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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안다는 것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3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요엘은 이스라엘 국가 정보 부대의 비밀 요원으로 23년간 일을 하다가 은퇴한다. 영화 속 스파이들처럼 권총을 꺼내 들거나 추격전을 벌여 왔던 것은 아니었다. 요엘은 그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했고 적당한 값의 정보를 사고 팔았다. 아내 이브리아는 그런 요엘을 '이해한다'고 했다.
요엘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감전 사고로 사망한다. 비가 오는 날 아내는 전선을 건너려다 감전 당했고, 이를 지켜보던 이웃 이타마르 비트킨이 아내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고 만다. 그것이 아내의 사망과 관련해 요엘이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요엘은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아내와 이웃 비트킨이 함께 자살한 것인지, 또는 자신이 마지막 임무에서 실수한 무엇 때문에 아내가 살해당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 임무에서 잃어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책 <델러웨이 부인>과 호텔 벽에서 본 도형들, 그리고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휠체어에 탄 인물'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은퇴한 요엘은 라마트 로탄에 집을 얻고 간질병을 앓는 딸 네타, 어머니와 장모님과 함께 생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네타의 간질병 증세에 대해 아내 이브리아는 인정하지 않았고, 그 증세가 요엘로부터 기인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요엘은 아내의 의견과 자신의 생각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부동산 업자 아릭은 요엘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였고 이웃에 사는 미국인 남매 랄프와 안 마리 역시 그러했다. 요엘은 안 마리와 관계를 갖기 시작하나 그 관계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 부대의 책임자 르 파트롱의 소환에 응한 요엘은 그가 제안한 복귀 요청을 거절한다. 르 파트롱은 방콕의 여자 정보제공자가 요엘을 특정했기 때문에 그가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르 파트롱은 그녀에게 요엘이 이름을 말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요엘을 특정했다고 생각했다. 거듭된 간청에도 불구하고 요엘은 네타에 대한 책임감과 불길한 느낌 때문에 복귀를 고사한다. 대신 임무를 맡은 요엘의 친구 오스타쉰스키가 얼마 후 시체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죄책감을 느낀 요엘은 금기를 깨고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임무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가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지만 오스타쉰스키의 누가 그를 방콕으로 보냈는지 묻고, 이름을 말하는 요엘에게 '반역자', '카인' 이라며 욕설을 퍼붓는다.
안 마리와 랄프가 요엘에게 관계를 명확히 할 것을 요청하나 요엘은 그들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한다. 요엘은 네타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간섭받길 원하지 않는 성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퇴행 증상이 심해진다. 요엘은 방콕으로 돌아가 진상을 조사하고, 혹은 조사하는 꿈을 꾸고난 후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그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댄 이름은 사샤 샤인, 바로 오스타쉰스키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 때 썼던 가명이었다. 사람들은 요엘이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고, 요엘은 자원봉사를 통해 진실을 단번에 알게 되는 것을 단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느 순간 진실은 은밀하게 가물거리는 빛으로 다가올 것이고, 경계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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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요엘을 정보 부대 요원으로 설정한 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두 개의 죽음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조화 가능성을 묻는다.
첫번째 죽음은 아내의 죽음이다. 그가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내가 사망한다. 요엘은 아내의 사망을 단순한 사고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내를 방치한 데 대한 뒤늦은 죄책감 때문에 그녀가 이웃집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자살했을지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더 나아가 자신이 임무 수행 중 실수한 어떤 문제 때문에 아내가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까지 확장된다.
두번째 죽음은 동료의 죽음이다. 오스타쉰스키는 요엘이 복귀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신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다. 요엘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정보 부대를 떠났기 때문에 동료가 죽은 원인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속죄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속죄에 대해 오스타쉰스키의 아버지는 '반역자', '카인' 이라며 비난한다.
요엘은 두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나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속한 경계의 바깥에서 죽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적인 인물이었을 때는 아내가 죽었고, 그가 사인(私人)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국가적인 차원의 죽음이 일어났다. 그는 각각의 죽음이 그린 경계 바깥에 스스로 위치했기 때문에 진실에 접근할 수 없고 의심과 망상의 경계를 더듬을 뿐이다. 그러한 의심과 망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안 일을 찾아내지만 그의 어머니는 요엘에게 무언가 '일을 하라'고 권한다. 요엘 스스로도 그런 상태가 되면 과거 자신에게 괜찮은 일거리나 수익을 제안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개인적인 영역과 국가적인 영역을 상정하고 각각의 영역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파악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모스 오즈의 답변은 유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