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 해유록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5
신유한 지음, 이효원 편역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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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좋아하고 역사책도 즐겨 보지만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역사에 대해서 알 기회라든가 관심이 전혀 없던 것 같다. 다만 학생시절에 역사에 관심을 두면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만 키운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수백년 전의 일본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나. 현재의 일본도 잘 모르면서 수백년 전 과거의 일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다니. 어쨌든 흥미로운 독서였슴에는 틀림없다. 


 조선시대 선비하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여러가지 책을 통해서 선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긴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의 선비 이미지는 고리타분한 사람, 꼬장꼬장한 사람이 되버렸다. 그런 선비가 일본에 가서 본 풍경은 어떠할지 궁금해하지 않은가? 물론 읽으면서 깨닫겠지만 이 책의 선비는 그런 선비가 아니다. 오히려 트힌 사고를 가진 선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조선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의 문장을 보노라면 이 책을 쓴 신유한이라는 문인은 당시의 시대사람과는 다른 열린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할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치고는 그렇다는 말이다. '오랑캐'라는 단어로 인해서 금새 '에이..' 할 수 도 있지만...


 내가 몇가지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당시 일본의 풍속이 음란하다고 저자가 기술한 것이다.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으로서 국서를 전달하는 여정에서 잠시 머무른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성풍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통역관이 말해준 것을 듣고 운을 붙여서 일본의 풍속을 시로 읊은 것이 모두 서른 편인데 이렇게 적은 이유는 교화의 한 방편으로 적는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선비 같았으면 온갖 비난만 적었을 터인데 이렇게 시까지 만들어 기술한 것으로 보다 상당히 개방적인 선비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일본인들이 연 연회에서 그 공연의 음란함이 너무해서 중단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의 사실은 그 당시 일본에는 남창이 유행했다고 한다. 귀족이면 너도 나도 남창을 두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이런 개방적(?)인 풍속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바다 하나를 앞에 두고 있지만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엄청나니 희한하지 않은가? 아니 희한할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과거가 있으니 오늘날 일본의 그 엄청난 성적개방성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듯 하다.


 둘째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렬한 관심이다. 당시 신유한은 통신사의 제술관이라는 직함으로 일행에 참여했다. 제술관이라 함은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하는 관직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일본에 닿은 직후 부터 일행은 곳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일본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특히 신유한을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시를 써주기를 청했으며 어떤이는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은 국서를 전해준 후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이어졌는데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목말라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일본인이 통신사를 대접하는데만 오늘날 일본화폐로 백억엔에 달한다니 난 정말 놀랐다. 도대체가 이렇게 수많은 돈을 쏟아 부을 정도로 신경을 쓰다니 의아스럽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조선이 일본에 조공을 하고자 왔다고 대중들에게 선전함으로 이득을 보긴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이렇게 온 통신사의 선비가 엄청나게 존중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심 뿌듯하다. 


 위의 두가지는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해유록의 저자인 신유한은 조선을 침략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고 이 여정을 통해서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했다. 물론 그 침략을 기억하고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한 것은 아니다. 유곽의 음란한 정경을 미냥 비판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만났던 일본인들을 무시하지도 적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대하는 일본인들에게는 진실된 마음으로 대했다. 다시 말해서 신유한은 통신사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마땅히 항의할 일은 당당하게 항의했으며 일본의 군사력에 대해 경계했으며 조선이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일본의 현실을 보고 성찰하며 반성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리려는 그 태도를 본 받아야할 것이다. 결코 편협된 시각으로 보지 않았던 저자의 그 냉철한 시각을 잊어야 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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