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맨
대니 월러스 지음, 오득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스물 여섯의 대니 월러스는 3년 사귄 여자친구에게서 이별을 통보 받은 뒤 집 안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다. 친구들의 초대에도 "No", 새로운 시도도 "No", 그는 어느새 "No Man"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전철이 운행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탄 대니는 옆 자리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가 대니에게 "좀 더 자주 Yes라고 말하세요" 라고 했다. 수염을 기른 아시아계 남자의 이 말에 대해 대니는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현재 상태가 No를 너무 많이 사용해 일어난 일은 아닌지 의심했고, 마침내 앞으로는 모든일에 Yes를 말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다음 날부터 대니는 각종 광고와 스팸 메일에 적극 응답했는데, 그 결과 성기 확장 패치 사용자가 되었고, 어르신을 두 분을 지원하게 되었다. 또 의례적인 초대에도 일일히 Yes라고 응답했기 때문에 각종 파티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치 조지 코크로프트의 1972년 소설에 나오는 Dice Man이 주사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처럼 대니는 Yes에 운명을 맡겨 버린 사람 같았다.

Yes가 거듭된 결과 대니는 갖가지 사기수법에 걸려드는데 오만의 술탄 아들이 4천만 파운드를 이동시켜달라는 허위 메일에 속는가 하면 스타버스트라는 괴짜 모임에 속아 미륵부처를 찾으러 다닌다. 또 온갖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가짜 목회자 자격과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한다.

물론, 체험과 기회가 넓어졌기 때문에 좋은 일도 물론 있었다. 복권에 당첨될 뻔 하기도 했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들이 주위 사람들이 보기엔 위태로워 보였다. 이를테면 누구든 거절하기 마련인 전 여친의 현 남친이 인사치례로 권유한 저녁 초대에 응한다던가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Yes Man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대니에게 어느 날 도전자가 나타난다. 도전자는 대니가 Yes Man 신념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 도발하며 갖가지 미션 -스톤 헨지에 가라던가- 을 제시한다. 대니는 이를 악물고 거듭해 Yes를 외치며 도전자에게 응답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과 같이 Yes를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또한, 과거에 소극적인 태도로 놓친 인연-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여자친구 리지-을 다시 이어가게 된다.

------

작가 대니 월러스는 다소 엉뚱한 사람이다. 1976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는데, 22살에 BBC 역사 상 최연소 프로듀서로 입사하여 라디오 코미디 쇼를 제작했다. 또, 각종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고, TV 프로그램과 퀴즈쇼 진행자로도 일했다. 텔레비젼 쇼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독립국가로 선언하는가 하면, 소설 Yes Man에서도 자신을 실명 주인공으로 하여 현실과 가공을 교묘히 뒤섞어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살면서 우리는 No를 말하는 데 익숙해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No는 편안함을 준다. 기존의 것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No는 그래서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No만을 외치면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사고틀에 갇혀 '좋았던 한 때' 만을 회상하게 되고, 변화를 거부하며, 새로운 경험과 인간관계로 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Yes를 말할 필요하 있는 것 같다. Yes는 개방적인 태도, 긍정적인 태도와 이어진다. 그럴수도 있다고 인정하니 타인의 삶과 사고관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게 된다.

짐 캐리 주연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영화는 Yes를 통해 갖가지 좋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소설은 Yes로 인한 웃지 못할 곤란한 상황들과 '도전자 찾기' 에피소드로 곁들여 있어 풍성한 재미를 선사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164468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마루 밑 남자 >

어느 날 아내가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아내가 피곤한 탓이라며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피곤한 것은 '나'였다. 아내가 무리해서 교외에 집을 사자고 하는 바람에 편도 세 시간 가까이 출퇴근 해야 했고, 회사 내 입지도 좋지 못했다.

얼마 뒤 '나' 역시 집에서 누군가를 발견한다. 머리가 긴 선인풍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나'를 발견하고도 놀라지 않았고, 신문을 조용히 정리한 뒤 마룻바닥 밑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마루 밑 남자'와 점차 친밀한 관계가 된다. 그러더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내'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고 힐난하더니 급기야 집에서 쫓아낸다.

잘 곳이 없어 전철역 부근으로 가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처럼 집을 빼앗긴 사람이 많다면서 하루 빨리 '나'도 다른 집 빼앗을 궁리나 하라고 충고한다.

< 튀김 사원 >

밤 늦도록 잔업을 해서 친 보고서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린다. 옆에 앉은 다도코로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컴퓨터 코드를 건드린 탓이다. 한껏 짜증이 났지만 험하게 응대하진 않는다. 다도코로 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오십대에 컴퓨터도 잘 못 다루는 일개 평사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어찌된 일인지 과장은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실적에 쫓겨 회사의 주류 실력자 소네자키 전무의 '함정' 테크닉에 관여한다. '함정' 테크닉이란 이렇다. 거래할 회사 담당자에게 뒷돈을 주기로 하고 계약을 성사시킨 뒤 1회분 몫을 이체한다. 얼마 뒤 2회분을 이체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의 상사를 찾아가 계속해서 중간 마진을 떼어주기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한다. 담당자는 처분되고, 계약은 유지되는 악랄한 수법이다.

그런데 이 '함정'에 가담한 결과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진행되는 줄 몰랐던 '나'는 고뇌에 휩싸이고, 이 즈음 다도코로 씨가 자신은 사실 '튀김 사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소네자키의 술수에 말려들어 회사가 날아간 복수를 하기 위해 해커이자 아들에게 부탁해 전산을 위조한 뒤 회사에 잠입한 것이다. 내부에 잠입한 뒤에는 내부망에서 주고받는 메일을 해킹했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갖가지 비리를 알게 된다. 소네자키는 결국 다도코로 씨의 술수로 몰락한다.

여자친구 쿄코는 회사를 그만 둔 나와 소네자키에게 '튀김사원을 활용한 복수 대행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 전쟁관리조합 >

뉴욕에 촬영을 갔다 아파트에 돌아오니 아파트가 여자들로 점령 되어 있었다. 엽총으로 무장한 그녀들은 남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 사회에 전쟁을 선포한 상태였는데, 아파트가 애초 여자들을 위주로 분양한 탓에 주민 중 남자는 '나'와 '늙은이' 두 사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사태를 호전시키려 했지만 '늙은이'는 그녀들이 자멸할 것이라며 가만히 지켜보라고 했다.

얼마 뒤 여자들이 회사에서 입수한 각종 비리정보를 언론을 통해 유출시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론이 이미 남자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라 아무도 받아 써 주지 않은 것이다.

여자들은 내분에 빠져 자멸한다.

< 파견사장 >

파견사원에 이어 파견사장 시장이 활성화 된다. '경영 환경이 복잡화, 다양화의 일로를 걷고 있고, 한 사람의 전능한 리더십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시대가 아니'라는 말에 디자인 회사 사장 야마자키는 홀딱 넘어가고 만다.

파견사장은 한 달에 한 번 바뀌었는데, 그들의 경영방침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어 정사원들이 차츰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파견사원으로 정사원을 대신하면서 견실하게 유지된다.

얼마 뒤, 회사는 파견 사장과 파견 사원만으로 굴러가게 된다. 파견업체는 이 시점에 경영권 마저 교묘한 수법으로 빼앗는다.

< 슈샤인 갱 >

어느 날 길거리에서 앳된 여자애가 다가오더니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구두를 닦는 사이 가슴을 접촉하기도 하고 슬쩍슬쩍 허벅지도 보여준다. 혼미해 있는 사이 구두는 깨끗해 지고 여자애는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는 실직한 '나'를 가차없이 쫓아냈고, '나'는 현재 노숙자나 다름없는 처지다.

이런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여자애는 동업을 제안한다. 다음 날 부터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여자애 옆에서 바람을 잡는다. 여자애는 중년 사내들의 구두를 닦아준 뒤 돈을 천엔에서 이천엔 가량 받는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이들의 사업 아이템을 동네 양아치와 조폭들이 카피하는 바람에 오래 가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 새 서로에게 깊은 정을 느낀 유사 '아빠와 딸'은 다른 사업을 통해 천만엔을 모으자고 다짐한다.

------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서점의 영향력이 큰데 <마루 밑 남자>는 유린도 서점의 한 직원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2007년도에 케이분도 서점 추천 문고 대상으로 뽑힌 덕에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변화하는 가정과 사회를 주제로 하여 '소프트한 스티븐 킹' 풍의 소설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마루 밑 남자>에서 '나'는 가족을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정작 아내는 '나'에게 가족을 외면한다고 말하며 '마루 밑 남자'를 끌어들인다. '아니 그렇다면 돈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는 내 의문에 지하철 역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된 대로 씩씩해서 말입니다. 내 집과 마루 밑 남자를 위해서라면, 억척같이 일하기 시작하죠."

<튀김 사원>에서 '튀김'은 튀김 옷을 입혀 겉만 번드르르 한 상태를 말한다. 가짜 사원이 침투해 한 회사를 몰락시키는 과정이 다소 현실성 없이 전개되지만 나름의 유쾌한 맛이 있다.

<전쟁관리조합>은 남성 헤게모니에 대항해 일어선 여성들의 투쟁이 대자적 반대 입장에 머무는 한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정당성 자체는 올바른 문제의식인데 작가는 이를 잘 풀어나가기 보다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처리하고 있다.

<파견사장>은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시장질서를 무자비하게 재편해 '플랫폼' 외에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요즈음을 날카롭게 예견하는 작품이다. '파견'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노동자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부속품처럼 여긴 사회가 치뤄야 할 댓가는 '안전'과 '안정'이다.

<슈샤인 갱>은 단독으로 장편을 만들어도 꽤 재밌을 것 같은 내용이다.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람에게서 위로받는 과정도 마음에 들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투쟁이 승리로 귀결되길 바라는 마음도 적절하게 투사되어 따뜻한 울림을 자아낸다.

대전에서 소방안전 교육 받는 네번 째 날 재미있게 읽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133525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김소진 문학전집 5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1.자로 소방안전관리자에 선임되는 바람에 일주일간 대전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주차난이 심각해서 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줄여 나가면 8시 이전에 한국소방안전원 대전충남지사에 도착한다. 그때부터 한시간 가량 책을 읽고, 오전 수업을 마치면 바로 맞은 편 골목에 있는 한식부페에 가서 잽싸게 점심을 먹는다. 음식은 짜고, 반찬은 부실하다. 그래도 가장 빨리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든다. 다시 강의실로 돌아오면 한 시간 가량 시간이 비는데 다시 책을 읽는다. 재미가 쏠쏠하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는 작가가 타개하기 1년 전인 96년에 발간되었으며, 90년 중반의 세태를 가볍게 그린 꽁트집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거개가 샐러리맨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로, 시트콤에 나올 법한 에피소드들이 전개된다. <전원일기>의 도시 버전 쯤이라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 하다. 
엉뚱한 장소에서 낯익은 가족이나 이웃을 만나고, 거기서 오해가 시작되며,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커지지만, 종장엔 오해가 풀리면서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된다, 는 식이다. 가벼운 이야깃거리들 사이사이 작가의 시대인식과 세태평들이 가볍게 녹아들어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10757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쉬 러브스 유 - 도쿄 밴드 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7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밴드왜건> 발매 후 독자들의 후속편 출간 요청이 쇄도하자 쓰여진 작품이다.

전편 줄거리 참조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396253449

이번 <쉬 러브스 유>에서도 성불하지 못한 훗타 사치가 화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겨울'은 이웃에 사는 대학생이 <고사류원>이라는 60권 짜리 백과사전을 팔면서 시작된다. 메이지 시대에 발매된 이 백과사전은 꽤나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기 때문에 고서점 당주 칸이치 영감은 10만엔에 사들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 한 권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속지를 파내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숨겼던 것도 같았다.

한편, 이 즈음 서점과 함께 경영하는 카페에 어린 여성이 아이를 두고 달아나는 사건도 벌어진다.

두 번재 에피소드 '봄'은 아내의 유품이라면서 헌책 50권을 판매한 사내가 매일 매일 헌책방에 변장을 하고 돌아와 한 권씩 되사가는 이야기이다. IT 기업 사장이면서 아이코를 사랑하는 후지시마의 아픈 과거도 곁들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 '여름'은 집안의 막내 켄토와 카요가 친척 집에 놀러갔다가 어떤 할머니로부터 고서적을 받아 오면서 시작된다. 칸이치 영감은 고서적을 보고 '유령이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며 사뭇 심각해지는데... 영감에 따르면 그 서적은 일종의 해적판이었고 60년 세월을 건너온 책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사진에는 칸이치 영감이 <도쿄밴드왜건> 을 배경으로 찍혀 있었다.

네 번째 에피소드 '가을'에서는 훗타 가가 관리했던 소장도서 목록과, 이와 관련한 어두운 과거가 그려진다.

------

다소 어두운 과거를 조금 채색하긴 했지만 역시나 기본적으로 작품의 성향은 대가족이 나오는 농촌 소설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삶은 기본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작가의 막연한 기대가 투영된 느낌이라고 할까.

'겨울' 에피소드의 파인 홈에는 이만엔 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다. 대학생은 헌책을 팔기 전 골동품 가게에 먼저 들렀었는데 거기서 오래된 지폐는 슬쩍하고 책은 <도쿄밴드왜건>에 팔라고 되돌려준 것. 아이를 두고 도망간 여자는 책을 판매한 대학생의 동생으로 친정어머니에게 사기를 쳐 돈을 우려낸 남편을 피해 잠깐 몸을 피한다는 것이 아이를 두고 간 것이다. 남편이 야쿠자에게 협박 당하는 것은 헌책방 남자들의 지인이 어찌어찌 처리해준다.

'봄' 에피소드의 책을 되사가는 노신사는 전직 형사로, 와세다 대학 출신 작가들의 책을 사들이는 것을 일종의 공양으로 생각했던 아내의 유지를 이어가려고 책을 한 권씩 되샀던 것이다. 상당한 편법임에도 나름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변장을 하고 헌책방에 간 것.

'여름' 에 등장하는 '유령'은 칸이치 영감의 여동생. 60년 전 미군과 결혼해 의절했던 동생이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가을' 에피소드에서 작품은 풀어 두었던 여러가지 떡밥을 회수하는데 아이코와 머독이 결혼하고, 아미와 스즈미가 아이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영국인 머독이의 부모가 일본까지 쫓아와 '결혼할 여식을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예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들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아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은 굳이 넣었어야 했을까 싶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097709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비 샤워
야마다 아카네 지음, 최선임 옮김 / 작품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내'가 컴퓨터를 켜고 디지털 비디오디스크에 담긴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시작된다. 영상을 만든 사람은 교코씨인데, 화자에겐 어머니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좀 애매한 존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냅사진은 생일 케이크를 앞두고 여럿이 모여앉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엄마인 미소노, 할아버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인 초로의 남자, 그리고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인 법적인 아버지가 찍혀있다.

소설은 이렇듯 기묘한 가족 구성원들의 과거를 추적한다.

미소노는 마흔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친구인 교코에게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미소노는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코는 '누구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인지' 묻는데, 이에 대해 미소노는 '누구의 아이이건 상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불륜 상대인 중국인 '장'의 아이를 갖고 싶긴 하지만 그가 오케이 할지 어떨지는 모른다. 얼마 뒤 미소노는 자신의 결심을 '장'에게 털어 놓는데, '장'은 여러가지 어른스러운 이유를 대며 거부 의사를 밝힌다.

교코 역시 가정이 있는 조명기사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결혼이나 아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교코가 자궁경부암 의심 진단을 받는데, 교코는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남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지금껏 관계했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그 중 누가 자신에게 암 발병 원인을 제공했는지 밝혀내고 싶어한다.

한편, 그 즈음 교코가 프랑스에서 잠시 호감을 느꼈던 '다-' 라는 중년 남성이 귀국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당시 교코와 육체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교코가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뒤 미소노, 교코, '다-'는 함께 바닷가로 이주해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가 지금은 사망한, 의절했던 어머니가 아주 오래전에 보낸 편지를 받게 된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 그 날, 뜻하지 않게 '다-'가 생애 처음으로 이성과 잠자리를 갖게 된다. 상대는 미소노였다.

셋이 사는 집으로 육개월 전 아주 잠깐 관계를 맺었던 미소노의 연하 남자친구 츠요시가 찾아온다. 츠요시는 '프랭크 자파'를 떠올리며 쿨한 남자가 되기로 결심, 미소노와 결혼한다.

이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사진이 찍히게 된 경위이다.

------

역사상 인류는 여러가지 결혼 형태를 만들어냈다. 일부일처제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결혼 형태이기 때문에 가장 장려되는지도 모른다. 한 명이 성인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양육을 일부일처제로 이루어진 가족 단위가 책임지게 되니 양육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고, 사유재산의 상속에 있어서도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적으니 윤리적이라며 장려될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일부일처제, 이성애 라는 기존의 가치관과 도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엄마라는 것은 쿠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엄마가 되는 쿠폰?"

"미소노가 모처럼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했잖아. 마치 엄마가 되는 쿠폰을 가지고 있어서 기한 전에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쿄코는 임신과 육아를 감히 '쿠폰'에 비유하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가 하면,

갑자기 교코는 깨달았다. 단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를...... '나' 이외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 '내'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의 대가가 '엄마'라니......

라며, 엄마가 되는 것은 곧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자기인식을 토로한다.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동성애자이자 할아버지뻘인 '다-', 법적 아버지이지만 아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한참 연하의 츠요시, 아버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그저 아이를 낳고 싶었던 미소노, 그리고 남성적인 분야에서 한 사람 몫을 편견없이 해내고 싶었던 자주적인 성격의 쿄코가 이룬 기묘한 가족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성공하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주변사람이 기준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해탈한 존재일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야마다 아카네는 밝은 미래를 그려보이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 '다른사람'도 이들이 만든 기묘한 가족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 또한 새로운 기준이 되지 않겠냐는 듯이...

** '베이비 샤워'는 임신 8개월경에 임부를 둘러싸고 열리는 여자들만의 파티를 말한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08643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