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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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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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부퍼탈Wuppertal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에서 디플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진과 퍼포먼스, 공공미술 작품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프랑스 막발Mac val현대미술관, 네덜란드 사진미술관 하우스 마르세유Huis Marseille,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덴마크 오덴세Odense사진미술관, 폴란드 라즈니아Laznia현대미술관, 독일 함부르크Hamburg예술공예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들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주요 작품으로 타임스 스퀘어에서의 퍼포먼스 「Versus」, 사진 연작 「Believing is Seeing」 「One-Hour Portrait」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Thousands』 『Being a Queen』 『Performance Catalogue Raisonne I』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퍼모먼스형 미술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였고, 이 책은 그런 작업들을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됐고, 어디서 얻은 발상이며, 누가 언제 어떻게 참여하였는지, 이를 진행하고서 스스로 느꼈던 부분들에 대한 감상들이 담백하고 작성되어 있다.


작품의 대부분이 관람객이자 작품 그 자체가 되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한 것들이다. 즉, 사람이 전시대상이자 주체인 것이다. 주제는 매우 다채롭고, 각양각색을 이룬다.


알지 못하는 완전한 타인과의 악수라든지, 한 공간에서 같은 행위를 하며 각자 느끼는 바를 남기는 모습들이 어색하면서도 친밀해지는 순간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때론 기막힌 타이밍과 우연을 만들어내기도 하였고, 이는 순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도 닮게 느껴졌다.


버리고 싶거나 타인에게 주고 싶은 물건 가져오기, 눈을 감고 보고 싶은 이를 그려보기,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으로 글씨를 써 보는 것, 고통의 무게라고 생각되는 만큼 돌을 보자기에 감싸 묶어보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주어진 시간대로 센 후에 일어나기, 앞에 앉은 이에게 차려진 밥상을 떠먹여주기, 사람인의 자세로 포옹하고 있기, 같은 시간대에 보내고 싶은 문자 보내기, 같은 도시에 살지만 만난 적 없는 이들이 마주 안자 상대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나머지 손은 맞잡은 채 정해진 시간만큼 머물러 있어야 하는 퍼포먼스. 따듯한 문장들을 모아 파이프나 케이블에 새겨 도시 거리 곳곳의 에너지 이동 경로에 설치하는 것 등등 이렇게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게 새삼 이쪽 분야에는 무관심했다 싶었다. 


문학독후 활동 덕분에 알게 된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결국 사람들 간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일부를 다루는데, 경계가 심해지는 요즘 같은 사회에도 이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뭉클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고 서글픈 구석도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수많은 프로젝트 중에 낯선 누군가와 마주하며 참여하게 된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고, 이는 참여하기 전후의 태도가 극명히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때로는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비슷한 내용과 주제로 복제된 책들이 아닌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런 예술 활동이 더 큰 위안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서 또다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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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이 선물해주는 새로운 생성의 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우리들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들에서조차 애틋함을 느낀다. 16쪽



이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설명하는 닮음의 이유가 아니라 닮음이 있다고 믿는 자체이며, 이 미묘한 불일치의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자화상이다. 54쪽


분명 사람들은‘고통’과‘고통으로부터 해방-행복’을 동일시하는 듯 보였다.  66쪽


나에게 한 장의 사진은 눈으로 본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믿음과 보았을 때의 인상의 표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먹어서 내 일부가 되어가는 그 사과의 모습을 그려냄은 세상에 하나뿐이던 생명체에 대한 기억의 고유한 출현이지도 모른다.  104쪽


달리기는 일시적으로 마음과 몸의 일치를 통해 세상을 다른 속도에서 감지하게 한다.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는 지향적 단서로서의 몸, 그 지각의 중심은 자신의 위치, 몸의 크기와 속도의 중심으로부터라는 사실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매일 시간의 트랙 위만을 달린다. 내 몸을 떠난 시점에서의 방향성이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116쪽


다양성을 위장하고 양적으로 팽창된 사회는 우리에게 경계를 넘지 말 것을, 비슷해질 것을 강요한다. (…)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아닌 익명성의 보장과 규칙으로부터의 보호에 대한 신뢰……. 나와 마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아니기에 더욱 나이다. 210쪽


우리의 삶은 누군가와 연결된 무게와 제한적인 시간으로부터 마침내 그 형태를 찾아간다. 그 무게는 짐이기도 하고 안정감이기도 하다. 존재의 밀도에 상응하는 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35쪽


사람들은 작품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시민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로 에너지 원료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도 우리 곁에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길 기대하였다. 때로는 우리가 자리를 내줄 미래와의 대화같이도 느껴졌다. 이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 가끔 느껴지는 감정과도 비슷하였다.  344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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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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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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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선언 아닌 선언으로 시작된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 2018. 1. 3. 02:51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9쪽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스물다섯 살, 코딩에 대한 관심과 에꼴42에 진학을 꿈꾸는, 서울 스퀘어 건물에서 야간 경비원(아마도 대학원생?)으로 일하는 나는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한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블로그 형식의 글쓰기를 차용했고,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모두 이 '공개'된 일기 속에서 말하며 행동한다.


같은 직장 동료들 송주임,  조지(훈) 등과 대학 친구인 기한오 그리고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에이치, 이성복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하는 건물에 입주한 벤츠 코리아의 여직원과 사귀고 있는 송주임과 국제야간경비원연맹 아시아 지부장이라는 조지(훈)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기한오, 내가 짝사랑 중인 시나리오를 쓰는 에이치, 에이치가 호감을 표현하여 나의 견제대상인 '이성복'이라 지칭되는 중년남자(그리고 에이치의 전 남자친구인 승재까지)


블로그라는 온라인 상의 사적인 공간은 공개여부에 따라 개인의 기록이나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다. 기록에 의의를 두기도 하며, 지금은 마케팅 매체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주변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거나, 현실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언급하며, 내가 흠모하는 에이치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짤막한 토막글부터 유용한 정보를 찾아 저장해둔 듯한 글과 이미지까지. 다채롭다면 다채롭다. 실제 현실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인물들을 호명하고 있으면서도, 야간 경비원에 대해 말하는 조지(훈)의 이야기는 대개 허구에 가깝다. 실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낯선 듯 낯설지 않는 혼란함은 다소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기도 하고 호불호도 갈릴 수가 있지만, 초반부에 조지(훈)을 통해 말하는 야간 경비원에 대한 수식과 개념(건물주와 경비원을 빗대어 말한 체제, 사회개념) 등을 무난히 읽고 넘어가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우연한 이유로 어떤 블로그에 들어와 일상글을 읽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말하기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유머와 인터넷이나 SNS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존버'같은)등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 이는 그냥 이런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역시 무던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측면도 많았기에 읽으면서도 이건 진짜인가, 가짜인가 헷갈리는게 종종 있었다. 때문에 언급된 인물이나 사건을 검색해가며 읽어야 했다. 뜻밖에도 실제로 일어났고 존재하는 요소들이 더 많았다.


어느 경비원의 자살, 정리해고, 스토커, 데이트 폭력, 글 쓰기에 대한 생각, 연애, 코딩, 미디어 파사드를 통한 도시해킹, 도시의 닌자 등 다양한 속성의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계급 투쟁, 혐오를 다루고 글 쓰기 방식에서의 여러 이념들(이를테면 '상황주의')에 대해 말한다. 쓰는 행위에 대한 언급도 많다.  

표현된 유머는 진지하지만 시덥잖고, 중년남성이 표현하는 호감, 전 애인이 행하는 스토킹과 같이 에이치에 일어난 일들은 이제 너무 일상적인 속성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씁쓸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만큼 해결되지 않고 쌓여버린 흔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연속성을 가지는 듯 하면서도 분열되어 흩어져 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인 무엇인지 의중을 알 수가 없었는데 그게 일종의 노림수나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이었기에. 익숙한 이야기도 있었고, 한 번씩 비틀어진 틈도 있었다. 의식의 흐름처럼 쓰다보니 들어간 이야기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몰랐던 사건들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정지돈 작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그의 작품은 처음 접해본다. 작가는 대학 때 영화를 전공했다고 한다. 다른 문예잡지 속 인터뷰에서는 미술? 영화와 관련된 글도 많이 기고했다고 하였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오가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인 듯 하다. 핀 시리즈의 판형은 핸디북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결같이 느끼는 부분은 생각만큼 읽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손이 쥐기 쉬운 분량의 작품일지라도 담고 있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가독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읽으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에 방문하여 한 카테고리 속 글을 차례대로 읽는다 생각했더니 읽는게 더 수월해졌다. 작가가 구현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적절히 버무려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덕분이다.


해설 대신 덧붙인 박솔뫼 작가의 <키토에서>는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이어 등장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속성과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별 특색이 뚜렷하여 또 다른 읽는 재미를 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의 글을 이번에 처음 접해보는데, 내 취향에는 그리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고 다시 읽어보고는 싶다. 



마지막으로 무심히 던진 삶에 대한 문장들이 기억에 더 남았다.

투명인간이 된 유니폼으로 대변되는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에 대한 내용 등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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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삶이 너무 슬퍼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일까. 딱히 그럴 것도 없는데. 사실 나는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밝고 희망찬 미래!

다 잘될 거예요. 올해는 떼돈을 벌 거야!! 

52-53쪽



경비원은 투명인간이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들 눈에는 유니폼만 보일 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77쪽



니키 타르는 조지(훈)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비현실적인 것을 원하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라. 

나는 이미 쓸모없는 사람인데, 라고 반문하려다 말았다. 쓸모없다는 걸 강조하는 건 일종의 돌림병 같다. 106쪽


회사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곳이다. 출근 시간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고 시스템에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바보가 되어야 한다. 

112쪽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잘 모르겠네요, 니키 타르 씨. 내가 말했다.  

12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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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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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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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에서의 10년간의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감한 독일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담긴 책이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여러 생활 패턴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좋아하는 일이기에 열정도 넘쳤지만 그만큼의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다고 한다. 이른 출근과 잦은 야근, 성과위주의 방식에 한계에 다다른 내면에 쌓인 분노와 감정의 부스러기들로 인해 자신이 더 망가지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잠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로.


저자는 처음 독일에서의 첫 인상은 기존에 가졌던 근면성실하지만 좀 딱딱하고 냉철할 것 같다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당황스러워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일본에서 살 때 느꼈던 일상적인 서비스조차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서비스 불모지와도 같은 모습은 당황을 넘어 화가 났지만, 이 생활에 적응해나가며 그 상황을 이해하다 보니 직접 행동하는 게 낫다고 느낀 것 같았다. 


게으른 일처리, 자기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태도, 여유로운 듯 속터지는 일처리 방식은 누구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는 단축근무든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근무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플렉스 타임제 때문에 가지는 유연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자 하며, 쓸데없다고 여기는 일은 최대한 피하기 때문에 중요도 낮은 업무는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또한, 시간 안에 업무를 끝내기 위해 업무별 완료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성수기엔 야근도 있긴 있지만 근로시간과 일하는 방식은 업계나 직종에 따라 크데 달라진다고 한다. 행위의 목적을 두고 일을 하며 점심시간이 짧은 데에는 일정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고, 근무시간 내에 맡은 업무를 마치고 일찍 퇴근하려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 내에는 이렇듯 집중적으로 선택하고 분배를 하고 조절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무실에는 저녁에 아무도 없다"는 말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부러운 형태이긴 하다.


당장 사회 시스템을 혼자서 바꿔 나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지금의 시스템 내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저자는 말한다.


그건 바로 일할 때 확실히 일하고 쉴 때 제대로 쉬는 것이다. 

온오프 전환에 익숙한 독일 사람들처럼.


독일은 연방휴가법이라는 법률이 있기에 연간 유급 휴가 최소 24일로 정해져 있고, 이때 일요일과 공휴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쉴 땐 쉬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담당자가 부재해도 일은 어떻게든 처리가 된다. 담당자 외의 사람도 알 수 있게 서류를 정리한다든지 시스템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걸 중요시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쉼'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고 생활도 그걸 중심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가능한 데에는 도심 속 환경조성에도 그 이유가 있다. 도심에 살고 있지만 자연을 접하기 좋고 공원 조성과 녹색 부지는 바로 창문만 열어도 길을 걷기만 해도 접할 수 있는 초록빛 덕분에 한층 여유롭고 평온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집. 주거공간은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할 요소들이 물론 많지만, 선호하는 양식은 조화로움인 듯하다. 


베를린 중심부에는 신축 건물보다는 지어진 지 100년 이상인  오래된 주택이 더 많으며, 내부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알트바우가 인기라고 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보존된 건물이 지닌 매력을 알기 때문에 공들여 가꾼 알트바우가 신축건물보다 더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베를린의 공동주택에는 기본 옵션이랄 게 없어서 대부분 자체제작으로 고치거나 만들어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D.I.Y에 능숙하고 좋아한다는데 그 덕분인지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 중 대개 창의적인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 같고, 청소에 비해 요리에는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빵 종류가 무척 많으며 조리과정이 간략한 칼테스 에센이나 슈파겔 등이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음식 같다. (빵 종류나 소시지 종류도 무척 많다.)


구어체 어조로 대화하듯 편안하게 서술된 독일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대신 전해 들어보았다. 여유로움과 초록색 빛이 가득한 사진들로 인해 읽는 내내 뭔가 여유롭고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과 담긴 내용들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신보단 타인을 향한 시선으로, 바깥을 향한 친절이 있었기에 도출된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타국에서 살며 다소 맞지 않는 불편한 점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다행히 자신과 잘 맞는 부분도 많았기에, 거기서 접한 건강한 개인주의를 통해 학대당했던 스스로를 안아주며 친절히 아끼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마음 먹기에 달린 일들이라면 이왕이면 스스로를 좀 아껴주고 사랑할 줄 알아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 덜 퍽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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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살지 않는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미지의 세계를 아는 것이 도움이 돼요.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믿어온 상식에서 벗어나면 시야기 넓어지기 때문이죠.  35쪽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것.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여 판단하면 내가 만든 결과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어요. 63쪽


집안일을 포함해 자기 일은 알아서 할 수 있게 키웁니다. 그래서 청소는 집안일이기도 하면서 교육의 시간이며, 가족이 단란하게 보내는 놀이 시간이기도 해요. 92쪽


나와 가족의 가치관을 반영한 인테리어, 피곤함을 풀고 기운이 나게 하는 게뮈트리히한 인테리어는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줍니다. 인테리어는 보다 좋은 삶을 살고 싶을 때 중요한 작용을 하는 요소예요. 171쪽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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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에스더 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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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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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LA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자랐다. 동서양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니, 자신이 어떤 나라에서 속한건지 의문이 들었을 거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의 외로움이 남았을 것이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만하다. 부모님에게는 세대 간 격차를, 친구들 사이에선 문화적 차이 때문에 움츠리고 분위기를 살펴야 했고,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만의 생존방식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좋은 리스너였을지 몰라도 스스로에게는 불친절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문화권에서의 삶은 혼란을 가져왔고 고통스러웠으나, 덕분에 창의성을 기르는데 훌륭한 예술적 자양분이 되어줬을 것 같다. 이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의 내면속 다양한 성향과 기질이 바탕으로 탄생된 듯한 여러 비니들이 각 장마다 등장하여 화자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다. 보송보송한 재질의 토끼 캐릭터의 다채로운 변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리본버니 / 패션과 문화를 사랑하며,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으며 예쁜 것들을 좋아하고 야심있는 캐릭터


옐로우버니 / 워커홀릭, 스스로에게 부정적이고 엄격해서 스트레스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돼버리는 캐릭터, 취미활동 스케이트보드


로즈버니 / 감성적이고 사려 깊지만 소극적인 캐릭터, 우울감이 내재 되어 있고,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걸 두려워해 항상 장미를 들고 다닌다. 생각이 많고 불안감이 높지만 항상 남을 돕고자하는 캐릭터


라벤더버니 /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밝은 분위기의 버니. 강하지만 상냥한 성격 지님


크림버니 /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사색가. 관심 있는 일을 할 때 행복한 버니. 리본버니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해심 많고 친절하다.



이처럼 버니 캐릭터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게 매력적이다. 각 장의 주요 틀과 성격에 맞게 배치된 여러 버니들이 모두 사랑스럽다. 담긴 이야기는 어쩌면 흔할 수도 있다. 요즘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서로 물고 뜯기 바쁜, 나도 힘드니까 너도 힘들어야 해, 라며 공격하기 바쁘고, 열정을 강요하지만 틈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세대들이 누적되어 가는 피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위로와 말 한마디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매우 중요한 것이고 현실에 치여 무뎌진 것들이기에,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의 가치는 내 소지품의 가치 그 이상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멘토는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수집하는 것도 멘토를 찾는 일과 같다고 하니, 결국은 자신을 위해 좋은 것만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자라온 환경에 의해 자신의 근원에 혼란을 느꼈고,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쉼이 필요할 땐 휴식을 해야 하며, 자신을 믿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대로 두고, 자신을 위한 좋은 선택을 하도록, 굳이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힐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작가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다가도 지칠 때가 있었으며, 도움을 구하기 위해 다른 서적을 살펴보기도 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건 나 자신이 나의 전부이며, 나를 위해 투자하고 나를 위해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옐로우버니가 말하는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갔다. 세상살이 풍파에 휩쓸리고 있는 듯한, 담배를 물고 있는 옐로우버니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리기도 하고(현실에서는 정말이지 싫어하는 기호제품인데), 현실에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자존감을 기르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습관처럼 익숙한 사람에게, 나와 같이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로 전해주고 싶은 고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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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많든 적든, 값이 비싸든 싸든

당신이 가진 가치가

그 물건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32쪽



비록 내가 했던 일들이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되도록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는 것.


51쪽



자신을 믿어 주세요.

자신을 지지해주세요.

나의 생각과 감정은 옳아요.


60쪽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버려 비우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생각을 담기 위해서

새로운 공감을 만들기로 했지요.


157쪽



‘잘’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이 아니라‘계속’이에요.


196쪽



항상 나를 격려하고 나를 응원해요.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


207쪽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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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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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 보는 미술관』

『혼자 보는 미술관』









예술작품 체험은 단순한 시각 훈련이나 지식 과시가 아닌 예술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 기분을 바꾸며, 관습에 도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 


안전한 선택으로 쉽고 예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초콜릿 상자 효과'라고 한다. 당장은 편하지만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할 때면 무용지물과 같을 것이다. 작품 감상은 둘이 추는 춤과 같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서 보는 것. 가까이 가서 보거나 뒤로 더 물러나 보거나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에 고전 작품에 대한 감상법을 알아보는게 이 책의 주요 목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고전미술을 독창적으로 감상하는 방법 - 타볼라 라사


존 로크의 인식론에서 막 태어난 인간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 용어로 작품을 바라볼 땐 백지상태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이를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의 방법을 기억해보도록 한다.



"TABULA RASA"


시간, 관계, 배경, 이해하기, 다시보기, 평가하기

Time, Association, Background, Understand, Look Again, Assess


리듬, 비유, 구도, 분위기

Rhythm, Allegory, Structure, Atmosphere



T.A.B.U.L.A


1. 시간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여기에 저자가 말하는 팁은 세 번 심호흡 하기이다.


가능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면 좋겠지만, 때론 가차 없이 판단하며 재빠르게 보는 훈련도 필요하기에 지나치게 번잡하고 따분하다 느끼는 작품에는 서둘러 시선을 거둘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을 통해 재빨리 작품 수준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2. 관계

작품과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삶 전체를 활용해보는 것. 

고전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물이나 형상을 묘사하기 때문에 현대 미술보다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다.



3 배경

작품 제목, 작가, 제작 시기만 알아도 작품 감상 시작하기 충분, 일단 그림을 먼저 찬찬히 감상하고 난 다음에 설명을 읽어도 늦지 않다.



4. 이해하기

감상은 훑어보고, 샅샅이 살펴보고, 골똘히 바라보아야 이해가 되는 것이고,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의 직감을 따라가는 게 좋다고 한다.



5. 다시 보기

그림을 볼 때에도 놓친 게 있는지, 성급하게 생각하진 않았는지, 처음 추측한 게 옳은 건지 스스로 다시 물어봐야 한다. 겉만 보고 판단하기 쉬운데 다시 보기는 이를 바로 잡는 단계이다.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인 것. 계속해서 탐구해야 한다.



6. 평가하기

이제는 작품을 보고 내 마음에 둘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으니 정답이 없다. 전 단계들은 대개 직감이 의존한 것들이 많았다. 평가에 어려움이 있다면 나중을 기약하는 것도 방법이다. 



R.A.S.A


1. 리듬

배치, 화음(조화), 음조(색조), 음의 높낮이 등의 특징은 그림을 감상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며, 그림에는 그만의 리듬이 있다. 여기서 리듬이란, 전체적인 흐름이나 조화를 의미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보는 작품도 있고 자세를 바꾸면서 보아야 하는 작품도 있다. 

리듬은 그림의 음색, 흥얼거림, 전체적인 흐름과 같은 것.



2. 비유

그림 밑에 숨어 있는 상징, 의미, 징후를 읽어내는 것.

대단한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개인마다 주관적으로 해당 작품에 공감하면 된다.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라면 알아서 관람하는 이에게 말을 걸어줄 것이다.


3. 구도

그림의 짜임새, 뼈대, 토대, 구성요소

기하학적인 선, 형태와 구획 혹은 지평선, 수평선, 소실점이 구도가 될 수도 있음. 화가의 구성 의도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4. 분위기

그림에 감동한 후 그 영향이나 여운, 즉 분위기를 계속 느낄 때가 많다. 분위기는 작품을 바로 앞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는 전체적인 느낌, 여운을 뜻한다. 책에 실린 사진, 고화질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는게 더 나을 수도 있지만, 고전 미술은 물리적으로 가까이에서 볼 때의 느낌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 철학과 캔버스


견고함은 되레 추상적인 모호함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여백, 그림자 허공과 대조를 이루며 작품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일상적인 사물에서 다른 이의 모습을 그려보는 상상의 여지를 준다. 덧없음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바니타스에서 이름을 따온 '바니타스 정물화' 같은 경우에도 견고한 정물화를 통해 허무, 덧없음을 상징되게 표현한다. 클라스의 그림 <해골과 깃펜이 있는 정물> 을 보면 예술과 정신을 작품 중심으로 삼으면서 정물화가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한 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각기 상징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견고한 지, 빛을 얼마나 받았는지 등 정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그림을 볼 때, 성향과 기분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가 전혀 달리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쟁점이다.


고전미술은 논리로만 접근해서 온전한 감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보단 그림 뒤에 숨겨진 사상을 중요시하는, 전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지점을 20세기 작가들이 추구했던 현대적 발상이라 여겼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림의 지적인 가능성을 시험한 미술 작품도 많다고 한다. 우화를 재현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 그 자체가 실존적인 생각과 철학적인 문제를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고전 미술의 최고의 작가들도 이같은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보이는 그대로, 사실주의


자고 일어난 후 정돈되지 않는 침대의 흐트러진 상태라든지, 노동하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그려낸다든지, 시골 풍경이나 전원생활을 묘사한 그림을 지극히 사적인 모습에서부터 시골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곤 한다. 다만 평범하지만 잔잔하게 빛나도록 묘사를 하기 고심했고, 빛의 효과를 주어 분위기를 표현했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잠시 시간이 멈춘 그 공간 속에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련되지 않지만 화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뒷모습을 포함하여 곳곳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그 작품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정직하게 묘사하다보면 정작 감추고 싶은 것들의 실태까지 드러나게 되지만, 후세를 잊지 않기 위해 이를 테면 전쟁 범죄의 폐해를 기록하기 위함으로 그려지기도 했던 것이다. 


더불어 흑인을 묘사하며 시대의 관습을 깬 작품도 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흑인, 노예와 같은 인물들을 위축되어 있지 않고, 기품마저 느껴진다. 인종의 차이, 주인과 노예라는 간극을 무너뜨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꼼꼼하게 관찰하여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보편적으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거나, 개별적으로도 가질 수 있는 공감을 이끄는 표현이 더 중요하다. 위대한 작가란 그 시대의 지혜에서 정수를 뽑아내듯,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대상을 향한 진실을 도출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무대, 그리고 명연기


조명을 활용한 감상법을 위한 환상적이고 일상적인 장면이 과장되게 표현했던 존 마틴은 이런 그림을 통해 돈도 많이 벌게 되고 '팬터마임 화가'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여졌다. 이와 같인 속물적인 측면을 가진 19세기 화가 말고도 감상적이면서 과장된 표현을 잘하는 화가들이 있었는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도 이중 한 사람이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우며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된 그림이 카라바조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 역시 카라바조를 뒤따르던 여성 화가로 구약성경의 유디트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녀의 도움을 받아 남자의 목을 베는 유디트의 얼굴에 젠틸레스키는 자신의 얼굴을 넣어 그렸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과 연관이 있다. 열여덟 살 때 아버지의 동료에게 당한 강간과 그의 유죄를 받아내었던 것처럼 이 그림은 적나라하지만 일종의 통쾌함 마저 느끼게 해준다. 그림을 통해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하는 것처럼.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 출신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는 직접적인 살육 현장이 아닌 앞으로 닥칠 사건의 전말을 암시하는 그림을 그려 이를 보고 있는 관람자에게 그림 속 인물의 행동을 멈추고 집중할 수 있도록 순간을 포착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세네갈로 향하던 배가 난파된 일에 대해 기록한 책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정확한 묘사를 위해 남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고 병원과 시체 안치소를 찾아가 해체되고 변색된 시신의 팔다리와 부패한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흥미가 아닌 직접적인 사실을 전하는 언론 보도처럼 다루었고, 생생하게 묘사했다. 



한국 미술의 고전과 근현대를 잇는 화가 안중식의 <영광풍경도>를 보면 산맥은 수묵화처럼 전통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앞쪽에 배치된 집이나 길은 서양 미술의 원근법을 사용해 그림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사실적인 묘사보다 둘러볼 수 있는 무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세계 속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냈다.



훌륭한 화가는 극작가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엮고 각본을 만들어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우리를 긴장시킨다. 142쪽


또한,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젊음의 샘>을 보면 딱히 그 시대만을 비판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늙고 약한 여성들이 광물질이 풍부한 욕탕에 실려가고 있거나, 그러한 권유를 받는 모습. 그리고 다시 젊어져 매력적인 여성이 되었다는 표현이 그러하다. 


* 아름다움의 기준


아름다움은 케케묵은 개념과 같고, 고전 미술은 아름다움만으로 평가되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형식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워졌고, 매번 조금 더 수수께끼처럼 변화했으며,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되었다. 145쪽


이에 저자는 드러나는 아름다움 대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미묘하고 더 수준 높은 형태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제각기 다르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름다움도 있다고 한다.


다 빈치의 그림 속 여성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와 똑같이 그린 것뿐 아니라 앉아 있는 자세라든지, 품에 안고 있는 담비의 모습이라든지 모든 생물과 연결하여 자신의 법칙을 활용해 그렸다. 비투루리안 황금 분할이나 신의 비례 등이 있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너무 욕망의 대상처럼 표현하였고, 앵그르의 그림 역시 나체의 여성을 남성의 탐욕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것이다. 여성의 신체를 통해서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이처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나 시선을 표현할 수 있었던 여성 화가들의, 여성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때가 있었지만 정작 누드화 수업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금발, 하얀 피부와 날씬한 몸매의 여성을 묘사한 것 외에도 풍만하고 관능적인 여성을 그려낸 작품도 있으며, 본인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인 하녀의 건강한 모습을 묘사한 그림에서 또다른 외설적인 측면으로 보기도 했다니 하니 이게 과연 독특한 아름다움의 표현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은 관음적인 분위기와 호기심에 추측하게 만드는게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인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아름다움이란 용어 자체를 여성에게로 국한시키며 단순히 욕망의 대상으로만 자리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성적 매력, 외형에서만 찾지 말아야 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아름다움에 대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였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이야기를 다룬 그림처럼 차분하고 고요하게, 인간적이면서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 공포와 두려움


전혀 일반적이지 않고,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작품들이 있다. 한스 홀바인의 <무덤 안의 그리스도>처럼 희망이란 찾을 수 없고, 소박한 관 안에 누워 있는 예수의 몸을,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의 모습의 묘사는 사실적이고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 외에도 현실 그자체를 묘사한 작품도 있다. 프란시시코 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라는 그림은 폭동 다음날 프랑스의 보복을 묘사한 것으로, 전통적인 선악구도의 사고방식을 깨뜨렸으며, 싸움이 일어난 현장에서는 어느 쪽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야의 그림이 속죄의 의미로 그려진 것일 수도 있다면, 앙투안 장 그로의 그림은 선동을 위한 수단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바로 나폴레옹 전쟁의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


고야 이전에는 거의 없었지만 그는 공포라는 주제를 무척 잘 다룬 화가였다. 초상화, 여성, 축제, 스페인의 생활과 사회 묘사도 탁월했다고 한다. 특히 말년에 그린 잔혹한 장면의 '검은 그림' 연작은 책에 실린 작품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강렬하고 긴장과 위협감이 바로 생생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타치아노의 작품 <아폴로와 마르시아스>는 잔인한 신화를 더 피비린내 나는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아수라장같은 현장 속 인물들의 역동적인 팔과 다리, 벗겨진 살가죽과 흘러내리는 피, 거꾸로 매달린 몸과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까지 혼란하고 잔인하며 맹렬한 기운이 담겨 있다. 이처럼 잔인한 장면이 담긴 작품들은 세대롤 거듭하며 더욱더 끔찍해졌다고 한다. 전염병, 굶주림, 전쟁, 성적 타락, 환경 파괴 등 공포는 매번 다른 얼굴로 존재했던 것이다. 



* 모순, 암시


풍자와 진실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듯한 작품에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들 수 있다. 왕족을 멋지게 묘사하려 인물의 경직된 자세를 일부러 따라하기도 했다는데, 왕과 왕비는 마치 유령처럼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화가 본인은 되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모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다. 빛과 어둠, 현실과 비현실, 자화상과 집단 초상이 뒤섞여 모호성을 띠고 있다. 자신의 소명과 풍자를 함께 담은 작품이라니 대단한 능력자 같기도 하다. 


반면 정치적인 탄압이 강행됐던 시대에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의미를 숨긴 그림들도 있었다고 한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팡이 하나로 산꼭대리를 오른 신사의 뒷모습을 마음 속으로는 그려낼 수 있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기에 역설적으로 희망적이다. 수많은 장애물과 불안 속에서도 나약한 존재로 지칭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룰 기적에 대한 바람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바닷가>는 낭만성도 사실성도 없는, 풍경을 기록하지도 분위기를 보여주지도 않는,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 지상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들었다. 미켈란젤로가 사망하기 전까지 10년 전까지 조각한 작품인 <론다니니으 피에타>는 끊임없이 조각된 모양새로 하나로 연결되지 않으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사실 추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창조해내려 한 게 아닐까 하신 암시만 남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농담과 풍자


고전 미술 작가들도 늘 차분하고 진지하게만 그림을 그리진 않았다. 때론 쾌할한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화도 있으며, 남녀관계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취향에 맞춰 그려진 그림도 있다. 때론 힘 없고 불편한 웃음 뒤로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감추기도 하는 것처럼.


호가스는 상류 사회와 하류 사회 모두의 허영심과 사회악 등을 조롱하는 풍자 화가였다. 최고의 정물 화가였던 샤르댕 역시 내장을 반쯤 꺼낸 가오리를 갈고리에 걸어 탁자 위에 매달은 그림을 그렸다. 과장난 역사화나 종교화가 아니라 가볍다 비난받던 정물화를 통해 그의 예술가적 야심을 드러낸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고전미술에 원숭이 그림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플랑드르 화가인 다비드 트니어스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이유는 그림 속 원숭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조롱하며 스스로의 자만심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고대 의식인 바쿠스 축제를 그린 작품을 비롯하여 기괴하고 외설적인 장면을 그림을 그렸던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중세 시대에 실제로 행해졌던 엉터리 수술에 관해 그림으로 기록하였다. 한 프레임에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 새, 동물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은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서로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복잡한 상징들이 내포된 그림이기 때문이다. 



* 액자 너머로


미술사에도 정통적인 길을 벗어난 작가가 많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시대를 앞서기도 하고 과거로 거슬러가기도 하며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다시금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예술에 혁혁한 공헌을 하였거나 다음으로 이어질 세대를 위해 새로이 길을 다져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열된 보쉬, 벨라스케스, 고야,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 등을 비롯하여 시인이자 선각자였던 윌리엄 블레이크, 엘 그레코, 젠틸레 벨리니 등 세잔과 모네까지 그 시대의 유행하던 그림 양식이라든지 주제 등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간 선구자들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지라도 현대 미술의 추상적이고 해체된 기법이 등장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에. 다른 결을 가진 고전 미술 작가들의 작품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본다. 처음의 백지상태로. 겉으로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났기에 어떤 방식으로 봐야 할지 더 난해해졌고 모호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상태로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서 완성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고전미술을 감상하기 앞서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므로 일단 최대한 편견과 일방적인 견해와 오해를 배제하기 위한 백지상태에서 시대별로 작법별로 저자의 안내에 따라 작품을 감상해보았다. 책에 실린 작품만으로는 감상의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책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인쇄된 책에서 그림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말대로 현대 미술은 몰라도 고전 미술 작품은 작품이 있는 그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게 가장 큰 중요한 것 같다. 여건상 여의치 않기 때문에 저자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바라보고 읽어나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전 미술에 대한 다소 고루한 오해들을 떨쳐낼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독서였다. 미술에 대한 무지는 작품 감상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미술사에 대해 어느 정도 꿰고 있어야 하고 잘 감상해야 한다는 강박에 다가서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많은 걸 알지 않아도 작품을 잘 감상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사는 동안 한 번쯤은 고전 미술 작품을 현장에서 감상해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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