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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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 천병희 / 숲 / 839쪽 / 15,000행
(2013. 08. 21.)

 

 

인류 최고(最古)인 최고(最高)의 고전을 읽었다.

아니 줄거리만을 훑었다는 게 맞는것 같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은 무엇일까?

어여쁜 여자를 자신의 여자로 갖고 싶다는 남자들의 본능에서 시작된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은 질투심으로 시작해서 질투심으로 끝나는 전쟁이었다.

다른이의 여자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만든 트로이 파리스의 질투심
파리스의 심판에 대한 여신들의 질투심
아킬레우스의 포로이자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간 아가멤논의 질투심
전장의 선봉에 선 자기보다 뒤에서 군대를 지뤼하는 왕 아가멤논이 전투의 전리품을 더 많이 가져간다는 아킬레우스의 질투심
자기 보다 강한자를 이기고 싶은 트로이 헥토르의 질투심

 

인간 근원의 본능인 질투심에서 발로한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들을 개입시켜 필연성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이 방대한 양을 한번의 독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읽는사람의 오만일것이다.

 

독서의 길잡이로 강대진 교수님의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그린비)와 함께 읽으면 독서의 기쁨이 배가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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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6세기 이후부터 그리스의 교과서가 되어, 음송자들에 의해 전 그리스에 유포되고 지식인들에의해 암기됨으로써 그리스의 언어, 문학 및 조형미술, 나아가 그리스인들의 자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리스 문화의 시원이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그것을 노래하지 않는 어둠에 싸인 먼 역사의 첫 새벽에 인간으로서 겪는 모험과 인간이라고 불리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간적인 삶의 본질을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를 성사 다루듯 했다.
(p. 21)

 

 

   호메로스의 독창성은 그러한 전통들을 주어진 그대로 엮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아 맞춰 어느 한 부분이 빠지거나 자리바꿈할 경우 전체가 무너질 만큼 꼭 필요한 부분을 골라 적절히 배열하는 플롯에 있다. 플롯의 완벽한 통일성이야말로 호메로스이 문학성에서 으뜸가는 가치다. 자구나 문장의 반복은 독자가 아니라 청중을 위해 하루에 일정량의 시행을 읊었던 음송 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p. 22)

 

 

   호메로스는 후대의 문학에 창조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그리스 문학의 창시자라 부   를 수 있지만 또한 한 시대, 이른바 서사시 시대를 마무리한 완성자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는 소재에 있어서 창작이 아니라 구전되어 내려오던 여러 가지 전설들에 최종적인 형태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호메로스의 독창성을 논할 때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솜씨, 이를 테면 플롯, 문체, 오묘한 표현, 인생의 깊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따위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이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유산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이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라는 문학 장르가 절정기를 지나 쇠토기에 접어들었을 때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p.756)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강대진/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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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의 철학이 있기전에 시인왕 호메로스가 있었지요.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아요. ;^^
 

 

 

 

인문학으로 창조하라(아레테의 힘)
김상근 / 멘토프레스 / 203쪽
(2013. 08. 08.)

 


  "어떻게 세계반도체 시장에서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은 신서하다 못해 충격적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아주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버거킹 전략을 구사했지요."
  한마디로 미국의 패스트푸드회사인 버거킹을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버거킹이 어떻게 오늘날의 버거킹이 되었습니까? 무조건 세계 1등인 맥도날드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맥도날드 옆에 항상 버거킹 매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가 철저한 시장조사와 특유의 효율성으로 적정 지역에 체인점을 내면, 바로 그 옆에 버거킹 매장도 문을 열었지요.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기술도 모자라고 시장조사도 미흡하니 무조건 세계 1등기업을 부지런히 따라했습니다. 우리가 잘하는것은 월화수목금금금이지 않습니까? 부지런히 1등을 따라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분도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지런함으로 2등가지는 따라왔는데, 앞으로가 진짜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산업분야도 이제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하는 기업과 초일류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1등이 되면 더 이상 따라할 수 있는 롤모델기업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바로 일인자의 딜레마가 그것입니다. 끊임없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창조해내야 합니다. 모방할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제 더 이상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버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기존의 혁신이란 단어가 지닌 의미조차 새롭게 하여 창조적 생각으로 거듭나아 우리 경제가, 우리 미래가 맑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p. 9)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tudia humanitatis)'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든 학문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더불어 발달해 왔습니다. 고도로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에 따른 인간에 대한 연구역사 또한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동안 학문업적이 축적되다 보면 연구방법이 다양화 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과거 습성에 머물러 있기 쉽습니다. 기존에 '옳다'라는 기준으로 정립된 이론도 시대가 변하면 '아니다'라고 재해석할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한데 우리 학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 시대변천에 따라 혁신적 새 연구방식도 나올 법한데 '연구의 엄밀성'을 유지하려는 기존 전문가집단에 의해 독창적 새 연구방식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현실에서 결국 밀려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물론 전문가를 위한 학문적 가치가 높은 연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전문적인 연구에 치중하다 보면 학문의 깊이 더해질지 모르나 이에 치중한 나머지 일반대중에게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점점 일반대중의 기대심리와 먼, 그야말로 '학문을 위한 학문'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감히 접근조차 불가능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p. 14-15)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 순간,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며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냈던 그리스학문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이에 대한 반발로 신생국인 로마에서 새로운 학문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로마의 법률가이면서 정치, 사상가이던 키케로의 인문학이었습니다.
  키케로는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바로 인문학을 유행시킨 첫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을 통해 키케로는 로마사회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지도자 덕목을 제시했습니다.
(p. 18)

 

 

  폐쇄적으로 변한 중세 인문학을 다시 부활시킨 사람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14세기 이탈리아 문학가 페트라르카와 <데카메론>의 저자인 보카치오 입니다.
  피렌체 출신의 인문학자 보카치오는 고대 그리스정신을 르네상스에 부활시켜 르네상스 인문학의 초석을 다져놓습니다.  <데카메론>을 소개해보겠습니다. 흑사병을 피해 시골별장으로 들어간 7명의 젋은 부인과 3명의 청년이 10일동안 무려 100편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생활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본능과 욕망, 그리고 그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잇습니다. 흔히 단테의 <신곡>에 비견하여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신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예찬인 것입니다. <데카메론>에는 인간 본능에 충실한 표현들이 넘실댑니다. 지나친 선정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여 당대 문인들에게 소외당했습니다. 그러나 민중들 마음속에 계속 파동치며 사랑받았으며 새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p. 23)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통해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2750년 전에 그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호메로스의 첫 번째 책.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던 영웅들이 펼쳤던 '용기의 아레테'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것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고, 또 무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어야 하고,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렇게 피눈물나는 고통의 순간을 견뎌야 하는지 그 의문도 잊어버린 채 무작정 싸워야 하는 사나이들의 숨 막히는 현실이 펼쳐집니다. 진정한 용기와 가슴 아픈 상처, 그리고 적과의 진정한 화해도 긴박하게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글입니다.
(p. 32)

 

 

  키케르의 인문학은 인간이 삶을 통해 추구해야 할 도덕적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지혜, 정의, 용기, 적절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과 기술, 노동'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지커야 할 인문학적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p. 47)

 

 

  진(眞)의 세계를 다루었던 호메로스의 인문학이
  개인의 상찰을 위한 것이고
  선(善)의 세계를 다룬 키케로의 인문학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윤리적 문제였다면
  르네상스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미(美)의 세계는
  우리가 남기게 되는 삶의 무늬,
  아름다움의 흔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p. 48)

 

 

  창조적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입니다. 불처럼 뜨겁다가, 얼믐처럼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이 창조적 행위를 이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열정적이거나 냉정하거나 한 개의 특징을 유지하기 마련입니다. 지나치게 열정적이라고 해서, 또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 이 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냉정한 사람인가, 혹은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인가 구별하는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참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열정과 냉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경계'를 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창조적 세게로 이끌 수 있다는 점입니다.
(p. 97)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은 모두 '아레테' 즉 탁월함을 추구했습니다. 아레테란 그리스어로 완벽에 가까운 탁월함이란 뜻입니다. 탁월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라파엘로는 붓을 들었고, 미켈란젤로는 정과 조각칼을 집어들었습니다. 탁월함, 즉 아레테의 추구가 그들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아레테가 단순히 예술적 탁월함, 즉 재능의 탁월함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덕목인 아래테는 기술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인격의 탁월함을 함께 의미했습니다. 재능의 탁월함과 더불어 '인격의 탁월함'이 르네상스시대의 기본  목표였습니다.

(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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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토마스 벌핀치 / 이윤기 / 창해 / 769쪽
(2013. 8. 4.)

 

 

 

  사람들은 묻는다. <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 웬 신화인가>하고 묻는다. 신화는, 모둠살이가 꾸는 꿈이다. 어느 나라의 신화가 되었든, 그 나라의 신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원망이 고스란히 투사되어 있다. 과학은 그 꿈을 실현시키는 힘이다. 사람들의 꿈을 읽지 않는 과학이 무슨 소용인가? 마르크스는, <신화는 상상력을 절묘하게 부려, 자연을 형상화하거나 자연의 정복을 꾀한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자 마르크스에게까지도 과학사는 과학의 <신화 따라잡기> 역사다.
(p. 10)

 

 

  거칠게 말하면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신들이 사라진 이 시대에 <신화>라는 말은, 두 가지의 두드러지는 영례를 거느린다. 한 기업이나 개인의 성취를 두고 우리가 흔히 쓰는, <신화적인 인물>할 때의 <신화>가 그 하나인데, 이 때의 <신화>는, 신화 시대에나 있을 법한, 도무지 범용한 인간들의 모듬살이에서는 일어남직하지 않는 일을 성취시켰음을 뜻한다. 이 용례에서 <신화>는 <고대 신화>라고 할 때의 <신화>라는 말의 본 뜻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p. 11)

 

 

  신화는 진리일 수 있는가? 거짓일 수도 있는 이 신화를 두고 많은 학자들은 <진리>를 말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신화학자 제러마이어 커틴은, <영혼이 유신과 동행하듯이 진리와 동행하는 것을 신화>라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에 따르면 <종교적인 삶은 신화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신화만이 종교적인 삶을, 살아있는 개인의 격정적인 운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에 따르면 신화는 무의식적 인식과 의식적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교량이다. 이 교량을 건너다니지 않는 한, 우리 정신 살림은 절반 밖에 이루어지지 못한다. 조셉 캠벨에 따르면, <꿈은 개인의 신화, 신화는 모듬살이의 꿈>이다. 나는 인도인 철학자 아난다 쿠마라스와미가 내린 신화의 정의를 가장 좋아한다.
  「궁극적인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신화의 언어가 그 언어에 가장 가까이 있다.」
(p. 12)

 

 

  우리의 젊은 독자들이 이 책을 재미있는 심심풀이로 생각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나이가 든 독자에게는 유익한 독서의 반려, 여행하거나 박물관이나 미수로간을 찾는 분들에게는 회화나 조각 작품의 해설서, 교약 있는 모임에 자주 어울리는 분들에게는 이따금 주고 받는 인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오래 살아온 노인들에게는 문학의 여로를 되짚어가게 하여 아득한 유년 시절에 이르게 하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마다 인생의 새벽과 만남을 소생시키는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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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족
천명관 / 문학동네 / 292쪽
(2013. 7. 27.)

 

 


  전철을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낭떠리지 말고도 또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나이 마흔여덟에 칠순이 넘은 엄마 집에 얹혀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쪽팔리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더 끔직한 건 엄마 집엔 이미 쉰 두 살이 된 형이 얹혀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 12)

 

 

  날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 기찻길을 따라 걷다보면 철길 옆으로 어느새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집을 떠난 지 이십여년 만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엄마 곁으로 모여들었다.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작이 나고 말았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 삼남매를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p. 39)

 

 

  미국적인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헤밍웨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피츠제럴드의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영화감독의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꾸고 싶다. 감독들에겐 두 가지 종류의 비애가 있다. 하나는 제 아무리 충무로 생활을 오래 했어도 데뷔를 하기 전엔 그저 익명의 감독 지망생일 뿐, 유령처럼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불행한 건 일단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면 그때부턴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 가운데 데뷔작이 곧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확률이 칠십 퍼센트이며 세 편 이상 영화를 만들 확률은 십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감독은 감독이되 더 이상 영화를 직을 수 없는 유령감독으로 충무로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끝내 공연되지 않을 2막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p. 118)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여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벼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고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p. 141)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오하마는 언젠가 그들에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 절대 품어서 안되는 위험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p. 222)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나는 언젠가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거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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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3)
이윤기 / 웅진지식하우스 / 296쪽
(2013.07.08.)

 

 

 

  올륌포스 신들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의 그리스인들도 잘 알고 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신들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었다.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합의해서 도출해낸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 그 시대 도덕률에 대한 경건함이라 고 생각한다. 신화에는 이 경건함을 한결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바로‘신 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승한다. 하지만 신화에는 이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오만해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깃털 날개 달았다고 하늘로 오르려다 떨어져 죽은 이카로스의 오만이 바로 이 오만이었다.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를 탔다고 올륌포스에 오르려고 했던 벨레로폰의 오만이 바로 이 오만이었다.‘ 오만(hybris)’은 신화시대영웅들이잘걸리는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점으로 날아오르게 한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한다.
  신화는 무엇인가? 신들에 관한 이야기다. 신들이 없었다면 신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신들이 없어도 신화는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없어도 신화는 존재할 것인가? 인간이 없으면 신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신들이 인간 세상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 세상을 놓고 올륌포스 신들과 기간테스, 즉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신들이 싸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p. 15)

 

 

  나는, 신화를 믿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믿는다고 대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나는 신화를 믿는다. 신화를 믿는다고 해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깎아놓고 내 색시가 되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비는 식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신화의 진실이다. 퓌그말리온의 진실과 그가 기울이는 정성이다. ‘퓌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말은, 스스로를 돌아보되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경우에 나타나는 효과를 뜻하는 말로 지금도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p. 34)

 

 

  인류는 근대를 맞으면서 프로메테우스 시대를 꽃피웠다가 디오뉘소스의 반격을 받았다. 이제 헤르메스 시대가 왔다. 현대는 헤르메스의시대다. (중략)‘ 이성’을신의은총으로 믿던데카르트는 산업 사회를 열었다. 하지만 곧 니체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현대의 헤르메스, 빌 게이츠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것으로 전해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흙으로 인간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프로메테우스’라는 말은‘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치와 이성을 앞세워 처음으로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에게 저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유럽 산업 사회의 사상적 틀을 마련한 데카르트는 프로메테우스에 자주 견주어진다.
(p. 246)

 

 

  “저기 큰 인간과 맞서고 있는 작은 인간을 보라. 이기지 못할 겨루기에 저리도 열심인 것은 그저 어리석기 때문인가? 도끼가 일으키는 불꽃은 무엇인가? 불꽃이 일면 일수록 겨루기가 격렬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저 경이의 불꽃, 기적의 섬광은 부딪침을 통해서만 번쩍이는 것인가? 제우스 신의 권능이 두려워, 손수 빚은 인간의 궁상을 수수방관해야 하는 나 초라한 프로메테우스여! 큰 인간을 상대로 힘을 겨루는 저 작은 인간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냐!” 프로메테우스는 사흘 낮 사흘 밤 내내, 제우스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자신을 희생하되 그 희생의 값으로 인간에게 얻어줄 수 있는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제우스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에 도전하고, 인간에게는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가장 유익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야 했다. 제우스 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그리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저 퀴클롭스(외눈박이 거신)로부터 선물로 받은 벼락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나흘째 되는 날, 제우스 신의 벼락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 그 대신 벼락에서 불을 붙여내어 인간에게 가져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 252)

 

 

  오비디우스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노래로 기나긴『변신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제 나의 일은 끝났다. 제우스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노래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영생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오비디우스를 보라. 자신이 한 일은 제우스의 분노도 소멸시킬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지 않는가? 명성을 통하여 영생불사를 얻었으니 영원히 살 것이라지 않는가? ‘영원히’까지는 모르겠지만 2천 년 전에 그가 쓴 책을 우리가 이렇게 읽고 있으니, 신화는 참 힘이 세다 싶다.
(p.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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