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로고스
짱 롱시 / 강 / 1997년 8월
평점 :
절판


현대 사회의 문화와 예술은 다양한 측면의 문제를 함유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문제로 수렴된다.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이 말과 글자라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언어의 문제는 인간 문화의 시작과 끝에 가로놓여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도와 로고스라는 동서양 철학의 중심 화두를 각각 대표하는 개념을 표제로 내세움으로써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는 말은 언어의 지시 기능이 지닌 궁극적인 한계와 더불어 이러한 진리의 언명조차 말을 통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함유한 개념이다. 그리고 로고스는 이성 혹은 말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데리다식의 해체주의가 서양의 지적 전통을 로고스중심주의로 규정하면서 인구에 회자된 개념이다.

중국과 서양은 판이한 지적 전통을 가진 문화권으로 가정하는 것이 우리 주변의 미숙한 견해거나 선입견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와 로고스의 대립이 압축적으로 표상하듯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언어의 한계성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서양은 적어도 근대 사회 이후로 많은 것들을 언어적 표상으로 포섭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문학의 장에서만 보면 현대의 서구 시인들은 적어도 동양의 도 개념이 함축하는 언어의 함축성, 암시, 신비주의적 현현에 대해서 강한 열망을 드러내 보인다. 말라르메의 순수시나 발레리의 상징시학은 그들이 토해 내는 몇 마디의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가 깔고 있는 여백으로부터 말로는 현현되지 않을 신비주의적 암시를 지향했다.

저자는 양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종횡으로 옮겨가면서 언어에 대한 서양적 관념과 현상을 중국적 관념과 현상과 비교하면서, 궁극적으로 적어도 언어 문제에 있어서 양의 동서 사이에 선입견으로 놓여 있는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것같다.

저자의 이런 작업은 별다른 반성 없이 서양의 지적 전통에 기대어, 동양적 현상에 대한 접근을 피하는 지적 안일함에 대해서 반성하게 한다. 조선적인 것은 서양 근대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비교 접근 대상으로서 미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이런 문제는 현대 문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특히 더 염두에 둬야 할 것같다.

안일한 재생산이 아닌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 찬 도전적인 재생산을 충동질하는 이런 책은 새로운 작업을 위한 영감을 제공해 준다. 저자는 중국계 미국인 학자이다. 경계선에 가로놓인 위치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닌가 싶다. 이상의 시를 번역하고 연구한 월터 류의 위치와 가능성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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