가 논의된다.
(P.125)



  제4권 "지식과 의견에 대하여"에서 로크는 어떻게 오성이 관념으로부터 올바르게 지식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는 오성이 관념으로부터 올바르게 이끌어 낸 참된 지식을 단순히 지식이라고 지칭하며, 올바르게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지식을 의견이라고 부른다. 지식과 의견을 구분함에 있어 로크가 가장 신경 쓰는 주제 중의 하나는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역역에 대한 논증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과 이성은 상호 간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하나의 관심사이다. 신의 존재 증명을 이성이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관심사는 먼저 자식 일반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되며, 자식은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것인지, 신의 존재 증명은 가능한 것인지, 이성과 신앙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인류가 그동안 이루어 놓았던 학문들을 세 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다.
(P.145)



  로크는 사람들에게 전제정치의 유일한 대안은 무정부 상태일 것이라는 두령무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전제정치를 감내할 필요가 없다고 로크는 생각하였다. 로크는 정부의 부당한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권의 차원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힘을 가진 정부의 잘못을 규탄하는 방법이 단지 켐페인의 수준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 정부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이 로크의 지적이다. 로크의 이러한 저항권 이론은 이후 유럽으로 넘어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P.195)



  로크의 경험적 방법들을 비판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흄이다. 흄은 세게에 대한 사람의 인식 문제에 관하여 심리적인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인식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흄은 로크의 경험철학을 논리적으로 발전시켜 결론을 내린 사람이다. 그는 로크의 경험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인과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과관계는 단지 우리가 어던 경험을 반복해서 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내일 아침에도 동쪽에서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다는 흄은 결국에는 회의론으로 빠졌지만, 로크의 백지설, 즉 "마음은 백지와 같다"는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생득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끝까지 견지해 나간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P.215)



  <인간 오성론>은 인식에 대한 물음을 다루는 책이다. 인식을 다룬다는 의미는, 우리가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어떻게 알았는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알았는가?"라는 질문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다. "무엇을 알았는가?"는 내용에 대한 질문인데, 이 질문을 진정 참다운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떻게 알았는가?"라는 인식의 물음에 답해야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물음은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들을 밝히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존 로크이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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