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세기 들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중심으로 판타지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의 관습적인 서사 방식과 스토리에 실증이 난 사람들이 그동안 저급 문화 또는 유치 문화라고 저평가되어왔던 판타지 작품에 열광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특히 판타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에서조차 그 맛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가 적었던 우리에게 있어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갇혀 있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리얼리즘이나 모방, 사실이라는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해왔던 지난 시대의 역사적 관습이 암묵적인 강제로 작용해왔던 점 역시 판타지 흥성의 한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대중문화의 주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제 판타지 작품들은 새롭게 가치 평가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판타지 작품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상황에서 자칫 맹목적으로 판타지에 열광하는 것도 새로운 편향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가진 사상과 세계관이 지극히 중세적이고 봉건적이라는 점, <반지의 제왕>이 가진 세계의 기독교적 엄숙주의와 배타적인 타자관을 보인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못할 때, 우리는 판타지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쉽게 젖어들게 된다.

로즈마리 잭슨의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마도 작가와 작품이 관여하는 세계와 독자가 개입하면서 만들어 내는 세계에 대한 의미론적 차원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타지는 무비판적으로 동화되고 즐겨야 한다는 또 다른 강제가 낡은 맹신일 수 있음을 잭슨은 강조하고 있다. 특히 톨킨과 그의 <반지의 제왕>이 왜 진정한 의미에서 판타지 작품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 한번 경청해볼만 하다.

이 책은 판타지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광범위한 관심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작품 중 상당수가 우리에게 낯선 작품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비록 서구 중심적인 역사이지만, 판타지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꽤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작품들에 대한 독서욕을 얻어 새로운 독서로 나아가는 길잡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지 목록이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가를 이해하고, 보다 광범위한 작품에 대한 출판 바람을 가질 수도 있다.

추리문학이나 판타지문학에 대한 새롭고 적극적인 관심은 분명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르들은 우리의 문학사에서는 낯설고 저급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일종의 은폐를 통해 이루어진 과대평가와 맹신은 인간의 감수성과 가치관을 편협하게 조작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문학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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