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환상성 동문선 문예신서 189
장루이 뢰트라 지음, 김경온 외 옮김 / 동문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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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영화제가 특화된 하나의 영화제로 정착될 정도로 판타스틱 영화라 불리는 일군의 기이하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전통적인 서사와 영화 형식에 식상한 사람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뭔가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기 마련이고, 영화 역시 첨단화된 기술적 조작으로 이미지 구사가 용이해짐으로 해서 이와 같은 사람들의 욕구에 조응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킹콩'이나 '투명인간'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놀라운 기술에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는 경험담은 이제 아주 낡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관객의 기대 수준과 기술적 발전이 지금처럼 근접해 있는 시대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을 액션 영화에서의 스펙터클을 양념처럼 바르거나 코믹 영화에서 과장된 웃음을 유발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용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단순한 유흥 이상의 지적 텍스트로서, 훌륭한 몇몇 영화들에서 우리는 기존의 질서와 자아정체성으로부터 놀라운 전도와 의심의 계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대체로 전통적으로 관객의 대중적 호응을 받았던 장르 영화보다 공포영화나 미스테리 영화처럼 저급하거나 낯선 장르로 취급받아온 영화에서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가 우리와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는 어떤 합의된 관념을 리얼리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기존 관념에 회의를 품게 하는 다양한 기제들을 총칭해서 판타스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제들은 영화의 공인된 질료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차원일 수도 있고, 카메라의 시선이나 편집의 차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군의 판타스틱 효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체로 의식적이지 못하다. 무엇이 그러한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질문에 둔감하다는 말이다.

뢰트라의 <영화의 환상성>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공포영화들을 매개로 하여 영화가 발휘하는 환상성이 어떤 차원에서 어떤 기제나 모티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영화의 환상성이라는 테마를 고민하는 데 충분한 단초가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들에 대한 서술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읽어내려 하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총론 중심으로 읽고 나중에 영화를 구해본다음 관련 부분을 정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웬만큼 보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찾으려 하지 않겠지만, 이 책은 영화나 문학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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