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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 편견을 뒤집는 색다른 미술사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박영택 감수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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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클로델은 영원한 로댕의 연인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영원한 연인은 아니었지마는.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가 조각한 작품을 떠올리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몇 달전 성황리(?)의 막을 내렸던 시립미술관의 로댕전에도 그녀의 작품은 그저 한 섹션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로댕전에 기대서 작품을 전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중에 신경쇠약증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그녀 자신의 손으로 마구 부순 까닭에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하기에는 작품 수가 모자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까미유 클로델은 어쨌든 유명하기나 하지. 살아있을 당시에는 꽤 인정받고 부유했던 여성 화가들도 많지만 실제 미술사를 듣다 보면 여성 화가들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난 그게 단순히 여성이 경제적으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지.(참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여성들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으로. 가끔 독립적인 지위를 얻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선택받은 여성 작가도 있었으나, 한참동안 묻혀져 있다가 게릴라걸스의 노력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평론가들이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더 교육을 잘 받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민주적이라는 요즘 남성 평론가들이 백년전 평론가들 보다도 여성 작가들에 대한 억압이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게릴라걸스도 남성 화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하면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반면(그리고 여성의 벗은 몸은 오지게도 많이 그린다), 여성 예술가들은 남성의 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고, 성性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색골로 평가받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인 남성예술가, 백인 여성예술가, 유색인종 남성 예술가, 유색인종 여성예술가에 대한 차별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진실을 이야기 한다. 당연히 유색인종 여성예술가는 최하위의 위치이다. 예술계만큼 자유가 필요한 곳도 없는데 줄긋기에 가장 열심히 곳이 예술계라는 아이러니란 참...

게릴라걸스는 미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현재에도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2/3정도의 월급을 받는 현실, 헐리우드에 여성 감독이 4%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실, 오스카상의 영광이 거의 백인 남자에게만 돌아가는 현실 등등. 게릴라걸스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서도 참지않고 출동한다. 고릴라 가면을 쓰고!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은 세상을 조금씩 바꿨던 그녀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른 이야기)  로댕전 팜플릿에 까미유 클로델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매우 잘 써진 글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 책의 옮긴이가 쓴 글이었다. 원전이 어떻든, 글이 매우 생생하고 신뢰가 갔다. 우리 나라의 여성 예술가도 다뤄줬다는 점에서 소득도 많았다. 

사실, 이 책은 목차가 나오기도 전에 실린 짤막한 글에(이걸 뭐라고 하더라..) 모든 내용이 다 나와있다. 그래도 읽어보시라. 우선 무척이나 재미있다. 사회비판을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그녀들의 사명같은 것이므로.

"왜 서양미술사에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     

 게릴라걸스는 이렇게 바꿔 질문하고 싶다.   

 "왜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은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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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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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질 네레, 마로니에북스)를 읽고나서 내가 알았던 사실. 클림트는 생애 자금적인 어려움에 시달리지 않은 몇 안 되는 화가였고, 빈 대학 강당의 (의뢰자의 의도에 맞지 않는) 기분나쁜 천장화로 의회까지 가게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분리파의 선구자였으며, 글을 쓰는데 소질이 없는, 심지어 뱃멀미같은 구토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여자들을 자주 그렸으며 항상 화실에는 몇명의 모델들이 상주해있었다는 사실.

그 밖에 그림을 설명함에 있어 여러 저자들의 의견을 따온 부분들은 거의~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미술관련 서적을 거의 처음 읽은 나는 상징주의고 뭐고 알쏭달쏭했다.

클림트로 인해 실레를 알게 되었고, 궁금한 마음에 책을 샀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과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무게에 살짝 놀랐다. 다행히 종이 질은 참 좋다. 또 다행인 것은 책이 정말 이해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어려운 용어도 별로 없었고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저자의 글에도 동감할 수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도 읽기에 부담이 없을 것 같다.

클림트와 실레는 사제간, 혹은 예술적 동지로서 서로 영향을 끼쳤다. 클림트의 부드럽고 세속적인 화려한 그림을 보다가 실레의 성적이고 나르시시즘에 갇힌 그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의 전기작에는 자화상이 많다. 그것도 좀 충격적으로. 벌거벗은 모습이나 자위하는 자화상까지 있어 현대인을 자청하는 나도 깜짝 놀랐다. 남성누드는 여성, 남성 다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름답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튼 좀... 그랬다.

저자는 실레에게 빠져있던 10년의 느낌을 담아 이 책을 냈다고 하는데, 정말 실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다양한 자료도 많이 찾은 것 같고,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다가와 이해하기 쉬웠고 감탄도 했다.

다른 얘기) 클림트는 글을 쓰는데 울렁증(?)이 있어, 때가 되면 답장을 써야할 편지가 있을까 두려워 주기적으로 편지를 태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 클림트가 궁금한 사람은 내 작품을 보라." 고 말했다. 반면, 실레는 클림트와 달리 글을 참 잘 쓴 것 같다. 특히 멋있었던 말은 "인간은 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한 성에 대한 번민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이나 말이나 참 한결같다. 그래도 그가 궁금한 사람은 그의 글을 읽기 보다는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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