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정크
최대환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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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환의 중편 연작소설 <클럽 정크>는 각각 독립된 세 편의 중편 소설이 서로 교차하고 간섭한다. 소설 속에는 총 세 명의 '그'가 등장하는데 '그'가 보고 만나고 관계 맺는 인물들이 다른 작품에서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등장한다.

 

첫 번째 <화면 속으로의 짧은 여행>의 주인공 '그'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어쩌다 보니 비틀즈 만을 듣게 되었고 성적으로는 한정적 불능이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에반게리온> 등 만화 속 세계가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따라서 그는 <에반게리온>의 레이에게는 불능이 아니지만 현실 속의 '긴 머리 여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능이다. 클럽 정크에서 술을 마신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단발 머리 여자를 만나는데 '그'는 그녀를 레이라 부르며 함께 지낸다. 그녀가 떠나게 되자 '그'는 자신이 화면 속으로 짧은 여행을 했다고 느낀다.

 

두 번째 <그의 삶의 1920년대>의 주인공 '그'는 고등학교 과학 선생이며 동성애자이다. '그'가 사랑한 남자는 이미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그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SadMouse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그는 자신의 방에 출구 없는 미로를 설치하고 그 안에 로봇 쥐를 풀어 놓았다. 쥐는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매번 미로 속을 헤매일 뿐이었고, '그'는 어쩌면 쥐가 미로를 벗어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두 명의 가출 소녀를 만난 '그'는 그녀들이 동성애자이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함께 지내기로 한다. 도시를 떠나기 전 BeAlone이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낯선 도시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법>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었고, SadMouse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자는 것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SadMouse는 번역한 초안을 '그'에게 건낸다.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그'는 BeAlone에게 작별인사를 보낸다.

 

세 번째 <그의 꽃, 그녀의 꿈, 마술 같은>의 '그'는 마술사이다. 사랑하던 그녀가 권태를 이기지 못해 떠나간지 1년째 되던 날, '그'는 클럽 정크에 가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난다. 여자와 술을 마신 후 '그'는 여자에게 꽃을 만들어 건낸다. 얼마 후 여자가 '그'를 찾아와 꽃의 수명이 다했다며 새로운 꽃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사고로 죽은 애인이 꿈에 나타나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의 꽃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떠나갔던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은 '그'는 자신이 이제 이 도시에서 붙박여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동원의 해설이 무척 흥미롭다. 흔히들 아날로그의 세계를 인간미 넘치는 세계로, 디지털의 세계를 비정하고 냉혹한 세계로 인식하는데 김동원은 디지털의 세계에서야 말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를 하나 된 전체로 인식했던 아날로그 기술에 맞서 똑같은 세계를 부분들의 집합체로 보기 시작하면서 하나 된 전체로서의 아날로그 세계를 분할하고 해체해버렸던 디지털 기술의 힘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대 문명의 주된 조류로 정착해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인식 한계라는 바탕 위에서 그 자유를 누린다.

 

흥미롭고, 공감가는 견해다. 특히 사진에 수록된 흑백 사진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까만 점인데 단지 그 크기만을 크거나 작게 하여 회색을 비롯한 농암을 표현한다는 예시는 탁월한 비유였다.

 

<그의 꽃, 그녀의 꿈, 마술 같은> 中 권태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서 적어 본다.

 

실상 권태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못 견딜 만큼 벗어나고 싶지만 완전히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 도시에 대해 느끼는 권태 또한 따지고 보면 이 도시에서의 자기 모습, 자기 삶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다른 도시로 옮겨간다고 해도 곧 그곳에 권태를 느끼게 될 것.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사물에 대한 인식의 밑바닥에는 언제가 자기애라는 침전물이 고여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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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의 사각지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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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어느 날, 팰리스 사이드 호텔 3401호실에서 호텔의 사장 구주 마사노스케가 살해당한채 발견된다. 팰리스 사이드 호텔은 구주 마사노스케의 선견지명과 공격적인 투자 덕분에 업계에서 선두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최근 도쿄 로열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도쿄 로열은 팰리스 사이드를 압도할 정도의 초고층 빌딩을 건설한 후 항공사와 여행사를 경영에 참가시켜 단체 고정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구주 마사노스케는 미국 최대의 호텔업체 크레이튼과의 업무 제휴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하였다. 

그러던 시점에 구주 마사노스케가 살해당한 것인데, 그가 살해당한 객실 3401호실은 밀실이었다. 객실에는 총 4개의 키가 존재하는데 고객이 가지고 있는 키, 메이드 주임이 해당 층만을 열 수 있는 '플로어 패스키', 프런트에 보관되는 '스페어 키', 마지막으로 지배인이 보관하며 호텔의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 키'가 그것이다. 하지만 살해당한 방 안에 키는 놓여 있었고, 나머지 세 개의 키도 사용된 흔적이 없었으므로 사건은 초동부터 난황을 보인다.

구주 마사노스케의 비서 아리사카 후유코만이 밀실 트릭을 실현할 수 있는 용의자였으나 그녀에게는 철벽같은 알리바이가 있었다. 바로 수사1과 형사 히라가와 밤을 지세웠다는 것이다. 히라가는 자신이 그녀의 알리바이를 보증하는 증인으로 이용되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뒤에 어른거리는 공범의 존재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아리사카 후유코에 대한 경찰의 알리바이 깨기가 진행되던 중 이번에는 그녀가 후쿠오카에서 살해당한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에 중독되었는데 화장실 변기에서 찢어진 종이 조각이 발견된다. 종이는 글씨가 번져 잘 알아볼 수 없었으나 청첩장 내용의 일부가 분명해보였다. 이를 통해 그녀를 살해한 자의 이름이 '구니오'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동종 업계 종사자 중 동일 인물을 가진 사람을 추려내던 수사팀은 도쿄 로열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하시모토 구니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알리바이가 있다. 사건 당일 다른 호텔에 체크인과 체크아웃한 기록이 있는 것이다.

 

<고층의 사각지대>는 1969년도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모리무라 세이치의 출세작이다. 그의 등장으로 일본 미스터리계의 3회 붐이 완성되는데, 1회는 전후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미스터리 붐이고, 2회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파 미스터리 붐이며, 마지막 3회가 모리무라 세이치의 등장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데뷔 초기 현대 사회의 비정한 일면을 날카롭게 파해치며 본격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써냈다. <고층의 사각지대>는 그가 실제 호텔맨으로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인데 호텔 업계 종사자들이 내부 사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항의하는 해프닝 마저 있었다고 한다.

 

작품 중 범인은 비교적 일찍 특정되지만 문제는 밀실트릭과 알리바이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을 연상시킬 정도로 형사들은 우직하고 성실하게 트릭과 알리바이 붕괴를 위해 발로 뛰며, 그 결과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밀실트릭은 열쇠에 달려 있는 패찰을 아리사카 후유코가 바꿔치기 하여 구주 마사노스케와 메이드의 눈을 일시 속인다는 비교적 명쾌한 설명으로 해결이 되지만, 하시모토 구니오의 알리바이는 수많은 장치들이 우직한 형사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수사팀은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의 지리적 거리를 11시간 동안 왕복하며 살인을 해야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 비행기라는 운송 수단을 이용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승객 명단에 집착하지만 명단에 하시모토는 없다. 우회 비행기편을 조사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해결이 되지 않는다. 타이완에 가서 아무런 볼 일도 보지 않고 곧바로 일본 국내선으로 환승을 한다는 허를 찌르는 범인의 행동과 숙박 카드 트릭 등 본격물 마니아를 만족시켜줄 다양한 장치들이 장애물 경주의 허들처럼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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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빠져나온 여자
원재길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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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삼촌의 좌절과 영광

 

꽤 이름난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 일하던 삼촌은 철도청 고위 간부의 눈에 띄여 그 집의 집사로 스카웃 되어 들어간다. 어느 날 그 집 사모님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삼촌에게 별 생각 없이 꿈풀이를 청했는데 삼촌의 해몽대로 일이 흘러가 목숨을 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삼촌은 관상은 물론이고 수상, 족상까지 두루 보며 용한 점쟁이 노릇을 한다. 자연 고관대작들의 면담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맞선 자리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맞선 자리에 나온 여자 대신 그 여자의 어머니에게 반해 일시 부적절한 삶을 살기도 하나 제 궤도로 돌아온 뒤로는 한동안 잠잠하게, 고위층들의 운세나 점쳐 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철도청 고위 간부의 어린 딸과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이 되어 생이별을 경험한다. 딸은 자살하고, 삼촌은 남미로 훌쩍 떠나간다.

고국에 방문한 삼촌이 식사를 하던 도중 레스토랑 웨이터에게 패악을 떠는 노부인을 보더니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칠레에서 오신 유명한 예언가라는 말에 노부인은 삼촌 앞에 와서 미래를 알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삼촌은 노부인의 남편이 몇 살인지부터 시작해서 소소한 일들을 맞춰나가더니 급기야 그 노부인의 딸이 자살한 사건까지 덤으로 알아 맞추고, 조만간 호되게 나가 떨어질 것이라 예언한다. 아니나 다를까 노부인은 출구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o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

 

한 사나이가 벼락을 맞은 후 없던 능력이 생겨났는데, 벽을 마음대로 통과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사내는 자신의 능력을 신기해하며 여자 목욕탕을 드나들다가 이것이 시들해지자 부자들이 사는 집을 돌아다녔고, 음악회나 미술 전람회를 공짜로 구경하기도 하였다. 전국을 구경 다닌 이후에 사내는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탄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텔이건 레스토랑이건 공짜로 이용했다.  

사내가 어느 날 해장국이 간절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우연히 한 여자가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사내는 여자에게 자신이 몇 년동안 너무나 고독했다면서 책을 쓴 작가와 대화하면 뭔가 통할 것 같다면서 저자가 어디 사는지 아느냐 물었고, 여자는 자신이 책의 저자라고 밝힌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여자는 초능력에 시한이 있다고 말한다. 듣느니 처음인 얘기에 반신반의하는 사내에게 여자는 자신이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 갔다가 벽에 반쯤 끼인 사내를 보았는데 그 사내가 벽을 통과하던 중 능력이 사라져버려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자신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능력을 쓰지 않고 봉인해왔는데 최근에 벽에 부딪힌 경험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벽을 향해 걸어갔고 두 번 다시 바깥 세상으로 돌아나오지 않았다.

 

원재길의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 편의 이야기는 대부분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삼촌의 좌절과 영광> 같은 경우 '삼촌의 예지 능력이 기실 사람들이 바라는 바에 기대어 적절히 짜맞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는 식으로 설명하려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이야기들이 모두 현실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가령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작가들이 별안간 폭로전과 싸구려 자기고백에 빠져든다든가(신종 바이러스에 관한 보고서), 손이 주인을 배반하여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든가(손), 먼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심하게 일으키는 여인이 먼지에 쌓여 죽어간다든가(먼지의 집) 하는 식이다. 또한 주체 박약이라는 신경증을 앓고 있는 화자가 은행원과 여급의 이중생활을 완벽히 수행하는 여인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블랙 코미디인 <싸락눈>,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자취 없이 사라진 '솜다리' 여인에 관한 이야기 <별>, 어머니 대신 여선생에게서 모성을 느낀 이후로 여성의 원형을 찾아 한평생을 헤메이는 <새벽 편지>가 실려 있다.

 

작품집 중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마음을 끄는 작품은 <물 속의 집>이다. 

남편이 벌인 모종의 사건이 범법으로 판가름나자 여자와 아이는 둘이서 텐트촌을 떠돌게 된다. 어느 날 여자가 잠결에 칭얼대는 아이의 입을 막아 조용히 시켰는데, 다음 날 깨어보니 아이가 죽어 있었다. 여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은 여자가 마을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몰되어 지금은 없다. 여자는 허탈한 상태에서 허청대며 길 옆 풀숲에 있다가 낚시꾼 두 명에게 윤간을 당한다. 여자는 트렁크를 들고 물 속에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걸어들어간다. 잠시 후 물 속에 잠긴 트렁크에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할머니가 여자와 아이를 반기고, 여자는 평온했던 과거 할머니 집에서 맞던 물가의 아침 나절을 떠올린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물 속의 집>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비정하게 여인의 동선을 추적한다. 낚시꾼들이 버린 피라미들이 땅바닥에서 썩어가는 모습은 여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표징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유일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할머니집 이지만 그곳은 이미 수몰된지 오래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그녀가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떠올린 평온한 광경은 환상일 뿐이다. 

작품은 어찌 보면 끔찍하다. 우리가 떠나온 그곳은 이미 수몰되었고, 우리가 한 행동이란 범법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이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기껏해야 윤간의 대상이 될 뿐이며,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며 환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뿐이라면, 지금 이곳이 지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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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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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세의 레오는 오리나무 공원과 넵툰 수영장에서 '랑데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레오는 동성애자라는 '목덜미에 두른 불편한 침묵'을 벗어 던지고 가족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면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레오가 수용소로 끌려갈 때 할머니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고 말한다.

수용소에서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질병에의 노출 등은 사람들을 생존 이외의 것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동료가 죽으면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옷가지를 벗겨내는 데 골몰했다. 강제노동수용소 사람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굶주림이었다. 굶주림은 '배고픈 천사'의 모습으로 모든 이들에게 깃들어 있었다. 주식인 양배추수프는 '몸에서 살을, 머리에서 이성'을 앗아갈 정도로 형편 없는 것이었고,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뒤져 감자 껍질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굶주림은 남자와 여자의 구별을 없앤다. 그들은 뼈와 살만 남아서 성적인 정체성이 제거된 동류가 된다. 때때로 물물교환을 위해 석탄을 들고 나선다. 석탄은 흔전만전이었다. 어느 날 레오는 구걸을 하다가 러시아 노파에게서 한 번도 쓰지 않은 깨끗한 하얀 수건을 선물 받는다. 물물교환에서 먹을 것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흰 손수건을 간직하는 행위를 통해 고향에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만성적인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벼룩에게 피를 빨리면서도 그들은 언제 자신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러시아인들은 '곧'이라는 애매한 말만 했으므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계속 일 하도록 사육당하기만 할 뿐 집에는 돌아갈 수 없는게 아닐까 불안해한다.

5년째 접어들자 러시아인들이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 돈으로 기름진 음식을 사먹었다. 그러자 뼈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남자'와 '여자'로 변모하여 상대편 성에게 잘보이고자 했다. 눈(目)의 허기가 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에게 편지가 온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는 어린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고 출생 연도가 쓰여 있을 뿐 아무런 설명도, 안부인사도 없었다. 부모님은 레오에게 몇 년만에 보낸 편지에 스무살 넘게 차이 나는 동생의 출생을 알렸을 뿐이었다. 레오는 대체물이 생겼으니 이제 자신은 필요 없다는 얘기라 생각했고 고통을 느낀다.

갑자기 레오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러시아인들은 아무런 얘고도 없이 갑자기 그들을 풀어주었다. 수용소에서 체득한 두려움들 역시 레오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기에 레오의 가족은 레오를 불편해했고 레오 역시 가족들을 불편해한다. 수용소에서 알게 된 그들은 서로를 아는 척하지 않았고, 오직 고생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한 이발사만이 편지를 보내온다.

레오는 자신이 '풀려난 몸으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었고 자기를 기만하는 증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읽다 보면 쥘 르나르의 <홍당무>가 생각난다. <홍당무>처럼 소소한 일들에 대한 소소한 단상들이 이어진다.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극적인 사건 같은 것이 전개될 법도 하건만, 그런 이야기는 거의 없다.

레오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문제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수용소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특수한 의미를 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수한 의미를 표현할 말이 적당치 않을 때에는 작가가 만든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한다. 숨그네(Atem+Schaukel) 역시 그러한 단어다. 

 

1944년 여름 소련 적군이 루마니아를 점령한 후 파시스트 독재자 안토네스쿠를 처형한다. 루마니아는 소련에 항복했고, 소련은 나치에 의해 파괴된 국가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간다. 

독일인이 소련 강제수용소에서 노역을 했다는 것은 소련이 1917년 혁명 기간에 견지했던 세계주의를 폐기 처분하고 스탈린의 국가사회주의 틀 안에서 민족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통치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독일 민중과 러시아 민중은 2차 세계대전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기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은 자본의 팽창 때문에 발생한 자본가들의 힘겨루기였지 민족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서는 패전국 민족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견해에 쌍심지를 켜고 반박을 하는 사람들과 굳이 토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나는 애매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뿐더러 국가라는 것도 레짐을 비롯한 여러 층위에서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 연일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민족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들은 '일본놈들' 운운 하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사실 아베와 일본 자본가들은 독도와 위안부, 센카쿠 등 극우적이고 자극적인 문제를 화두로 삼지 않으면 자국 민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버블 시대처럼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일본 자본가들은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극우적인 발언과 입장 표명에 대해 중국과 한국 정부가 겉으로는 반발하고 있지만 사실 손해날 것은 없는 장사이다. 독도, 센카쿠열도, 위안부, 신사참배 그런 자극적인 단어들만으로도 골치 아픈 여러 문제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이고 얼마든지 민족적인 감정을 자극하여 분열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뭉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나라 정상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어떤 얼굴 표정을 지을 것이냐가 고민이지 고스톱 판을 엎을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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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랑
김영현 / 실천문학사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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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기독교를 믿는 지주 집안에서 나고 자란 최덕근은 젊었을 적 남하하여 서북청년단에 들어갔다. 지리산은 물론이고 제주도까지 '빨갱이를 때려 잡기' 위해 뛰어다니며 총질을 해댔다. 포목점을 벌여 한때는 제법 돈을 손에 쥐기도 했고, 재혼을 하여 가정도 새로 이루었다. 아내도 재취자리였는데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영훈을 데리고 온다. 얼마 후 영민이 태어났고 네 식구는 그런대로 무던하게 지냈다. 이제 육십줄에 접어든 최덕근은 '주님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막내 영민이 출세하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처남 문상사가 덕근의 집을 찾는다. 문상사는 월남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후 세상에는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는 없으며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믿게 된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아들 경식이 대입에서 미끄러지자 서울의 매형 집에서 재수를 시키면 돈도 아끼고 결과도 좀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맘에 부탁을 하러 온 것이다. 최덕근은 내심 거절하고 싶었지만 체면상 거절하지 못한다.

 

시절은 5공화국 말기였고 영민은 소위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방에는 레닌과 전봉준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써클활동을 하며 사회과학책을 학습했으며 데모에 참가하고 있었다. 반면 서른 중반의 영훈은 한때 러시아 시인 예세닌을 암송하며 삶을 예찬했으나 이제는 니체에 빠져 얼핏 보면 께느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경식은 입시 학원에서 고향 친구 태수를 만나고 서울 생활에 점차 적응하게 된다.

 

영민은 현장으로 들어간 재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자신이 나약한 감상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다잡지 못하다가 시위의 지도부 역할을 맡게 된다. 영민은 시위 도중 끌려가 구속되지만 6.29 이후 유화 조치 덕에 풀려난다. 영민은 울산으로 내려가 단체일을 하고 있는 재희에게 애틋한 마음을 털어 놓고 재희 역시 영민을 향한 그리움을 인정하며 둘은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한편 경식은 재수학원 근처에서 은숙을 만난다. 은숙은 강원도 간성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으로 대대장의 딸이었다. 은숙이 대학생인것 같아 보여 경식은 자기도 모르게 국립대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후로 은숙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간다.

 

6.29로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부패한 정권이 언론과 군대, 경찰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유화조치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진정시킨 정권은 곧 폭압적인 본성을 드러내 노동조합 파괴에 나선다. 노조파괴꾼 제임스 박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들이 재희가 일하는 단체를 한밤중에 급습하고, 재희가 그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재희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가까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이를 본 영민이 복수를 맹세한다.

영훈은 동생이 복수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성공하더라도 그에 대한 댓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허무주의자인 자신이 대신 복수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호텔을 나서던 제임스 박을 살해한 영훈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영훈은 진정한 사랑이란 악령처럼 이 땅 위를 거니는 모든 죄악들과 싸우는 일이며, 그러나 이 모든 일들도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저 그림자가 스쳐가듯이 무의미할 뿐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경찰은 그의 죄의식 없음과 허무주의적인 견해 때문에 정신병 감정을 의뢰한다.

은숙은 경식에게 자신이 쓰던 손 때 묻은 영어사전을 선물로 주며 미국으로 떠난다. 영어 사전 속에는 은행잎 하나가 곱게 말려져 있었는데 거기 쓰여 있는 날짜는 그 언젠가 경식이 국민학생일 때 은숙에게 은행잎을 주워준 날짜였다.

영민이 구속될 때 쓰러졌던 덕근은 몸이 회복되자 아들 영민의 방에서 북한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 지작한다. 그리고 황해도 남천, 자기 고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퇴근 후 운전을 하다가 문득 대학 입학 시절이 떠올랐다. 가슴 두근 거리던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라는 사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풋사랑>의 이야기들이 매우 먼 옛날 일처럼 치부되고, 역사의 진보는 우연의 산물인 것처럼 여겨지고, 진실과 정의를 왜곡하는 일이 마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눙쳐지는 작금의 현실에 묵지근한 분노가 느껴졌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가. 우리를 그토록 분노와 슬픔과 열정에 떨게 했던 그 시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많은 젊음들이 불꽃처럼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대신에, 우리들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런 추억도, 그리움도 없이, 마치 버스를 갈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러 나서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작가는 책머리에서 회고담류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욕망은 어쩌면 억울함인지도 모른다. 한 시대의 불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젊음을 송두리채 바쳤던 사람들, 하다 못해 그런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버스를 갈아 타듯'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러 갈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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