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심판 1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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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성이 외딴 집에서 쓰러진다. 예레미아 스미트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의식을 잃기 직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 당직의 모니카가 남성의 집에 도착한 뒤 심폐소생술을 위해 그의 윗옷을 풀어 헤쳤는데, 그의 가슴에 "나를 죽여라" 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모니카는 '금색 가죽 끈이 달린 빨간색 롤러스케이트'를 발견한다. 그 스케이트는 살해된 쌍둥이 동생 테레자의 것이었다. 모니카는 연쇄살인마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상황이다.

소설은 여러가지 사건이 연이어 나오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구성으로 목차에 유의해서 읽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일단 산드라 라는 여형사와 그의 남편 다비드의 이야기가 있다. 다비드는 르포 사진작가였는데 6개월 전 사고로 사망한다. 하지만 인터폴 형사 샬버라는 사람이 산드라에게 남편의 사망은 단순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함에 따라 산드라가 다비드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자놀이에 흉터가 있는 사람(마르쿠스, 사면관)과의 접점이 생긴다.

다음으로, 과거의 미해결 사건들이 등장한다. 미해결 사건의 피해자에게 누군가가 진범을 알려주는데, 사면관의 소행으로 보인다. 일단 사건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사건은 소설 초입에 등장하는 응급실 당직의 모니카가 복수 기회를 맞게 되는 사건이다. 모니카는 그 순간에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고 그를 살려낸다.

두번째 사건은 여성이 불륜남과 함게 침실에서 살해된 사건이다. 문제는 여성이 살해된 뒤 어린 아들이 한 집에서 이틀 간 시체와 함께 생활했다는 점이다. 아들은 장성한 뒤 범인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현장에 남겨진 EVIL이라는 글자와, 삼각형 모양의 표식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 누군가 접근해서 범인은 아버지 귀도 알티에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들은 아버지를 쏘아 죽이고 복수를 한다.

세번째 사건은 가위로 여성들을 살해해서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인공 피가로의 이름을 부여받은 사건이다. 범인은 하반신 마비를 가장한 피해자의 오빠였다. 이 사건은 허위자백자가 범인이 되어 복역중이었는데, 뒤늦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피에트로 치니에게 누군가 진범을 알려주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장님이 된 피에트로 치니는 피가로를 집으로 유인한 뒤 전기를 끊어 어둠 속에서 그를 살해한다.

네번째 사건은 외과의사와 조직폭력배가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뒤 심장을 자신의 손자에게 이식한 사건이다. 역시 누군가가 아이의 어머니에게 범인을 제보하고 어머니는 복수를 위해 나서지만 사면관 마르쿠스의 설득으로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면관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교황청 내사원 소속으로 12세기경 조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해를 통해 알게된 죄들 중 Culpa Gravis(대죄)에 해당하는 건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다.

네 건의 살인의 진범을 알려준 사람은 바로 예레미아 스미트이며, 그 역시 사면관 중 한 명이었다. 응급실 당직의에게 진범(자신)을 제공하는 것 역시 예레미아 스미트 자신이다. 석시닐콜린을 스스로 주사하고, 가슴에는 '날 죽여라' 라는 문신을 세겨 피해자인 응급의에게 복수 기회를 제공했는데 예상과 달리 응급의는 그를 살려낸 것.

이상 네 가지 사건은 액자 속 이야기이고(현재) 마르쿠스라는 사면관과 카멜레온 살인자의 이야기(지난 1년간)가 액자 바깥 이야기이다. 산드라와 다비드, 샬버의 이야기는 추적자와 액자 바깥 이야기를 이어주기 위한 사이드 에피소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추적자 역시 사면관인데 카멜레온 살인자를 추적한다. 카멜레온 살인자는 우크라이나에서 디마라는 소년을 최초로 죽이면서 살인에 빠져든다. 그는 살해한 사람을 완벽하게 카피해 신분을 탈취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살해하고 신분을 탈취한 사람이 마르쿠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으면서 카멜레온 복제 이전의 삶을 모두 잊고 자신을 마르쿠스라는 현재 모습만 기억하면서 살게 된 것이다.

한편 인터폴의 샬버형사의 정체가 추적자이며 그 역시 카멜레온 능력을 가진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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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톨릭은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고(고해) 이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 구조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시스템에 착안하여 쓰여진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역사상 가장 많은 범죄기록을 보유한 곳이 어디인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만약 고해성사를 통해 알게된 범죄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면 아마도 바티칸일 것이다.

그런데 고해를 한다고 모든 죄를 사해주는 권능이 신부에게 주어진 것이 맞을까? 여기서 내사원이라는 조직이 등장하고, Culpa Gravis(대죄)에 대해서는 개입하여 해결을 한다는 설정이 나온다.

문제는 사면관들이 악을 접하고, 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도 경계선 너머로 끌려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때문에 소설에서는 현재 공식적으로 내사원이 해체되었다는 설정이다.

한편 고해 시스템에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죄를 지은 후 기억을 상실한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고해를 하려해도 죄 지은 기억이 사라져버려 그게 불가능하다면 '죄 지은 후 기억상실'은 곧 지옥행 100% 당첨이다.

어쨌든 소설은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잔기교의 남발, 복잡한 구성으로 난잡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건 해결 과정도 너무 작위적이어서 '이렇게 까지 꼬아야 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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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속의 여자 - 포켓북 한국소설 베스트
이순원 지음 / 일송포켓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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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겨울, 화자 은수는 강릉에 살았다. 아버지가 한량처럼 밖으로 떠돌았으므로 어머니가 집안 단속을 했다. 그래도 집안에 돈은 좀 있어서 밥 먹고 사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은수 집 일을 도와주는 기숙이네 언니가 시집가기 전날이었다. 가마꾼으로 나선 동네 총각들이 은수 집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그네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화투를 쳐가며 밤을 세웠다. 그러다 트럭 운전 하는 운래가 노은집이라는 처녀를 데려왔다. 운래는 그녀를 구슬러 욕구만 채운 뒤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나머지 사내들도 그녀를 윤간했다. 은수는 이 모든 것을 옆방에서 소리죽여 보게 되었다.

1978년 겨울, 은수는 '특자'로 전방 배치 되었다. 시위에 참여한 탓에 강제징집 당한 것이다.

동계훈련 중 대대장이 시찰을 나왔는데 황중사가 다방 여자를 섭외해 대대장 텐트에 집어 넣어 주었다. 은수는 보르헤르트의 <맑고도 맑은 눈> 때문인지, 아니면 다방여자의 존재가 드러나길 바랐는지, 보초를 서다 공중에 대고 총을 쏘았다.

은수가 오발사고를 일으킨 벌로 헌병대 영창을 다녀오니 '애인이 면회를 왔다 갔다'고 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온 '애인'은 어렸을 적 옆집 살던 기숙이었다. 기숙이는 서울에서 시다 살이를 하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아버지 병원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나이 든 남자의 후처로 일본에 팔려가는 길이었다.

기숙은 어렸을 적 동경했던 은수를 마지막으로 보고 들어가면 일본에서의 삶을 좀 더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88년 겨울, 은수는 은행 사보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권위주의 국가의 검열이 사보에까지 미쳐 일은 재미 없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바야흐로 남한 땅은 감추어져 왔던 성적 쾌락과 부도덕이 공개적으로 허용된 '로코코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았다.

바로 그 시기에 서른 넷의 기숙이 돌아온다. 남편이 죽고, 꽤 많은 유산을 받은 기숙은 서울에 엠파이어 클럽이라는 술집을 냈는데 개업식 전날 나를 초대한 것이다.

기숙은 담담하게 일본에서의 생활, 아버지 병수발한 일, 동생 사고친 문제 들을 이야기했다. 기숙이는 그러다 어렸을 적 은수가 공장으로 가는 기숙이를 바래다 주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은수는 그때 기숙이에게 공장에 심을 고향 잔디를 떠 주었고, 기숙이는 500원을 나에게 주면서 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큰돈이라면 큰돈이었는데 기숙이는 은수가 그 돈으로 책도 사보고 했으면 싶었던 것 같다.

기숙이는 고단한 생활을 견디기 위해 은수를 생각하곤 했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돌려 이야기했다.

1998년 겨울, IMF가 몰아친 남한 땅에서 은수는 전업 작가가 되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기숙이는 기숙이대로 시집을 가서 강릉집이라는 식당을 차렸는데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었다.

그 집에서 고교 동창회를 하던 중 아르바이트생이 은수의 명함을 받아가더니 얼마 뒤 작업실로 찾아왔다.

여자애는 노골적으로 성을 팔 눈치를 비췄지만 안될 말이었다. 여자애는 운래형의 딸이었다. 여자애를 혼내고 작업실에 하룻밤을 재운 뒤 돈을 주어 보내려니 그제서야 여자애가 술에 취해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가출한 뒤 주유소에서 일한 일, 주유소에서 남자애들 세 명한테 윤간 당한 일, 그 뒤로 되는 대로 몸을 주면서 돈을 얻어쓴 일 들을.

은수는 1968년 겨울 노은집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떠올린다. 램프 불빛 아래에서 상처입은 몸을 닦고 방에 들어올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떠나가던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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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순수>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을 손을 보아 <램프 속의 여자>로 다시 내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1968년 부터 1998년 까지 10년 단위로, 눈 내리는 어느 겨울 저녁 눈 속의 외롭고 슬픈 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온 각 시대의 성의 사회사를 탐구하여 시대의 이면을 살펴보고 성 의식 변화를 추적하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한다.

노은집, 기숙, 운래의 딸은 모두 비슷비슷한 길을 걷는다. 남자들에게 윤간당하거나, 성을 팔아 아버지와 남동생 뒤치닥거리를 하거나. 그들은 한여름 햇빛 아래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겨울 램프 불빛 속의 희부윰한 존재이다.

그런 여성들을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은 은수같은 인텔리겐차가 아니라, '정기옥', '금초' 따위의 글자밖에 쓰지 못하는 우직한 욱태 아저씨거나, 은수가 말을 걸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해주는 현재의 기숙 남편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저런 클리셰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진지함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역량 덕분에 소설은 몰입도 있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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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지음, 안종설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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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 앤드류 웨스틀리는 신문사 <크로니클>의 기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환희' 교회라는 다소 의심스러운 단체를 취재 중이었다. 단체의 창시자는 패트릭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었고, 동시양처(bilocation)의 기적을 행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즈음 앤드류에게 한 제보자가 <마술 비법>이라는 책을 보낸다. 지은이는 알프레드 보든이었고, 앤드류의 증조부였다. 그는 新순간이동 마술의 창안자로, 무대에서 '드 프로세서 드 라 마지' 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술사였다.

앤드류는 제보자인 캐서린 앤지어를 찾아가 직접 만나 보기로 한다. 대저택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캐서린은 앤드류에게 자신이 19세기말 유명했던 마술사 루퍼트 앤지어, 무대명 그레이트 당통의 손녀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과 앤드류가 어렸을 적 한번 만난 적이 있다는 말도 했다.

앤드류는 어렸을 적 기억이 희미했다. 다만 자신에게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이 믿음과 과거의 만남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마술 비법>과 일기들, 그리고 과거 캐서린과 만났다는 기억을 더듬어 가는 사이 앤드류는 수상한 종교단체 보다 더욱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두 마술사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진짜 사건은 액자 속 이야기에 등장한다.

마술사 알프레드 보든(드 프로세서 드 라마지)과 루퍼트 앤지어(그레이트 당통)는 마술에 입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불미스러운 일로 엮이게 된다.

루퍼트 앤지어는 이런저런 마술 기교로 강령술을 진행하고 돈을 받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알프레드 보든이 자신의 친척에게 강령술을 하고 있는 루퍼트 앤지어를 발견하고 괘씸하게 여겨 판을 깨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루퍼트 앤지어어의 아내 줄리아가 유산을 하고 만다. 루퍼트 앤지어는 알프레드 보든에게 뼛 속 깊은 원한을 품게 되고, 그의 마술 공연장을 찾아다니면서 관객들에게 마술 비밀을 큰소리로 외쳐버린다.

이후 둘은 원수가 되어 상대편 마술 비법을 알아내게 되면 여지 없이 복수를 감행했다. 복수를 위한 폭로는 점점 강도가 심해졌고, 나중에는 물 속 탈출 마술을 중간에 방해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도 일어난다.

이런 이유로 둘은 절대로 알아 차릴 수 없는 궁극의 마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둘의 기술이 여타 마술사들을 능가하게 되어 시대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런 경쟁 구도에 1차 마침표를 찍게 된 마술이 등장하는데, 바로 알프레드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이었다. 캐비닛 하나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다른 캐비닛에서 등장하는 알프레드 보든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루퍼트 앤지어는 미인계까지 동원한다. 하지만 그가 듣게 된 비밀은 쌍둥이를 활용했다는 것이었는데 , 진실 여부를 떠나 쌍둥이가 없는 루퍼트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때 루퍼트 앤지어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저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였다. 루퍼트 앤지어는 니콜라 테슬라에게 순간이동 장치를 제작 의뢰하고 마침내 장치가 완성되자 전무후무한 이동 마술을 완성하게 된다.

이번엔 알프레드 보든이 루퍼트 앤지어의 이동 마술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별 수를 써도 마술 비법을 알아낼 수 없었던 알프레드 보든이 마침내 무대 뒤편으로 침입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기장치를 건드린다. 테슬라 장치가 중간에 꺼져버린 탓에 루퍼트 앤지어는 두 개의 몸을 가지게 되고, 이 사건 이후 루퍼트 앤지어는 활기를 잃고 점차 시들어간다. 루퍼트 앤지어는 자신의 한쪽을 사망처리한 뒤 알프레드 보든을 살해하고 자신의 긴 복수에 막을 내리고자 한다. 하지만 막상 살해 기회를 잡게 되었을 때 그를 죽인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복수를 중단한다.

100년 전 두 명의 위대한 마술사 이야기를 추적한 끝에 앤드류는 자신이 캐서린과 만난 날 순간이동 마술 장치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고 확신했던 기억은 바로 순간이동 이후 남게되는 외피(프레스티지) 때문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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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 하면 위신, 명성 등의 의미로 주로 번역되고 차량 등급을 나타내는 단어 정도로 접하기 쉬운데 소설 속에서는 '마술', '속임수', '속임수의 결과물' 등으로 쓰인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는 1943년 영국 출신으로 본래 회계사였으나 1966년 SF 소설 <The Run>을 발표하며 데뷔한 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세 번째 장편인 <역전된 세계 The Inverted World>가 영국SF협회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하고 호평을 들으며 문단에 이름을 널리 알렸고, 1980년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4년 <매혹 The Glamour>로 독일 쿠르트 라스비츠상 최우수 장편 부문 수상, 본작 <프세스티지 The Prestige>로 월드 판타지 어워드,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프라이즈 등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아이디어와 절묘한 구성으로 대중과 평단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본 작품은 2006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을 주연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설정 자체가 소설과는 많이 다르지만 영화적 효과를 위한 각색이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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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유령
밀로스 포먼.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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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계몽군주 카를로스 3세가 30년간의 통치를 끝내고 1788년 사망하자 카를로스 4세가 제위에 올랐다. 아버지와 달리 그는 우유부단했다.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황제 카를로스 4세 치하에서 스페인 제국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한편 프랑스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물결은 거세게 유럽을 강타했다. 스페인은 볼테르, 흄, 루소, 몽테스키외를 금지했고, 이를 어겼을 경우 벌금과 수감형을 부과했다. 종교 역시 변화를 거부했다. 교회는 종교재판소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했고, 이에 따라 이단 재판이 부활했다.

1793년, 프랑스 왕이자 카를로스 4세의 사촌인 루이 16세가 길로틴에서 처형된다. 왕조의 신성한 이미지는 파괴되고, 합리주의 정신은 흑사병처럼 스페인 전역에 퍼져 나갔다.

소설은 이러한 시기를 배경으로 화가 고야가 지켜본 스페인을 그려내고 있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는 1746년생으로 낭만주의와 로코코 시대에 걸친 화가이다.

소설 속 고야에게는 두 명의 의뢰인이 있었다. 한 명은 종교재판소의 로렌조 카사마레스였다.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으로 합리주의 물결에 맞서 종교재판소의 권위 회복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다른 한 명은 토마 빌바투아라는 장사꾼이었는데, 그에게는 이네스 빌바투아라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네스 빌바투아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고야는 그녀가 자신의 뮤즈임을 알게 된다. 고야가 그리는 모든 이상적인 여성과 천사들의 얼굴은 이네스 빌바투아의 얼굴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네스 빌바투아는 성년이 되기도 전에 식당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끌려가게 된다. 손을 뒤로 결박하고 들어올리는, 심플하면서도 고통을 주는 데 있어서는 매우 효과적인 고문에 못 이긴 이네스 빌바투아는 자신이 유대교를 믿는 이교도라 자백하고 만다.

토마 빌바투아는 종교재판소의 로렌조 카사마레스가 이네스 체포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야를 통해 그를 저녁에 초대한 토마는 딸을 석방해 달라고 로렌조에게 탄원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마는 '자신의 딸이 이교도인지 어떻게 확신하느냐' 물었고, 로렌조는 '고문을 통해 알아냈다고, 그녀가 진정 이교도가 아니었다면 고문을 이겨냈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에 격분한 토마는 아들과 일꾼을 시켜 로렌조를 고문한다. 로렌조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자신이 '침팬지와 오랑우탄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이라는 자필 고백문을 작성한다.

이 사건이 종교재판소 수장인 그레고리오의 귀에 들어가 토마는 종교재판소에서 축출 당한다. 믿음의 순수성을 삶의 근간으로 삼았던 그는 절망한 채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그곳에서 나폴레옹의 사상에 심취한다. 그리고 황제에 올라 스스로를 배신한 나폴레옹의 나팔수가 되어 침략 프랑스군과 함께 스페인으로 되돌아 온다. 떠나간 지 15년 만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감옥에서 로렌조의 아이를 낳은 뒤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이네스 빌바투아도 풀려난다.

이네스는 고야를 찾아가 딸을 찾아달라고 간청한다. 고야는 이제 권력자가 된 로렌조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로렌조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 딸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신대륙에 팔아넘기려 한다.

1812년, 영국의 웰링턴이 마드리드에 입성하고 페르난도 7세가 돌아오면서 스페인은 또 다시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로렌조는 프랑스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되고, 이네스는 한 창부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착각하면서 키운다. 이네스와 로렌조의 딸 알리시아는 창부 노릇을 하다 영국군 장교의 부인이 된다.

고야는 청각을 잃은 채 폭력과 광기, 혼란이 지배했던 스페인을 조용히 화폭에 담았다. 팔거나 전시할 목적도, 그럴 수 있는 성격도 못 되는 그 그림과 판화들은 음울하고, 악마적이며, 고통에 가득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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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로 우리에게 익숙한 밀로스 포만이 감독하고 하비에르 바르뎀(로렌조), 나탈리 포트만(이네스, 알리시아), 스텔란 스카스가드(고야)가 주연한 영화 <고야의 유령>과 동시에 발표된 소설 작품이다.

소설을 쓴 장 클로드 카리에는 소설가 보다는 시나리오와 각색으로 유명한데 <프라하의 봄(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양철북> 등의 영화 각색 시나리오가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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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들의 성야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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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헨미 유스케, 통칭 보안(보헤미안) 선배가 '나'와 다카세(다카치)를 불러 포장지에 싸인, 선물로 보이는 물건을 내밀며 '어디서 본 기억이 없는지' 묻는다. 우리들의 기억은 일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 전, '나'는 아쓰키대학에 막 입학한 1학년 학생으로 비사교적인 성격 탓에 혼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12월 24일인 그 날도 숙취에 시달리며 학생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너절하게 수염을 기른 사내가 나타나 대뜸 한 잔 하자고 권했다. 그 너절한 사람이 보안 선배였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학교에서 퀸카로 이름 난 '다카치'도 있었다. 둘은 보안 선배를 기다렸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섯 시간을 훌쩍 넘겨 자리를 뜨려던 순간, 보안 선배가 세 명의 동행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동행한 시기타 교수(가모)의 방바닥이 책 무게를 이기지 못해 꺼지는 바람에 늦었다며 대충 얼버무리고는 나머지 두 명도 소개했는데, 쓰루모토 에리와 도야마 요시히데로 둘은 커플이었다.

술이 조금 들어간 뒤 보안 선배가 느닷없이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서로에게 선물을 해야한다고 우기고, 일행은 학교 근처 스마트인 이라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에서 각자 물건을 사가지고 나온 순간, 그들의 눈 앞으로 한 명의 젊은 여성이 떨어진다. 그들은 투신 자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보안 선배가 내민 '선물로 보이는 물건'은 그 때 당시 투신한 여성이 스마트인에서 사서 포장한 물건으로 투신할 때 함께 떨어진 것 같았다. '나'와 다카치는 이 '선물로 보이는 물건'의 진짜 주인을 찾아주기로 하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그 건물에서는 5년 전에도 중학교 입학을 압둔 우등생이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학생도 스마트인에서 포장한 물건을 가지고 뛰어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도야마 요시히데와 헤어진 쓰루모토 에리와 사귀던 시기타 교수도 같은 건물에서 같은 포장지로 싼 물건을 든 채 투신하는데... 
세 개의 다른 사건은 서로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은 혹시 자살이 아닌 연쇄 살인의 희생자는 아닐까?

나사가 빠진 듯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나(닷쿠)'와, 아버지로 인한 컴플렉스로 남자들에게 한없이 차갑지만 뇌쇄적인 미모의 다카치 콤비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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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사건은 각각 이렇다.

1. 중학생이 들고 뛰어내린 것은 성인잡지이고, 유서는 없었다. 그의 할머니는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서 손자의 내밀한 생활까지 모두 통제하고 싶어했다. 한편, 어머니 역시 자의식이 강하고 바깥으로 보이는 모습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스타일이었다.

2. 작년에 투신한 여성이 들고 뛰어내린 선물은 콘돔. 그녀의 아버지 역시 자녀에 대한 소유욕이 강했다.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진학을 포기한 뒤 우체국에 취직한다.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는데, 약혼자의 직업도 공무원이었다. 한편, 약혼하기 전까지 사귀던 남자가 투신한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3. 가모 교수가 가지고 뛰어내린 물건은 책이다. 그는 한 가지 책을 판형, 초판이나 증쇄 여부 등에 따라 150가지를 모을 정도였는데 책은 그 중 한 권이었다. 그는 책갈피 대신 낙첨된 복권용지를 사용했는데 유독 그 책에는 복권용지가 없었다. 한편, 교수와 사귀던 에리는 이미 헤어진 도야마 요시히데와 최근까지도 만났었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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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쿠 & 다카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닷쿠와 다카치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소개된다. (첫번째 작품은 <그녀가 죽은 밤>, 두번째 작품은 <맥주별장의 모험>이다) 


세 사건은 모두 독립된 사건으로 중학생은 자신의 사생활 마저 통제하려는 할머니에 반발해 할머니를 살해했다고 착각한 뒤 투신한 것이다. 할머니는 그 후 정신 착란에 빠져든다. 


두번째 여성은 이 할머니가 살해한 것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여성을 손자에게 줄 제물로 생각하여 밀어 떨어뜨린 것. 콘돔 역시 할머니가 손자에게 주는 공물.

세번째 가모 교수의 투신 이유는 낙첨되었다고 착각한 당첨 복권 때문. 에리와 야마토 커플은 가모 교수가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책갈피로 사용하자 복권을 빼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가모 교수가 뜻밖에도 보수적인 사람이라 결혼 전에는 잠자리를 하거나 집에서 재우지 않는 바람에 약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교수는 결혼 직전 에리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를 깨닫자 투신하며 비난의 의미로 복권용지가 없는 책을 들고 뛰어내린 것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226299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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