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사람아, 그냥 갈 수 없잖아
사석원 지음 / 푸른숲 / 2005년 5월
품절


화가의 책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한지 비슷한 고급 종이로 만든 책싸개가 멋스럽다.

저녁 무렵마다 대폿집들을 다니며 나는 그리운 시절을 떠올렸다.
풍경들, 사람들... 풍경도 사람도 변했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두들 보고 싶구나.
가난했지만 낭만이 보석같이 빛나던 세월들이여, 안녕!(본문 중에서.)


화가의 사인본.
선착순 50인에게 사인본을 준대서 부랴부랴 주문한 책이다.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대폿집 이야기를 화가의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함께 듣는 재미라니!
책을 펼치면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와 함께 파전, 꽁치 굽는 냄새가 확 풍긴다.

--시인 이상을 좋아했던 박인환은 이상의 기일인 3월 17일 오후부터 이상을 추모하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명동의 한 대폿집에서 폭음을 한다. 그렇게 사흘을 내리 술을 마신 박인환은 19567년 3월 20일 밤 9시경, 그의 세종로 집에서 만취 상태로 갑자기 숨지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16쪽)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의 유명한 대폿집 '소문난 집'은 와보고 사람들이 세 번 놀란대서 '삼경원(三驚苑)'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저자가 주로 다닌 곳은 옛날 문인들,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다녔던 곳. 그리운 이름들과 얽힌 소소한 일화들도 맛깔나게 풀어놓고 있다.

--배병우(사진작가) 선생과 임 선생(막걸리공장 사장)은 서로에게 막걸리를 부어주며 어릴 적 친구인 여수 출신 화가 손상기(1949~1988)에 대해 이야기한다.초등학교 때 척추를 다쳐 성장이 멈춰 불구가 된 손 화백은 서른아홉에 요절한 '한국의 로트렉'이다.(...) 이 기진맥진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말집'에 모여들어 또다시 찾아온 고난을 이겨내려 한다.(70, 71쪽)

막걸리 한 병을 800원에 받아 돼지 껍닥을 무한정 구워주며 1500원 받는다는 말집 인심. 그래서인지 노가다하는 사람, 실업자들도 마음 편히 찾는 곳이란다.

여수 오동도 근처의 말집.

--초여름 질긴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올 때 나는 광장시장으로 들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좌판 대폿집이 환히 불밝힌 채 빈대떡이며, 순대, 머릿고기, 국수 등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서울 광장시장에는 300여 개의 좌판이 몰려 술과 음식을 팔고 있으니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좌판 '대포촌'이다.(84, 85쪽)

이렇게 펼치면 두 페이지에 걸친 대작(?) 일러스트도 심심찮게 나온다.

--법조인과 시민운동가들, 학생과 인쇄공과 사무원들이 섞여 북적거리던 대폿집에 빈자리가 많아졌다. 도로메기집엔 차림표도 냅킨도 없다 그래서 대폿집의 원형 같은 곳이다.
원형은 군더더기 없고 단출한 것이다. 흔한 액자 하나 없지만 숫자만이 덩그렇게 적힌 달력 하나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132, 134쪽)

대구시 남산동 도로메기집 이야기. 원형(따우님!)에 대한 저자의 간략한 정리가 멋지다.

--저 남학생이 오늘밤 어떤 낭만적인 상황을 기대하고 저 여학생과 술자리를 가졌다면 애당초 틀렸다. 저리도 술이 약하니 말이다. 여학생은 검고 긴 머리칼을 가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나 <사랑의 스잔나>의 홍콩배우 진추하도 검고 긴 머리칼을 가졌지.

고대 앞의 오래된 대폿집 '고모집'에서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을 보며 상념에 젖는 화가.
불콰한 얼굴로 대폿집을 나섰을 때 마침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렸단다.
오래 전 이대앞 모 주점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와 실컷 마시고
떠들다가 나섰을 때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날이 내게도 있었지.

--제주의 바다에선 소주를 마셔야 한다. 그것이 어울린다. 한라산 소주라면 더욱 좋다. 봄여름엔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어 잔, 가을겨울엔 소라 한 점에 소주 두어 잔, 그게 제격이다.(225, 226, 227쪽)

제주 탑동 잠녀 주막, 컨테이너 박스와 플라스틱 의자 몇 개, 테이블이 전부. 22명의 해녀가 매일 바닷속에 들어가 직접 공수하는 소라니 멍게니 싱싱한 안주라니......바닷바람 냄새가 코끝에 확 끼치는 듯하다.

이벤트 선물로 받은 화가의 본문 일러스트를 이용한 엽서 세트.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rblue 2005-06-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그림책들은 로드무비님의 포토리뷰로 만족한다니까요. ㅎㅎ

비발~* 2005-06-0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의미에서 감사.(--)(__) 무비님 포토리뷰 아니었으면 나왔는 지도 몰랐을 듯~^^

인터라겐 2005-06-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 일단은 보관함으로...

로드무비 2005-06-0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발~*님, 이 책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술 좋아하시는 분들.
앞으론 포토리뷰만 올릴까봐요.^^
블루님, 인터라겐님, 그림이 많아서 이 책은 포토리뷰만 가지곤
아쉬운 게 많을 텐데요?^^

로드무비 2005-06-0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빈현님, 주소까지 자세히 나와 있진 않지만 대강 위치를
말해놓아서요.
찾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

로드무비 2005-06-0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저자의 따우님 찬양이 이어지죠?(못 읽으셨나?;;)
따우님, 추천해 주시면 가르쳐 드릴게요.^^

로드무비 2005-06-0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집구석 보고...이렇게 좁고 누추한 대폿집이 있을까!
2.술손님 보고 놀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 언론인, 교육자,
예술가들의 아지트다!
3. 주모의 인품과 미모에 놀란다!
ㅎㅎ 따우님, 궁금증 풀리셨죠?^^

2005-06-01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5-06-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멋져... 게다가 밖에 비까지 주룩주룩 쏟아지고 천둥번개까지 배경이 되어주니.... ^^

실비 2005-06-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의 책이란 말이죠.. 이거보고 또 끌리네요.ㅎㅎㅎ 퍼갑니다.^^

로드무비 2005-06-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끌릴 때 사세요.
1천원 할인쿠폰도 준다고요.^^
클리오님, 어젯밤 천둥번개 쳤나요?
모르고 퍼잤어요.
(밤에 서재활동을 해야 찐한 글이 나오는데...쩝)

날개 2005-06-0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의 책이라 그림들이 저리 생생하군요...^^
날씨가 흐릿하니.. 술 한잔 땡기죠? (술도 잘 못먹으면서 왜 이리 폼은 다 잡는지..흐흐~)

로드무비 2005-06-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안 그래도 어제 한잔했습니다.
동생 부부가 중국요리를 시켜서요.^^
(이 책 마음에 들어요.^^)

2005-06-03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마음에 드는 것만 눌러주세요.^^

2005-07-05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