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탐정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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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탐정>의 원제는 <Partners in Crime>으로 1929년에 발표된 단편집이다. 주인공 토머스 베레즈포드(토미)는 전직 군인으로 간호사 출신 아내 프루던스 베레즈포드(터펜스 Tuppence, Two pence라는 뜻으로 보잘것 없다는 의미가 있음)와 금실좋은 부부이다. 


어느 날, 정보기관의 카터가 이 부부에게 국제탐정사무소를 인수하여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스파이를 색출해줄 것을 요청한다. 부부는 흔쾌히 동의하고 조수 앨버트를 고용하여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데, 러시아 스파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런 저런 일반인들의 사건들을 의뢰받게 된다.


일단 의뢰인이 사무소에 들어서면 앨버트가 시간을 끌며 바람을 잡는다. 앨버트가 '소장님은 지금 런던 경시청장과 통화중이라 즉시 응대가 어렵다' 따위의 말로 시간을 끌면 그 사이 부부가 의뢰인을 관찰한다. 이 때 알아낸 사실로 의뢰인의 신뢰도를 얻은 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매 장마다 탐정역할을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맡는데, 이들은 홈즈나 브라운 신부 등 유명한 소설 속 탐정을 흉내내어 그들의 수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들이 해결하는 사건은 실종신고 된 여성 찾기가 집안에 숨겨진 금화 찾기 등 가벼운 것부터, 마약밀매조직 소탕과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활극까지 다양하다. 포와로가 '회색 뇌세포' 만을 이용한 안락의자 탐정이라면, 이들 부부는 다소 하드보일드적 요소가 가미된 행동파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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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남
신도 준조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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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나'는 영화 관련으로 로케이션 장소 헌팅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지도남의 존재는 매우 도움이 된다. 그는 찾고 있는 로케이션 조건만 알려주면 후보지를 줄줄 불러 주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형 지도첩을 항상 끼고 다녔는데, 전국 어느 곳이든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지도첩에는 엄청난 분량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M이 네 살에 첫 앨범을 발표하는 이야기, 도쿄 23구의 마크를 둘러싸고 밤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장렬한 격투 이야기, 정리해고된 샐러리맨이 산적이 되어 가는 이야기, 그리고 무사시와 아키루의 절망적인사랑 이야기 등등...


'나'는 그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대체로 삼인칭으로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문체라는 점. 그리고 모두 다 리얼리즘의 지표에서는 늘 몇 센티미터쯤 떠 있는 것 같은 망상담이라는 점. 이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지도남은 어떤 타이밍이 되면 이야기들을 말로 풀어놓는 듯했다. 먼저 말로 이야기를 풀어놓고, 말로 풀어놓은 김에 지도 위에 써 나가는 듯했다. 자기가 서 있는 혹은 걷고 있는 장소가 포함된 지도첩 페이지에 그 토지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모두 팝하고, 광조적(狂躁的)이고, 엔터테인먼트가 제대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 '나'는 궁금해진다. 지도남이 지도첩을 펼칠 때. 그 이야기를, 지도남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알게 된 사실. 그의 이야기들은 호쿠사이의대표작 <후가쿠 36경>에 '후지 산'이 반드시 그려져 있듯이 여자 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바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헌사적 뉘앙스가 아니야......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얘기하는 거야. 아, 지금 어딘가로 갔다! "지도첩에는 그녀가 있는 거로군." 그래서 지도남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도첩에 틀어박혀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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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남>의 작가 신도 준조는 1997년 도쿄 태생으로 2008년에 <지도남>으로 데뷔, 제3회 <다빈치문학상> 대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에 <안도 3형제의 성직>으로 제15회 <일본호러소설대상> 대상, <RANK>로 제3회 <포플러소설대상> 특별상, <도쿄 뱀파이어 파이낸스>로 제15호 <전격소설대상>은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꽤나 있는 작가로, 2019년에는 <보물섬>으로 나오키상 까지 수상한다.


작품 성향은 작품 속에서 지도남이 풀어내는 이야기처럼 "리얼리즘의 지표에서는 늘 몇 센티미터쯤 떠 있는 것 같은 망상담" 계통이다. 

영어와 일본어를 믹스시킨 문장이 거슬리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쓸데없는 말이나 텔레비전 얘기 잇세트라를 모조리 믹스시켜 초고속으로 셰이크했고..." 하는 식의 문장들이 그렇다. 국내에는 아직 <지도남> 외에 출간된 작품이 없는데, 흥행이 어느 정도 보증되는 나오키상 수상작 <보물섬>이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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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박영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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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박영한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생계가 어려워져 한때 부랑자 생활을 하였다. 문학도가 되기 위해 어렵사리 입한한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중도 포기하고 생활을 위해 베트남전쟁에 자원 참전하는데, 이 때의 경험을 담은 소설 <머나먼 쏭바강>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다. 이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박영한은 <왕룽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지한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한다. 


2002년에 발표된 <카르마>는 작가의 유작으로 작품 발표 뒤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2006년에 사망한다.


작품은 화자 '내'가 노년에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듯한 느낌에 강원도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당분간 서울을 떠나 있을 수 있다는, 단지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숨구멍이 트일 수 있었다. 숨통을 터주지 않으면 이제 곧 어떤 위험이 닥치리라는 예감을 나는 갖고 있었다. 수년 동안 해왔던 작업이 내리달아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낭패감이란...... 아니, 그것만이 아닐지 몰랐다. 어느 시점엔가부터 서서히 윤회의 길목에 서 있는 스스로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난감함

이제 될 대로 되라고 완전히 자포자기하게 되었을 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강원도 오지행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묵게 된 민박집은 '나'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지가 절단된 주인 사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주인사내의 바보 형. 주인 사내는 사지가 절단 된 고통에 못 이겨 술을 끼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 형에 대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30년을 부쩌지 못하고 살아온 것. 이 신산한 가족 풍경은 '나'의 기억을 과거로 과거로 내몰아 간다. 


아직 어린 자식들과 병든 아내, 그리고 등골이 휘어지게 등짐을 짊어진 늙은 아버지, 그 탈출구 없는 감옥이 내게 선사한 건 정신분열증과 신경질, 타락으로의 폭주 심리였다. 방랑이 시작된 건 고등학교를 채 다 마치기도 전이었다. 

둘째형님과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깊어만 가고, 집안은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영양 실조로 메말라가던  누런 태양.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황갈색 바다. 자살만을 꿈꾸며......내가 집어던진 장 단지에 머리를 얻어맞아 수건을 동여맨 둘째형님의 피 묻어 딱정이 진 머리카락. 이윽고 광기를 못 이긴 어느 날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를 저지르고야 만다.

 

그리고 이윽고 떠오른 환멸.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둘째형님을 아버지와 '내'가 고리짝에 넣어 묻고 왔던 날 밤의 끔찍한 기억.


아버지와 나는 둘째형님을 우겨넣은 고리짝을 맞잡아 들고 쪽마루에 버텨놓은 지게에 얹었다......그러다 번쩍 하고 스쳐간 생각이 있었다. 

- 아직 명이 완전히 끊어지지가 않았던데요?

- 너만 알고 있거라. 

 

두달 간의 강원도 생활을 정리하려는 '나'에게 주인사내는 추근대며 가지말라고 거듭 애원한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 서울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해 민박집을 찾은 '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대책 없는 막막함만을 느낀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시간들은 고작 하룻밤에 불과했었다는......지난 시절 '내'가 소설가로 남편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별 무의미였음을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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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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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셀던은 성적 모험과 환상을 적절히 섞은 '미저리' 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말콤 로리의 <화산 아래서>나 토머스 하디의 <테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같은 걸작' 을 자신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저리' 시리즈를 폭력적으로 결말 짓고 <과속 차량> 이라는 순수문학 작품에 매진해 마침내 완성한다. 

폴은 샴페인에 취해 차를 몰고 자축 여행을 떠나는데,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눈보라를 만나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심한 부상으로 의식불명이 된 폴을 구한 이는 애니 윌킨스라는 거구의 여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폴의 '넘버 원' 구독자였다.

그런데 한 때 간호사였던 것 같은 애니는 폴에게 이런저런 응급치료를 해주고 약도 주었지만 정작 병원에는 데려가지 않는데... 폴은 차츰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대량 살인에 연루된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사로 잡힌다. 다리가 완전히 부숴져 휠체어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폴은 애니를 위해 죽어버린 미저리를 되살려 내고 새로운 미저리 시리즈를 집필해야만 한다. 


폴은 자신이 애니의 감정 상태와 감정 주기에 좀더 능숙하게 맞춰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애니가 고장 난 시계라도 되는 듯 폴은 애니의 째깍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폴은 살기 위해 애니의 비위를 맞춰가며 소설을 써나간다. 문제는 단순히 비위만 맞추면 되는게 아니고, 그녀의 '코드에 맞게'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미저리를 뚝딱 살려내어 됐지? 라고 물었다간 당장에 도끼가 날아올 판이다.  


충성스러운 독자는 방금 무자비한 편집자로 돌변했다. 

애니가 편집자 행세를 하며, 어쩌면 공동 저자 행세까지 하려고 하며 소설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한바탕 설교를 해 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니는 폴을 자기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우월적 위치에 서 있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창의적인 과정은 자기의 통제권 밖에 있는 사항이라고 보았다.

애니는 진정 충성스러운 독자였지만, 충성스러운 독자가 곧 충성스러운 얼간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편집자이자 독자인 애니. 그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한다.


'네가 계속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어. 네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너 자신에게까지 세헤라자데 행세를 한다는 사실 말이야'

자신이 음란한 여인이 되어 열정적인 섹스의 환상을 연출하면서 성기를 문지르며 자위를 하듯, 폴은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가 되었다... 성기 대신 타자기를 잡는다는 점은다르지만, 두 행위 모두 민첩한 상상력, 재빠른 손놀림, 억눌렸던 욕망을 무리하게 분출하고픈 진심 어린 열정에 의존한다.

 

하지만 폴은 세헤라자데 자신도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의 욕망을 만족시켰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가와 독자에 관한 흥미진진한 스티븐 킹의 고찰은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스티븐 킹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독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작가는 폴 셀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폴이 미저리 시리즈를 끝내고 다른 영역으로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넓혀간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폴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중작가를 찾을 뿐이다.


Metallica가 The Black Album으로도 불리는 <Metallica> 음반을 발매했을 때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견고하고도 날카로운 디스토션 리프들을 차분히 쌓아올려 감정을 응축시키고 마침내 엄청난 힘으로 폭발시켜 카타르시스에 이르게하는 느낌의 Thrash Metal을 기대했던 독자의 귀에 들려온 것은 어딘지 모르게 낭창한 멜로디였던 것이다. 그러다 <Load>와 <Reload>가 발표됐을 때 메탈리카 팬들은 혼란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 가래끼가 걷혀버린 보컬음, 멜로딕한 리프들... 그렇다. 팬들은 메탈리카의 Thrash Metal을 좋아했던 것이지 메탈리카의 음악 지평이 어디까지 넓어지는지 관심있게 바라보는 후원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Pearl Jam 과 Radiohead 역시 그렇게 팬들로 부터 멀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는 실험여행을 떠났고, 평론가로부터 Progressive하다는 수식과 찬사를 받았지만 팬들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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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에의 제물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0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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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4년 9월 26일, 4,337톤의 도야마루호가 태풍에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155명이 희생되었다. 작가는 전쟁과 원폭으로 대량 살상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카이 히데오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허무에의 제물>을 구상·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이로부터 10년이나 지난 1964년이니, 실로 엄청난 정력이 쏟아 부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때부터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 마구라>,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사건>과 함께 <허무에의 제물>을 일본 미스터리계의 3대 기서로 꼽기 시작한다. 또한, 전후 3대 미스터리 걸작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 살인사건>, 그리고 <허무에의 제물>이 자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안티미스터리' 라는 타이틀로 선전되곤 하는데, '안티미스터리'는 일본 미스터리계의 기린아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과 작가 자신의 성향이 융합되어 나타난 결과라 볼 수 있다. 

나카이 히데오는 본격 추리물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가 생존해 버티고 있는 바에야, 더 이상의 본격추리물을 미스터리계에 추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파적인 성향으로 나아가자니 작가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호기심이 방해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미스터리적인 분석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결국은 어느 것도 진실에 이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즉 '안티미스터리' 작품 쪽으로 작가가 경도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리고는 마치 헤겔이 '절대정신으로 나아간 것' 처럼 1994년 사망할 때까지 미스터리 작품은 더 이상 발표하지 않는다.


작품은 1954년 12월 10일, 시모타니 류센지 부근의 게이 바 '아라비크'에서 시작된다. 재즈가수이자 자칭 여탐정인 히사오와 그의 친구 아리오는 히누마 집안의 불길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히누마 집안은 최근 도야마루호 사건으로 네 사람이 사망하는데, 문제는 이 집안에 아주 먼 옛날부터 재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누와 뱀신의 저주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이 히사오의 흥미를 끄는데, 얼마 뒤 이 집안의 또 다른 남자, 고지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는 욕실에서 알몸으로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했는데 등에는 붉은 십자가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는 매저키스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짐작되었으며, 여기서 고노스 겐지라는 불량배가 고지의 애인이자 용의자가 아닌가 하는 가설이 나온다. 하지만 욕실이 밀실이었고,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고지는 자연사로 처리되어 매장된다. 뒤늦게 히사오는 이 사건이 밀실살인 사건이며 트릭을 밝혀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자신의 추리를 펼친다. 그래서 지목된 용의자가 바로 고지의 작은 아버지 도지로이다.


그러나 도지로 역시 가스 스토브를 끄지 않고 잔 사고로 밀실 안에서 사체로 발견되고, 누가 봐도 과실에 의한 사고였기에 유야무야 사건은 덮이고 만다. 그와 함께 도지로 범인설도 슬그머니 수그러든다.


그 사이 벌어진 사건이 100여명의 노인이 불에 타 죽는 <성모동산> 사건.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바로 히누마 집안의 할머니뻘인 아야조.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사건으로 죽은 사람 시체를 세어보면 한 명이 많다는 것. 누군가가 한 명의 시체를 숨기기 위해 100여명의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는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인물이 고지의 애인이자 불한당으로 여겨졌던 고노스 겐지. 하지만 그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설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데, 뜻밖에도 고노스 겐지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히누마 집안과 가까운 고기치의 처남으로 실존 인물이었다. 그의 자살은 부모 살해의 누명 때문이었다.  


사망자는 점점 늘어나고, 프랑스에서 히사오의 애인 무레타가 돌아와 추리게임에 참여하면서 사건은 이제 더욱 복잡해 진다.


무레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을 미리 예측하여 소설화 한 뒤 범인을 잡겠다는 기이한 발상을 제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추리에 참가한 히사오, 아리오 등은 '장미의 색깔이나 보석, 또는 방의 색깔이 살인에 영향을 미쳤다', '샹송의 노래 가사가 살인을 예고했다', '부동명왕의 위치나 경전에 나온 문장이 살인사건의 열쇠 역할을 할 것이다', '수학공식에 따라 살인이 계획되었다', '사촌 오지가 사실은 원폭에서 살아남아 배후에서 살인을 교사했다' 등등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온갖 추리를 마구잡이로 제시한다.

그 모든 추리가 그럴싸하게 여겨졌던 것은 바로 사건이 일어난 연후에 추리를 꿰어 맞추는, 소위 '뱀 지나간 자리를 설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지가 옆집에 전화를 빌려놓고 트릭을 써서 작은아버지 도지로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머지 사건은 모두 자연사였거나 규명할 수 없는 사건으로 무화(無化)되고 만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0만 분의 1의 우연>에 시운마루 호 사건이 나온다. 시운마루호가 좌초되어 가라앉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침몰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에 기고를 하는데 이것이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시점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는 못할 망정 특종감으로 여겨 사진을 찍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였다.


나카이 히데오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관음의 형태로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당신들은 우리가 도야마루의 유족이라고 해도, 고작 가엾다고 여기는 정도밖에 더 생각하지 않았겠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어쩌고 하면서, 히누마 집안의 사건을 기다리면서 가슴 설레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뻔한 거지. 당신들뿐만이 아니야, 육친을 잃은 사람 말고 누가 도야마루의 조난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였겠는가... 전부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 1955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무책임한 호기심이 새로 만들어낼 즐거움만은 당신을 몫이 아니겠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그럴싸하게 잔학한 사건이 얼마든지 현실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지금의 시대이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만은 안전지대에 있으면서, 구경하는 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처참한 광경이라도 좋아서 바라보는 것이 괴물의 정체라고. 나에게는 무서운 허무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내가 한 짓도 다른 의미로 '허무에의 제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구경하는 사람을 나카이 히데오는 괴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 부모에게 '시체팔이' 운운한 그들은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악마는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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