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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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손에 잡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필사적으로 탐독하게 되는 책이 더러 있다.
최진영의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 바로 그런 책 중 하나.
-쓸쓸한 게 뭔지 아느냐고? 모를 리 없지! 내가 엄마를 찢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익힌 감정이 바로 그런 건데.(40쪽)
발랑 까진, 혹은 위악적인 아이가 어른들과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형식의 소설은
대부분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진부하기도 하다.
당신이니 소녀니 이름이니, 하는 책 제목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무심코 펼쳤다가
저녁밥 짓는 것도 미루고 단숨에 읽어치우게 될 줄이야!
'하나같이 멍청하고 지긋지긋해서 죽고 싶게 만드는 어른들' 속에서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오물덩이처럼 뒹구는 소녀는 '진짜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소녀가 잠시 마음을 붙이는 건 허름한 식당의 혼자 사는 할머니,
쪽방 노숙자, 폐가에 몸을 의탁한 사내, 시장통 각설이패, 가출소녀 등이다.
유감스럽게도 소녀는(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데) 글자를 알고 책읽기를 좋아해서
폐가의 사내가 주워다 놓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책 속의 결론은 늘 똑같았다.
진짜 같은 건 없다.
있어도 찾을 수 없다.(151쪽)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끝까지, '책 속의 결론'이 아닌, 소녀의 생짜배기 육성을 듣고 싶었는데!
(이러면서 또 나는 능청맞게 책과 영화 이야기를 갖다붙인다.)
달포 전에 본, 전수일 감독의 영화 <영도다리>가 떠오른다.
이런 장면이다.
천지간에 외로운 두 소녀(고아와 가출소녀)가 생일날 노래방에 갔는데
한 소녀가 옆방에 불려가더니 아는 소녀들에게 직싸게 맞고 나온다.
함께 온 소녀는 그 사실도 모르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굴욕적으로 무릎까지 꿇었던 뺨이 벌겋게 부어오른 소녀는
친구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탬버린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영화는 노래방 유리창을 통하여 먼 거리로, 무심히, 두 개의 방에서 일어난
그 광경을 보여준다. 다른 어떤 장면보다 충격적이었다.)
<영도다리>를 보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오래 전 읽은 피에르 파졸리니 감독의
<폭력적인 삶>을 떠올렸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과 폭력으로 점철된 소설.)
우아한 삶과는 거리가 한참 먼데, 어떻게 된 셈인지 "씨발!"이라는 기본(?) 욕설조차
한 번 시원하게 입 밖으로 날린 적이 없다.
(하물며 유모 장관도 카메라(그 너머의 국민)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는데...)
세상은 구석구석 폭력으로 뒤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