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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슈(信州) 재계의 최고 우두머리이자 일본 생사(生絲)의 왕이라 불리는 이누가미 사헤(犬神左兵衛).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된 뒤 17세에 나스에 흘러들었다. 거지꼴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의 이누가미 사헤를 노노미야 다이니라는 신관이 거두어준 덕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때 다이니의 나이는 42세였고, 그의 처 하루요는 22살이었다.
이누가미 사헤는 용모가 빼어났고 영특했기 때문에 다이니는 그를 총애했다. 그런데 그 총애의 정도가 지나쳐 남색의 정을 나누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 이유로 한 때 하루요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등 불화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헤가 집을 나가자 불화는 곧 해소되고 부부 사이도 좋아진 듯 다이니와 하루요는 몇 년 후 노리코라는 아이를 얻게 되고, 그 노리코가 또 손녀를 낳으니 그녀가 바로 다마요이다. 사헤는 은인인 다이니와 하루요가 죽자 손녀인 다마요를 데려와 애지중지하며 키운다.
그 이누가미 사헤가 이제 80세의 일기로 나스 호반에서 영면에 들기 직전이다. 딸 내외와 자녀, 그리고 다마요 등이 지금 초조하게 사헤의 유언을 기다리고 있다.
이누가미 사헤에게는 마츠코, 다케코, 우메코라는 딸만 셋 있었는데, 세 사람 다 생모가 달랐고 누구도 사헤의 정처가 아니었다.
큰딸 마츠코에게는 외아들 스케키요가 있었는데 전쟁에 끌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딸 다케코는 스케타케와 사요코 남매를 두었고, 막내인 우메코는 외동아들 스케토모를 두었다.
초조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큰딸 마츠코가 사헤에게 유언을 재촉하지만, 사헤는 별다른 말 없이 변호사 후루다테를 가리키고 사망한다. 후루다테는 가족 모두가 돌아오면 그때 유언을 발표하라는 유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스케키요의 귀국만 기다릴 뿐이다.
사헤 옹 사후 8개월 정도 지난 10월 후루다테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 와카바야시 도요이치로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사건을 의뢰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의뢰를 수락하고 10월 18일자로 나스시에 도착해 여관에 짐을 풀고난 뒤 호젓한 마음으로 호수 풍경을 내다본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여인이 보트 위에서 구조를 요청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바로 다마요였다. 서둘러 배를 저어 다마요를 구한 뒤 그녀가 탔던 보트를 조사해 보니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번에는 종업원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와카바야시 도요이치로가 독이 든 담배를 피워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큰손자 스케키요가 드디어 귀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츠코가 스케키요를 데리러 도쿄로 갔다. 하지만 모자는 어쩐 일인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돌아온 스케키요는 얼굴에 가면을 쓴 채였다. 사람들은 그가 스케키요가 맞는지 의심했다. 스케키요는 좌중의 독촉에 어쩔 수 없이 가면 일부를 들어 올렸는데 거기에는 무화과처럼 붉게 벌어진 살덩이가 있었다. 전쟁 중 상처를 입은 스케키요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생전 모습과 똑같은 고무 가면을 만드느라 시일이 지체되었다는 마츠코의 말에 좌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언이 발표된다. 그런데 이 유언은 실로 기묘하다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하나, 이누가미 가문의 모든 재산, 즉 모든 사업의 상속권을 의미하는 이누가미 가문의 세 가보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는 다음 조건 하에 노노미야 다마요에게 물려준다.
하나, 단 노노미야 다마요는 그 배우자를 이누가미 사헤의 세 손자, 스케키요, 스케타케, 스케토모 중에서 골라야 한다. 다른 배우자를 고를 경우 상속권을 상실한다.
하나, 손자 중 누군가 결혼을 거부하면 상속 권리를 포기한 것이 된다. 또, 셋 모두 사망할 경우 다마요는 의무로 부터 해방되어 아무하고라도 결혼할 자유를 얻는다.
하나, 노노미야 다마요가 사망할 경우 재산은 5등분 하여 3명의 손자에게 1/5씩 주되, 2/5는 아오누마 기쿠노의 외아들 아오누마 시즈마에게 주기로 한다. 등등.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헤 옹의 은인인 다이니의 손녀라고는 하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마요가 유산을 모두 상속한다는 조항도 그랬지만, 다마요가 사망한 경우라도 세 손자의 몫은 아오누마 기쿠노의 외아들 아오누마 시즈마 보다 못한 것이 된다.
마치 유언은 다마요를 지키고, 세 손자를 반목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품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오누마 기쿠노는 누구인가. 그녀는 사헤 옹이 50이 넘은 무렵 좋아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사헤 옹의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이었는데, 그의 총애를 받아 사내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일이 세 딸의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자신들의 어머니를 성욕 해결의 도구로만 여겼던 사헤에 대한 원한도 깊었지만, 이제 와서 엉뚱한 여인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 딸들은 기쿠노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그녀들은 사헤 옹이 준 가문의 가보 요키, 고토, 기쿠를 빼았고 한겨울에 발가벗긴 기쿠노의 몸에 물을 뿌리고 구타했다. 어린 아이 시즈마의 엉덩이를 쇠로 달군 부젓가락으로 지지면서 잠적을 종용하니 기쿠노는 겁에 질려 시즈마가 사헤 옹의 아이가 아니라는 거짓 진술서 까지 써준 뒤 모습을 감춘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저주가 반드시 요키, 고토, 기쿠와 관련하여 복수하겠다는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요키고토기쿠'를 연이어 읽으면 '좋은 소식을 듣다'라는 뜻이 되니 아이러니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어쨌든 기묘한 유언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누가미 가문에서는 사헤와 기쿠노의 원념이 실현되기라도 하듯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제일 먼저 사망한 것은 스케타케였다. 다마요 역시 스케키요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던지 스케키요에게 교묘한 핑계를 대어 시계에 지문을 찍게 하였는데, 이 시계를 가지고 스케타케를 찾아가 지문 비교를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마요와 헤어진 직후 스케타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게다가 목은 국화인형의 목과 바꿔치기 되고, 몸통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혀지니 그 행태가 사뭇 엽기적이었다.
한편, 스케타케의 사망 즈음 나스 하류의 한 여관에 야마다 산페이라는 수상쩍은 귀환병이 나타난다. 그 역시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얼굴을 감추었고, 상당히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 여관 주인에게서 의심을 산다. 게다가 얼마 뒤 이 귀환병은 다마요의 방에 침입해 어떤 물건을 찾다가 발각되기도 하는데 스케타케의 살인사건과 귀환병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이니 마츠코와 스케키요는 전날까지만 해도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지문 찍기를 거부하다가 스케타케가 사망하자 의심의 눈길을 더 이상 비껴갈 수 없다고 의식해서인지 지문 찍기에 동의 한다. 지문은 스케키요 본인이 신사에 남기고 간 무운장구 헝겊에 찍힌 지문과 일치했고 이로써 사람들은 진위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마요만은 이 결과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다음으로 사망한 것은 스케토모였다. 그는 다마요를 꾀여내어 겁탈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 뒤 풍전촌의 빈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그의 몸에 밧줄을 풀기 위한 흔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시체에 묶인 밧줄은 매우 단단하게 감겨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한 번 풀려났다가 다시 묶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의 목에 감긴 줄은 거문고 줄이었으니, 이로써 기쿠(국화)에 이어 고토(거문고)와 관련한 살인이 일어난 셈이다.
잇따른 죽음은 기쿠노의 저주를 연상 시켰고 묻어 두었던 비밀들이 하나 둘 봉인을 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헤 옹과 다이니가 동성애를 나누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려진 바이지만, 이후 사헤와 다이니의 부인인 하루요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다이니는 애초에 동성에 대해서는 미약하나마 성욕을 느꼈지만 이성에 대해서는 불능이었던 듯 하다. 그래서 사헤와 하루요의 불륜을 일정 부분 방조하기 까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헤와 하루요가 낳은 딸이 다시 결혼해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가 바로 다마요이다. 그러므로 다마요는 사실 사헤의 친 손녀가 되는 셈이었던 것.
마지막으로 발견된 시체는 스케키요였다. 스케키요는 얼음에 거꾸로 쳐박혀 있었는데 하반신만 드러난 상태였다. 스케키요가 거꾸로 박혔으니 '요키케스'이고 반만 박혀 있으니 '요키(도끼)'가 되는 셈.
그러나 감식 결과 시체는 스케키요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손도장이 달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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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월부터 1951년 잡지 <킹>에 연재된 <이누가미 일족>은 <팔묘촌>과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며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이누가미 사헤라는 재계의 거물이 사망하면서 기묘한 유언장을 남기는데, 이 유언장을 둘러싸고 엽기적이 살인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작품의 주조는 공포와 미스터리인데 그 이면에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전쟁에 끌려간 일본 젊은이들은 명분도 모르는 채 죽음을 강요 당하는가 하면, 패전이 자신의 무능력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절망적인 전쟁 속에서 이누가미 사헤의 친아들 아오누마 시즈마와 손자 스케키요가 만나게 된다. 둘은 극심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 헤묵은 집안간 원한을 잊고 친하게 지내며 서로를 의지한다. 하지만 시즈마는 전쟁 중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고, 스케키요는 분대가 전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케키요는 살아남지만 분대를 전멸시킨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귀국이 늦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누가미 가문의 기묘한 유언이 발표되자 얼굴이 상한 시즈마는 스케키요가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하여 스케키요 행세를 하게 된다.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얼굴과 체격도 많이 닮았던 것이다.
뒤늦게 귀국한 스케키요는 이 사실을 알고 자연스럽게 교체를 하려 했지만 시즈마가 얼굴이 망가진 상태라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케키요의 어머니 마츠코가 스케타케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시즈마가 스케키요를 협박하며 자신이 이누가미 가문의 모든 유산을 차지하겠다고 선언하자 스케키요는 이에 따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진범인 마츠코는 별 생각 없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진범도 모르는 사후 공범 시즈마와 스케키요가 요키, 고토, 기쿠와 관련된 살인이라는 식으로 뒷처리를 하는 탓에 사건이 꼬이고 복잡해진 것이다.
소설은 1976년 이치가와 곤에 의해 영화화 되어 또 다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데 영화는 2023년 현재에 봐도 꽤나 연출이 섬세하고 구성이 치밀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에서는 이누가미 사헤가 제약왕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해 마약을 취급한 것으로 바뀌어 있는데, 전쟁 중에 군부에 납품하였다는 내용을 곁들여 전쟁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히로뽕을 지급받고 자살특공대 임무 등을 수행했다는 암시를 준다.
또한 거문고 스승이 시즈마의 어머니 기쿠노라는 설정은 없애고 용의자를 압축하는가 하면 마츠코가 죽기 전 사요코에게 유산을 좀 나누어주라고 부탁하는 장면 등은 과감히 생략하는 등 영화적 설정에 충실하다.
긴다이치 코스케 역의 이시자카 코지가 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이나 과도한 리액션은 이후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트레이드 마크처럼 사용된다.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인물을 꽤 잘 살려냈다.
한편, 영화의 히로인 시마다 요코(다마요 역)는 이후 쇼군, 하얀거탑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고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을 시상하는 등 승승장구 하지만 말년에 빚에 쫓겨 AV 촬영을 하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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