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마루 밑 남자 >

어느 날 아내가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아내가 피곤한 탓이라며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피곤한 것은 '나'였다. 아내가 무리해서 교외에 집을 사자고 하는 바람에 편도 세 시간 가까이 출퇴근 해야 했고, 회사 내 입지도 좋지 못했다.

얼마 뒤 '나' 역시 집에서 누군가를 발견한다. 머리가 긴 선인풍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나'를 발견하고도 놀라지 않았고, 신문을 조용히 정리한 뒤 마룻바닥 밑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마루 밑 남자'와 점차 친밀한 관계가 된다. 그러더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내'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고 힐난하더니 급기야 집에서 쫓아낸다.

잘 곳이 없어 전철역 부근으로 가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처럼 집을 빼앗긴 사람이 많다면서 하루 빨리 '나'도 다른 집 빼앗을 궁리나 하라고 충고한다.

< 튀김 사원 >

밤 늦도록 잔업을 해서 친 보고서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린다. 옆에 앉은 다도코로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컴퓨터 코드를 건드린 탓이다. 한껏 짜증이 났지만 험하게 응대하진 않는다. 다도코로 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오십대에 컴퓨터도 잘 못 다루는 일개 평사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어찌된 일인지 과장은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실적에 쫓겨 회사의 주류 실력자 소네자키 전무의 '함정' 테크닉에 관여한다. '함정' 테크닉이란 이렇다. 거래할 회사 담당자에게 뒷돈을 주기로 하고 계약을 성사시킨 뒤 1회분 몫을 이체한다. 얼마 뒤 2회분을 이체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의 상사를 찾아가 계속해서 중간 마진을 떼어주기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한다. 담당자는 처분되고, 계약은 유지되는 악랄한 수법이다.

그런데 이 '함정'에 가담한 결과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진행되는 줄 몰랐던 '나'는 고뇌에 휩싸이고, 이 즈음 다도코로 씨가 자신은 사실 '튀김 사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소네자키의 술수에 말려들어 회사가 날아간 복수를 하기 위해 해커이자 아들에게 부탁해 전산을 위조한 뒤 회사에 잠입한 것이다. 내부에 잠입한 뒤에는 내부망에서 주고받는 메일을 해킹했고, 이를 통해 직원들의 갖가지 비리를 알게 된다. 소네자키는 결국 다도코로 씨의 술수로 몰락한다.

여자친구 쿄코는 회사를 그만 둔 나와 소네자키에게 '튀김사원을 활용한 복수 대행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 전쟁관리조합 >

뉴욕에 촬영을 갔다 아파트에 돌아오니 아파트가 여자들로 점령 되어 있었다. 엽총으로 무장한 그녀들은 남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 사회에 전쟁을 선포한 상태였는데, 아파트가 애초 여자들을 위주로 분양한 탓에 주민 중 남자는 '나'와 '늙은이' 두 사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사태를 호전시키려 했지만 '늙은이'는 그녀들이 자멸할 것이라며 가만히 지켜보라고 했다.

얼마 뒤 여자들이 회사에서 입수한 각종 비리정보를 언론을 통해 유출시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론이 이미 남자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라 아무도 받아 써 주지 않은 것이다.

여자들은 내분에 빠져 자멸한다.

< 파견사장 >

파견사원에 이어 파견사장 시장이 활성화 된다. '경영 환경이 복잡화, 다양화의 일로를 걷고 있고, 한 사람의 전능한 리더십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단순한 시대가 아니'라는 말에 디자인 회사 사장 야마자키는 홀딱 넘어가고 만다.

파견사장은 한 달에 한 번 바뀌었는데, 그들의 경영방침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어 정사원들이 차츰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파견사원으로 정사원을 대신하면서 견실하게 유지된다.

얼마 뒤, 회사는 파견 사장과 파견 사원만으로 굴러가게 된다. 파견업체는 이 시점에 경영권 마저 교묘한 수법으로 빼앗는다.

< 슈샤인 갱 >

어느 날 길거리에서 앳된 여자애가 다가오더니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구두를 닦는 사이 가슴을 접촉하기도 하고 슬쩍슬쩍 허벅지도 보여준다. 혼미해 있는 사이 구두는 깨끗해 지고 여자애는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는 실직한 '나'를 가차없이 쫓아냈고, '나'는 현재 노숙자나 다름없는 처지다.

이런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여자애는 동업을 제안한다. 다음 날 부터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여자애 옆에서 바람을 잡는다. 여자애는 중년 사내들의 구두를 닦아준 뒤 돈을 천엔에서 이천엔 가량 받는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이들의 사업 아이템을 동네 양아치와 조폭들이 카피하는 바람에 오래 가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 새 서로에게 깊은 정을 느낀 유사 '아빠와 딸'은 다른 사업을 통해 천만엔을 모으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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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서점의 영향력이 큰데 <마루 밑 남자>는 유린도 서점의 한 직원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2007년도에 케이분도 서점 추천 문고 대상으로 뽑힌 덕에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변화하는 가정과 사회를 주제로 하여 '소프트한 스티븐 킹' 풍의 소설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마루 밑 남자>에서 '나'는 가족을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정작 아내는 '나'에게 가족을 외면한다고 말하며 '마루 밑 남자'를 끌어들인다. '아니 그렇다면 돈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는 내 의문에 지하철 역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란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된 대로 씩씩해서 말입니다. 내 집과 마루 밑 남자를 위해서라면, 억척같이 일하기 시작하죠."

<튀김 사원>에서 '튀김'은 튀김 옷을 입혀 겉만 번드르르 한 상태를 말한다. 가짜 사원이 침투해 한 회사를 몰락시키는 과정이 다소 현실성 없이 전개되지만 나름의 유쾌한 맛이 있다.

<전쟁관리조합>은 남성 헤게모니에 대항해 일어선 여성들의 투쟁이 대자적 반대 입장에 머무는 한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정당성 자체는 올바른 문제의식인데 작가는 이를 잘 풀어나가기 보다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처리하고 있다.

<파견사장>은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시장질서를 무자비하게 재편해 '플랫폼' 외에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요즈음을 날카롭게 예견하는 작품이다. '파견'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노동자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부속품처럼 여긴 사회가 치뤄야 할 댓가는 '안전'과 '안정'이다.

<슈샤인 갱>은 단독으로 장편을 만들어도 꽤 재밌을 것 같은 내용이다.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사람에게서 위로받는 과정도 마음에 들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투쟁이 승리로 귀결되길 바라는 마음도 적절하게 투사되어 따뜻한 울림을 자아낸다.

대전에서 소방안전 교육 받는 네번 째 날 재미있게 읽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13352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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