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권남희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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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토토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이 운영하던 일종의 대안학교 '도모에 학원'에 입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토짱은 기존 학교에서 책상 뚜껑을 하루에 100번 이상 열었다 닫았다 하는가 하면,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창가에서 지나가는 친동야(이상한 복장을 하고 악기를 울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선전하는 사람) 아저씨를 부르는 등, 요새라면 ADHD 판정을 받았을 법한 행동을 해서 퇴학 당한다.

엄마는 이런 토토짱을 데리고 지유가오카 역 부근에 있는 도모에 학원에 데리고 가는데 교장 선생님인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은 그런 토토에게 '무슨 얘기든지 좋으니까, 얘기하고 싶은 것 전부' 얘기해 보라고 한다. 토토는 순서도, 말투도 뒤죽박죽이었지만 여러가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4시간이나 걸린 끝에 모든 얘기를 마칠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토토의 얘기를 모두 들어준 뒤 토토의 머리에 크고 따뜻한 손을 올려놓으며 "자, 이제부터 넌 이 학교 학생이다" 라고 입학을 허가해 준다.

도모에 학원은 교문이 나무 두 그루였고, 교실은 전차였다. 학교는 소아마비, 발달장애, ADHD를 가진 아이들도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점심은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온 것'을 싸오도록 했고, 혹시라도 모자라다면 교장선생님의 부인이 채워주었다. 오전 수업은 여러가지 과목 중 좋아하는 과목 먼저 시작해서 자율학습과 선생님의 도움을 병행했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는 등 자연에서 뛰어놀았다.

교가가 없으면 즉석에서 교가를 만들어 보는가 하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모두가 알몸으로 수영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여름방학엔 학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고, 친구들과 다 함께 이즈로 온천여행도 갔다.

토토는 매일 매일 학교가는 것이 즐거웠다. 도모에 학원의 어린이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접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간다.

어린이들은 옷이 찢어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하므로 '가장 허름한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달라는 교장선생님은 학교 운동회도 신체적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 좀 더 유리한 경기들로 구성했기 때문에 가장 키가 작은 다카하시가 다수의 종목에서 일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까지고 평화롭고 즐거울 것만 같았던 토토의 어린 시절은 소아마비를 갖고 있는 친구 야스아키의 죽음, '조센징'이라는 욕을 하도 많이 들어 '조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욕이라고 착각하고 만 마사오짱의 이야기, 사랑하는 개 로키와의 이별 등을 겪으며 차츰 슬픈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도쿄가 공습당한 끝에 도모에 학원에 불이 나면서 끝이 난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도모에 학원은 1937년 부터 1945년 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교장인 고바야시 선생님은 '어떤 아이든지 갓 태어났을 땐 선하게 마련이므로 이 선한 기질을 일찌감치 찾아 그걸 키워주며 개성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 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어린이를 교사의 계획에 맞추지 말며 자연 속에 풀어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교사의 계획보다는 어린이들의 꿈이 훨씬 크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오와 혐오를 반복적으로 주입당해 세대간, 성별간, 국가간, 민족간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지금, <창가의 토토>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가꿔 나가야 하는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지 같은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동심으로 돌아가 나도 도모에 학원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얼마나 신나게 생활했을까 하는 신나는 상상도 덤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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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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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슈(信州) 재계의 최고 우두머리이자 일본 생사(生絲)의 왕이라 불리는 이누가미 사헤(犬神左兵衛).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된 뒤 17세에 나스에 흘러들었다. 거지꼴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의 이누가미 사헤를 노노미야 다이니라는 신관이 거두어준 덕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때 다이니의 나이는 42세였고, 그의 처 하루요는 22살이었다.

이누가미 사헤는 용모가 빼어났고 영특했기 때문에 다이니는 그를 총애했다. 그런데 그 총애의 정도가 지나쳐 남색의 정을 나누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 이유로 한 때 하루요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등 불화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헤가 집을 나가자 불화는 곧 해소되고 부부 사이도 좋아진 듯 다이니와 하루요는 몇 년 후 노리코라는 아이를 얻게 되고, 그 노리코가 또 손녀를 낳으니 그녀가 바로 다마요이다. 사헤는 은인인 다이니와 하루요가 죽자 손녀인 다마요를 데려와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그 이누가미 사헤가 이제 80세의 일기로 나스 호반에서 영면에 들기 직전이다. 딸 내외와 자녀, 그리고 다마요 등이 지금 초조하게 사헤의 유언을 기다리고 있다.

이누가미 사헤에게는 마츠코, 다케코, 우메코라는 딸만 셋 있었는데, 세 사람 다 생모가 달랐고 누구도 사헤의 정처가 아니었다.

큰딸 마츠코에게는 외아들 스케키요가 있었는데 전쟁에 끌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딸 다케코는 스케타케와 사요코 남매를 두었고, 막내인 우메코는 외동아들 스케토모를 두었다.

초조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큰딸 마츠코가 사헤에게 유언을 재촉하지만, 사헤는 별다른 말 없이 변호사 후루다테를 가리키고 사망한다. 후루다테는 가족 모두가 돌아오면 그때 유언을 발표하라는 유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스케키요의 귀국만 기다릴 뿐이다.

사헤 옹 사후 8개월 정도 지난 10월 후루다테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 와카바야시 도요이치로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사건을 의뢰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의뢰를 수락하고 10월 18일자로 나스시에 도착해 여관에 짐을 풀고난 뒤 호젓한 마음으로 호수 풍경을 내다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여인이 보트 위에서 구조를 요청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바로 다마요였다. 서둘러 배를 저어 다마요를 구한 뒤 그녀가 탔던 보트를 조사해 보니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번에는 종업원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와카바야시 도요이치로가 독이 든 담배를 피워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큰손자 스케키요가 드디어 귀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츠코가 스케키요를 데리러 도쿄로 갔다. 하지만 모자는 어쩐 일인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돌아온 스케키요는 얼굴에 가면을 쓴 채였다. 사람들은 그가 스케키요가 맞는지 의심했다. 스케키요는 좌중의 독촉에 어쩔 수 없이 가면 일부를 들어 올렸는데 거기에는 무화과처럼 붉게 벌어진 살덩이가 있었다. 전쟁 중 상처를 입은 스케키요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생전 모습과 똑같은 고무 가면을 만드느라 시일이 지체되었다는 마츠코의 말에 좌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언이 발표된다. 그런데 이 유언은 실로 기묘하다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하나, 이누가미 가문의 모든 재산, 즉 모든 사업의 상속권을 의미하는 이누가미 가문의 세 가보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는 다음 조건 하에 노노미야 다마요에게 물려준다.

하나, 단 노노미야 다마요는 그 배우자를 이누가미 사헤의 세 손자, 스케키요, 스케타케, 스케토모 중에서 골라야 한다. 다른 배우자를 고를 경우 상속권을 상실한다.

하나, 손자 중 누군가 결혼을 거부하면 상속 권리를 포기한 것이 된다. 또, 셋 모두 사망할 경우 다마요는 의무로 부터 해방되어 아무하고라도 결혼할 자유를 얻는다.

하나, 노노미야 다마요가 사망할 경우 재산은 5등분 하여 3명의 손자에게 1/5씩 주되, 2/5는 아오누마 기쿠노의 외아들 아오누마 시즈마에게 주기로 한다. 등등.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헤 옹의 은인인 다이니의 손녀라고는 하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마요가 유산을 모두 상속한다는 조항도 그랬지만, 다마요가 사망한 경우라도 세 손자의 몫은 아오누마 기쿠노의 외아들 아오누마 시즈마 보다 못한 것이 된다.

마치 유언은 다마요를 지키고, 세 손자를 반목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품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오누마 기쿠노는 누구인가. 그녀는 사헤 옹이 50이 넘은 무렵 좋아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사헤 옹의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이었는데, 그의 총애를 받아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일이 세 딸의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자신들의 어머니를 성욕 해결의 도구로만 여겼던 사헤에 대한 원한도 깊었지만, 이제 와서 엉뚱한 여인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 딸들은 기쿠노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그녀들은 사헤 옹이 준 가문의 가보 요키, 고토, 기쿠를 빼았고 한겨울에 발가벗긴 기쿠노의 몸에 물을 뿌리고 구타했다. 어린 아이 시즈마의 엉덩이를 쇠로 달군 부젓가락으로 지지면서 잠적을 종용하니 기쿠노는 겁에 질려 시즈마가 사헤 옹의 아이가 아니라는 거짓 진술서 까지 써준 뒤 모습을 감춘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저주가 반드시 요키, 고토, 기쿠와 관련하여 복수하겠다는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요키고토기쿠'를 연이어 읽으면 '좋은 소식을 듣다'라는 뜻이 되니 아이러니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어쨌든 기묘한 유언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누가미 가문에서는 사헤와 기쿠노의 원념이 실현되기라도 하듯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제일 먼저 사망한 것은 스케타케였다. 다마요 역시 스케키요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던지 스케키요에게 교묘한 핑계를 대어 시계에 지문을 찍게 하였는데, 이 시계를 가지고 스케타케를 찾아가 지문 비교를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마요와 헤어진 직후 스케타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게다가 목은 국화인형의 목과 바꿔치기 되고, 몸통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혀지니 그 행태가 사뭇 엽기적이었다.

한편, 스케타케의 사망 즈음 나스 하류의 한 여관에 야마다 산페이라는 수상쩍은 귀환병이 나타난다. 그 역시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얼굴을 감추었고, 상당히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 여관 주인에게서 의심을 산다. 게다가 얼마 뒤 이 귀환병은 다마요의 방에 침입해 어떤 물건을 찾다가 발각되기도 하는데 스케타케의 살인사건과 귀환병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니 마츠코와 스케키요는 전날까지만 해도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지문 찍기를 거부하다가 스케타케가 사망하자 의심의 눈길을 더 이상 비껴갈 수 없다고 의식해서인지 지문 찍기에 동의 한다. 지문은 스케키요 본인이 신사에 남기고 간 무운장구 헝겊에 찍힌 지문과 일치했고 이로써 사람들은 진위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마요만은 이 결과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다음으로 사망한 것은 스케토모였다. 그는 다마요를 꾀여내어 겁탈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뒤 풍전촌의 빈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그의 몸에 밧줄을 풀기 위한 흔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시체에 묶인 밧줄은 매우 단단하게 감겨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한 번 풀려났다가 다시 묶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의 목에 감긴 줄은 거문고 줄이었으니, 이로써 기쿠(국화)에 이어 고토(거문고)와 관련한 살인이 일어난 셈이다.

잇따른 죽음은 기쿠노의 저주를 연상 시켰고 묻어 두었던 비밀들이 하나 둘 봉인을 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헤 옹과 다이니가 동성애를 나누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려진 바이지만, 이후 사헤와 다이니의 부인인 하루요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다이니는 애초에 동성에 대해서는 미약하나마 성욕을 느꼈지만 이성에 대해서는 불능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사헤와 하루요의 불륜을 일정 부분 방조하기 까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헤와 하루요가 낳은 딸이 다시 결혼해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가 바로 다마요이다. 그러므로 다마요는 사실 사헤의 친 손녀가 되는 셈이었던 것.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체는 스케키요였다. 스케키요는 얼음에 거꾸로 쳐박혀 있었는데 하반신만 드러난 상태였다. 스케키요가 거꾸로 박혔으니 '요키케스'이고 반만 박혀 있으니 '요키(도끼)'가 되는 셈.

그러나 감식 결과 시체는 스케키요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손도장이 달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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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월부터 1951년 잡지 <킹>에 연재된 <이누가미 일족>은 <팔묘촌>과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며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라는 재계의 거물이 사망하면서 기묘한 유언장을 남기는데, 이 유언장을 둘러싸고 엽기적이 살인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작품의 주조는 공포와 미스터리인데 그 이면에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전쟁에 끌려간 일본 젊은이들은 명분도 모르는 채 죽음을 강요 당하는가 하면, 패전이 자신의 무능력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절망적인 전쟁 속에서 이누가미 사헤의 친아들 아오누마 시즈마와 손자 스케키요가 만나게 된다. 둘은 극심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 헤묵은 집안간 원한을 잊고 친하게 지내며 서로를 의지한다. 하지만 시즈마는 전쟁 중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고, 스케키요는 분대가 전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케키요는 살아남지만 분대를 전멸시킨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귀국이 늦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누가미 가문의 기묘한 유언이 발표되자 얼굴이 상한 시즈마는 스케키요가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하여 스케키요 행세를 하게 된다.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얼굴과 체격도 많이 닮았던 것이다.

뒤늦게 귀국한 스케키요는 이 사실을 알고 자연스럽게 교체를 하려 했지만 시즈마가 얼굴이 망가진 상태라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케키요의 어머니 마츠코가 스케타케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시즈마가 스케키요를 협박하며 자신이 이누가미 가문의 모든 유산을 차지하겠다고 선언하자 스케키요는 이에 따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진범인 마츠코는 별 생각 없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진범도 모르는 사후 공범 시즈마와 스케키요가 요키, 고토, 기쿠와 관련된 살인이라는 식으로 뒷처리를 하는 탓에 사건이 꼬이고 복잡해진 것이다.

소설은 1976년 이치가와 곤에 의해 영화화 되어 또 다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데 영화는 2023년 현재에 봐도 꽤나 연출이 섬세하고 구성이 치밀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에서는 이누가미 사헤가 제약왕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해 마약을 취급한 것으로 바뀌어 있는데, 전쟁 중에 군부에 납품하였다는 내용을 곁들여 전쟁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히로뽕을 지급받고 자살특공대 임무 등을 수행했다는 암시를 준다.

또한 거문고 스승이 시즈마의 어머니 기쿠노라는 설정은 없애고 용의자를 압축하는가 하면 마츠코가 죽기 전 사요코에게 유산을 좀 나누어주라고 부탁하는 장면 등은 과감히 생략하는 등 영화적 설정에 충실하다.

긴다이치 코스케 역의 이시자카 코지가 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이나 과도한 리액션은 이후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트레이드 마크처럼 사용된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인물을 꽤 잘 살려냈다.

한편, 영화의 히로인 시마다 요코(다마요 역)는 이후 쇼군, 하얀거탑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고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시상하는 등 승승장구 하지만 말년에 빚에 쫓겨 AV 촬영을 하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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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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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 스타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시바야마 코타가 아내 아야카와 결혼식에 참석한다. 식장은 하버처치였는데, 코타가 이 결혼식에 참석한 이유는 교회에 딸린 식당 때문이었다. Cuisine de Dieu, 신의 요리라는 뜻의 이 식당은 2007년 자가트 서베이(zagat survey) 간사이판에서 당당하게 1위에 오른 식당이다. 제공된 요리는 과연 코타가 감탄할 만큼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경영자가 전설적인 요리평론가 나카지마 히로미치이고, 쉐프는 그가 직접 발굴한 이시구니 츠토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마츠노 쇼지라는 사람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마츠노 쇼지는 기노시타 운수의 사업부장이었고, 기노시타 운수는 나카지마 히로미치의 사위인 기노시타 요시아키가 운영하는 통관업체였다.

사건 직후 기노시타 요시아키 역시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에 용의자는 즉시 기노시타 요시아키로 좁혀진다.

아오야마 형사는 용의자의 행적을 조사하다가 신코 물산이라는 거래처가 떠오르자 기노시타 운수가 이 회사를 통해 밀수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나카지마 히로미치의 딸 나카지마 유리도 행방불명되자 경찰 주류는 유산상속 다툼설로 기울게 되어 수사는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얼마 뒤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신부 아야카 마저 실종되고, 아오야마 형사는 미식에 빠진 나카지마 히로미치와 뱅상 신부, 요리사 이시구니 츠토무 등이 워싱턴 조약으로 보호되고 있는 동식물을 밀수해 요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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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타쿠미 츠카사가 실제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등 십 년 넘게 다양한 요식업에 종사한 경험이 소설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요리에 관한 묘사와 설명히 상당히 디테일 하고, 이런 세밀함이 미스터리와 결합된 점이 높게 평가 되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했다.

금지된 식재료의 마지막 단계는 인육이기에 미미극식회 회원들이 무엇을 먹었을지 독자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미극식회 회원들은 미식 외 어떠한 욕망도 없는 자들로, 뱅상 신부는 경찰으로부터 극구 도망가려한 이유가 인육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였고, 나카지마 히로미치는 자신의 딸과 며느리를 요리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이들은 북극곰과 같이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요리해 먹다 급기야 '인간의 맛은 어떨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고, 나카지마 요시아키에게 인간 식재료를 조달해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나카지마 요시아키는 인간 식재료인 마츠노 쇼지를 살아있는 채 데려오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재료도 가져오지 못했다.

이에 이시구니 츠토무는 나카지마 요시아키를 식재료로 삼아 요리를 한다. 하지만 인간 식재료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아 냄새를 잡고, 맛을 내는 데 실패한다.

그래서 제2 제3의 실험체로서 나카지마 유리, 기노시타 마키 등을 사용한 결과 나이가 어릴 수록 육질이 연하고 냄새가 적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아야 말로 최고의 식재료라 판단하는, 인간 말종이나 할 법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금단의 팬더>라는 제목은 팬더가 대나무를 먹는 초식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초식에는 필요 없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는데다가 고기를 주면 기뻐하며 먹는다는 사실에서, 사실은 팬더가 동족을 잡아먹은 데 대한 벌로 초식을 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발상을 담은 제목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1070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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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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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엄청난 열로 인해 녹아내린 후, 식물과 동물은 멸종 상태에 이른다. 태양은 빛을 잃어 대기는 식어갔고, 공기중엔 재들이 날아다녔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였고, 끝내 식인까지 서슴치 않는 단계에 이른다.

이런 절망의 세상에서, 한 사내와 그의 아들이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카트에 생필품을 담은 채 걷고 있다. 아내는 '날이 원자 두께 밖에 안'되는 흑요석으로 자살했다.

길을 걷던 처음엔 카트에 소년의 책과 장난감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존을 위한 물품 외엔 소지하지 않게 된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다. 선의를 믿고 내민 손을 거절 당하는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아주 인색했다. 소년은 그때마다 울었다.

때로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대량의 통조림이나, 안온한 안식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느끼는 평온함과, 풍족한 식량이 그들의 목숨을 재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사내는 외딴 집에서 지하실을 발견한다. 숨겨진 식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연 사내와 소년은 그곳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가축처럼 감금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허벅지까지 다 잘린 남자가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고기를 얻기 위해 그들을 가축처럼 가둬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인가 사내와 소년을 피해 급히 길을 떠난 자들이 남겨둔 화톳불에서 꼬챙이에 꿰어진 어린아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마침내 목적한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사내는 세상의 끝에 왔다고 느낀다. 그곳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난파된 배와, 잿빛 바닷물 밖에 없었다. 사내는 앓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죽고, 소년은 사흘을 머문 뒤 한 남자를 만난다. 소년은 남자를 따라 한 그룹에 속하게 된다. 여자가 소년을 두 팔로 끌어안으며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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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폐허가 된 세계를 보여준다. 남자는 남쪽, 바닷가 등 막연한 희망을 상정하고 소년을 데려가지만 그곳에서 좌초한 스페인 선박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죽는다.

사내는 자신이 죽게 된다면 이 절망의 땅에 소년만 남겨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사내는 그렇게 할 수 었었다. 그리고 소년은 사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간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희망을 품은 채.

어쩌면 남자는 그 자신이 소년에게는 외계인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사라진 행성 출신의 존재. 그 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수상쩍었다.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를 구축할 때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힘을 동원해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때로 내가 없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불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다.

코맥 매카시가 그리는 폐허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바라보는 지금 이 세상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살기 위해 타인의 살을 잘라 고기를 취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매일같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서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경쟁에 익숙한 자들은 좀 더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룹을 만들고, 권력을 독점하고, 계급을 구분하며, 타인을 착취한다.

부모는 이러한 절망적인 세상에 아이만 남겨 놓고 떠나지 않기 위해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부모가 그리는 희망이 아이에게는 '이제는 사라진 행성'의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금 이 폐허가 아이의 전 세계다. 부모가 없더라도 아이는 세상에 부딪히고 구성원으로 편입된다. 아이가 식인을 하는 살인자를 만날지, 아니면 소설에서처럼 선한 그룹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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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비상구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약속 >

여름방학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5일, 요지와 간타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다. 젊은 남자가 달려오자 요지는 간타를 밀쳐낸 뒤 자신도 도망가려 했으나 그만 칼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요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한다.

평소 요지의 친화력이나 운동능력 등을 동경하며 친구로서 뿌듯해하던 간타는 PTSD를 보이며 자살충동에 휩싸인다. 반복되는 자살 시도 중 간타는 환상 속에서 요지를 만난다. 요지는 간타에게 "멋지지 않아도 좋으니 많이 보고 경험하고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죽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할 때, 그 누군가는 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간타는 등교거부를 풀고 다시 학교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석양으로 이어지는 길 >

유고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부모님은 대체로 관대하고 집안은 풍족하다. 그러나 유고는 등교거부중이다.

매일같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유고가 우연히 폐품수거 노인과 친하게 된다. 유고는 그날부터 노인과 때때로 만나 밥을 나눠 먹거나, 폐품수거 일을 거들어주고 약간의 용돈을 받기도 한다. 둘은 나이 차이와 관계 없이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뇌혈전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유고는 노인이 걱정되서 매일 병문안을 간다. 그런 유고에게 노인이 제안을 한다. 노인은 왼쪽에 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는데도 복도 병원을 두 발로 가로지르는 내기를 해서 자신이 이기면 유고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노인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복도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노인은 "사람이란 아무리 바보스러워도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패독(경마장에서 출전말을 보여주는 곳)에서 튼실한 말을 사면 안된다. 마르고 약해서 어디 뛰겠나 싶은 놈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 푸른 비상구 >

19살의 기요토는 장애로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다. 아빠인 겐타로와 엄마 마유코는 그런 기요토가 가엾어 무리한 요구도 들어 주었다. 그러면 기요토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요토는 그럴수록 더욱 비뚤어졌고, 부모의 사정에 관계 없이 자신의 요구만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모두가 서점 앞에 붙은 온통 푸른색의 포스터를 보게된다. 한 다이버가 푸른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포스터에는 BLUE EXIT 이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기요토는 다이빙에 급격히 관심을 쏟기 시작하더니 고가의 장비를 사오라, 다이빙 스쿨 학비를 대라 하며 무리한 요구를 해댔다. 다이빙 스쿨의 사사오카 슌스케는 차분히 기요토를 지도했고, 기요토도 다른 일과 달리 다이빙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겐타로와 마유코도 서서히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상처들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기요토 역시 바다 밑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본 순간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동안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자신의 응어리를 훌훌 털게 된다.

< 천국의 벨 >

4월 중순이 되는 어느 날, 니시모토 유타가 엄마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인 나오미는 유타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종합병원으로 간다. 의사는 돌발성 난청이며, 유타의 경우 신체보다는 마음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유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도 시키는 일을 꼬박꼬박 해내는 성실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오미는 상심이 컸다.

치료를 위해 병문을 방문하던 어느 날, 병원에서 유타가 전화벨 소리를 듣는 일이 일어난다. 유타는 유독 전화벨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린다고 했다.

얼마 뒤 유타 가족은 유타의 동급생 히카루네 가족과 여행을 가게 된다. 히카루는 유타와 달리 말을 할 수 없었다. 역시 심인성이었다. 히카루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혼조정중이었다.

여행 중 저녁식사 자리에서 유타가 전화벨 소리가 들린 듯 모형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90초쯤 통화한 유타는 아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라고 했다. 여동생 미치카는 아빠가 전화를 걸어서 유타의 귀를 고쳐주었다고 했다.

유타는 아빠가 보라고 했다며 비디오카메라에서 디스크를 꺼내 TV에 연결했다. 유타의 아빠 하루히코는 아내 나오미에게 '사실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제 가족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위해 이즈로 갔다 오려한다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루히코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사고로 사망한다.

모두들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가운데, 히카루가 자신도 벨 소리가 들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히카루를 보고 놀라는 아빠와 엄마에게 헤어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 겨울 라이더 >

모터크로스를 즐기는 쇼헤는 아직은 초보이다. 다마강 하천부지에서 열심히 연습하지만 현재는 초등학생들 조차 변변히 상대하지 못하는 수준이라 쇼헤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때때로 연습장 한 켠에서 쇼헤를 지켜보던 사야라는 여자가 쇼헤의 라이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해준다. 그녀는 노부 오자와 라는 모터크로서의 부인이었고, 자신도 수준급의 라이더였다. 하지만 노부 오자와가 경기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탓에 모터크로서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야의 코치 덕분에 쇼헤는 초보자 수준을 벗어날 수 있었고 초등학생과의 경기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사야 역시 남편을 잃고 모터크로서에서 떨어져 고통을 견디던 단계에서 한 발 나아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 하트 스톤 >

새 집으로 이사해 새 차를 사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시즈코에게 아들 겐고가 쓰러졌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진단 결과 소아뇌종양으로 5년 생존율은 60%에 불과했다. 게다가 수술과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마비나 운동장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에 친정 아버지가 심장 질환으로 쓰러진다. 겐고가 14시간 반의 뇌수술을 받는 동안 친정 아버지는 2차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고 만다.

친정 어머니가 시즈코와 겐고를 찾아와 돌 하나를 건넨다. 친정 아버지는 그 돌을 손에 쥐고 "자신이 대신 죽을 테니 겐고를 살려달라고" 줄곧 빌었다고 했다. 시즈코는 겐고가 아버지 말처럼 건강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은 돌의 온기가 손바닥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듯하여 시즈코는 가을밤의 한기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 한 사람의 벚꽃 >

사진작가 구니히로는 해마다 벚꽃 필 철이 오면 '나만의 벚꽃 나무'를 보러 간다. 황량한 암석 사이에 곧게 한 그루의 어린 나무가 서 있는데 구니히로는 어쩐지 그 나무에 정이 갔다.

올해도 구니히로는 그 벚꽃을 찍으러 갔다가 미에코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함께 희망에 차서 바라봤던 벚꽃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 사진은 구니히로가 찍은 사진이었기에 미에코는 구니히로를 알아봤다.

둘은 이런 공통점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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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를 둘러보다 보면 '내가 언제 이 책을 샀었지?'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책들은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그저 하릴없이 자리를 차지하다가, 마찬가지로 별 생각없이 책꽂이를 둘러보던 나에게 발견된다. 그러면 읽힌다.

그러므로 내 독서 패턴은 다분히 충동적이다.

작가 이시다 이라는 책 보다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예전에 같은 동아리에 '낙타'라는 별명의 후배가 있었는데, 일본 문화에 무척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일본드라마 씨디를 잔뜩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권해준 드라마가 IWGP, 립스틱 따위였다. 펜티엄 5 HP 컴퓨터에 씨디를 넣고, 17인치 평면 모니터에 송출되는 영상을 보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백수 시절이 떠오른다.

그 IWGP(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원작자가 이시다 이라이다.

<푸른 비상구>는 상처입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나온다. 정신병자의 묻지마 살인에 친구를 잃은 초등학생, 남편을 잃은 여성들, 편모 슬하이거나 부모가 이혼할 위기에 처한 어린이, 장애를 입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픈 청년 등.

그들은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삶이 잠시 멈춘 상태이거나, 몸과 마음의 기능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긴 상태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 희망에 대한 확신 등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소설들은 다분히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그리고 교훈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희망이라는 것이 매우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상식이 상식이되고, 정의와 진실이 왜곡되는 사회에서 희망 마저 환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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