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이언 뱅크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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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캐머런 콜리는 컴퓨터, 게임, 마약, 술, 담배, 불륜과 자위에 중독된 기자다. 그가 써내는 기사는 자본주의의 폐해나 권력의 부패를 고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어느 정도 정의감을 기저에 깔고 있었다.

그런 그가 최근 ARES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다. 총 다섯명의 사람들이 길게는 6년 짧게는 4년 전에 이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들 모두 원자력 산업이나 안보 기관과 줄이 닿아 있었던 사람이었고, 이라크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한 흔적이 있었다.

제보자는 그들이 모두 '자살당한 것'이라 암시했다. 내용의 중요도와 도청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캐머런에게 특정 공중전화를 지정하여 그곳에서 전화를 받는 방식으로 제보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캐머런은 그의 제보가 매우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캐머런이 제보전화를 받는 즈음 영국 내에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부도덕한 신문사 편집장은 꼬챙이에 꿰어 살해당했고, 강간범 처벌에 관대했던 판사는 강간당한 뒤 죽음을 당한다. 아동 포르노 상인은 혈관에 정액을 주입당했고, 이란-이라크전 참사에 무감했던 자는 분수처럼 핏물을 뿜으며 사망했다. 또, 안전보다 이윤만 중시해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뒤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던 자는 폭사 당했다.

경찰은 사건을 추적하던 끝에 유력한 용의자로 캐머런을 지목한다. 공교롭게도 살인이 일어나던 시점에 캐머런은 제보자가 요구하는 장소에 가서 전화를 받거나, 그가 조사를 권유하는 장소에 갔던 탓에 알리바이가 없었다. 처음엔 상황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던 캐머런도 차츰 자신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촌형인 앤디를 통해 알리바이를 입증하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앤디와의 추억을 떠올리던 캐머런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앤디와 캐머런은 사촌지간으로 어렸을 적 한 동네에서 자랐다. 한번은 앤디가 얼음물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캐머런은 공황에 빠져 집으로 도망치지만 다행히 앤디는 다른 사람에게 구조되어 살아나게 된다. 캐머런은 자신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 했다.

얼마 뒤 뒷산에서 놀던 앤디와 캐머런은 경찰을 사칭하는 변태성욕자를 만나게 된다. 변태성욕자는 앤디를 강간했고 캐머런은 도망쳤다. 하지만 과거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범행장소로 간 캐머런은 변태성욕자의 머리를 나무로 내려치고, 몸이 자유로워진 앤디는 그 자의 머리를 거듭 가격하여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한다. 둘은 변태성욕자의 시체를 폐공장 굴뚝 안에 유기한다.

이 사건을 떠올린 것을 계기로 캐머런은 앤디가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앤디가 자경단 노릇을 했던 것이다.

경찰에서 풀려난 캐머런은 앤디에게 납치된다. 모든 사정 설명을 해준 앤디가 캐머런에게 자신을 신고할 기회를 주지만 캐머런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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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 신랄한 시각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틴 에이미스의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를 버무려 한 권의 소설을 만든다면 <공범>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 이언 뱅크스는 이언 M.뱅크스 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SF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하는 작가다. 1984년 <말벌공장>으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데뷔했는데, <공범>은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나 독자를 범행의 목격자로 만드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소설은 시작하자 마자 살인범이 누군가를 차분히 죽여나가는 것을 독자가 지켜보도록 강제한다. 독자는 아직 살인범 편을 들어야 할지, 피해자 편에 서야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살인이 반복될수록 피해자들이 아동포르노 제작자,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자본가, 자본에 기생하는 언론인 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살인범을 막연하게나마 응원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살인범의 편에 서느냐, 피해자를 응원하느냐가 아니다. 어딘지 꿈과 같은 살인범의 행동과 별개로 진짜 주인공이자 현실적 인물인 캐머런이 살인범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 때 작가는 캐머런와 앤디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들을 보여준다.

변태성욕자에게 강간당했지만 시스템과 법을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복수할 수 없었던 어린 캐머런과 앤디가 성장한 뒤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를 보여 주면서 작가는 다소간 해피앤딩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는다.

작품은 2000년 조니 리 밀러 주연, 가빈 밀러 감독으로 영화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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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자본론 -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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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 전국에 1400여 곳 이상의 TSUTAYA 매장을 운영하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CCC)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다.

<자본론>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질곡 테마를 빌어온 것 외에 <자본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책이지만 빅데이터의 중요성, 디자인과 제안이 갖는 힘 등에 관한 분석은 꽤나 통찰력 있다.

기(起) -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상품의 디자인은 결코 덤에 비유할 수 없는 요소로서 본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치가 되었다. 디자인이 상품의 본질인 이상, 거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즈니스에서 무용지물이다.

한편, 기획의 가치란 '그 기획이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영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소비 사회는 물건이 부족했던 퍼스트 스테이지, 인프라가 정비되고 생산력이 시장되면서 상품이 넘쳐나는 세컨드 스테이지를 거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서드 스테이지에 도달했다. 서드 스테이지에서 중요한 것은 제안 능력이다. 제안을 위해서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제안을 가시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객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다.

지금까지 기업을 성립시키는 기반이 재무자본이었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지적자본'이다. 지적자본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그 회사의 사활을 결정한다.

승(承) -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

서드 스테이지에서 세워야 할 기획의 내용은 플랫폼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제안'을 원하는데, 서적이나 잡지는 그 한 권, 한 권이 제안 덩어리다. 그것을 팔 수 없다면 판매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서점은 단지 서적을 판매하려 해선 안된다. 앞으로의 서점은 서적에 쓰여 있는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 분류를 고객 중심으로 바꾸고, 공간을 재구축해야 한다. 직원 스스로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갖고(다르게 보기),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 갖춘 이념을 갖고 있어야 하며, 조직은 병렬형 구성이 적합낟.

이런 이념에 따라 저자는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개관시간을 연장하고, 휴무일을 없앴으며,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고 음악과 영상 소프트웨어를 대여해 주는 등 고객 중심 도서관으로 변모시켰다. 장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1928년에 발표된 10진 분류법을 버리고 '22종 분류법'으로 바꾸었다. '사서'를 '접객 담당자'로 명칭을 바꾸자 방문객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 결과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재개관 이후 13개월 만에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전(轉) - 사실 꿈만이 이루어진다

기획은 반드시 '피부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즉시성과 직접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마음'과 '편안함' 이라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매장은 '인터넷 기업에 의한 지원'을 통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인터넷을 개입시켜 얻은 거대한 정보 처리와 비용이 들지 않는 재고 관리를 무기로 고객과의 접점인 현실 세계의 매장을 기획, 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경합을 벌이는 매장은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조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아이폰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 덕에 물건 자체의 국지적이고 선택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가전제품에서의 이노베이션이다.

데이터베이스 이노베이션을 통한 고객 지향점의 파악은 새로운 제안을 가능케 해준다. 이를 지적자본의 오픈소스화, '빅 데이터'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결(結) - 회사의 형태는 메시지다

재무자산에서 지적자산으로의 변화, 이는 브랜드 파워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사활을 판가름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조직이 적절한 규모를 넘어 지나치게 거대해지면 지적자본을 축적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고객 가치로 전환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할과 계층이 형성되면 지적자본과 현장이 괴리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인간이 클라우드적 발상을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성의 목소리를 따르며, 회사의 지적자본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자유롭게 기획을 세우는 것, 아울러 '동일한 위치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될 때, '자유'는 원심력을 낳고, '사람'은 구심력에 대응한다.

종장 - 부산물이 행복감을 낳는다

디자인은 편안함과 효용을 낳는다. 부산물은 산물이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디자인과 제안으로 산물을 만들어 낼 때 긍적적인 부산물이 생겨난다. 그 부산물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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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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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직후,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엄마와 단 둘이 살게 된 딱부리네는 생계가 막막해지자 쓰레기섬인 꽃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골판지와 루핑으로 집을 지어 주거를 마련한 뒤,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내는 일을 시작하게 된 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인 아수라네와 살림을 합하게 된다.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게 되자 딱부리는 아수라의 아들 땜통과 형제처럼 지내게 되고, 땜통의 소개로 빼빼네 아줌마, 김서방네 식구를 차례로 만나게 되면서 차츰 꽃섬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쓰레기 더미만 있는 그곳에도 이권과 권력이 있었다. 쓰레기를 어디서 수거해 오느냐에 따라 권리금이 붙었고, 그 권리금을 두고 권력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수라가 다른 조 반장들과 도박을 하다 다툼이 일어나 사람을 찌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꽃섬에 큰 불까지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땜통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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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자란 땜통과, 버드나무 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는 빼빼네 아줌마는 김서방네를 알아본다. 김서방네는 원래 꽃섬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쓰레기 더미에 밀려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령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거나 욕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존재들이다.

"얘야, 가지마라. 그럴듯하지만 이건 꾸민 거란다. 사람들이 그 길로 가다가 모두 망쳐버렸다. 지름길인 줄 알고 갔지만 호되게 값을 치를 게다. 온 세상의 산 것들과 물건들이 너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있지 마라"

김서방네의 일원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말까지 세계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문제에 천착했다. 자본주의 사회든 사회주의 사회든 경쟁적으로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것에만 골몰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대적인 문제가 지구와 환경에,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았다.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는' 시기,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하는 '매우 낯익은 세상'.

작가 황석영은 이런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볼 필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쓰기에 대해 '근원적인 것들, 매우 사소하면서도 뒤늦게야 재발견되는 일화들, 그리고 여럿과 맺은 관계에 대하여 추려내고 버리고 비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441088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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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의 6일 버티고 시리즈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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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문학사협회는 사실 CIA의 작은 산하 지부로 공식명칭은 CIAID 17부이다. 이들의 임무는 문학분야에 기록된 모든 스파이 활동과 관련 행위들을 계속 파악하는 것인데, 스릴러와 살인 미스터리물을 읽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부에 근무하는 말콤은 책상물림에 가까운 내근직 요원이다. 어느 날 말콤이 샌드위치 심부름을 간 사이 일단의 무리들이 지부를 습격해 모든 요원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무실로 돌아온 말콤은 처참한 광경에 놀라 즉시 현장에서 벗어나 CIA 본부의 패닉 라인으로 전화를 건다.

17부 9과의 콘돌이라고 코드네임을 밝히고 구출을 요청한 말콤에게 CIA 본부는 현장요원이 파견되었으니 차분히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약속된 장소에서 말콤은 도착한 현장 요원 중 한 명이 지부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말콤과 현장 요원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콤은 도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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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디가 1974년에 발표한 <콘돌의 6일 Six Days of the Condor>은 1975년 시드니 폴락 연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작품이다.

현장 요원들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대신 내근직 요원의 아슬아슬한 생존기를 그린 이 작품은 '그랑프리 뒤 로망 누아르', '레이먼드 챈들러 상' 등을 수상했고, 국제스릴러작가협회가 선정한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00선'에도 올랐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CIA 지부는 존재하지 않는 부서였지만 후일 KGB에서 책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부서, 즉 스릴러나 살인 미스터리물 작품을 통해 첩보 아이디어를 얻거나 외교 문제 혀결의 단서를 찾는 부서를 창설했다고 하니 꽤나 매력적인 부서로 비춰졌던 것 같다.

CIA가 남미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마약 재배를 용인하거나 직접 개입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따라서 CIA 물품이 검열받지 않는 점을 활용해 책 사이에 마약을 운반했다는 것도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또한, 판본이 하나밖에 없는 책을 정한 뒤 북코드를 활용한다거나, 절대로 가지 않을 장소를 정한 뒤 그쪽에 경찰을 집중시켜 도주 시간을 벌어준다든지 하는 스파이 기법도 흥미진진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44018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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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끼 대산세계문학총서 142
다케다 다이준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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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다케다 다이준은 1912년 도쿄의 조센지라는 절에서 태어났다. 중국문학에 흥미를 느껴 도쿄 제국대학교 중국문학과에 진학했고,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그룹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다.

반전운동으로 체포된 다이준은 대학 중퇴 후 '중국문학연구회'를 창설하고 <중국문학월보>를 창간· 활동하다 1937년 보병으로 소집되어 중국 대륙에 파병된다. 이 시기 전쟁을 체험한 다이준은 '수치'라는 개념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가 31세에 쓴 <사마천(1943)>은 "사마천은 살아남아서 수치를 당한 자이다"라고 시작한 뒤 "사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고통은 치명적이고, 자신도 타인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에 빠지면 사람들은 종종 커다란 일을 생각하고 싶어지는 듯하다. 사마천의 경우 생각한다는 것은 쓰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기록'하는 것이었다." 라고 쓴다.

문예평론가 가와니시 마사아키는 이러한 자각이 바로 다케다 다이준 문학의 요체라고 설명한다. 다케다 다이준은 삶의 본질은 수치를 참아내는 과정이고, 이를 기록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라 생각한 것 같다.

작품집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실제 일어난 식인사건 <반짝이끼 사건>을 모티프로 쓰여진 <반짝이끼>를 비롯한 네 편이 실려 있다.

<유배지에서, 신초(新潮) 1953년 3월호>

물살이 험해 탈출이 불가능한 섬에서 '나' 사보는 15년 전 고용인으로 살았다. 어느 날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오타케에게 구타 당한 끝에 절벽에서 떨어진다. 오타케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기적적으로 생환한 '나'는 섬으로 되돌아온다.

오타케의 본명은 게누마. 경시청이 무정부주의자 조직에 심어놓은 스파이였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섬으로 흘러든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들먹이며 게누마를 협박해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린다.

<이질적인 존재, 텐보(展望) 1950년 4월호>

혈기왕성한 사회주의 학생이었던 열아홉 살 '나'는 태생부터 자주독립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고, 동시에 딱히 달리 해야 할 일도 없었기에 승려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나'의 수도 생활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끝내 다른 승려와 대립해 결투를 벌이기에 이른다.

사람들이 우리를 언제 부르러 올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다. 이 세상의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면 남은 자들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저세상과 관련되어 있는 한 무리의 이질적인 존재들이 이 세상에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비록 승려가 되지는 못하지만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질적인 존재에 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은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애정도 미움도 생겨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불합리하기에 나는 믿는다'는 테르톨리아누스의 언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

<바다의 정취, 텐보(展望) 1949년 10월호>

A섬은 80채 중 65채가 조직화된 완벽한 촌락공동체로 공산주의의 자연스런 원형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화의 이면에는 선주 아키야마의 결단이 있었다.

그런데 정치망의 일종인 다이보망을 사용해 물고기를 잡아오던 마을이 최근 시름에 잠겼다. 물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태평한 사람은 아키야마 뿐이었다. 게다가 아키야마 노인은 최근 마을에 시집온 이치코에게 배를 태워주겠다는 약속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가 배에 타면 부정 탄다며 반대하지만 정작 이치코가 배이 타고 출항하자 물고기가 그물 한 가득 잡혀 만선이 된다.

유산계급임에도 배를 내놓고 여성을 배에 태우는 등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아키야마와 민중임에도 구습에 얽메어 고리타분한 사고에 갇혀 있는 마을사람들을 대비시킨 이야기이다.

<반짝이끼, 신초(新潮) 1954년 3월호>

태평양 전쟁 말기 홋카이도 인근 섬에 27톤급 제5세진(淸神)호가 난파된다. 페킹 갑에 상륙한 이들은 오두막을 발견하여 가까스로 몸을 피하지만 일곱 명의 생존자는 혹한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사망하기 시작한다.

최후 생존자인 선장은 전쟁 미담으로 칭송받지만 뒤늦은 조사 결과 사망한 시체를 식인한 혐의가 드러난다.

살인은 '문명인'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인육을 먹는 것은 '문명인'의 체면과 연관을 짓게 됩니다.

죽이기는 했지만 인육을 먹진 않은 '살인'과, 이미 죽은 사람을 먹은 '식인' 중 어느쪽이 윤리적으로 더 비난받을 행동인가?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먹지 않겠다는 니시카와와, 살기 위해 먹는 것에 어떤 윤리적인 문제가 있냐고 반문하는 선장의 이야기가 희곡이라는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43907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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