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무엇인가
토마스 소벅 외 / 거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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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 관련 서적을 일견해보면 몇 가지의 유형 분류가 가능하다. 저자의 국적별 분류도 그 중 한 가지 방법이겠는데, 영화의 본질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개론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종류가 의외로 적고, 그것도 대부분 외국 저자의 번역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때 영화 개론서로 가장 유명한 책은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라는 책이었다. 영화 열풍이 불어닥쳤던 90년대 초반 너나 할 것 없이 한번쯤을 넘겨봤을 책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광풍이었다. 20세기부터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극장에 걸리고 주말이나 휴일이면 사람들은 영화 보기로 감동과 재미를 한 묶음으로 간편하게 챙기곤 했다. 그 흐름은 역사의 격변기라고 해서 달랐던 것은 아니다. 정국이 어수선할 시절 가투의 주무대였던 종로거리에는 영화를 보러 나온 사람들과 가투 참가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광풍의 내적 동력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세계사적 격변과 산업적 발전이 결합하며 생겨난 우연같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VCR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인해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 특정한 시간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마음만 먹으면 비디오 테이프로 알뜰하게 몇 번이고 챙겨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몇 번이고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영화에 대한 비평적 욕망을 증폭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진보적 운동의 정당성과 활동성이 쇠퇴되면서, 그동안 인간의 의식을 자본주의적 공세로 세뇌시키는 저급한 오락물이라는, 영화에 씌워진 오명이 벗겨졌다. 이념과 영화를 마치 상반된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그 의식은 지금으로 봐선 우스운 것이었으나 그 당시는 그것이 무시 못할 금제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는 대학생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되었는데, 지금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의 상당 부분은 적어도 그 시절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그 자체뿐만 아니라 관객의 감수성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소벅 부처의 <영화란 무엇인가>는 자네티의 책 이후 번역된 가장 훌륭한 영화 개론서이다. 자네티의 책이 영화사와 영화 기술에 대한 치밀하고 분석적인 해설에 치중하고 있다면, 소벅 부처의 이 책은 영화를 하나의 미학적 구성체로 보고, 영화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미학적 틀 내에서 영화를 조망하고 있다. 그리고 논의의 설득력이 더해져 영화 서적 특유의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영화 입문을 위한 스터디 교재로 사용한 바 있는데, 참가자들도 대체로 좋은 평가를 보였다. 영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권쯤 책장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보면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영웅>을 둘러싸고 이데올로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그 한편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에게 영화는 현란한 스펙터클과 적당한 이야기가 골고루 반죽된 일회적인 볼거리이다. 영화는 영화 이외의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며, 관객들에게 만연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열렬한 옹호자가 다름 아닌 영화 관련 업자들이라는 사실을 한번쯤 상기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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