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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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며칠 전 친구는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동안 연애는 눈길도 주지 않던 친구라 의아했다. 월춘(?)준비를 늦게라도 시작하려는 건가, 생각해봤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였다. 천식이 있는 남동생이 전역을 하고 키우던 고양이를 시골집에 맡겨 둔 상태였다. 애정을 쏟던 ‘동물’이 사라지니, 그 곳엔 다른 대상, ‘남자 인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동물을 기르는 것과 연애를 하는 것의 공통점이라면 나의 일상을 어떤 대상에게 바치는 일, 나의 애정을 쏟는 일이다. 종종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은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친구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건 어쩌면 마크 롤랜즈가 책에서도 말했던 행복의 양가적인 모습을 모르고 행복을 그저 어떤 감정이라고 치부하는 데에서 나오는 태도, 혹은 무식함이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다. 마크 롤랜즈에 따른 행복이라면 그를(사람이든 늑대든 고양이든) 생각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포함해,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혹은 내가 먼저 그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등이 뒤섞인 상태일 것이다. 

 

복잡한 행복을 아는 것은 그 행복을 책임질 첫 번째 단계다. 이후는 이것을 알고도 책임을 질 수 있을거냐 하는 문제다. (지엽적으로 독서모임도 그렇다. 독서모임의 모집 글을 보고 ‘내가 찾던 스터디에요’라며 반가움에 메일을 보내는 것은 감정적이다. 쉬운 일이다. 행복이라고 말하기엔 미안할 정도의 모임이지만 이 모임에서도 어느 정도 감정적인 행복을 제공받을 거란 기대로서 지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하나둘씩 카톡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책임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린트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등등.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찰나의 행복에 따르는 더 긴 시간의 책임감과 불안함. 그것을 견디는 자에게 감정의 행복은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나의 늑대’를 안락사 시킨 것은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행복은 어려운 일이다. 내 친구는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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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8
장 주네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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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동성애자들의 ‘선택’이 아닌 ‘선천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추세다. 태어나면서부터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동성애는 그들의 선택일 수도, 선천적인 것 일 수도,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즉, 동성애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한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사람에게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으며, 그 요인역시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장 주네의 <하녀들>에서는 그녀들의 ‘하녀’라는 신분적인 억압으로 인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동성애적 코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았다. 이것 역시 하나의 요인이 또 여러 가지 요인을 발생시켜, 동성애적 성향을 키우게 만든 것이다.

 

장주네의 1947년 작인 <하녀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이른바 ‘파팽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이것은 두 자매가 자신들이 7년 동안이나 하녀로 일하던 집주인과 여주인과 그 딸을 살해한 뒤, 자기들의 방에서 동성애를 즐기다 발각된 사건이다. 사실 ‘파팽자매사건’에서도 자매가 주인을 죽이고 동성애를 나눈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장 주네의 <하녀들>에서도 동성애 행위가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파팽자매사건’의 동성애적 행동이 있었다는 견해에는 그 사건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주장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 Lacan)은 파팽자매가 두 개의 욕구(delires a deux), 즉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정신질환이라 할 수 있는 피해망상적 분열증(paranoid disorder)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녀들의 동성애와 사도매저키즘적 이상행위, 폭력성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라캉은 두 자매가 성적관계를 맺었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 이유로 라캉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동성애에서 편집증적 성향을 유추하는 경우는 그 동성애가 무의식적이거나 잠재된 동성애일 경우”라고 지적하며 그러한 동성애 성향은 완전히 자아를 부정하는 형태로 표출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파팽자매들이 동성애를 나눈 것은 그들의 성적성향이 실제로 동성애적 이어서 라기보다, 극한의 공포상황에서 제정신이 아닌 두 자매가 피가 낭자한 옷을 벗고 자신들에게 유일하게 안식이 허락된 공간인 방에서 함께 했던 순간이, 근본적으로 유아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뒤 보이는 극도의 분리불안이나 퇴행적 일탈행위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장 주네의 <하녀들>에서 동성애적 코드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끌레르 그냥 놔둬. 어둡게 해줘. 조금만 어둡게 해줘. 제발 부탁이야.

(쏠랑쥬는 불을 끈다.)

쏠랑쥬 좀 쉬어, 끌레르.

(꿇어앉아 끌레르의 신을 벗기고 그 발에 입을 맞춘다.) 좀 가라앉혀, 끌레르.

(끌레르를 쓰다듬는다.) 발을 이리 뻗어. 눈을 감아.

끌레르 (한숨을 쉬며.) 창피해, 언니.

쏠랑쥬 말하지 마. 가만히 있어. 내가 재워 줄게. 잠들면 내가 저 위 다락방으로 옮겨줄게. 옷을 벗기고 네 침대에 눞혀 줄게.

끌레르 창피해, 언니.

쏠랑쥬 쉿! 내가 얘기 하나 해 줄게.... (중략)...

(쏠랑쥬는 불을 켠다.)

장 주네, <하녀들>, 61p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인 측면 외에 우연히 동성인 사회적 약자들의 사랑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녀들의 인간이하의 생활환경 - 예를 들어 너무나 추운 다락방, 주인들의 횡포 등- 이 하녀들을 성애적인 동성애가 아닌 생활고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약자들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녀들>의 집은 그녀들에게 안식처로서의 집이 아니다. 가장 편안한 안식처여야 할 가정이 하녀들과 주인과의 권력관계로 인해 욕망과 권력이 교차하는 전쟁터였던 것이다. <하녀들>의 배경이 변화하지 않고 오로지 그녀들의 ‘집 안’이라는 것은 폐쇄공포증 적인 공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들 속에서 그녀들의 동성애가 움툰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든 무언가에 호감을 가지고 의지하는 이유 혹은 목적을 너무 뚜렷하게, 이유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특정한 요인 안으로 그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폴 발레리는 “인간은 술병에 붙은 상표만으로는 취하거나 목을 축이지 못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어떤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개념어를 통해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들에게 딱지를 만들어 분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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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거짓말쟁이들 -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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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얼마나 ‘잘 지어내느냐’다.

 

영화감독에게 묻는다. “왜 이 장면을 이렇게 찍으셨나요?” 주인공의 비참한 심정을 대변하는 사물로서... 친절한 감독은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대부분, 창작자들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별 생각 없이.’     

당신은 왜 OO가 되고 싶나요? 왜 그렇게 살고 싶나요? 왜 그를 사랑하나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들은 대부분 의미가 없다.

 

‘그냥.’ ‘살다보니.’ ‘모르겠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솔직한 대답이다. 그러나 현실을 잘 파악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우울증에 걸리듯, 솔직한 대답은 무기력증과 허무함만을 남긴다.

 

면접장에서, 상견례 자리에서, 사랑하는 이의 얼굴 앞에서 ‘그냥’ 따위의 대답을 하는 건 제아무리 솔직한 답변이라고 해도 환영받기 어렵다. 환영은커녕,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답을 ‘잘’지어내야만 한다. 잘 지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책을 읽고, 남들과 토론하여 잘 지어낸 답을 만들어낸다. 그 답을 노트에 적는다. 프린트를 한다. 질문을 하는 자 앞에서 또박또박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한다. 그들 앞에 선다. 평가를 받는다. 삶은 이러한 것들의 연속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누가 더 치열하게, 많은 시간 매달렸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우리는 선천적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하루하루 좋은 거짓말을 지어내고 그것을 남들에게 믿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기기만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후천적 거짓말쟁이다. 그것도 아주 고단한 과정을 거친.

 

식물도 속임수를 쓴다. 북아프리카의 거울난은 잠재적인 수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작은 꽃들을 피운다. 이꽃에는 꿀이 없지만 거울난은 조심성없는 것들을 유혹하는 특별한 계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수분시켜주는 말벌종의 암컷 흉내이다. 꽆의 푸르스름한 보락빛 중심부가 마치 쉬고 있는 말벌 암컷의 날개를 닮았다. 길고 수북한 빨간 털은 이 곤충의 배에 난 털과 비슷하다. 그게 미끼다.흥분한 말벌 수컷을 위한 곤충판 포르노인 것이다.

빅토리와 탈와의 실험-‘징벌환경’: A학교는 거짓말을 해도 훈계나 보충학습 등 비체벌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B학교는 체벌을 했다. 결과는 B학교의 아이들이 그저 거짓말에 능숙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찮은 일로 곤란에 빠지게 된다면 차라리 끝장을 볼 때까지 하는 게 낫다."

빅토리와 탈와는 아이드이 거짓말하는 것을 관찬하면서 보냈다. 훔쳐보기 놀이: 장난감 박스에서 나올 장난감이 무엇인지 알아맞히기 놀이를 한다. 이 대 연구자가 잠깐 나갔다오겠다고 하고 박스 안을 절대 보지 말라고 말한다. 돌아와 아이들이 거짓말을 했나 살펴보는 연구. 일반적으로 세 살배기는 즉시 고백을 하고, 네 살배기는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여섯 살무렵이되면 아이들의 95%가 이런 거짓말을 한다. 세 살에서 다섯 살사이에 일종의 루비콘강을 건넌다는 게 보편적인 진실인 것 같다. 비슷한 유형이 미국, 영국, 중국, 일본의 아이들에게서 관찰됐다.

프랑수아 드라로슈푸코는 "약자는 솔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생과 부모는 거짓말에 대한 벌을 늘여 아이들을 더욱 더 방어적이 되게 몰아갈 수도 있으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커가면서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하는 것을 배운다기보다 ‘언제’ 거짓말을 할지를 배운다.

미국의 영화배우 말런 블랜도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 다. 블랜도가 말한 것처럼 거짓말하기와 예술은 공통점이 많다. 두 가지 모두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수반되며, 연관된 정신적 과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예술가와 달리 만성작화증환자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만성작화증환자가 말을 지어내는 상황에 갇혀있다면, 예술가는 이 원천에 의식을한 채, 의도적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신기한 현실주의자다. 그들은 현실과 환상의 차이를 알지만 후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뻐할 준비가 돼있다. (프로이트)

사람들은 취직면접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파악할 수 있는지를 과대평가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짧은 만남에서 자신을 어렴풋하게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나는 대단히 예민하고 복잡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 않지만, 너는 예측이 가능하고 읽어내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페르난도 페소아(1888~1935, 포르투갈의 시인)의 <불안의 책>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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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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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상황에 있는 것과 행복한 것과는 다르다. 누가 봐도 행복한 상황이고,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런 행복한 상황을 내가 누려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타고 난다. 어떤 이는 행복할 줄 모른다. 다른 의미의 사이코패스인 게다.

 

행복사이코패스들은 종종 그들 곁에서, 행복한 상황에 행복할 줄 아는 이들을 빤-하고 쳐다본다. 대부분 그 대상은 애인이거나 가족이다. ‘넌 행복하구나.’ 부럽기도, 가엾기도 한 느낌. 우리 같이 행복한 상황 속에 있는데, 네가 느끼는 걸 같이 못 느껴서 미안해. 그래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행복을 연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행복할 거란 기대감이 없기에 역설적으로 현재를 즐긴다. 얼마 전 종영한 한 드라마에서 너무나 사랑하던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깨끗하게 돌아서는 한 여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헌신의 장점은 미련이 남지 않는 거라고. 물론 이 여인은 행복사이코패스는 아니었지만 현재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같은 류로 보인다.

 

어떤 상황도 행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지금 상황에 최대한 몰입한다. 이는 미래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 자신이, ‘그때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등의 자학을 않기 위한 장치다.

   

이 여행기에는 다른 여행기와는 달리 숭배나 찬미 혹은 불쾌 등의 감정이 절제돼있다. 종종 지나던 아이나 말에게서 슬픈 눈을 찾을 뿐이다. 이 기획은 누가 봐도 부러운 상황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세계 곳곳을 누벼 책을 내고, 돈을 벌고. 그런데 이 사람, 들떠있지 않다.

 

책의 곳곳에서 나오는 여행자의 윤리를 지키는 모습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글을 쓰는 예술가로서의 작가의 모습이라기보다, 자신의 저술활동이 혹여나 현지 사람을 대상화하지는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사람, 열심이다. 혼자서 이상한 무인도에 들어가질 않나, 경비원에게 몇 번이나 내쫓기고도 노숙을 하려하지 않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다. 남들은 너무도 부러워하지만, 나도 내가 행복한 상황임을 알지만, 일이니까,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몇몇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몇몇은 행복사이코패스로서 일에 더더욱 헌신하고 충실해진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좋은 결과물을 낸 몇몇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감을 찾는 것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필립로스 - 에브리맨 )

홀로 있을 때의 침묵은 과도하게 쓰라리고, 둘이 함께할 때의 위안은 지나치게 감미롭다. 그렇기에 인간은 관계릐 부조리한 이진법 속에서 무망한 진자 운동을 한다. 48p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기체였다. 65p

풋사랑은 대답하고 싶은 말을 오히려 질문한다. 그리고 어린연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딴청을 피우는 척한다. 109p

내 인생에서 가장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사이에, 나는 계절이 흘러 가는 것을 보았다. 130p

연인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멀어지는 사랑의 퀀태일까, 다가오는 사랑의 열정일까. 이제 막 닻을 올린 남의 사랑 앞에서 오랜 세월 항해해 온 나의 사랑이 일순간에 침몰하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던 사람의 슬픔과 자기연민을 강력한 멜로디에 실어낸 그 노래는 아바 음악의 정화였고, 영화 <맘마 미아>의 정점이었다. 140p

결국 모든 것은 무엇을 좀 더 원하느냐에 대한 욕망의 비중과 확률 문제였다.143p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것보다 마주보며 나도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152p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란 인도 경전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170p

사실 모누리키 섬 가까운 거리에는 몇 개의 섬이 있었다. 고립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제작진들이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온 주변의 섬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일일이 지웠을 뿐이다. ... 고독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위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것은 북적대는 시장 한복판이나 모두들 떠들썩하게 술잔을 비워대는 술집 같은 곳에 있다. 179p

너무 크거나 지나치게 강렬한 것은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람의 풍경은 클로즈업 앵글에만 담긴다. 연애는 미세한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벼리는 대신 거시적인 조망 능력을 어느새 잃게 만든다. 185p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은 프랜시스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듯밖의 일은 항상 생긴다. 그로 인해서 인생이 달라진다. 이젠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조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199p

여행자들은 세상의 구석구석을 떠돌며 기어이 흔적을 남겼다. 어떤 연인은 바위에 하트무늬를 새기고, 어떤 연인은 철망에 자물쇠를 채운다. ...여행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허망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잠시 머물렀던 누군가의 순간은 영겁 속에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무너진 돌탑과 희미해진 낙서, 녹슨 자물쇠와 닳아버린 동전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로운 여행자의 눈동자를 텅 빈 세월의 이명 속에서 무심하게 맞는다. 208p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현실의 남녀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구의 슬픔을 자신들의 삶에 접종함으로써 면역을 얻으려는 걸까. 이럭저럭 만나서 고만고만하게 헤어지는 현실의 사랑은 미쳐 날뛰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신화적 사랑의 파편 속에서라도 기필코 에너지를 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209p

<제 7의 봉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페스트가 만연했던 시대에 스스로 피범벅 상처를 내는 피학적 행위로 신의 분노를 달래려 했던 집단적 광란의 장면은, 역설적으로 신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의 절망이 그려낸 지옥도였다. 224p

1983년에 은퇴를 선언했던 베리만은 오랜 세월 이집에서 은거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 45분간 산책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세 시간동안 글을 썼으며, 점심을 먹고나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은 뒤, 헛간을 개조해 만든 개인 극장으로 가서 영화를 보는 생활을 반복했다. 233p

말년의 베리만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늙는 게 이토록 어렵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그동안 왜 하나도 없었지?" 아마도 그는 삶의 매 순간 쩔쩔매며 살았을 것이다. 235p

알제리의 카바일 부족 사람들은 시계를 ‘악마의 맷돌’이라 불렀다고 했던가. 그리고 도시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가 증기기관이 아닌 시계라고 말했다. 245p

누군가 잠깐 들른 휴식 공간이 다른 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 여행자는 종종 죄책감의 삯으로 환상을 소비한다. 248p

그는 존레논과 자신이 동갑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죠."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의 웃음에 담긴 것은 행복감이었을까, 아니면 겸연쩍음이었을까. 혹은 먼저 보낸 자의 아쉬움이나 뒤에 남은 자의 미안함이었을까. 268p

새로운 사랑이 들어 앉는 곳은 상실한 이전 사랑의 빈자리가 아니라 그때까지 활용된 적이 없는 마음속 또 다른 공터다. 잃어버린 관계는 잊힐 수는 있어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거나 복원될 수는 없다. 새로운 관계가 주는 위안은 그저 새로운 위안일 뿐이다. 271p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 열리는 문이 닫혀버린 그 문인 것은 아니다. 설혹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도, 그게 우리가 과거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일 것이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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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그림.각색, 황희연 글 / 오픈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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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만화로 보는~'머시깽이를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는 것 같지만. 내가 대부분 세계문학의 줄거리를 아는 이유는 어릴 적 봤던 '만화로 보는 세계명작'따위의 것들 덕분이다. 분명 '만화로 보는'것들이 단순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긴 하지만 정말 훌륭한 만화일 경우도 많다. '맹꽁이 서당'이라든지 '따개비 한문숙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습(?)만화들. 지금도 가끔 읽는다.

 

문제는 작명인 듯 싶다. '맹꽁이 서당'이나 '따개비 한문숙어'같은 명작을 '만화로 보는 조선사'라든지 '만화로 익히는 한문숙어' 따위로 지어놨다면 이들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로 보는'이라는 작명법은 그 만화 고유의 제목이 아니라 원래 텍스트를 만화로 그려놨다는 설명일 뿐이다. 설명이 아닌 만화의 이름을 지었어야 했다. 남무성의 다른 만화들이 음악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만화로 보는 재즈의 역사'가 아닌 '재즈 잇 업'인 것처럼 이 책도 그래야 했다. 예를 들어 부재와 비슷하게 '라이벌 영화사'정도로 짓든지 말이다.

 

훌륭한 만화는 문학 혹은 영화 못지 않게 좋은 텍스트다. 만화를 독자적인 예술로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만화로 보는~'따위의 작명은 그만 나왔음 싶다. 그 만화 자체의 이름을 지어주시라.

 

아, 책의 내용은 유익하고 재밌고 술술 읽힌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책들처럼.

찰리 채플린은 매카시즘 광풍의 명백한 피해자다. 1950년을 전후하여 공화당 사원의원 조지프 맥카시가 주도했던 적색분자 추방주의에 할리우드 영화계도 예외없이 휘말렸다. 엘리아 카잔, 게리 쿠퍼, 영화 배우 출신의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또한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동료의 공산당 활동을 밀고한 대표적인 영화인이다.

히치콕하면 맥거핀과 카메오다. 맥거핀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을 수시로 화면에 비춰 사건의 단서를 지닌 중요한 물건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1970년대 할리우드: 영화 악동이라는 뜻의 `무비 브랫`으로 불렸던 이들의 공통점은 가방끈이 길다는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코폴라까지. 이렇게 가방끈 간 영화이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데는 B급 영화 제작자, 로저 코먼의 활약이 컸다. 당시 미국에선 동시 상영관 제도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이런 영화관에서 인기를 끄는 장르는 섹스와 호러,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들이었다. 로저 코먼은 싸구려 동시 상용관용 영화를 부지런히 공급하는 제작자였다. 로저 코먼의 전략은 단순했다. 이론은 빠삭하지만 아직 기술이 부족한 영화과 학생들을 등용해 싼 값에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일거리를 찾지 못한 젊은 감독들을 자기 사단으로 대거 끌고 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 3부작`(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마카로니 웨스턴`: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세르지오 레오네가 할리우드 식 서부극을 만들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끝내 버리지 않고 서부극 곳곳에 이탈리아 스타일이 배어나와,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마카로니를 덧붙여 별명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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