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피시 Banana Fish 1 - 완전판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수정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못느낀다 해서 비정상이라 낙인찍는 것 좀 그만 보고 싶다. 공감으로 이어지는 유대와 그 사회정서가 나한테는 솔직히 숨막힌다. 사람의 마음은 건전지 같아서 방전되면 사실상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재충전해도 얼마 안 가 방전되는 타입도 존재한다. 평상시에 일상 속에서 늘 감정이란 걸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날 포함해서. 사실 보통의 경우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려나 존중같은 예의를 통해서 타인의 감정에 상처입히지는 않는 정도로 산다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자신이나 남의 삶에 빛을 비춰주지는 못하긴 하다. 평생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어차피 안 된다고, 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아님 환경 때문에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고, 기회가 와도 자신이나 남들에게 거짓말이나 해가면서 말이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말은 사실 어떤 사람을 거절할 때 쓰는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게 두렵다. 역설적인 게,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에게서 애정이 거절된 경우엔 더욱 사랑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사랑을 줄 줄도 모르고, 관심을 받으면 공격을 발산한다. 나중에 거절당하기 전에 미리 거절하는 것이다. 방어막(AT필드)을 친다고 할까. 사실 이 말도 금발머리 청년이 전략상 내뱉은 말이고 주인공도 나중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겉으론 말이다. 그러나 거절받은 경험이 일본인 소년에겐 충분히 극복되더라도 둘의 사이엔 아직 앙금처럼 남아있고, 여전히 금발머리 청년은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난 1쿨 말 쯤에서 애쉬가 형과 소중한 부하를 잃으면서, 점점 더 에이지에게 집착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생각을 아예 기정사실화하고, 그걸 굳이 남 앞에 표출할 필요까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 본다. 사실 어제 친했던 사람이 오늘 죽어나가는 세상에선 되는 대로 교류해야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애쉬는 형이자 친구이자 자신과 같은 상처를 겪게 된 에이지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반은 진심이 담긴 말을 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될 말이었던 건 확실하다. 애쉬와의 관계를 좁히려 일본인 소년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애쉬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곧은 성격인 그는 어떻게 할까.

근데 차라리 그럴거면 친구 말고 연인이 되어서 같이 나락의 끝까지라도 가면 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철부지같은 마음이 내 안에 남아서 그런가. 오래 끌수록 점점 파탄나는 관계가 틀림없다 생각하고 있는데도 나는 이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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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Chris 2018-10-08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분기 제 안에서의 top3 중 하나가 이 친구였습니다.

저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디 언제까지나 함께하길 간절히 바라게 되네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해피엔딩이면 실망할 듯...

갈매미르 2018-10-09 08:19   좋아요 1 | URL
애니 오리지널 스토리를 내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