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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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H5OH 중에서

오늘은 산소인 나와 수소인 그녀가 포옹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탄소인 한 사내가 들어왔다.
탄소인 한 사내는 우리가 포옹하는 환경에 눈이 뒤집혀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되고
그녀는, 그대로 있었는데 그녀의 자아가 다섯 개로 늘어나
탄소인 그 사내의 주위에 늘어섰다.

술의, 술의 화학식
술잔에 늘 녹아 있는 이야기

수많은 실수의 태도로,

이런 식으로 하면 완전 화학식 잘 외울 수 있을듯. 따지고보면 내가 화학식에서 멈춰버린 이유는 이과의 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상상력이 딸렸던 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아아 그래도 이런 이과문과 다 최정상급인 뇌는 역시 부럽다는 변명을 늘어놔 본다. 화학식 커미션 얼마죠.



 

 

염소 CI라는 시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페르소나 시리즈 중 3를 가장 좋아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게임에서는 현실세계에서 간혹 어떤 환상적인 세계가 구현된다. 그 안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면 자신의 캐릭터가 구현되어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수 있다.
만일 그 총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난다. 또한 너무 자주 자신에게 총을 쏘아도 리스크가 발생한다.
엄격한 평가는 자신에게 가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에게 너무 까다로울 경우 그것은 증오의 빌미가 될 수 있으며, 연속되는 증오는 결국 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혜화역 시위같은 데서도 이 이야기가 이어질거라 본다. 어쨌던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게 환대는 아니지 않나.

 

티타늄 Ti

녀석은.... 히키코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일 년 동안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숫돌로 갈면 혼자서 흰 불꽃을 내는 저 금속처럼
녀석은 외톨이로 살았다

음... 애니에서......... 가상현실........... VR에만 빠져 있어
일본 가서................. 혼자 살려면........ 슈퍼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거기서는........ 잘 할 수 있겠다고.
다른 언어로는........... 잘 살 수 있다고.

밖에 나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도 이젠......... 다른 속도를 내는........ 언어가 좋다고
조금 느린........... 속도면 좋겠다고

나도 다른 언어로...... 있고 싶고 가고 싶다고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서 섬마을 소년이 오타쿠라는 걸 요란스럽게 방영중이었다.


단지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좀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가 여태 모아두었던 피규어, 만화, 라노벨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카메라로 인해 낱낱이 분석되고 탈탈 털리고 있었다. 이게 바로 공개처형인가 따위를 생각하며 저녁식사를 우물거리고 있는데 TV 속 할머니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소년의 꿈은 일본의 공무원이란다. 속으론 굉장한 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비웃더라. 애니보면서 일본어 실력은 성장했는데 할머니가 공무원을 하라고 잔소리하니 적절히 합쳐진 게 아니냐고. 그게 현실일지도 모르나, 자이니치 공무원이란 꿈은 재밌지 않나?



 

 

태엽이란 시를 봤다. 시인의 페이스북을 참고해 본 바로는 수년 전 지방으로 이사와 실의에 빠져있을 때 세상을 등지고 돌아누워만 있을 때, 하루는 등 뒤에서 끼리릭 끼릭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의 등에는 아무 것도 닿지 않았다. 시인은 곧 아내가 일 마치고 돌아와 앉아 그의 등 뒤에 손가락으로 태엽 감는 시늉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다. 곧 다시 일어나 세상 밖으로 걸어나갔다고. 이 시를 보면서 나는 '졌다'고 생각했다. 역시 세상에선 창의력 없인 살아갈 수 없나 보다. 나도 순발력을 발휘해서 내 창의력을 쓰고 한 사람을 기운내게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사랑시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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