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선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목월 지음, 노승욱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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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월, 나그네로 시작하나 초반만 지나면 서민 짠내 폴폴 나는 생활시가 주류를 점함. 뒤로 가서도 문득문득 초기의 저 상상 속 자연이 눈을 뜨는 때도 있으나, 곧 생활의 무게에 묻히고 맘. 첫 시집의 절창 몇 편으로 시인으로서 제 몫은 넉넉히 다 했음. 인간으로서도 순하고 좋은 사람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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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서점 - 금정연과 김중혁, 두 작가의 서점 기행
프로파간다 편집부 엮음 / 프로파간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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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진 독립서점부터 베테랑 중형서점까지, 다양한 서점쥔장들의 이야기를 교대로 읽다보니 책이라는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대강이나마 파악이 된다. 그 풍경 속에서 독립서점의 의미가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두 일본쪽 강연도 재미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정말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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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가게 소년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이기숙 옮김 / 그러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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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평생>의 독자로서 기대한 높이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훨씬 못 미쳐서 아쉽다. 하긴 그만한 작품을 계속 써낼 수는 없는 거니까. 

아침에 이 책 읽기를 마무리하고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지금 메모를 적기까지, 책에 대한 생각이 계속 변해갔다. 이쯤에서 일단락을 짓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 

<더리더> <금테안경> 등 동시기를 다룬 여러 작품이 떠오르는데 그들보다 정치적 사고로서는 훨씬 못 나갔다. 이 점은 <한평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시기 광란의 카니발리즘을, 그 죄성을 '고발'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사실 작가의 의도가 작품에 드러났다면 그 작품은 실패한 것이고, 드러나지 않았다면 의도란 사후적으로 추정되는 것일 뿐이다. 독서에서 작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독서의 효과만이 중요하다)가 아니다. 원래 많은 좋은 소설들의 의미는 고발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들의 그 쓰기를 통해, 그리고 그 쓰여진 서사 안에서 고발은 이미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창작의 주된 목적도 아니고 유일한 목적/의도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평생>에서는 한 山남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눈앞에 그려졌다(이것이 그 작품의 효과였다). 그 마음은 거칠고 단순하고 진실한 것이었고, 일생 갖은 비바람 맞으면서도 그 원형을 간직하였다. 그래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일종의 山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山소년이다. 예상된 생활고로 인해 산과 호수, 그리고 엄마로부터 어느날 아침 도시로 쫓겨 나온 소년. 그 도시에서 그는 부재했던 아버지를 한꺼번에 둘이나 만나는데, 이 두 아버지의 사회적 모습은 무척 다르지만 둘은 음양으로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한다. 그 둘은 모두 자신의 ''을 가진 전문가 남자이다. 정신분석가는 말할 것도 없고, 담배 가게 주인 역시 전문적이다. 그들은 세계와 인간의 정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시대에 대하여 염증과 공포를 느끼지만 의연히 대처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또 사랑에 대한 소년의 갈구에 대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소년은 이 두 아버지를 통하여 사랑을 찾아야 하는 인생의 필요를 배우고 액션에 돌입하지만, 인생이 그리 쉽던가,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엄마와 소년이 주고 받는 편지는 그야말로 '정신분석적' 설정이다. 소년이 제대로 된 아버지들을 만나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 내내 이 엄마는 상징 또는 내면의 소리로만 남는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만 그녀는 다시 육체를 되찾고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진 역할--생육하고 기억하기--을 담당한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안 아네츠카의 내면 역시 독자의 시야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짐작컨대 그녀는 야만의 시대에 소수민족 여성에게 주어진 극히 제한된 생존의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학에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고, 더구나 이 작가는 남자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관심과 특기가 있으니 여성 인물이 블라인드 처리되었다고 불평할 것은 아니겠다. 돈가츠 집에서는 돈가츠를, 설렁탕 집에서는 설렁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프란츠는 두 아버지와 끈끈하게 연결될 뿐만 아니라 더욱 엄중한 것을 배우게 된다. 자기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사랑 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마음은 욕망 뿐만 아니라 양심도 포함한다. 자기 업에 대한 성실과 타인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상식--이것이 양심의 주요 내용이다. 사랑은 왔다가 흘러가지만 삶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이미 광란의 시대 속에 놓여 있다. 그 시대는 양심을 버리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 앞에서 한 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다른 아버지는 도망쳐 목숨을 건진다.

두 사람의 길은 달랐지만 프란츠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자기 마음의 흐름에 집중하며 그것에 충실하라는 것. 그것을 사회적 언어로 바꾸면 '저항'이라는 두 글자가 된다. 특히 '용기를 가지고 끈기 있게 나아가면 자신의 자취를 역사에 남길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한 마디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 보다도 더 크게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 프로이트의 정리된 언어를 통해 담배가게 주인의 삶/과 충격적인 죽음을 의미화하게 되었기 때문. 언제나처럼 이 단순한 소년은 깨달았으면 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즉각 희생된다.

작품을 읽으며 한동안은 정신분석/프로이트라는 소재가 소설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세의 망년지교라는 낭만적 소재를 선택했다 해도 왜 굳이 프로이트를 등장시켜야 했을까. 왜 프란츠가 죽음의 길로 나서는데 프로이트의 권위를 이용했을까.

이것이 아침에 했던 생각인데, 지금은 이렇게 본다. 이 소설을 작가는 일종의 사극처럼 기획한 것이다.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인물을 내세우고, 그 주위에 가상의 인물, 아주 작지만 사랑스러운 인물을 배치한 것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역사적 인물 옆에 우직한 상이용사 담배가게 주인과 그 주인이 거둔, 옛 애인의 시골뜨기 아들같은 무명씨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그 역사적 인물과 아무런 허위 없이 정신적으로 교감하였고, 그 역사적 인물도 감히 보여주지 못했던 양심과 용기로써 행동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이름 없이 사라졌고, 도망간 역사적 인물은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역설.

책을 덮고 12시간 이상 흐른 지금 나라는 독자의 마음에 최종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하나의 앳되고 참된 마음이다. <한평생>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또 하나의, 한 종류의, 보기 드문 마음을 그리고 있다. 프란츠도 에거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단순하고, 성실하고, 못 배웠고, 박복하다. 에거는 한평생 산 속에 살았기에 아버지도 없고 사랑도 잃었지만 그 마음을 가진채 장수할 수 있었다만, 도시로 내보내진 프란츠(에거와는 달리 그는 노동에 적합한 육체가 아니며 지적인 활동에 큰 흥미를 느낀다)는 거기서 파더 피겨를 만나 경험과 배움을 얻고 자신이 깨달은 대로 정치적 행동을 한다. 보헤미안 여자에게도, 두 아버지에게도, 엄마에게도, 프란츠는 모두 그들 모두가 예상치 못했을 만큼 진심이었다. 의심하지 않고 냉소하지도 않고 그저 상대방과 온마음으로 교감하는 그 마음. 그런 마음의 솟아오름(나이 들고 약아지면 바로 사라지는 현상이다)으로 인하여 폭압의 시대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젊은이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귀하고 가엾고 위험한 마음들.

소설을 쓰는 작가의 충동은 무엇일까를 가끔 자문하는데 그 답은 늘 바뀐다. 오늘은 '이 세계의 복잡성을 파고들고 드러내보이고 싶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단 그 복잡성에 기여하는 것은 끝없는 잔머리나 비열한 음모, 예측 불가의 관계 파탄이나 천재지변 뿐만 아니라 이런 단순한 마음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베르테르를 비웃었는데 그 비웃음을 거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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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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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말 없이 죄 없이 살아간 한 남자의 삶이 겨울산처럼 처연하고 초연하다. 그와 함께, 그가 평생 느끼고 경험한, 상전벽해 되어도 변함이란 없는 산이 공동 주연을 맡는다. 에거가 죽음에 근접하는 부분부터는 각별히 훌륭함. 소설의 분량과 성취도는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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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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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등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 에거는 이렇게 말하고 어깨에 맨 가죽끈을 고쳐매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잠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고요함은 완벽했다.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심장을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산의 침묵이었다. (7)

"한 남자에게서 그 사람이 가진 몇 시간을 사들일 수 있고, 그 남자의 며칠을 훔치거나 심지어 인생 전체를 빼앗아갈 수도 있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남자에게서 단 하나뿐인 순간만큼은 가져가버릴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그러니 이제 날 좀 내버려두게!" (50)

애거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철천지원수가 자기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러시아 병사가 사라진 뒤 고독은 이전보다도 훨씬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88)

몇 주가 지난 뒤 에거는 수용소 야영지 뒤편 자작나무 숲에 묻힌 사망자 수를 세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죽음은 빵에 곰팡이가 피듯, 삶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었다. 죽음은 열이었다. 죽음은 굶주림이었다. 죽음은 막사 벽에 생긴 틈이었다. 겨울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틈. (92)

어린 시절 에거는 그 시절이 자신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시간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거는 여기저기에서 구부러져 있는 것 같았고, 모든 사건의 경과는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 되거나, 아니면 독특한 방식으로 거듭 새로운 형태를 이루고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에거가 러시아에 머물렀던 시간은 마리와 함께 지낸 시간보다 훨씬 길었지만, 코카서스와 보로실로브그라드에서 보낸 세월은 그녀와의 마지막 날보다는 그리 길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98)

확실히 사람들은 산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믿는 무언가를. 에거는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지 발견해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관광객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따라온다기보다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어떤 알 수 없는 갈망을 좇아 비틀거리며 산을 오른다고 점차 확신하게 됐다. (179)

에거는 새로 마련한 집에서 아늑한 기분을 느꼈다. 때로는 이곳 고지대에서 사는 것이 외롭다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고독이 결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자신이 필요한 것은 모두 가졌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창문 밖으로 드넓은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난로는 따뜻했다. 난방을 한 상태에서 처음 보낸 겨울이 지나자 코를 찌르는 듯했던 염소와 가축 냄새도 말끔히 사라졌다. 에거는 무엇보다 고요함을 마음껏 누렸다. 그동안 골짜기 전체를 가득 채웠고 주말만 되면 산비탈에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던 소음은, 이제는 어렴풋한 예감으로 그에게 스치듯 다가올 뿐이었다. (140)

"너무 오랫동안 못 봤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 이야기를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리! 인생 전체를, 참 오래도 산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게!" 에거는 소리쳤다. 그녀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꾸도 없었다. 오직 바람 소리만 들렸다. 바람이 땅바닥을 스치자 올해 마지막까지 남은 눈을 흩날리며 울부짖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145)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군." 에거는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자기가 말한 몇 마디 단어가 눈앞에 둥실둥실 떠 있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조그마한 달빛을 받으며 터져버리는 광경을 보았다. 에거는 심장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자신의 상반신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 뺨이 탁자 표면에 닿았다. 에거는 그런 자세로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참을성 있게 심장이 다시 뛰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자,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죽었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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