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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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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엄청난 열로 인해 녹아내린 후, 식물과 동물은 멸종 상태에 이른다. 태양은 빛을 잃어 대기는 식어갔고, 공기중엔 재들이 날아다녔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였고, 끝내 식인까지 서슴치 않는 단계에 이른다.

이런 절망의 세상에서, 한 사내와 그의 아들이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카트에 생필품을 담은 채 걷고 있다. 아내는 '날이 원자 두께 밖에 안'되는 흑요석으로 자살했다.

길을 걷던 처음엔 카트에 소년의 책과 장난감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존을 위한 물품 외엔 소지하지 않게 된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다. 선의를 믿고 내민 손을 거절 당하는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아주 인색했다. 소년은 그때마다 울었다.

때로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대량의 통조림이나, 안온한 안식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느끼는 평온함과, 풍족한 식량이 그들의 목숨을 재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사내는 외딴 집에서 지하실을 발견한다. 숨겨진 식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연 사내와 소년은 그곳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가축처럼 감금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허벅지까지 다 잘린 남자가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고기를 얻기 위해 그들을 가축처럼 가둬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인가 사내와 소년을 피해 급히 길을 떠난 자들이 남겨둔 화톳불에서 꼬챙이에 꿰어진 어린아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마침내 목적한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사내는 세상의 끝에 왔다고 느낀다. 그곳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난파된 배와, 잿빛 바닷물 밖에 없었다. 사내는 앓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죽고, 소년은 사흘을 머문 뒤 한 남자를 만난다. 소년은 남자를 따라 한 그룹에 속하게 된다. 여자가 소년을 두 팔로 끌어안으며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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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폐허가 된 세계를 보여준다. 남자는 남쪽, 바닷가 등 막연한 희망을 상정하고 소년을 데려가지만 그곳에서 좌초한 스페인 선박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죽는다.

사내는 자신이 죽게 된다면 이 절망의 땅에 소년만 남겨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사내는 그렇게 할 수 었었다. 그리고 소년은 사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간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희망을 품은 채.

어쩌면 남자는 그 자신이 소년에게는 외계인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사라진 행성 출신의 존재. 그 행성에 관한 이야기는 수상쩍었다.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고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를 구축할 때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면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힘을 동원해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때로 내가 없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불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다.

코맥 매카시가 그리는 폐허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바라보는 지금 이 세상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살기 위해 타인의 살을 잘라 고기를 취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매일같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서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경쟁에 익숙한 자들은 좀 더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룹을 만들고, 권력을 독점하고, 계급을 구분하며, 타인을 착취한다.

부모는 이러한 절망적인 세상에 아이만 남겨 놓고 떠나지 않기 위해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부모가 그리는 희망이 아이에게는 '이제는 사라진 행성'의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금 이 폐허가 아이의 전 세계다. 부모가 없더라도 아이는 세상에 부딪히고 구성원으로 편입된다. 아이가 식인을 하는 살인자를 만날지, 아니면 소설에서처럼 선한 그룹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305306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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