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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박영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9월
평점 :
194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박영한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생계가 어려워져 한때 부랑자 생활을 하였다. 문학도가 되기 위해 어렵사리 입한한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중도 포기하고 생활을 위해 베트남전쟁에 자원 참전하는데, 이 때의 경험을 담은 소설 <머나먼 쏭바강>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다. 이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박영한은 <왕룽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지한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한다.
2002년에 발표된 <카르마>는 작가의 유작으로 작품 발표 뒤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2006년에 사망한다.
작품은 화자 '내'가 노년에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듯한 느낌에 강원도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당분간 서울을 떠나 있을 수 있다는, 단지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숨구멍이 트일 수 있었다. 숨통을 터주지 않으면 이제 곧 어떤 위험이 닥치리라는 예감을 나는 갖고 있었다. 수년 동안 해왔던 작업이 내리달아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낭패감이란...... 아니, 그것만이 아닐지 몰랐다. 어느 시점엔가부터 서서히 윤회의 길목에 서 있는 스스로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난감함
이제 될 대로 되라고 완전히 자포자기하게 되었을 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강원도 오지행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묵게 된 민박집은 '나'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지가 절단된 주인 사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주인사내의 바보 형. 주인 사내는 사지가 절단 된 고통에 못 이겨 술을 끼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 형에 대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30년을 부쩌지 못하고 살아온 것. 이 신산한 가족 풍경은 '나'의 기억을 과거로 과거로 내몰아 간다.
아직 어린 자식들과 병든 아내, 그리고 등골이 휘어지게 등짐을 짊어진 늙은 아버지, 그 탈출구 없는 감옥이 내게 선사한 건 정신분열증과 신경질, 타락으로의 폭주 심리였다. 방랑이 시작된 건 고등학교를 채 다 마치기도 전이었다.
둘째형님과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깊어만 가고, 집안은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영양 실조로 메말라가던 누런 태양.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황갈색 바다. 자살만을 꿈꾸며......내가 집어던진 장 단지에 머리를 얻어맞아 수건을 동여맨 둘째형님의 피 묻어 딱정이 진 머리카락. 이윽고 광기를 못 이긴 어느 날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불상사를 저지르고야 만다.
그리고 이윽고 떠오른 환멸.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둘째형님을 아버지와 '내'가 고리짝에 넣어 묻고 왔던 날 밤의 끔찍한 기억.
아버지와 나는 둘째형님을 우겨넣은 고리짝을 맞잡아 들고 쪽마루에 버텨놓은 지게에 얹었다......그러다 번쩍 하고 스쳐간 생각이 있었다.
- 아직 명이 완전히 끊어지지가 않았던데요?
- 너만 알고 있거라.
두달 간의 강원도 생활을 정리하려는 '나'에게 주인사내는 추근대며 가지말라고 거듭 애원한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 서울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해 민박집을 찾은 '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대책 없는 막막함만을 느낀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시간들은 고작 하룻밤에 불과했었다는......지난 시절 '내'가 소설가로 남편으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별 무의미였음을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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