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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샤워
야마다 아카네 지음, 최선임 옮김 / 작품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내'가 컴퓨터를 켜고 디지털 비디오디스크에 담긴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시작된다. 영상을 만든 사람은 교코씨인데, 화자에겐 어머니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좀 애매한 존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냅사진은 생일 케이크를 앞두고 여럿이 모여앉아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엄마인 미소노, 할아버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인 초로의 남자, 그리고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인 법적인 아버지가 찍혀있다.
소설은 이렇듯 기묘한 가족 구성원들의 과거를 추적한다.
미소노는 마흔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친구인 교코에게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미소노는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코는 '누구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인지' 묻는데, 이에 대해 미소노는 '누구의 아이이건 상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불륜 상대인 중국인 '장'의 아이를 갖고 싶긴 하지만 그가 오케이 할지 어떨지는 모른다. 얼마 뒤 미소노는 자신의 결심을 '장'에게 털어 놓는데, '장'은 여러가지 어른스러운 이유를 대며 거부 의사를 밝힌다.
교코 역시 가정이 있는 조명기사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결혼이나 아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교코가 자궁경부암 의심 진단을 받는데, 교코는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남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지금껏 관계했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그 중 누가 자신에게 암 발병 원인을 제공했는지 밝혀내고 싶어한다.
한편, 그 즈음 교코가 프랑스에서 잠시 호감을 느꼈던 '다-' 라는 중년 남성이 귀국한다. 그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당시 교코와 육체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교코가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뒤 미소노, 교코, '다-'는 함께 바닷가로 이주해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가 지금은 사망한, 의절했던 어머니가 아주 오래전에 보낸 편지를 받게 된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 그 날, 뜻하지 않게 '다-'가 생애 처음으로 이성과 잠자리를 갖게 된다. 상대는 미소노였다.
셋이 사는 집으로 육개월 전 아주 잠깐 관계를 맺었던 미소노의 연하 남자친구 츠요시가 찾아온다. 츠요시는 '프랭크 자파'를 떠올리며 쿨한 남자가 되기로 결심, 미소노와 결혼한다.
이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사진이 찍히게 된 경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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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인류는 여러가지 결혼 형태를 만들어냈다. 일부일처제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결혼 형태이기 때문에 가장 장려되는지도 모른다. 한 명이 성인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양육을 일부일처제로 이루어진 가족 단위가 책임지게 되니 양육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고, 사유재산의 상속에 있어서도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적으니 윤리적이라며 장려될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일부일처제, 이성애 라는 기존의 가치관과 도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엄마라는 것은 쿠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엄마가 되는 쿠폰?"
"미소노가 모처럼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했잖아. 마치 엄마가 되는 쿠폰을 가지고 있어서 기한 전에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쿄코는 임신과 육아를 감히 '쿠폰'에 비유하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가 하면,
갑자기 교코는 깨달았다. 단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를...... '나' 이외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 '내'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의 대가가 '엄마'라니......
라며, 엄마가 되는 것은 곧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자기인식을 토로한다.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동성애자이자 할아버지뻘인 '다-', 법적 아버지이지만 아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한참 연하의 츠요시, 아버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그저 아이를 낳고 싶었던 미소노, 그리고 남성적인 분야에서 한 사람 몫을 편견없이 해내고 싶었던 자주적인 성격의 쿄코가 이룬 기묘한 가족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성공하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주변사람이 기준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해탈한 존재일 것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야마다 아카네는 밝은 미래를 그려보이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 '다른사람'도 이들이 만든 기묘한 가족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 또한 새로운 기준이 되지 않겠냐는 듯이...
** '베이비 샤워'는 임신 8개월경에 임부를 둘러싸고 열리는 여자들만의 파티를 말한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08643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