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모포와 사이렌의 피리는 살아 있다. 그러나 손오공의 여의봉은 어디있는가? 그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나 우리는 끊어져있다. 전위前衛, 보수(保守란 말은 우리들의 경우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도 전위란 여전히 서양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그 상대는 보수적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겹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저들은 단단한 벽돌 위에 얹힌 풍차와 싸우고있으나 우리는 허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허깨비와 싸우고 있어. 우리는 돈키호테도 될 수 없어. 저들은 낡은 신화를 부수고 새 신화를 세우기 위해 시를 쓰지만, 우리에게는 부술 신화가 없고, 서양의 그것은 서양 시인들이 부술 것이며 동양의 그것은 이미 폐허가돼버렸으니 부술래야 부술 수 없어.우리들은 패배한 종족이야. -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