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2)
헨리 필딩 / 김일영  문학과지성사 / 651쪽
(2014. 05. 10.)

 

 


  훌륭한 당신에게 어떤 등장인물이 완벽할 정도로 선량하지 않다고 해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는 말라고 충고해야겠소. 당신이 그처럼 완벽한 인물을 좋아한다면, 당신의 취향을 충족시킬 책들은 많이 있소. 하지만 우리가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았던 것이오. 솔직히 말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그처럼 완벽한 미덕을 갖출 수 있을지 의심스럽소.
(P. 21)

 

 

  선량한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사랑할 정도로 선한 성품을 지닌 사람에게 "유약한 인간에겐 필연적인" 사소한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결점은 혐오감보다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오.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갖고 있는 이와 같은 불완전함보다 도덕적으로 더 유용한 것은 없는데, 이는 이들의 불완전함이 악의적이고 사악한 사람들의 결점보다도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며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오. 좋은 면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의 약점과 결함은 그들이 갖고 있는 장점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 결국 그 추악함을 더욱 잘 드러내주는 법이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인물에게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어떤 결함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런 결함을 갖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결함이 미친 해약 때문이라도 그 결함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오.
(P. 21)

 

 

  자기가 쓴 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만큼이나 절대적인 것이며, 이런 애정만큼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잘 부합하는 것도 없을 것이오. 작가의 자식인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인 작가의 재산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진정한 효심을 발휘하여 노년의 부모들을 먹여 살릴 수도 있개 때뭄니오. 따라서 독설로 작가의 책을 때 이르게 파멸시키는 중상모략가는 작가의 감정을 상당히 상하게 할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정에도 상당한 손실을 입히는 셈이 되는 것이오.
  마지막 한마디 더 하자면, 책을 헐뜯는 것은 그 책의 저자를 헐뜯는 것이오. 누군가를 사생아라고 부르려면 그의 어머니를 창녀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듯이, 어떤 책을 졸작 혹은 끔찍한 난센스라고 부르면 그책의 저자를 바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오.
(P. 77)

 

 

  의심에는 두 가지 등급이 있는 것 같소. 그중 첫번째 등급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상대방을 간파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데, 이는 그전에 이미 의심하고자 라는 내면적 충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오. 이런 의심 중 최고의 경지에 달한 것은 의심의 대상을 종종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기도 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도 하는 의심이오.
(P. 138)

 

 

  의심의 두번째 등급은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이오. 이것은 정말이지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고, 오직 그것으로부터만 어떤 결론을 유추해해는 능력이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행위고, 본 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걸어내는 것은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오. 앞서 말한 의심이 아무 죄없는 사람들에게 철천지원수이듯이, 이번 의심은 조를 지은 사람들에게 철천지원수요. 인간인지라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의심을 나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소.
(P.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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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1)
헨리 필딩 / 김일영  문학과지성사 / 651쪽
(2014. 05. 04.)

 

 

 

  진정한 예술은 훌륭하게 꾸민 자연이며
  종종 생각은 해보았겠지만, 그렇게 잘 표현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P. 29)

 

 

  시기심이란 몹시 사악한 감정이지만 경멸감과 합쳐질 때 훨씬 배가되는 법이오. 여기에다 자신이 시기하고 경멸하는 사람에게 빚까지 졌다는 생각이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감사가 아니라 분노의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오.
(P. 80)

 

 

  의심은 통풍과도 같은 것이오. 핏속에 잠복해 있는 한 그 발병을 막을 확실한 방법이 없는 통풍처럼, 이 의심이라는 병은 아주 사소하거나 전혀 의심받지 않을 상황에서도 종종 발병하기 때문이오.
(P. 90)

 

 

  결혼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순간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할때요.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겠지만, 미워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 또한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인지도 몇몇 독자들은 경험했을 것이오. 배우자가 그다지 혐오스러울 정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안락함을 굳이 포기하는 이유는, 바로 후자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종종 남편에게 애정 표현과 의심을 번갈아 하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조차 포히가흔 것은 바로 남편이 즐거움을 누리는 걸 방해하거나 막기 위해서인 것이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이런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자신을 미워하는 아내와 종종 억지로 같이 있는데, 이는 아내 역시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과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오. 끊임없는 불화와 갈등의 삶을 같이 영위한 남편의 유해를 보고 미망인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더 이상 남편을 괴롭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오
(P. 118)

 

 

  배신을 일삼는 친구가 가장 위험한 적이듯, 종교나 미덕은 입담 좋은 탕아나 이교도보다 위선자로 인해 더욱 신망을 잃게 되는 법이오. 확대해서 말하자면, 이 두가지는 그 순수함을 유지할 경우엔 시민사회를 결속하는 가장 큰 축복일수도 있으나, 사기와 거짓 그리고 위선으로 더렵혀지고 타락하게 되면, 거대한 재앙의 씨가 되어 타인에게 가장 잔혹한 해학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오.
(P. 145)

 

 

  "진정한 아름다움에는 세속적인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소" 따라서 아무리 먼지나 누더기로 그 무엇인가를 덮으려 해도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출 수 없는 법이오.
(P. 203)

 

 

  가까운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가까운 사람의 열정을 충족시키는 일에는 아주 냉담한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오. 가까운 사람의 열정을 충족시키는 데서 오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그런 열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오.
(P. 262)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운명이니, 죽음이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다. 현자들이 인생을 한 뼘 길이에 비유했으니, 우리는 인생을 하루 동안에 비유할 수는 있겠지. 오늘 저녁에 인생을 하직하는 게 내 운명인 것 같구나. 나보다 좀더 일찍 세상에 하직한 사람은 한탄할 가치도 없는 단 몇 시간(오히려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가야 할, 그리고 고통스럽고 슬픔에 잠겨 보내게 될 시간들이지) 덜 산 것뿐이란다.
(P. 290)

 

 

  나는 진실을 찾는 사람은 소위 "금을 찾는 사람"과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왔소.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과 금을 찾으려는 사람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오. 즉 이 둘은 똑같이 불결한 곳을 찾고, 뒤지고, 조사하는데, 특히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가장 불결한 곳, 그러니까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뒤지기 때문이오.
(P. 325)

 

 

  정직하고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은 절대로 남을 성급하게 비난하지 않는 법이오. 그런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단지 그 사람의 불완전한 면이나 그 사람이 저지른 악행 자체만을 비난할 뿐이오. 한마디로 말해, 인생이나 연극무대에서 시끄럽게 항의하고 소란 피우는 사람들은 똑같이 어리석고 유치하고 그리고 똑같이 무례하고 심술궃은 사람들인 것이오. 일층 관람석에 있는 가장 저급한 사람들이 "저급하다"고 소리치는 경향이 많듯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 "불량배" 또는 "악한"이라는 용어를 입에 가장 자주 올리는 법이기 때문이오.
(P.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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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 민음사 / 496쪽
(2014. 04. 24.)

 


 

  지구는 항상 똑같은 크기인데 죽은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다가 언젠가는 매장할 자리도 없어질지 모른다. 작년 내 아홉 번째 생일에 할머니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 신청 해주셨다. 할머니는 그 잡지를 "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고 부르신다. 또 블레이저코트도 주셨는데, 나는 흰색 옷만 입기 때문에 그 옷도 흰색이었다. 옷이 어찌나 큰지 앞으로도 한참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는 또 할아버지의 카메라도 주셨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카메라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떠나시면서 왜 카메라는 갖고 가지 않으셨는지 여쭤보았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마 네게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지." "하지만 제가 태어나기 삼십 년도 더 전이었는걸요." "그래도." 어쨌거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읽은 기사 중에 흥미진진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죽은 사람의 수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글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죄다 햄릿을 연기하려 한다면 해골이 모자란다는 얘기다!
(P. 18)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예쁜 파란색 꽃병이 놓여 있었다. 예쁜 파란색 꽃병이 왜 저 위에 있는 거지? 손이 닿질 않아서, 턱시도가 걸쳐져 있는 의자를 옮겨 왔다. 그 다음에는 내 방에 가서 셰익스피어 선집을 가져왔다. 내가 요릭 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가 사주신 것이었다. 4대 비극을 한꺼번에 갖고 와서 쌓으니 충분한 높이가 되었다. 나는 그 위에 올라서서 꽃병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가락 끝이 꽃병에 닿는 순간 비극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턱시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춤을 추더니 다음 순간 나와 꽃병을 비롯해 모든 것이 바닥에 쏟아졌고, 꽃병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안 그랬어!" 나는 고함을 질렀지만, 엄마와 론 아저씨는 음악을 귀청이 터지도록 크게 틀어놓고 깔깔대며 웃느라고 내 목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나는 내 침낭 속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뭔가를 깨뜨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신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다.
(P. 61)

 

 

  나는 전부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유리 파편 속에 무선 인터넷 카드만 한 조그만 봉투가 있었다. 대체 뭐지? 봉투를 열어보니 속에 열쇠가 들어 있었다. 뭐지, 대체 뭐야? 기묘하게 생긴 열쇠였다. 보통 열쇠보다 훨씬 더 두껍고 짧은 것으로 보아, 엄청나게 중요한 것의 열쇠임이 틀림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아빠 서재의 맨꼭대기 선반 위에, 파란 꽃병 속에, 작은 봉투 안에, 두껍고 작은 열쇠라니.
(P. 62)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시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와 도시들을 위한 호주머니, 우주를 다 감쌀 호주머니가 필요하다.
8분 32초......
  하지만 그렇게 큰 호주머니는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발명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전 우주를 등에 짊어진 거북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
(P. 104)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왔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그건 공원이 움직이던 날 밤 꾸었던 꿈의 나머지 조각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들이 바랐던 것을 바라는지도 몰라."
(P. 308)

 

 

  그가 이렇게 적었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는 목소리가 침착하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읽었는데요, 동물은 자기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공포에 질려서 미친 듯이 난리를 친대요. 하지만 곧 죽는다는 걸 알게 되면 아주 아주 침착해진대요." "어쩌면 아빠는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는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설명은 못 되었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해요."
  그는 종이를 뒤적여 이 말을 가리켰다. "왜?"
  "그래야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테니까요. 전 항상 상상을 하거든요."
(P. 356)

 

 

  나의 영웅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바로 이렇다. 우리는 우리가 열 수 없는 닫힌 상자 앞에 서 있다."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조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아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의 발명을 결코 멈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당신은 아예 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P. 426)

==========================

 

  이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은 소통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정작 말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정말 해야 할 말은 하기 힘든 법이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늘 말하기를 미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그 말을 할 틈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역사적인 폭력이 남기는 상흔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은,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P.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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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다니엘 디포 / 윤혜준 / 을유문화사 / 466쪽
(2014. 04. 19.)

 

 

 

  모든 인간들이 자신들의 현재 처지를 더 안 좋은 형편과 비교하면서 불평하는 생각을 품으면, 하늘은 다시 현재보다 더 좋지 않은 처지와 맞바꿔 주셔서 불평했던 예전의 삶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시니, 참으로 마땅한 처사이지 않은가?
(p. 55)

 

 

  이성이 수학의 실체이자 기원이기에 모든 것을 이성에 의거해 가늠하고 맞춰서 만사를 가장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누구건 온갖 물건의 제조법을 시간이 지나면 다 숙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도구를 만져본 적이 없었으나 열심히 일하고, 응용을 하며 고안을 해본 끝에 마침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듯, 특히 연장만 갖고 있다면 만들어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p. 100)

 

 

  내 형편과 경험에 비춰서 내가 온당히 내린 결론인즉, 이 세상의 모든 유익한 것들은 오직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내게 유익한 것이며, 우리가 쌓아두는 것들은 사실 남들에게 주고 말 것이요,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한없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이 세상에서 제일 탐욕스런 구두쇠라고 해도 내 형편에 처해 있다면 탐욕의 해악에서 말끔히 벗어났을 것이다. 내 욕망은 싹틀 요지가 없었으니, 기껏해야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 그 자체는 별것 아니지만 나한테는 매우 요긴할 물건들이 좀 아쉬운 정도였다.
(p. 187)

 

 

  나는 인간들이 늘 보다 나은 처지와 비교함으로써 불평하는 볼멘소리를 하도록 자신을 부추기는 대신에, 그 어떤 삶의 조건에서건 그보다 더 열악한 처지와 비교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세 한탄이 줄어들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p. 240)

 

 

  우리 인생의 길에서 우리가 열심히 피하고자 하며 거기에 빠지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나쁜 상황 그 자체가 흔히 우리를 구원해 내는 수단이자 통로가 되며, 오로지 그 길로만이 우리가 빠져든 고난에서부터 건져질 수 있는 경우가 참으로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나의 이 기묘한 삶의 여정에서 이러한 예는 여럿 들 수 있겠지만 이 섬에서의 나의 적막한 생활의 말년의 정황에서처럼 더 분명한 예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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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어린이책 200선

이주영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484쪽

(2014. 04. 08.)



​  어른이 되어서 동화를 다시 읽게 된 건 이오덕 선생님이 쓴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읽고 나서 입니다. 우리 어린이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나갈 길을 밝혀놓은 책입니다. 그 책에서 아이들을 짓밝고 희롱하는 어린이문학을 짚어주였고, 우리 겨레 어린이들 삶을 지키고 가꿔줄 수 있는 어린이문학의 전통과 전망을 밝혀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교사와 부모들은 이런 저질 작품 시장에서 그래도 이따금 나오는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찾아 줌으로써 불행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정신의양식을 공급하고, 한편 어린이 문학을 키우는 일에 힘이 되어 주면 좋겠다'(창비/1977년 초판/173쪽)고 했습니다.

(p. 4)

 


  인간이 만든 모든 도구는 인간의 삶을 가꾸기 위해 창조한 것이지만 쓰기에 따라 파괴하는 도구도 됩니다. 책은 인간이 만든 가장 힘이 센 도구입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삶을 올바르게 가꾸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도구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한테 맞아야 합니다. 곧 자기한테 맞는 좋은 도구를 잘 골라야 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린이 각자 자기한테 좋은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란 단순한 교훈성이나 수준의 높낮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책이, 그 작품이 담고 있는 기본 정서와 가치관이 독자가 갖고 있는 문화의 정체성과 어떻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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