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세계사 - 대량학살이 문명사회에 남긴 상처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를 좋아했다. 그렇게 된 계기가 되어버린 녹색바탕의 삼국사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책을 읽은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께서 사다주신 책인데 지금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한국사일 뿐이다. 중국사는 덤이었고, 세계사는 관심밖이었다. 왜 그렇게 복잡한지 금방 실증이 나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잔혹한" 이라는 말이 붙은 세계사는 도대체 어떤 세계사를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이다. 적게는 수백명부터 많게는 수십만명의 목숨이 마치 먼지처럼 사라진 살육의 역사를 담았다. 시간이 자나감에 따라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록이며 알려진 역사 이면에 감춰진 기록이다. 로마가 그 찬란한 문명을 뽐내기 전에 있던 수많은 카르타고 인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오늘날 누가 아는가? 또 카틴숲에서 살육당한 수천명의 폴란드 사람들을 아는가? 아마도 여러분 대다수는 이러한 사실을 모를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기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지 나는 알게 되었다. 


 엄연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이 왜곡되거나 부정된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공통점 중 하나인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점과 더불어 나는 잔혹했던 사건들이 부정되거나 왜곡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다. 난징대학살을 생각해보라. 중국은 일본의 잔혹했던 학살사를 기록하고 그 유물을 모은 박물관을 만들어 그 난징대학살의 기록을 후대에게 전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러한 것이 아닌 당시 난징을 점령하고 그런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러한 일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또한 카틴숲에서 일어난 수천명의 폴란드인 학살에서도 이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왜곡하기에 바빴다. 각자가 서로에게 유리하도록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참 안타깝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작년에 한 수구단체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폭도들이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한 사례를 보노라면 엄연히 있던 사실이 왜곡되거나 부정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하나의 사건마다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고 그러한 피해자를 만든 수많은 가해자가 있음에도 현실은 이해관계에 의해서 가해자가 처벌받거나 아니면 무죄방면되기도 하고 더 심하면 사건자체가 왜곡되고 사라져버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가장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라고


정말 잔인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오는 사건의 사진들은 정말 인간의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였다. 글로 표현된 문장들이 그 사건의 진상을 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대량학살을 당한 사진을 보고 놀랐다. 일반인들이 보는 책에 담기에는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독자들에게 제대로된 기록을 보여주기 위해 올바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의 가해자들은 모두가 광기에 휩싸여 사람들을 죽이고 그것도 모잘라 참으로 말하기도 꺼려지는 온갖행태들을 햇다는 것이 정말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보통 TV에서 접하는 그러한 범죄자들은 어디 명함도 내밀기 힘든 그런 인간들의 행각이었다. 


인류가 발전하면 더 잔인해진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달해온 후 인류는 오늘날의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보다 많은 것을 연구하고 탐구하며 합리적으로 성장해왔다. 풍부한 생산물과 효율적인 시스템, 그리고 늘어나는 인간의 수명 등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한 인류의 삶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고,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며 개개인이 희망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매우 하찮게 취급되던 오래전의 과거에 비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리주의에 입각해서 인류는 보다 편한 삶을 살게 되었다. 고등교육을 받고 대부분이 우수한-과거에 비해서-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똑똑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발달한 만큼 더 잔인해지고 이기적이 되었다. 우수한 머리를 이용해서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 것이라 본다. 인간을 즉각적으로 한 번에 보다 많이 죽이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과거에도 사람의 인권이라는 것이 없어서 사람의 목숨을 쉽게 해쳤지만 오늘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알면서도 그렇게 죽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을 수 있으면서도 막지 안는다는 점이다. 인류가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만든 UN은 현대에 이르러 일어난 대량학살을 막지 않았다. 천안문사태, 르완다 투치족 학살, 스레브레니차 대량 학살 등은 충분히 인류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각자의 입장이 달랐기에 수많은 목숨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7월에 일어났다. 2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이다. 놀랍지 않은가? 95년에 그러한 대량학살이 일어났다니. 보다 똑똑한 인류는 보다 잔인하다. 알면서도 막지 않는다. 


 우리들은 보통 주연들의 역사를 배운다. 하지만 이 책은 덧없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엑스트라의 외침을 담은 책으로 우리에게 한가지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했다. 과거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몰아넌 히틀러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인 폴란드 침략을 앞둔 전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지금 그 누가 아르메니아인의 전멸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경고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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