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상구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약속 >

여름방학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5일, 요지와 간타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다. 젊은 남자가 달려오자 요지는 간타를 밀쳐낸 뒤 자신도 도망가려 했으나 그만 칼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요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한다.

평소 요지의 친화력이나 운동능력 등을 동경하며 친구로서 뿌듯해하던 간타는 PTSD를 보이며 자살충동에 휩싸인다. 반복되는 자살 시도 중 간타는 환상 속에서 요지를 만난다. 요지는 간타에게 "멋지지 않아도 좋으니 많이 보고 경험하고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죽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할 때, 그 누군가는 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간타는 등교거부를 풀고 다시 학교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석양으로 이어지는 길 >

유고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부모님은 대체로 관대하고 집안은 풍족하다. 그러나 유고는 등교거부중이다.

매일같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유고가 우연히 폐품수거 노인과 친하게 된다. 유고는 그날부터 노인과 때때로 만나 밥을 나눠 먹거나, 폐품수거 일을 거들어주고 약간의 용돈을 받기도 한다. 둘은 나이 차이와 관계 없이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뇌혈전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유고는 노인이 걱정되서 매일 병문안을 간다. 그런 유고에게 노인이 제안을 한다. 노인은 왼쪽에 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는데도 복도 병원을 두 발로 가로지르는 내기를 해서 자신이 이기면 유고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노인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복도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노인은 "사람이란 아무리 바보스러워도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패독(경마장에서 출전말을 보여주는 곳)에서 튼실한 말을 사면 안된다. 마르고 약해서 어디 뛰겠나 싶은 놈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 푸른 비상구 >

19살의 기요토는 장애로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다. 아빠인 겐타로와 엄마 마유코는 그런 기요토가 가엾어 무리한 요구도 들어 주었다. 그러면 기요토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요토는 그럴수록 더욱 비뚤어졌고, 부모의 사정에 관계 없이 자신의 요구만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모두가 서점 앞에 붙은 온통 푸른색의 포스터를 보게된다. 한 다이버가 푸른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포스터에는 BLUE EXIT 이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기요토는 다이빙에 급격히 관심을 쏟기 시작하더니 고가의 장비를 사오라, 다이빙 스쿨 학비를 대라 하며 무리한 요구를 해댔다. 다이빙 스쿨의 사사오카 슌스케는 차분히 기요토를 지도했고, 기요토도 다른 일과 달리 다이빙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겐타로와 마유코도 서서히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상처들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기요토 역시 바다 밑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본 순간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동안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자신의 응어리를 훌훌 털게 된다.

< 천국의 벨 >

4월 중순이 되는 어느 날, 니시모토 유타가 엄마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인 나오미는 유타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종합병원으로 간다. 의사는 돌발성 난청이며, 유타의 경우 신체보다는 마음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유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도 시키는 일을 꼬박꼬박 해내는 성실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오미는 상심이 컸다.

치료를 위해 병문을 방문하던 어느 날, 병원에서 유타가 전화벨 소리를 듣는 일이 일어난다. 유타는 유독 전화벨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린다고 했다.

얼마 뒤 유타 가족은 유타의 동급생 히카루네 가족과 여행을 가게 된다. 히카루는 유타와 달리 말을 할 수 없었다. 역시 심인성이었다. 히카루의 부모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혼조정중이었다.

여행 중 저녁식사 자리에서 유타가 전화벨 소리가 들린 듯 모형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90초쯤 통화한 유타는 아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라고 했다. 여동생 미치카는 아빠가 전화를 걸어서 유타의 귀를 고쳐주었다고 했다.

유타는 아빠가 보라고 했다며 비디오카메라에서 디스크를 꺼내 TV에 연결했다. 유타의 아빠 하루히코는 아내 나오미에게 '사실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제 가족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위해 이즈로 갔다 오려한다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루히코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사고로 사망한다.

모두들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가운데, 히카루가 자신도 벨 소리가 들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히카루를 보고 놀라는 아빠와 엄마에게 헤어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 겨울 라이더 >

모터크로스를 즐기는 쇼헤는 아직은 초보이다. 다마강 하천부지에서 열심히 연습하지만 현재는 초등학생들 조차 변변히 상대하지 못하는 수준이라 쇼헤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때때로 연습장 한 켠에서 쇼헤를 지켜보던 사야라는 여자가 쇼헤의 라이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해준다. 그녀는 노부 오자와 라는 모터크로서의 부인이었고, 자신도 수준급의 라이더였다. 하지만 노부 오자와가 경기중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탓에 모터크로서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야의 코치 덕분에 쇼헤는 초보자 수준을 벗어날 수 있었고 초등학생과의 경기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사야 역시 남편을 잃고 모터크로서에서 떨어져 고통을 견디던 단계에서 한 발 나아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 하트 스톤 >

새 집으로 이사해 새 차를 사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시즈코에게 아들 겐고가 쓰러졌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진단 결과 소아뇌종양으로 5년 생존율은 60%에 불과했다. 게다가 수술과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마비나 운동장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에 친정 아버지가 심장 질환으로 쓰러진다. 겐고가 14시간 반의 뇌수술을 받는 동안 친정 아버지는 2차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고 만다.

친정 어머니가 시즈코와 겐고를 찾아와 돌 하나를 건넨다. 친정 아버지는 그 돌을 손에 쥐고 "자신이 대신 죽을 테니 겐고를 살려달라고" 줄곧 빌었다고 했다. 시즈코는 겐고가 아버지 말처럼 건강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은 돌의 온기가 손바닥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듯하여 시즈코는 가을밤의 한기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 한 사람의 벚꽃 >

사진작가 구니히로는 해마다 벚꽃 필 철이 오면 '나만의 벚꽃 나무'를 보러 간다. 황량한 암석 사이에 곧게 한 그루의 어린 나무가 서 있는데 구니히로는 어쩐지 그 나무에 정이 갔다.

올해도 구니히로는 그 벚꽃을 찍으러 갔다가 미에코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함께 희망에 차서 바라봤던 벚꽃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 사진은 구니히로가 찍은 사진이었기에 미에코는 구니히로를 알아봤다.

둘은 이런 공통점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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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를 둘러보다 보면 '내가 언제 이 책을 샀었지?'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책들은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그저 하릴없이 자리를 차지하다가, 마찬가지로 별 생각없이 책꽂이를 둘러보던 나에게 발견된다. 그러면 읽힌다.

그러므로 내 독서 패턴은 다분히 충동적이다.

작가 이시다 이라는 책 보다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예전에 같은 동아리에 '낙타'라는 별명의 후배가 있었는데, 일본 문화에 무척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일본드라마 씨디를 잔뜩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권해준 드라마가 IWGP, 립스틱 따위였다. 펜티엄 5 HP 컴퓨터에 씨디를 넣고, 17인치 평면 모니터에 송출되는 영상을 보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백수 시절이 떠오른다.

그 IWGP(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원작자가 이시다 이라이다.

<푸른 비상구>는 상처입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나온다. 정신병자의 묻지마 살인에 친구를 잃은 초등학생, 남편을 잃은 여성들, 편모 슬하이거나 부모가 이혼할 위기에 처한 어린이, 장애를 입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픈 청년 등.

그들은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삶이 잠시 멈춘 상태이거나, 몸과 마음의 기능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긴 상태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 희망에 대한 확신 등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소설들은 다분히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그리고 교훈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희망이라는 것이 매우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상식이 상식이되고, 정의와 진실이 왜곡되는 사회에서 희망 마저 환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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