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경비원의 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0
정지돈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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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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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선언 아닌 선언으로 시작된다. 


야간 경비원의 일기 2018. 1. 3. 02:51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9쪽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스물다섯 살, 코딩에 대한 관심과 에꼴42에 진학을 꿈꾸는, 서울 스퀘어 건물에서 야간 경비원(아마도 대학원생?)으로 일하는 나는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한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블로그 형식의 글쓰기를 차용했고,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모두 이 '공개'된 일기 속에서 말하며 행동한다.


같은 직장 동료들 송주임,  조지(훈) 등과 대학 친구인 기한오 그리고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에이치, 이성복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하는 건물에 입주한 벤츠 코리아의 여직원과 사귀고 있는 송주임과 국제야간경비원연맹 아시아 지부장이라는 조지(훈)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기한오, 내가 짝사랑 중인 시나리오를 쓰는 에이치, 에이치가 호감을 표현하여 나의 견제대상인 '이성복'이라 지칭되는 중년남자(그리고 에이치의 전 남자친구인 승재까지)


블로그라는 온라인 상의 사적인 공간은 공개여부에 따라 개인의 기록이나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다. 기록에 의의를 두기도 하며, 지금은 마케팅 매체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주변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거나, 현실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언급하며, 내가 흠모하는 에이치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짤막한 토막글부터 유용한 정보를 찾아 저장해둔 듯한 글과 이미지까지. 다채롭다면 다채롭다. 실제 현실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인물들을 호명하고 있으면서도, 야간 경비원에 대해 말하는 조지(훈)의 이야기는 대개 허구에 가깝다. 실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낯선 듯 낯설지 않는 혼란함은 다소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기도 하고 호불호도 갈릴 수가 있지만, 초반부에 조지(훈)을 통해 말하는 야간 경비원에 대한 수식과 개념(건물주와 경비원을 빗대어 말한 체제, 사회개념) 등을 무난히 읽고 넘어가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우연한 이유로 어떤 블로그에 들어와 일상글을 읽고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말하기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유머와 인터넷이나 SNS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존버'같은)등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 이는 그냥 이런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역시 무던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측면도 많았기에 읽으면서도 이건 진짜인가, 가짜인가 헷갈리는게 종종 있었다. 때문에 언급된 인물이나 사건을 검색해가며 읽어야 했다. 뜻밖에도 실제로 일어났고 존재하는 요소들이 더 많았다.


어느 경비원의 자살, 정리해고, 스토커, 데이트 폭력, 글 쓰기에 대한 생각, 연애, 코딩, 미디어 파사드를 통한 도시해킹, 도시의 닌자 등 다양한 속성의 이야기들이 튀어나온다. 계급 투쟁, 혐오를 다루고 글 쓰기 방식에서의 여러 이념들(이를테면 '상황주의')에 대해 말한다. 쓰는 행위에 대한 언급도 많다.  

표현된 유머는 진지하지만 시덥잖고, 중년남성이 표현하는 호감, 전 애인이 행하는 스토킹과 같이 에이치에 일어난 일들은 이제 너무 일상적인 속성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씁쓸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만큼 해결되지 않고 쌓여버린 흔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연속성을 가지는 듯 하면서도 분열되어 흩어져 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인 무엇인지 의중을 알 수가 없었는데 그게 일종의 노림수나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이었기에. 익숙한 이야기도 있었고, 한 번씩 비틀어진 틈도 있었다. 의식의 흐름처럼 쓰다보니 들어간 이야기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몰랐던 사건들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정지돈 작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만 그의 작품은 처음 접해본다. 작가는 대학 때 영화를 전공했다고 한다. 다른 문예잡지 속 인터뷰에서는 미술? 영화와 관련된 글도 많이 기고했다고 하였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오가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인 듯 하다. 핀 시리즈의 판형은 핸디북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결같이 느끼는 부분은 생각만큼 읽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손이 쥐기 쉬운 분량의 작품일지라도 담고 있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가독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읽으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에 방문하여 한 카테고리 속 글을 차례대로 읽는다 생각했더니 읽는게 더 수월해졌다. 작가가 구현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적절히 버무려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덕분이다.


해설 대신 덧붙인 박솔뫼 작가의 <키토에서>는 <야간 경비원의 일기>를 이어 등장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속성과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별 특색이 뚜렷하여 또 다른 읽는 재미를 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작가의 글을 이번에 처음 접해보는데, 내 취향에는 그리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고 다시 읽어보고는 싶다. 



마지막으로 무심히 던진 삶에 대한 문장들이 기억에 더 남았다.

투명인간이 된 유니폼으로 대변되는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에 대한 내용 등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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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삶이 너무 슬퍼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일까. 딱히 그럴 것도 없는데. 사실 나는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밝고 희망찬 미래!

다 잘될 거예요. 올해는 떼돈을 벌 거야!! 

52-53쪽



경비원은 투명인간이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는 사람들 눈에는 유니폼만 보일 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77쪽



니키 타르는 조지(훈)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비현실적인 것을 원하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라. 

나는 이미 쓸모없는 사람인데, 라고 반문하려다 말았다. 쓸모없다는 걸 강조하는 건 일종의 돌림병 같다. 106쪽


회사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곳이다. 출근 시간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고 시스템에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바보가 되어야 한다. 

112쪽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잘 모르겠네요, 니키 타르 씨. 내가 말했다.  

122쪽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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