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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턱은 길고 뼈가 불거진 데다 끝 부분이 튀어나와서 V자 모양을 이루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입 또한 V자, 휘어진 두 개의 콧구멍도 작은 V를 그리고 숱 많은 눈썹과 갈색 머리카락까지 V자를 이루는 새뮤얼 스페이드는 전체적으로 유쾌한 금발의 악마 같은 인상을 한 탐정이다.
어느 날 비서 에피 페린이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사건을 의뢰하러 왔다고 전하자 스페이드는 반색을 하며 반긴다. 의뢰인은 그녀의 여동생이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불량한 남자에게 걸려들어 집을 나갔다며 그를 미행해 여동생의 행방을 알아내 주길 원한다. 스페이드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은 후 동업자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서스비를 미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날 밤, 마일스 아처가 권총에 맞아 살해당했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스비 역시 호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경찰은 스페이드를 살인 혐의로 몰아간다. 마일스의 경우 그의 아내 아이바가 스페이드와 불장난을 하다가 최근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등 치정이 얽혀 있었고, 서스비의 경우에는 동료를 살해한 범인을 스페이드가 직접 단죄한 것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궁에서 어찌어찌 벗어난 스페이드는 여자가 의뢰한 사건의 이면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즈음 스페이드는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스페이드의 사무실에 또 다른 의뢰인이 나타나는데 그는 조엘 카이로라는 자로 매 조각상을 찾아주면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뢰인 거트먼이 나타난다. 거트먼은 조엘 카이로가 제시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매 조각상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523년 슐레이만 대제가 자신들을 로도스 섬에서 쫓아내자 크레타 섬으로 가서 1530년까지 지내다가 카를 황제를 설득하여 몰타, 고조, 트리폴리를 달라고 한다. 카를 황제는 몰타가 아직 스페인의 지배에 있다는 표시로 황제에게 매년 매 한 마리를 공물로 바치라는 조건을 내걸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기사단은 해적질과 약탈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자 온갖 보석을 박아 넣어 공물로 바칠 매를 제작한다. 하지만 매는 운송 중 해적에게 약탈 당해 스페인에 닿지 못하고,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다. 그 와중에 매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던 자들의 손을 거치며 검은색 도료와 에나멜이 덧칠 되었고 현재는 그저 검은색 매 조각상이 되었다.
거트먼은 이 매의 가치를 알게 된 후 17년간 추적해온 자였고, 브리지드 오쇼네시 역시 매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얼마 후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거구의 사내가 방문한다. 사내는 사무실로 들어서자 마자 꾸러미를 안은 채 쓰러져 죽고 만다. 꾸러미를 풀어보니 몰타의 매가 들어있었다. 거구의 사내는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맡긴 매를 운송해준 선장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브리지드 오쇼네시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려온다.
브리지드 오쇼네시가 말한 장소에는 거트먼과 조엘 카이로, 그리고 스페이드를 미행하던 젊은 총잡이가 있었다. 총구에 둘러싸인 스페이드는 태연하게 거트먼과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기꺼이 몰타의 매를 돌려주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을 의사가 있으나 문제는 세 건의 살인이라며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거트먼을 어른다. 경찰은 사건의 진실에 아주 근접해 있는데 희생양을 던져준다면 어떻게든 단순 살인사건으로 귀결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가는 몰타의 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까지 모두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것이라 말하는 스페이드의 말에 거트먼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들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젊은 총잡이는 자신이 희생양으로 경찰에 넘겨질 것이라는데 분개한다.
거트먼은 매가 진짜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며 매를 칠을 벗겨보는데 매는 가짜로 드러난다. 거트먼 일당은 자신들이 운송해온 매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를 내며 떠나고, 스페이드는 거트먼에게 경비 명목으로 천 달러를 받는다.
그들이 떠난 즉시 경찰에게 신고를 한 스페이드는 브리지드 오쇼네시에게 말한다. 마일스 아처는 맘에 들지 않는 자였고 동료로서도 형편 없었지만 서스비에게 당할 만큼 얼간이도 아니었다고.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의 사랑에 희망을 걸지만 스페이드는 매몰차게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긴다. 경찰은 스페이드에게 거트먼이 젊은 총잡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주고, 에피 페린은 아처의 아내 아이바가 사무실에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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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이 아니라 사회과학 책에서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희생된 사람들을 거론하는 구절에 작가 대실 해밋이 있었는데 그가 어떤 책을 썼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가 바로 대실 해밋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립 말로와 루 아처는 물론이고 가깝게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등이 모두 스페이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인물들이다.
대실 해밋은 실제로 미국 최대 탐정 회사인 핑커턴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냉혹한 탐정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1920년대는 밀주법 시대였고 미국 독자들은 범죄의 낭만적 속성에 매료되었다.
대실 해밋이 작가 활동을 한 것은 그리 길지 않고 그의 행보도 언뜻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1934년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후 영화 작업에 몰두했고, 1940년대에는 정치에 몰두해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매카시즘의 광풍 아래 옥살이를 한다. 1942년에는 사병으로 재입대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가 하면, 제대 후에는 제퍼슨 사회과학 대학에서 추리소설 작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소설 속에는 액자 속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한 사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둔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사라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었고, 막대한 재산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탐정에게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사라진 남편은 성만 바꾼채 다른 곳에서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라진 이유를 묻는 탐정에게 사내는 말한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공사장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보도를 박살내는 것을 보았는데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다' 고 느꼈다고 했다. 그 길로 외부의 강요에 의해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이길 버리고 자발적으로 다른 삶을 택했다고 했다.
대실 해밋은 조스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고 있는데 해설자에 의하면 조스는 대실 해밋의 아내 조세핀으로 그녀와 해밋은 작품을 쓸 당시 별거중이었고 끝내 재결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한 이유는 어쩌면 액자 속 이야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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