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명해질수록 네가 흐릿해지는 

 

1

 

이하준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이정모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박홍규의 불편한 인권, 도메 다쿠오의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을 읽었다.

 



  만약 당신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당신은 거대한 사회에 진입한다는 생각에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며밤늦게 당신의 원룸으로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하지만 취업의 문제는 오직 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무거운 인식그리고 오로지 세상에 혼자 서 있는 듯한 강렬한 정소로 인해 당신은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중년의 남자라면당신은 아내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자신이 가정 내에서 소외된 것을 느끼던 어느 날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 한잔 하고 들른 사창가에서 기계적인 섹스를 하고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당신이 느낀 외로움과 허무함의 실체가 실은 진심 어린 대화를 필요로 했던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며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먼 길은 당신이 그 언젠가 당신이고자 했던 당신이 아님을 알게 되는 고독의 먼 길이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라면당신은 아부에 능하고 줄을 잘서는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접대 웃음과 가식적인 칭찬을 늘어놓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서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나만의 목표를 갖고 타인의 평가에 상관없이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당신이 만난 고독이다.

_ 이하준,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던 날, 그는 syo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의지도 있고 사랑도 있으나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다시 말했다. 자기도 돈 없이 결혼한 거라고. 우리 집도 있는 집 아니라고. 자기도 전세로 시작할 거고, 아직 차도 없으며, 예물 같은 것들도 최대한 줄여가며 식을 치렀다고. 중요한 건 마음이지, 돈이 아니라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친구야, 참 미안한데, 너는 가난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진짜 가난해 본 사람은 가난의 이빨에 발목을 채인 타인에게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남자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 여자는 평생 사회가 어떤 데인지 모르고 살다 갑자기 백혈병을 만났고, 완치는 되었지만 하루의 절반 조금 모자란 시간을 잠으로 채워야 하는 후유증을 앓는다. 아들은 철없이 청춘을 탕진하고 가능성을 연소시키기만 하다가 인생의 한구석에 몰려 책 속으로 숨어들었고, 딸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벅찬 희한한 세상을 맞닥뜨려 고군분투중이다. 그렇게 모인 가족은 그저 하루를 위해서 하루를 살 뿐이고, 하루는 하루 만에 먼지가 되어 흩어질 뿐, 결코 축적되지 않는다. 오늘의 양식을 걱정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이야기를 쉽게 꺼낸다. 누구나 가난을 겪었으되, 누구에게나 가난이란 것은 자기가 겪은 것 이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너머는 단지 상상의 영역이다. 못 먹어 배가 나오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 환부에 파리가 꼬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역이다. 그 사이 공간은 없다. 당신이 아프리카의 기아들처럼 사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런 게 아닌 어지간한 가난은 나도 다 겪어 봤노라.

 

기아와 자신이 겪은 수준의 가난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성차나 정체성의 영역에도 있고, 인종의 영역에도 있고, 학벌이나 성취의 영역에도 있다. 겪은 것과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뻔한 것들 사이에 숨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하는 것은 오롯이 공감과 상상력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듣고, 열심히 겪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많이 읽은 사람은 읽은 것이 많아서 도리어 자신의 상상력이 비어있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룬 것들이 도리어 많이 이룬 사람들의 공감력을 묶고, 이루지 못한 이들의 증언에 귀 막게 한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내가 모른다고? 내가 틀렸다고? 그럴 리가. 만약 내가 그랬다면, 내가 어떻게 지금 이만큼 알겠어. 내가 어떻게 지금 이만큼 이뤘겠어. 누구나 무의식에 그런 순환논리를 품고 있다. 크기의 차이, 혹은 감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2

 

어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고 사랑에 빠졌다. 이 책들을 다 작살내고 나면, 그야말로 알라딘 마을의 파파 스머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6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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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8-09-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너무 좋아요~~
많이 읽은 사람은 읽은 것이 많아서 도리어 자신의 상상력이 비어있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오늘도 한수 배우고 갑니다.

syo 2018-09-13 15:48   좋아요 0 | URL
가르쳐 드릴 위치도 아니고 가르쳐 드린 것도 없는데 알아서 배워가신 독서괭님께 한 수 배웁니다 ㅎㅎ

2018-09-13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9-1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훌륭한 ‘새’파란 책이 나왔네요. ㅎㅎ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으신 후 말씀 부탁드립니다. ^^

syo 2018-09-13 22:23   좋아요 1 | URL
북다님도 어쩐지 저 책들 읽으실 것 같네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