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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내전 -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체와 대안
리차이위안 지음, 권수철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금융위기가 일어난 후 그 실체를 밝히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나도 그러한 책들을 흥미롭게 보았다. 눈먼자들의 경제라든가 풀스골드는 그 당시 금융위기의 발생과 그 간의 사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여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이 책도 그러한 것을 기대하게 하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책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여서 중국인이 쓴 이 책은 더욱 생소하면서도 기대를 하게 하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름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다룬 책이었다.


 태극도를 응용하여 만든 금융태극도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필자는 이번 전세계적 위기가 국가간의 불균형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안에서 촉발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간의 불균형이 아니라 한 국가의 실물과 자원 등의 내부적인 문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정권이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 행했던 여러가지 정책들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서 매우 눈길을 끌었다. 의료보험을 비롯한 3대 핵심정책인 의료보험, 금융, 신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사실은 내가 언론에서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 대선에 오바마가 재선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난 오바마정권이 이번에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재선에 도전하는지 상당히 궁금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렇게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실물경제보다 엄청나게 발생한 버블이라는 것이 확실히 이해가 간다. 브레튼우즈정책폐기 이후 국제화폐인 달러가 너무나도 많이 찍어나왔고 그 와중에 금융분야는 실물경제보다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렇게 발생된 버블은 결국 위기로 다가왔고 말이다. 이 밖에도 이 위기를 촉발시킨 주변의 원인들이 많다. 금융업종사자들의 모럴해저드라든지 정부정책자들의 안일함 말이다. 


  내가 이러한 금융서적을 보면서 항상느끼는 것이지만 버블은 항상반복되는 것 같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정책들을 제시해도 그 당시 사람들은 결코 버블이 아니라면서 그 파티를 즐긴다. 과거에 있었던 네덜란드의 튤립광풍부터 시작해서 영국의 남해회사사건, 가까이 들어서는 it버블 그리고 최근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눈앞의 이득을 위해서는 좌우를 절대로 보지 않는 사람들. 지금 이렇게 위기를 맞이하여 금융을 개혁한다고 떠들어대도 수년이 지난 다음에는 또다른 버블을 맞이할 듯 하다. 
 
 또, 이런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안은 그리 와닿지 않는다. 희한하게도 말이다. 실물경제와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금융에서의 모럴해저드가 나오지 않도록 감시를 제대로 하고 금융민주주의를 이루도록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이런식의 말들이 전혀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좋은 말이라는  것은 아는 데 말이다. 아무리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들을 실천하는 인물들이 제대로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리고 위기는 다시 올거라는 생각을 갖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바마정부의 위기를 향한 도전과 개혁을 알게 되었고, 익히 알고 있던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중국인의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알게 되어 상당히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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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세계사 -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를 좋아했다. 그렇게 된 계기가 되어버린 녹색바탕의 삼국사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책을 읽은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께서 사다주신 책인데 지금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한국사일 뿐이다. 중국사는 덤이었고, 세계사는 관심밖이었다. 왜 그렇게 복잡한지 금방 실증이 나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잔혹한" 이라는 말이 붙은 세계사는 도대체 어떤 세계사를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이다. 적게는 수백명부터 많게는 수십만명의 목숨이 마치 먼지처럼 사라진 살육의 역사를 담았다. 시간이 자나감에 따라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록이며 알려진 역사 이면에 감춰진 기록이다. 로마가 그 찬란한 문명을 뽐내기 전에 있던 수많은 카르타고 인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오늘날 누가 아는가? 또 카틴숲에서 살육당한 수천명의 폴란드 사람들을 아는가? 아마도 여러분 대다수는 이러한 사실을 모를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기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지 나는 알게 되었다. 


 엄연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이 왜곡되거나 부정된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공통점 중 하나인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점과 더불어 나는 잔혹했던 사건들이 부정되거나 왜곡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다. 난징대학살을 생각해보라. 중국은 일본의 잔혹했던 학살사를 기록하고 그 유물을 모은 박물관을 만들어 그 난징대학살의 기록을 후대에게 전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러한 것이 아닌 당시 난징을 점령하고 그런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러한 일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또한 카틴숲에서 일어난 수천명의 폴란드인 학살에서도 이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왜곡하기에 바빴다. 각자가 서로에게 유리하도록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참 안타깝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작년에 한 수구단체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폭도들이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한 사례를 보노라면 엄연히 있던 사실이 왜곡되거나 부정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하나의 사건마다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고 그러한 피해자를 만든 수많은 가해자가 있음에도 현실은 이해관계에 의해서 가해자가 처벌받거나 아니면 무죄방면되기도 하고 더 심하면 사건자체가 왜곡되고 사라져버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가장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라고


정말 잔인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오는 사건의 사진들은 정말 인간의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였다. 글로 표현된 문장들이 그 사건의 진상을 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대량학살을 당한 사진을 보고 놀랐다. 일반인들이 보는 책에 담기에는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독자들에게 제대로된 기록을 보여주기 위해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의 가해자들은 모두가 광기에 휩싸여 사람들을 죽이고 그것도 모잘라 참으로 말하기도 꺼려지는 온갖행태들을 햇다는 것이 정말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보통 TV에서 접하는 그러한 범죄자들은 어디 명함도 내밀기 힘든 그런 인간들의 행각이었다. 


인류가 발전하면 더 잔인해진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달해온 후 인류는 오늘날의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보다 많은 것을 연구하고 탐구하며 합리적으로 성장해왔다. 풍부한 생산물과 효율적인 시스템, 그리고 늘어나는 인간의 수명 등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한 인류의 삶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고,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며 개개인이 희망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매우 하찮게 취급되던 오래전의 과거에 비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리주의에 입각해서 인류는 보다 편한 삶을 살게 되었다. 고등교육을 받고 대부분이 우수한-과거에 비해서-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똑똑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발달한 만큼 더 잔인해지고 이기적이 되었다. 우수한 머리를 이용해서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 것이라 본다. 인간을 즉각적으로 한 번에 보다 많이 죽이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과거에도 사람의 인권이라는 것이 없어서 사람의 목숨을 쉽게 해쳤지만 오늘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알면서도 그렇게 죽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을 수 있으면서도 막지 안는다는 점이다. 인류가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만든 UN은 현대에 이르러 일어난 대량학살을 막지 않았다. 천안문사태, 르완다 투치족 학살, 스레브레니차 대량 학살 등은 충분히 인류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각자의 입장이 달랐기에 수많은 목숨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7월에 일어났다. 2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이다. 놀랍지 않은가? 95년에 그러한 대량학살이 일어났다니. 보다 똑똑한 인류는 보다 잔인하다. 알면서도 막지 않는다. 


 우리들은 보통 주연들의 역사를 배운다. 하지만 이 책은 덧없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엑스트라의 외침을 담은 책으로 우리에게 한가지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했다. 과거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몰아넌 히틀러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인 폴란드 침략을 앞둔 전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지금 그 누가 아르메니아인의 전멸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경고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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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 해유록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5
신유한 지음, 이효원 편역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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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좋아하고 역사책도 즐겨 보지만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역사에 대해서 알 기회라든가 관심이 전혀 없던 것 같다. 다만 학생시절에 역사에 관심을 두면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키운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수백년 전의 일본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나. 현재의 일본도 잘 모르면서 수백년 전 과거의 일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다니. 어쨌든 흥미로운 독서였슴에는 틀림없다. 


 조선시대 선비하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여러가지 책을 통해서 선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긴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의 선비 이미지는 고리타분한 사람, 꼬장꼬장한 사람이 되버렸다. 그런 선비가 일본에 가서 본 풍경은 어떠할지 궁금해하지 않은가? 물론 읽으면서 깨닫겠지만 이 책의 선비는 그런 선비가 아니다. 오히려 트힌 사고를 가진 선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조선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의 문장을 보노라면 이 책을 쓴 신유한이라는 문인은 당시의 시대사람과는 다른 열린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할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치고는 그렇다는 말이다. '오랑캐'라는 단어로 인해서 금새 '에이..' 할 수 도 있지만...


 내가 몇가지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당시 일본의 풍속이 음란하다고 저자가 기술한 것이다.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으로서 국서를 전달하는 여정에서 잠시 머무른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성풍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통역관이 말해준 것을 듣고 운을 붙여서 일본의 풍속을 시로 읊은 것이 모두 서른 편인데 이렇게 적은 이유는 교화의 한 방편으로 적는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선비 같았으면 온갖 비난만 적었을 터인데 이렇게 시까지 만들어 기술한 것으로 보다 상당히 개방적인 선비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일본인들이 연 연회에서 그 공연의 음란함이 너무해서 중단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은 그 당시 일본에는 남창이 유행했다고 한다. 귀족이면 너도 나도 남창을 두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이런 개방적(?)인 풍속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바다 하나를 앞에 두고 있지만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나니 희한하지 않은가? 아니 희한할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과거가 있으니 오늘날 일본의 그 엄청난 성적개방성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듯 하다.


 둘째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렬한 관심이다. 당시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이라는 직함으로 일행에 참여했다. 제술관이라 함은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하는 관직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일본에 닿은 직후 부터 일행은 곳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일본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특히 신유한을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시를 써주기를 청했으며 어떤이는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은 국서를 전해준 후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이어졌는데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목말라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일본인이 통신사를 대접하는데만 오늘날 일본화폐로 백억엔에 달한다니 난 정말 놀랐다. 도대체가 이렇게 수많은 돈을 쏟아 부을 정도로 신경을 쓰다니 의아스럽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조선이 일본에 조공을 하고자 왔다고 대중들에게 선전함으로 이득을 보긴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이렇게 온 통신사의 선비가 엄청나게 존중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심 뿌듯하다. 


 위의 두가지는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해유록의 저자인 신유한은 조선을 침략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고 이 여정을 통해서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했다. 물론 그 침략을 기억하고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한 것은 아니다. 유곽의 음란한 정경을 미냥 비판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만났던 일본인들을 무시하지도 적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대하는 일본인들에게는 진실된 마음으로 대했다. 다시 말해서 신유한은 통신사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마땅히 항의할 일은 당당하게 항의했으며 일본의 군사력에 대해 경계했으며 조선이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일본의 현실을 보고 성찰하며 반성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리려는 그 태도를 본 받아야할 것이다. 결코 편협된 시각으로 보지 않았던 저자의 그 냉철한 시각을 잊어야 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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