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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어린 시절 양친을 잃고 우에스기 백부의 손에서 자란 오토네는 먼 친척인 겐조가 백 억 엔의 유산 상속자로 자신을 지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단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다카토 슌사쿠라는 사내와 결혼해야 하는데 그 사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겐조는 백 세 가까운 노인으로 과거 은광 투자 때문에 다케우치 다이지라는 사내를 살해하고 미국으로 도망쳐 자수성가 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으로 도망치자 동업자인 다카토 쇼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수된다. 죄책감을 느낀 겐조는 일본으로 돌아와 삼수탑(三つ首塔)을 만들어 자신이 살해한 다케우치 다이지, 자신 대신 참수당한 다카토 쇼조,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세겨 넣은 공양탑을 만들고 막대한 부를 다케우치 다이지의 아들 다케우치 준고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다케우치 준고를 만나보니 성정이 좋지 않아 겐조는 얼마간의 돈을 주어 준고를 일본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의 후손과 다카토 쇼조의 후손을 짝지워 준 후 유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겐조는 자신의 후손 중 오토네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 이 여자 아이를 다카토 쇼조의 후손 다카토 슌사쿠와 결혼시키기로 결심하고 두 아이의 지문을 두루마기에 찍어 삼수탑에 보관한 후 시간이 흐르자 위와 같은 유산 상속 조건을 내건 것이다.
하지만 다카토 슌사쿠를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살해되고 상속 조건은 복잡하게 변하고 만다. 만약 오토네가 슌사쿠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유산은 겐조 노인의 혈육 모두에게 균분되는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유산 상속인들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오토네는 그들 모두가 지극히 타락한 사람들임에 경악한다. 클럽의 무희, 아크로바트 댄서, 어린 남성을 노리개로 삼아 쾌락을 즐기는 유한 마담, 수상한 서커스단의 연기자 등 직업도 수상쩍었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기둥서방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 하나씩 붙어 유산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토네 역시 다카토 슌사쿠의 사촌 다카토 고로라는 인물에게 유린당한 후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상속인 한 명이 줄어들 때마다 배분되는 몫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은 직후부터 상속인들이 사망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유한 마담 시마바라 아케미가 사망하고, 밤무대 댄서인 초코와 하나코까지 차례로 살해당한다. 사람들이 살해 당하면서 오토네는 자기도 모르게 다카토 고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토네는 다카토 고로가 그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그가 무척 냉철하면서도 자상하다는 점에 점차 이끌리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살인 사건의 의심이 오토네에게 쏠리면서 오토네와 다카토 고로는 유산 배분의 단초가 된 삼수탑을 찾는다.
그곳에서 다카토 고로가 들려준 충격적인 진실은 오토네를 경악시키면서도 기쁘게 만든다. 바로 지금껏 악당으로 알고 있었던 다카토 고로가 사실은 다카토 슌사쿠였고, 다카토 고로는 유산을 목적으로 숙부가 자신과 바꿔치기 한 가짜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다카토 고로는 과거 자신의 지문이 찍힌 두루마기를 찾아 존재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가짜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것.
다작 작가로 알려진 요코미조 세이시의 <삼수탑>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격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렇다할 수수께끼 풀이의 완성도는 보이지 않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등장은 하나 활약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품은 전후 일본의 분위기를 적실하게 반영하고 있어 그 퇴폐적인 분위기가 농밀하게 그려진다. 여성이 정조를 잃으면 그 즉시 타락하거나 정조를 빼앗은 남성을 좇아야 한다는 관념이나 동성애를 절대악으로 보는 당시 사회 분위기 역시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