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내안에 있는가, 내가 책안에 있는가
코로, 책 읽는 여자, 1869
내가 책을 통해 겪었던 여러 행복과 불행들을 만일 책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더라면, 그것이 제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책에서처럼 그렇게 짜릿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인생의 면면들은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어 제대로 분간해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책 속의 무대가 절반은 행태를 갖춘 채 내 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었는데...
나는 콩브레 정원의 열기 속에서 연이어 두 해 여름이나 깊은 산 계곡에서 급류가 흐르는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럴때면 시간은 몹시도 빨리 지나 방금 울렸던 종소리가 지금 또다시 울리고 있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심지어,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시간을 건너뛰어 두번이나 더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는데, 실상 그때 나는 종소리를 한 차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던 셈이다. 마치 깊은 잠과도 같은 독서의 마력은 내 귀를 멀게하여, 종소리를 못 듣게 한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