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 박상진 / 민음사 / 373쪽
(2013. 11. 7.)

 

 

  단테는 『신곡』 안에서 베아트리체를 좇아 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자기가 본 천국을 글로 충분히 표현해 낼 수는 없다. 천국은 빛으로 가득하며 아무리 깊이 본다고 해도 기억으로 재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천국은 인간 언어의 길을 실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끊어낼 뿐 아니라, 인간 지성이 포괄하는 힘과 범위를 넘어 기억에조차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빛으로 넘쳐 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천국에 관한 문헌은 적고, 누구도 모르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하는 천국편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각오하고 서술해 가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p. 425)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지옥편이나 연옥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지만, 예를 들면 그런 부분은 역사적인 인물 관계를 잘 모르는 데에서 기인하므로 주석을 보면 대부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려운 점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이나 도덕철학의 문제이다. 평범한 시인과 달리 단테가 철학자나 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천국편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옥과 연옥의 별의 유무에 관한 의미 해석을 통해서도 단테의 사상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지만, 사상적 시인 단테라는 입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 천국편이다. 천국편은 읽고 곧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절대로 못 읽을 것이라고 절망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힘들면 앞으로 돌아가서 지옥과 연옥 부분을 끝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읽어 나가기 바란다는 말이다.
(p. 447)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우리는 『신곡』을 읽으며 지옥이 고통도 읽었지만, 천국인 이곳에 다다르면 단테처럼 우리도 역시 베아트리체의 말을 듣고 내면에서 뭔가가 용솟음치는 듯한 격려를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천국에 있더라도 지상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신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며, 바로 거기에 천국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단테의 천국 경험의 하나이다.
(p. 540)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를 가로지르며 빛나지만,
아떤 부분에서는 더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덜하다.

나는 그분의 가장 밝게 빛나는
하늘에 있었다. 거기서 내려오면 누구든
잊거나 말할 수 없을 것들을 난 보았다.

우리의 지성이 그 바라던 목표에
가까워지면서 기억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제 내 마음에 보물로 간직한
하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영역은
내 노래의 줄거리가 될 것이다.
(p.7 / 1곡 1-12)

 

 

수없이 많은 등불들로 아름답게 빛나는
하늘은 그 깊은 얼의 자국을 남기고
그 이미지의 인장을 스스로 만듭니다.

그대들의 먼지 속의 영혼이
그대들 몸 구석구석에 퍼져
갖가지 기능을 다 하듯이.

이 위대한 지성도 별들에게 제 능력을
골구루 나누어 퍼지게 하고 동시에
그 지성 자체는 일체를 유지하지요.
(p.22 / 2곡 130-138)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다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쉬우니 하는 말이에요.

급하게 내놓은 의견들은 때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서, 인간의 교만이
지성을 묶어 놓게 되거든요.

재주가 없이 진리를 낚으러 해안으로
떠나는 것은 불필요를 넘어서 나쁜 일입니다.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로 돌아올 거예요.
(p. 114 / 13곡 112-123)

 

 

자신의 혹은 남의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껴 검게 탄 양심은
너의 말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거짓으로 위안하지 말고,
너의 글로 네가 본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고
가려워하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긁도록 해 주어라.

너의 말이 처음에는 쓴맛을 줄 수 있으나,
잘 새기면 나중에는 차츰 모두가
생명의 양식으로 삼을 것이다.

너의 외침은 가장 높이 오를 때
가장 힘든 바람을 맞게 될 것이니, 이것은
너의 명예가 하찮은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p. 149 / 17곡 124-135)

 

 

이 사람은 우주의 가장 깊은 구멍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르면서 영혼들의 삶을 하나하나
목격했습니다. 그가 힘을 더기 위해

당신의 은총을 갈구하니,
마지막 축복을 향해 눈을
더 높이 올리도록 그에게 힘을 내려 주소서.

제 눈을 위해 불타오른 적이 없는 제가
그의 눈을 위해 불타오르기보다는
저의 온 기도를 바쳐 당신께 원하노니.

당신의 기도로 그의 필멸의 운명이 지닌
안개를 걷어 주시고 그의 눈앞에 즐거움의 극치께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시옵소서.
(p. 287 / 33곡 22-33)

 

 

마치 꿈을 꾸면서 뭔가를 보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면 그 열정은 자국으로
남고, 나머지는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듯이,

내가 지금 그러하다. 비록 나의 눈은 흐릿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눈으로 본
그 달콤함은 가슴속에 아직도 방울진다.

그렇게 눈 위에 찍힌 표시들은
햇살에 희미해지고 잎사귀에 새긴
시빌라의 점괘는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아, 인간의 지성이 다다르지 못할
지고의 빛이시여! 당신의 조그만 부분이라도
내 마음에 다시 더하셔서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당신의 영광의 단 한 순간 불티라도
포착할 정도의 힘을 나의 혀에 주소서.

그렇게 나의 정신에 잠시라도 돌아오고
나의 시에서 비슷하게나마 울리면
당신의 승리는 사람들에게 더 드러나는 까닭입니다.
(p. 289 / 33곡 5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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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연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 박상진 / 민음사 / 348쪽
(2013. 11. 3.)

 

 

 

둘 다 죽은 자가 가는 장소인 지옥과 연옥은 그 밖에 어떤 점이 다를까. 결정적인 차이점은 지옥은 '절망의 장소'인 데 반해 연옥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연옥에는 혼이 씻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어쩌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희망이 있다는 점이 지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P. 298)

<단테신곡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이 세상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지옥이 될 수 있고, 연옥도 될 수 있고, 천국도 될 수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신곡』은 실로 논리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지옥, 연옥, 천국도 공간적으로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미를 파고들면 모두 이 세상의 일처럼 여겨지는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테는 서양의 많은 고전 중에서도 시대를 초월해 계속 읽히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p. 310)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더 좋은 물 위를 떠가려고
내 재주의 작은 배는 그리도 끔찍했던
바다를 뒤로하고 돛을 활짝 펼친다.

이제 나는 인간 영혼이 정화되고
천국에 오를 준비를 하는
이 두 번째 왕국을 노래하려 한다.

아, 성스러운 뮤즈들이여, 그대들에 복종하는
내 죽음의 시를 이제 삶으로 오르게 하소서!
이곳에서 칼리오페를 잠시 일으켜

저 불쌍한 까치들이 얼이 빠져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던 그 부드러운 소리로
나의 노래와 함께하게 하소서!
(p. 7 / 1곡 1-12)

 

 

나는 죄지은 온갖 무리를 이 사람에게 보여 주었소.
이제 당신의 치하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는 영혼들을 보여 주고 싶소이다.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데려왔는지는 말하자면 길 터,
다만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도우시는 덕성이
당신을 보고 듣도록 이 사람을 인도하라 하셨다오.

그러니 이 사람을 기꺼이 맞아 주시오.
이 사람은 자유를 찾아서 가고 있소.
자유를 위해 삶을 포기한 당신이니 잘 알 것이오.
(p. 11 / 1곡 64-72)

 

 

우리의 감각이 기쁨이나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영혼은
그 둘 중 하나의 감각에 쏠려서

다른 기능에는 완전히 무디어진다.
이는 우리 안에서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함께 타오른다고 믿는 오류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거나 들으며 우리의 영혼이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
시간이 흘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과, 영혼을
완전히 지배하는 감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전자는 영혼에서 풀려나 있고 후자는 매여 있다.
(p. 34 / 4곡 1-12)

 

 

선생님이 나를 꾸짖었다.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 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사람이란 생각에 생각을 겹쳐 놓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마련이니,
힘이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p. 44 / 5곡 10-18)

 

 

사람들은 각자가 차지하면서 줄어들게 되는
세상의 것들을 욕망의 목표로 삼으니,
질투는 사람들 한숨에 부채질을 하는 거란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이 위로 솟구쳐
가장 높은 하늘의 사랑을 향한다면
상실의 두려움이 그렇게 마음을 누르지는 않을 텐데.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각자가 갖는 선도 더 많아지고
수도원에서 자기가 더 세차게 타오를 것이다.
(p. 138 / 15곡 49-57)

 

 

내 생각이 옳다면 이런 판단을 해 볼 수 있겠지.
사람들이 사랑하는 불행은 이웃의 불행이며,
이런 사랑은 진흙에서 세 가지로 솟아오른다.

어떤 사람은 남의 추락에서
자신의 성공을 바라다가 바로 그런 욕심 때문에
자신의 출중함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이 높아지면
자기의 명예와 명성, 힘과 은총을 잃을까
두려워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며,

어떤 사람은 잘못된 격정에 휘말려
모든 열정을 복수에 쏟아 부으면서
오로지 남에게 해를 입힐 궁리만 한다.

이 세 가지 사랑을 한 망령들이 이곳에서
죄슬 씻고 있지

(p. 158 / 17곡 109-126)

 

 

내 핏줄 속에 떨리지 않는 피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오래된 불꽃의 흔적만 남았어요.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이미 우리를 떠나 홀로 사라졌다.
더없이 따스한 아버지 베르길리우스여,
나의 구원을 위해 영혼을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옛날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이슬로 씻긴 나의 뺨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p. 268 / 30곡 46-54)

 

 

"단테여, 베르길루우스가 그대를 떠났다 해도
아직은 울지 말아요. 아직은 울지 말아요.
그대는 또 다른 칼 때문에 울어야 할 테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을 때, 배에서 일하는
부하들을 보고 뱃머리나 고물에 서서

일을 열심히 하도록 격려하는 제독의
모습으로 전차의 왼편에서 솟아오르는
여인이 보였다. 처음에

천사들의 꽃 세례를 받으며
나타났던 그녀는 이제
강 이편에 있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잎들을 두른 머리에
드리워진 너울이 그녀를
온전히 보지 못하게 했지만,

당당하고 단호한 얼굴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중요한 부분을 끝까지 남겨 두는
사람의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날 보세요! 나 정말 베아트리체이니!
그대는 마침내 산을 올랐군요! 여기에
인간의 행복이 놓여 있는 것을 이제 알았나요?"
(p. 269 / 30곡 5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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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 박상진 / 민음사 / 399쪽
(2013. 10. 30.)

 

 

 

'그들에게는 죽음의 희망조차 없으니'.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고통스러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곤 하는데, 지옥에서는 죽음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지옥의 영원한 고통은 그곳에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간혹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자살에는 아직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희망, 즉 '죽음의 희망'이 있다. 그것마저도 없는 상태가 지옥이라고 단테는 말하고 있다
(P. 194)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렴움이 새로 솟는다.

죽음도 그보다 덜 쓸 테지만,
거기서 찾았던 선을 다루기 위해
거기서 보아 둔 다른 것들도 말하려 한다.

어떻게 숲에 들어섰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으나,
진정한 길에서 벗어난 그때
잠에 취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p. 7 / 1곡 1-12)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벌써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꼭대기를 보았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그러자 깊은 좌절감에 젖어 고통스럽게 보냈던 밤,
내 마음의 호수에서 지속되었던
무서움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p. 8 / 1곡 16-21)

 

 

네가 날 따르는 것이 너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어 판단하노니, 내 너이 길잡이 노릇을 하여
여기서부터 영원한 곳으로 너를 이끌 것이다.

그러는 동안 너는 좌절이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고,
두 번째 죽음을 부르짖는
고통받는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언젠가 축복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불 고문을 참고 견디는
영혼들 또한 보게 될 것이다.

네가 그 축복받은 영혼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는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영혼에게
널 맡기고 떠날 것이다.
(p. 14 / 1곡 112-123)

 

 

잘못 쓰고 잘못 가져 저들은
밝은 세상을 뺏기고 이런 악다구니에 처박혔다.
그게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들려주마.

아들아, 보아라, 재화는 운명의 손에 들려 있건만,
우리 인간들은 그 때문에 처절히도 싸운다.
그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달 아래 있는, 언제라도 있었던
황금을 전부 바쳐도 이 지친 영혼들 중
하나라도 쉬게 할 수 있더냐.
(p. 71 / 7곡 58-66)

 

 

저자는 세상에서 거만했던 사람이었지.
일생 동안 누구도 자기를 따뜻하게 대해 준 기억이 없어서
그의 그림자가 이렇게 사납게 구는 거란다.

세상에서는 스스로 위대하다 여기지만
여기서는 진흙탕 돼지처럼 뒹굴며
야비한 기억만 떠올릴 자가 얼마나 많을지!
(p. 81 / 8곡 46-51)

 

 

마지막으로 자기를 믿는 사람을 배반하는 일은
타고난 사랑과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특별한 믿음을 파괴하는 극악이야.

그래서 지옥 맨 밑바닥의 가장 좁은 고리,
즉 지구의 중심부 디스 주변에 모든 배신자들이
몰려 있고, 그들의 고통은 잠들지 않는 거야.
(p. 111 / 11곡 61-66)

 

 

철학은 그걸 배우려는 사람에게
단 하나만 가르치지 않으니,
마치 자연이 성스러운 지성과 그 기술로
제 진로를 잡아 나가는 것과 같다.
(p. 113 / 11곡 97-99)

 

 

개울은 그 물줄기가 뚫은
바위에 난 구멍으로, 완만한 경사로
구불구불 휘감으로 흘러내린다.

길잡이와 나는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거친 길로 들어갔다.
쉴 겨를도 없었다.

그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르며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우리는 둥글게 열린 틈을 통해
하늘이 실어 나르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
(p. 354 / 33곡 13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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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호메로스 / 천병희 / 숲 / 672쪽
(2013. 10.13.)

 

 

호메로스는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직접 창조하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구전 되오던 얘기들을 한데 모아 엮었을 뿐이다
하지만 호메로스의 독창성은 그러한 전통들을 주어진 그대로 엮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에 맞춰 어느 한 부분이 빠지거나 자리바뀜할 경우 전체가 무너질만큼 꼭 필요한 부분을 골라 적절히 배열하는 플롯에 있다.
이러한 짜임새있는 플롯으로 오뒷세우스는 일련의 서사적 사건들을 나열한 단순한 서사시들과는 다른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칭송 받는것 같다

 


  아이기스토스를 떠올리며 제우스는 신들 사이에서 말했다.
  "아아, 인간들은 걸핏하면 신들을 탓하곤 하지요. 그들은 재망이 우리에게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의 못된 짓으로 정해진 몫 이상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오. 아이기스토스만 하더라도 귀향하던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죽이고 정해진 몫을 넘어 아가멤논의 아내와 결혼가지 했소! 그것이 자신의 갑작스런 파멸이 될 줄 알면서도 말이오. 우리는 훌륭한 정탐꾼인 아르고스의 살해자 헤르메스를 보내 오레스테스가 성년이 되어 고향 땅을 그리워하게 되면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살해한 데 대해 복수하게 될 것이니 그를 죽이지도, 그의 아내에게 구혼하지도 말라고 미리 일러주었소. 하지만 이런 호의적인 말로도 헤르메스는 아이기스토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아이기스토스는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소."
(p. 24 / 제1권 31~43)



  '너는 내게 자진하여 그것을 한 잔 더 주고 네 이름을 말하라. 지금 당장. 그러면 나는 너를 기쁘게 해줄 선물을 주겠다. 물론 퀴클롭스들에게도 풍요한 대지는 거대한 포도송이의 포도주를 가져다주고 제우스의 비가 그것을 자라게 해주지만 네가 준 이것이야말로 가히 암브로시아요, 넥타르로다.'
  '퀴클롭스, 그대는 내 유명한 이름을 물었던가요? 그대에게 내 이름을 말할테니 그대는 약속대로 내게 접대 선물을 주시오. 내 이름은 '아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자는 즉시 비정하게 내게 대답했소.
  '나는 전우들 중에서 맨 나중에 '아무도아니'를 먹고 다른 자들을 먼저 먹겠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줄 접대 선물이다.'
 (p. 205 / 제9권 355~370)



"나그네여! 지금 그대는 잠시 전과는 달라 보이시오.
옷도 다른 것들을 입고 있고 피부색도 다른 걸요.
그대는 틸림없이 넓은 하늘에 사시는 신들 중에 한 분이신 것 같아요.
자비를 베푸소소! 저희는 그대에게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제물들과
훌륭하게 만든 황금 선물들을 바치겠나이다.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가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왜 너는 나를 불사신으로 여기느냐?
나는 네가 그를 위해 신음하고 많은 고통을 당하고
남자들의 행패를 감수했던 네 아버지니라!"
이렇게 말학 그가 아들에게 입 맞추자 눈물이 두 볼에서
땅으로 흘러내렸다. 그가 늘 억제하던 눈물이었다.
(p. 356 / 제16권 181~189)



난 페넬로페를 위해 그리고 그대를 위해 그대의 발을
씻겨드리겠어요. 나는 그대가 염려되어 가슴이 두근거려요.
자, 그대는 이제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세요.
고생에 찌든 나그네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이곳에 왔지만
그대처럼 그렇게 체격과 목소리와 발이 오뒷세우스를
닮은 사람을 나는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해요.
(p. 428 / 제18권 376~381)



그러자 빛나는 눈의 아테네가 오뒷세우스에게 말했다.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여,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여!
목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는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그대에게 노하시지
않도록 이제 그만하고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다툼을 그치도록 하라."
  아테네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흔쾌히 복종했다.
그러자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의 딸 팔라스 아테네가
마침내 앙편이 서로 맹약을 맺게 하니
그녀는 생김새와 목소리가 맨토르와 같았다.
(p. 532 / 제24권 54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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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강대진 / 그린비 / 688쪽
(2013. 10. 12.)

 

 


  『일리아스』를 소개한 책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오뒷세이아』라는 작품을 직접 읽을 사람들에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하는지 지적해 주는 것이다.
(p. 5)

 

 

  많은 사람이 고전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고전, 혹은 이른바 '세계 명작'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면 온통 좋은 말들만 나와 있고, 그것이 읽기 어렵다는 얘기는 전혀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고전은 읽기 어렵다. 독자들은 보통 고전을 상친하는 그들에 '낚여서' 원작에 도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는 뭔가를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매우 부끄러운 일로 되어 있어서, 누구도 고전이 읽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6)

 

 

  작품을 읽어나가는 데서 겪는 어려움과는 별도로 의미의 문제가 있다. 많은 독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으면서는, 전문가들이 칭찬한 것 같은 '좋은 점'을혼자 찾아내기가 또 만만치 않다. 그래서 끈기 있는 독자가 완독에 성공한 경우에도 얻은 것은 다소의 성취감뿐, 처음에 기대했던 감동이나 고전의 진가를 발견했다는 확신은 갖기 어렵다. 이 역시 도움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떤 부분이 예로부터 주목 받으며 어떤 풍성한 해석을 끌어 모았는지, 그 부분의 영향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도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흔히 그냥 즐겁게 읽고 넘어가는 영웅의 모험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여러 해석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런 해석들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왜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 읽히고, 왜 그렇게 자주 추천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p. 7)

 

 

  철저히 준비를 갖춘 후에 『오뒷세이아』를 읽겠다면, 『일리아스』 못지않게 희랍 비극 작품들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준비를 다 갖추자면 한이 없으니 그저 기회 닿는 대로 아무데서나 얼른 시작하라는 게 나의 충고다
(p. 40)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 희랍 땅에서 만들어진 서사시(이야기 시)로서,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유렵 최초의 문학 작품이다. 작품 분량은 약 1만 2천 줄로 보통 두께의 책 한 권에 다 들어갈 정도이다. 전체는 스물네 개의 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각 권은 희랍어 소문자로 표시되어 왔다. 예를 들어 δ149라고 되어 있으면 『오뒷세이아』 4권 149행'이란 뜻이다.
(한편 『일리아스』의 각 권은 대문자로 표시하는 것이 전통이어서, 책 제목 없이도 Δ149라고 되어 있으면 '『일리아스』 4권 149행' 이란 뜻이다.)
(p. 40)

 

 

  이 작품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했던 영웅이, 바다를 떠돌며 모험을 겪은 후 20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자기아내에게 구혼하면서 자기 집 재산을 먹어치우고 있는 횡표한 무리들을 처단하는 걸 주된 내용으로 한다. 간단히 줄이자면 '오뒷세우스의 모험과 복수'다. 이것이 『오뒷세이아』의 중심 주제 두 가지이다.
(p. 43)

 

 

  이 작품 마지막에 다시 선 질서는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온갖 종류의 고난과 온갖 유형의 인간들을 격고 온 영웅은 마지막에 새로운 질서로 한 단계 올라선다. 피의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우의에 기초한 평화를 확립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예부터 전해 온 전통적 요소, 고대의 지혜도 담겨 있지만, 청동기 문명 말기의 혼란과 암흑기의 모색을 뚫고 지나와, 새로운 시대를 맞은 지중해 인들의 경험과 반성 또한 담겨 있다.
(p.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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