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무한육면각체

장용민 지음




리뷰어: 이다혜(북칼럼니스트)



천재가 예술 작품 속에 비밀코드를 심어놓았다……. 댄 브라운의 2003년 작 『다빈치 코드』(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펴냄)가 팩션 붐을 일으키기 전, 한국에도 팩션의 바람이 불었다. 그 주인공은 1997년에 출간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장용민이었다. (1993년에 발표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세계사 펴냄)도 빼놓을 순 없으리라.) 2013년 작 『궁극의 아이』과 2014년 작 『불로의 인형』(모두 엘릭시르 펴냄)의 장용민이 처음 발표한 이 장편소설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비밀’이 제목에서 빠진 셈인데, 그러고 보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퍼즐과 같고 비밀 그 자체로 보이니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장용민 월드’라고 불러도 좋을, 한국적인 상황과 역사에 매력적인 재해석과 추리를 더해 만들어낸 작품들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건축무한육면각체』가 풀고자 하는 암호는 이상의 시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뜻은 몰라도 외워 놀기 좋았던 음률을 지닌 이상의 시에 큰 비밀이 숨어 있다는 설정은,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김재희의 2012년 작 『경성 탐정 이상』(시공사 펴냄)이 경성 시절의 이상을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콤비를 이루는 탐정으로 등장시켰다면,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상이 남긴 암호를 현대(2006년)의 우리들이 풀어간다는 구성을 취했다. 책의 목차부터 기발하다. 사람은 사람의 객관을 버리라-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사람은 숫자를 버리라-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영원한 망각은 망각을 모두 구한다-사각의 이름을 발표하다…. 당연하게도 프롤로그는 설명도 없이,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전문인용이다.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가상의 해설판이기도 한 것이다. 장용민은 이상의 삶을 그의 작품과 병치시키고, 현재 시점에서 그의 시를 해석하는 두 인물을 집어넣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 후일 이상이라고 불리게 되는 김해경은 본디 천재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 공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산하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 그는 1929년에 설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로 그 해, 그의 건축물이 조선건축학회의 기관지 《조선과 건축》에서 1등과 3등으로 뽑혔다. 그리고 1930년부터 1931년 사이의 기간,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1932년이 되어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였다.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면서. 대체 그 1년여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번째 미스터리. 서울역 구 역사의 대합실 중앙, 붉은 대리석과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등장한다. 세 개의 육면각체가 서로 직각으로 맞물리며 중앙으로 이어진 문양 한가운데는 천황을 상징하는 열여섯 개의 잎을 가진 국화 문양이 자리 잡았다. 이것을 삼종신기라고 한다. 일본 천황은 왕위에 오를 때 선대 천황으로부터 세 가지 보물을 물려받는데, 이 또한 삼종신기라 부른다. 삼종신기가 단군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잠시 등장하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중 단 세 곳에만 삼종신기가 새겨져 있음을 지적한다. 그 세 건물은 철거된 중앙청, 서울시청, 그리고 서울역이다. 왜 이 세 건물에만 삼종신기를 그려 넣었을까? 그리고 서울역 바닥에 이 문양을 넣도록 지시한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단서들을 조합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인물은 소설가 지망생이자 졸업 논문에 시달리던 지우, 그리고 그에게 이상에 관한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한 수수께끼의 인물 은표다. 소설이 시작되면, 지우는 사라진 은표가 “전부 사실이었어”라는 음성 메시지와 함께 그간 모은 자료를 자신에게 넘겼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지우는 은표가 뭘 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지우와 은표의 시점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구성이며, 책을 읽어갈수록 책 속 설명을 검색창에 계속 넣으며 찾아보게 만드는 마성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의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재독이었는데, 그새 검색이 용이해지니 책의 내용을 확인해가며 새삼 놀라는 재미가 있다. 추리 내용을 설명할 때의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과 달리, 지우나 은표의 심경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비유나 형용사가 다소 치덕거린다는 약점도 있다.


P.S. 소설은 1996년 한국영화진흥공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신은경, 이민우, 김태우 등이 주연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1999년 개봉했다. 굳이 영화를 먼저 보고 싶은 독자를 말리고 싶은 기분이며, 소설을 읽은 뒤 보고 싶다는 독자도 말리고 싶은 기분이지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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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by 안토니오 타부키


리뷰어: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실제 사건의 요약. 1996년 5월,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 사카벵 지역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됐다. 신원은 스물다섯 살 청년 카를루스 호자로 밝혀졌고, 좀 떨어진 곳에 묻힌 머리에는 총상이 있었으며 몸에도 고문당한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피해자는 사카벵 국가방위대 경찰서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에 ‘실패’해서 피해자가 고문을 받았는지 확언할 수 없으며 사망 원인 또한 총상인지 머리 절단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안토니오 타부키의 1997년 소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이후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요약이다. 공원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되고, 얼마 후 피해자의 머리가 강에서 발견된다. 기자 일보다는 죄르지 루카치와 포르투갈 소설의 네오리얼리즘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피르미누는 큰 열의 없이 이 사건을 취재하러 포르투로 내려간다. 피해자의 정체는 스물여덞 살 청년 다마세누 몬테이루였다. 익명의 제보자는 몬테이루를 고문하고 죽인 뒤 유기한 범인이 국가방위대의 티타니우 실바 경위라고 알려준다. 피르미누는 배우 찰스 로튼을 닮은 변호사 페르난두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한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마세누 몬테이루』는 전통적인 미스터리 구조와는 꽤 다르게 진행된다. 이 사건에는 확실한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에, 머리 없는 시체의 신원도 범인의 정체도 초반부터 밝혀진다. 문제는 이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도록 막는 힘의 정체, 소설 속 용어를 빌리자면 ‘밀리건 카드 게임’의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다. “[밀리건] 게임을 하는 사람은 다른 게임 참가자와 협력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상대의 선택 폭을 제한하기 위해 함정을 만들 궁리를 하면서 카드를 차례로 늘어놓는다는 거요.”  


이 게임에서 계속 문제시되는 핵심은 근본규범이다. 근본규범은 본래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한스 켈젠이 제시한 개념으로, “법의 타당성의 근거로서 가설적으로 설정된 궁극적인 최고의 규범”, 이를테면 우리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인간 행위의 근본이 되는, 법 위의 법이 되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 규범이다. 이것은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에서(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사기관 국가방위대를 통해 “진짜 멋지게 구체화”된다. 국가방위대원이 마약을 밀수한 뒤 대규모 나이트클럽에서 비싸게 밀매하고 그 비밀이 보잘것없는 청년에게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높은 애국심, 진정한 가치 보호, 범죄와의 전쟁, 국가에 대한 완벽한 신뢰”라는 ‘원칙’을 내세운다. 그는 모든 것이 오해이고 사소한 실수들이 중첩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고, ‘국가’에 대한 충심으로 빚어진 당황스러운 해프닝이라고 호소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변호사 페르난두는 새삼스럽게 격분하거나 절망하지 않은 채, 무덤덤한 어조로 말한다. 





“난 고문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 왠지 알겠소? 고문은 개인의 책임이요.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관의 명령이라는 초라한 변명 뒤에 몸을 숨기고 합법적으로 발뺌하며 자신을 지키지요. 이해하겠소? 근본규범 뒤에 숨는 거요.”





페르난두는 “우리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파괴 충동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 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사악하다’이기 때문에 체념해야 한다”는 독일의 정신분석가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의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한때 고문에 관한 글쓰기를 꿈꾸었지만, 미체를리히의 문장 앞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꿈을 포기했다. 대신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정확히 뭘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써야 하고 따라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 기자 피르미누에게, 문학이 역사의 중요한 증거이며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페르난두는 법원에서, 피르미누는 원고지 위에서 밀리건 게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책략을 거듭 모색해야 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가 잠시 동안 잃었던 머리는 타락한 공권력에 의해 부정당하고 사탕발림의 ‘근본규범’ 미로 속에서 영영 길을 잃게 되었다. 미스터리는 진작 풀렸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는 계속 나올 수 있다. 나오게 되며, 나와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는데, 거미줄, 그러니까 은밀하게 연결되고 비현실적으로 결합되고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들로 이루어진 체계를 만들어내는 거요. 당신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 우연의 일치를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 그 시대를 철저히 탐구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포르투갈 신문에 실린 일기예보를 알아야 할 거요. 일기예보를 이용해서 정치 경찰의 검열을 묘사해낼 수 있었던 우리 작가의 놀라운 소설에서 배울 수 있듯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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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랜드


리뷰어: 박여영 편집자




벨린다 바우어의 『블랙랜드』는 특별한 반전이나 장치가 많지 않은 평이한 구조 속에서 심리묘사와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 주는 정서적 효과를 통해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리는 이 소설은 황량한 엑스무어 지역에 사는 12살 소년 스티븐 램의 성장기이다. 


19년 전, 스티븐의 삼촌 빌리는 11살의 나이에 아동성애자의 손에 끌려가 살해당했고, 엑스무어 황야 어딘가에 묻혀 있다. 할머니, 어머니, 남동생으로 구성된 스티븐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끝없이 암울하다. 스티븐은 삼촌이 살해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황야에 묻힌 삼촌의 시체를 발견하기 위해 가족 몰래 끝도 없이 땅을 판다. 시신이 묻힌 정확한 장소를 알고 싶었던 소년은 결국 종신형을 받고 형무소에 갇힌 범인 에이버리에게 암호와도 같은 편지를 쓴다. “저는 WP를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리하여 스티븐은 교활한 연쇄살인마이자 아동성애자 에이버리와 위험한 서신교환을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친구 루이스, 엄마, 할머니-은 서서히 그 파장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블랙랜드』는 영국인의 정신과 문학에 흐르는 황야(무어)에 대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탄질이 섞인 검은 흙, 한 삽만 퍼도 금세 물이 고이는 진 땅, 아름다움과 으스스함을 동시에 주는 식물과 바위, 해가 빛나다가도 금세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무어 지역의 자연은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드넓은 황야의 진창을 삽 한 자루 들고 파헤치면서 자신과 거의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삼촌의 시신, 어디 묻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시신을 찾는 소년에게 이 환경은 놀이터이자 적이고, 마지막엔 살인자와 독대하는 숙명의 무대가 된다. 


주인공 스티븐은 우리가 보는 실제 12살 소년이 그러하듯이 어수룩함과 총명함을 동시에 지녔다. 오로지 친구와 뛰노는 것밖에 모르던 남자아이가 책을 통해 살인자의 심리를 공부하고, 연쇄살인범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를 성공적으로 써나가는 과정은 일반 스릴러 소설의 형사-범인 간 심리싸움을 효과적으로 대신한다. 마음 약하지만 주관이 있고, 피폐해진 가족의 애정에 목말라하고, 아직 어린아이다운 생각?프랑켄슈타인 게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입체적인 모습과 그가 벌이는 싸움은 노동계급 소년의 성장기로서도, 그리고 가족의 결합을 그린 극복기라는 측면에서도 과장 없는 단단한 감동을 준다. 


다만 화려한 반전과 서술에 단련된 현대 스릴러 독자가 읽기엔 다소 심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단 스티븐의 적수로 설정된 연쇄살인마 에이버리의 배경이나 심리가 아무런 장치 없이 너무나 스트레이트하게 기술되면서 그의 악마적 범죄에 대한 공포나 깊이가 조성되지 못한 탓이다. 에이버리의 마지막 편지를 스티븐이 받지 못한다는 정도의 소소한 설정을 제외하면, 극의 흐름을 틀어줄 장치 역시 거의 부재한다. 따라서 『블랙랜드』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에게, 잘 쓴 스릴러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빠른 심박수와 긴장감보다는 여운은 있으나 뭔지 모를 애매함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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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라>

비라 캐스퍼리 지음


리뷰어: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워런 처낵(Warren Chernaik)의 책 <아트 오브 디텍티브 픽션(The Art of Detective Fiction)>에 따르면, 1931년 미국 탐정 소설 독자들에게 행해진 설문에서, 소설 속에서 가장 싫은 타입의 인물로 “시끄러운 독신녀, (……) 이야기를 망쳐버리는 여자들, (……) 너무너무 여성적인 이야기, (……) 혼자 다락방을 배회하는 여주인공”이 꼽혔다고 한다. 사실상 1930년대 출간된 소설 속 여성들 거의 전부를 싫어한다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미국의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하드보일드’라는 신천지를 발견한 무렵이기도 하다. 고독하고 터프한 남자들의 모험담, 여기서 여성들은 대개 팜파탈로서 주인공 남자의 강박이나 판타지가 과장되게 구현된 그림자 같은 인물로만 등장했다. 


그러나 비라 캐스퍼리는 1943년 하드보일드 누아르 <나의 로라>(이은선 옮김, 엘릭시르 펴냄)를 집필하며 수많은 남성 독자들의 편견을 산산조각냈다. 소설은 미모의 커리어우먼 로라가 뉴욕 한복판 호화로운 맨션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무뚝뚝하고 자부심 강한 형사 맥퍼슨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고 알려진 로라가 살해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피해자의 성격을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믿는다.


로라는 ‘남자 같은’ 여자였다. 겉모습은 아름답고 가냘픈 소녀 같지만,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일 수만 있다면 수백 번이라도 퇴짜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던 여자였다.


“응접실 세트도 필요 없었고, 결혼이 지상 최고의 과제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직업도 있겠다, 돈도 많이 벌겠다, 떠받들며 찬양하는 남자들도 넘쳐 나겠다. 결혼을 해 봐야 채워지는 곳은 한군데뿐인데, 그건 결혼하지 않아도 채울 수 있었으니까. (……) 그녀는 남자처럼 일하고 남자처럼 걱정을 했던 여자올시다. 뜨개질에 재능이 있었던 여자가 아니었어요.”


한편 로라는 남자들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기도 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로라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녹여 넣어 초상화 속에 로라를 박제하려 했다. 하지만 로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둘러싼 그 이미지들의 휘황찬란함을 파괴했다. 로라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또 그만큼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고 그녀의 호의를 기대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응당 주어야 할 사랑과 우정을 베풀기 위해 그 돈을 다 써버렸다. 그녀는 사람들의 장식품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녀 자신의 위치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했다. 그녀는 바흐의 정갈한 클래식만큼이나 베니 굿맨의 스윙을 사랑했고, 직장에선 똑 부러지게 일을 해냈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획서를 쓸 때만큼의 질서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상류층의 예의범절을 미련 없이 내동댕이쳤다.


“화가 나서 좋았다. 증오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복수를 위해 고함을 질렀다. 살기등등하게 덤볐다.”


이 모든 묘사는, 팜파탈들이 그러하듯 뭔가 다른 목적을 위해 남자들을 유혹하고 파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로라는 겉보기엔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지만, 언제나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면서 “덩치만 큰 어린애 아니면 나이 든 할망구” 같은 남자들에게 결정적인 순간 약해지며 기꺼이 모성애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요즘 여자들’처럼 말이다.


자신이 “여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산뜻한 가면으로 포장된” 잘생긴 ‘신사’ 셸비를 결혼상대로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 “수익률 좋은 새로운 품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선택된” 채소 같은 것이 아니었나 의심한다. 결국 로라는 남몰래 한탄했다. “우리가 얼마나 너그럽고 세련되고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던가!” 그리하여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흠모해. 당신은 내 작품 속의 여주인공이 될 거야. 내가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거야”라고 유혹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그녀는 용감하게 거절했다. 다시 말해 (남자의)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했다. 대신 “한심하고 쓰잘머리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습관을 내 스스로 조절”하는 쪽을 선택했다.


여성 작가가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쓰면 이만큼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로라는 수많은 하드보일드 남성 작가들이 그려낸, 남성 탐정의 냉정한 눈에 비친 아름답지만 공허하고 사악한 여자가 아니다. 비라 캐스퍼리는 선언한다.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미지는 그 남자의 문제이며, 그중 아무도 여자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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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깨어나는 마을


리뷰어: 유진(편집자)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뱀과 개와 노인의 시체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오프닝을 택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소설을 더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사는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클래라 베닝은 내성적인 성격과 심한 콤플렉스의 소유자로 소개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그녀의 경이로운 능력에 놀라게 된다. 자신의 두려움보다 언제나 더 강한 클래라는 박식하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쉼 없이 기민하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매력적인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육체를 이용한 행동이 필요한 장면(빈번하게 나온다)에서는 웬만한 남자보다 강한 액션을 연출하기도 한다. 


영국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샤론 볼턴은 고딕문학의 현대적 후계자를 표방한 이 작품에 자신의 로맨티시즘을 마음껏 녹여 넣었다. 바깥세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타버린 교회가 있고,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음울한 저택이 있고, 비밀을 감춘 묘지가 있다. 수백 마리의 뱀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밤의 들판을 질주하고, 사교(邪敎)의 그림자가 세월을 관통하며, 고대 로마의 형벌을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살해된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 


존 딕슨 카만이 해낼 수 있을 법한 곡예를, 볼턴은 영리하고 신비로운 주인공의 개성을 통해 그럴싸하게 소화해냈다. 강렬한 프롤로그를 통과하면 독자는 클래라가 살무사에게서 갓난아기를 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긴장을 요하기는 하지만 목가풍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 장면은 클래라의 과거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갓난아기 때 참혹한 사고로 얼굴의 반을 잃고 원망과 체념의 연쇄에서 쳇바퀴를 굴려온 클래라는 아기를 구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구원할 단초를 잡는다. 클래라의 사고에 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뱀과 개가 자루에 함께 넣어져 ‘처형’된 프롤로그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작품 전체가 클래라 베닝이라는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상징의 직물로 읽히기도 한다. 모든 장치들이 그녀의 인생 궤적에서 작동하고 있다. 파충류의 껍질처럼 매끄럽고 얇은 실크로 피부를 덮는 것을 좋아하는 클래라는 뱀들이 저지르는 사건을 외면할 수가 없다. 클래라가 사랑과 원망으로 기꺼이 파괴하려 한 어머니의 장미 향기는 죽음에서 귀환한 노인의 정원에서 되살아나 그녀 곁을 맴돈다. 그녀를 키운 종교적 배경은 최후의 대결이 기다리는 사악한 신앙의 중심부로 돌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살인은 클래라를 매력적인 경찰 맷 호어에게 이끌고, 치명적인 독사는 모험을 사랑하는 마초 숀 노스를 그녀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들이 얼굴의 반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할 때 클래라가 자신의 감옥에서 한 걸음 나오는 장면은 진부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 로맨틱하다. 남성의 시선을 구원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석연치 않을 수도 있지만, 클래라는 맹렬한 단독 액션으로 상대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어쨌건 빚을 갚는다.


이처럼 모든 요소가 클래라의 생명력에 종속되어 있는 탓에, 미스터리를 위한 장치들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살인자의 정체는 반전을 거듭하며 윤곽을 드러내는데, 저주받은 가계를 배배 꼬아놓은 매듭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반전이라 뒤로 갈수록 충격이 희박해진다. 과거에서 호출된 팜므 파탈은 짜증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한때 마을을 지배했던 잘못된 신앙의 그림자는 정신적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는 고딕문학의 도구들을 현대로 끌어올 때 불가피하게 생기는 충돌이기도 하다. (존 딕슨 카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설사 이 작품의 미스터리가 어느 여성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세상이 오직 그를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을 만나는 것은 늘 짜릿한 경험이다. 자신의 구속을 벗어던진 클래라의 미소를 보는 데 불과 600여 페이지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 말은, 앞으로 소개될 샤론 볼턴의 소설이 무엇이건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겠지만, 그 안에 클래라 베닝과 그녀의 두 추종자가 등장하는 속편이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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