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조 치세어록 - 난세를 사는 이 땅의 리더들을 위한 정조의 통치의 수사학 ㅣ 푸르메 어록
안대회 지음 / 푸르메 / 2011년 11월
평점 :
앞서 보았던 『정조의 비밀편지』는 정조의 어찰을 이용한 정치와 정조의 진솔한 모습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다음으로 본 이 책은 보다 공식적인 기록들을 통해서 알아본 정조의 어록들을 담은 책이다. 단순히 정조가 성군으로만 알려져있는 오늘날 정조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으며 과연 왕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볼 수 있었던 책이다.
"우주 사이에 세 가지 통쾌한 일은 첫째는 경전으 연구하고 옛날의 진리를 배워서 성인 펼쳐놓은 깊고도 미묘한 비밀을 들여다본다. 둘째로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별하여 천년의 긴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시원스럽게 해결한다. 셋째로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내어 작가들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한 비밀을 캐낸다." p-21
첫장부터 아주 깊고도 진한 책의 향을 풍기는 글이 나왔다. 차근차근 읽어보면 딱 내가 바라는 일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참으로 놀라웠다. 나도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철학가나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해 놓은 글들을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읽어도 이해가지 않고 도대체가 무슨 소리를 하느 것인지 알 수 없어도 그 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험을 겪고 싶기도 해서이다. 어떤 이해가지 않는 문장들을 일상속에서 우연히 깨달았을 때 기쁨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남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얼마나 큰 희열과 기쁨을 느낄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처럼 역사속에 크나큰 발자국을 세기고 싶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기에 두번째도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마지막 문장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공감했다.
정조는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단순히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텍스트 속에서 깨우침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글을 쓰기도 했으며 한시도 나라 걱정에 편히 생활한 것도 아닌 듯 하다. 매년 해가 바뀌면 왕의 말씀이라고 간단히 법과 같은 것을 반포하는데 그것을 윤음이라 한다. 그런데 정조는 백성들의 삶이 편안하기 위해서는 농사가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농사는 권하는 글을 매년 내렸다고 한다. 일명 권농윤음이다. 이토록 정조는 첫째도 백성이요 둘째도 백성이었다. 공식적인 기록이 아닌 어찰을 통해서도 정조의 그러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조운과 관련된 정책으로 백성들이 살길이 막힐 것을 염려하고 좀 더 나은 정책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직접 거리에 나아가 백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또한 서북지방에서 수백의 유민이 도성으로 오자 그곳의 관리를 처벌하였고 궐 내에 있던 곡식과 옷가지를 나누어 주도록 명하기도 했다. 얼마나 백성들을 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중벌을 받게될 중범죄자에 대해서 혹시나 잘못하여 벌을 주지 않도록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확실한 경우에 벌을 주도록 명했다.
"정황이나 법조문에서 털끝만큼도 의심을 일으킬 만한 거리가 없다고 해도 의심할 것이 더이상 없는 곳에서 또 의심을 일으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p165~166
처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백성을 위하는 마음보다 데카르트가 생각났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데카르트는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자신까지도 의심했다. 그러다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래서 난 설마 정조도 이런 사유를 전개했나? 놀랐다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서 괜히 혼자 설레발친 듯 했다. 아무튼 이러한 정조의 마음은 법조계에서 말하는 "열 명의 범죄자를 놓아주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말자 "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하는 듯 해서 다시 놀랐다. 수백년 전에 정조는 이미 이런 생각을 가진 진보된 군주였던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조는 항상 이 나라가 쇠퇴해가고 있으며 나라꼴이 엉망이라는 의미의 말들을 했다. 인재가 없어서 없는 인재들을 돌려서 쓰고 사대부의 풍속은 중국의 풍속에 물들었으며 노름하는 무리들이 성행하고 있고 사치까지 하며 나라의 무기는 점점 녹슬어 간다고 했다. 난 그래서 이상했다. 태평성대를 이룩했기에 건릉성제라고 불리우는 그 시기였는데 도대체 왜 정조는 이렇게 걱정하고 한탄했던 것일까? 그런데 차근 차근 정조의 글을 보면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해보면 정말 조선은 위태위태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인재들은 수도 근처들의 세력들이 돌려가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인재는 잘 나타나지 않았고 과거에 비해 인재들의 수준도 떨어졌으며 신하들은 당파를 나누어 밥그릇 타령만 하고 있었고 지방의 성곽들은 보수하지 않고 정조가 어떤 명을 내려도 정조가 원하는 수준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정말 누란지위의 조선이었고 정조가 그러한 시기에 정조였기에 이정도로 나라를 이끌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정조이후로 확실히 조선은 쇠퇴해가다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국권을 침탈당한 것이었고....아무튼 정조의 백성사랑과 나라사랑은 오늘날의 현실을 생각하면 파란집의 누구와 너무나도 대비된다.
마지막의 정조의 개인적 모습들이 참 색다르게 다가왔다. 정조가 골초였고 백성들에게 담배를 권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지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쓴 글과 과거를 생각하여 궐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비친 글을 보며 인간 정조의 모습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정조는 갔지만 수많은 기록들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들 정조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