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친구는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동안 연애는 눈길도 주지 않던 친구라 의아했다. 월춘(?)준비를 늦게라도 시작하려는 건가, 생각해봤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양이였다. 천식이 있는 남동생이 전역을 하고 키우던 고양이를 시골집에 맡겨 둔 상태였다. 애정을 쏟던 ‘동물’이 사라지니, 그 곳엔 다른 대상, ‘남자 인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동물을 기르는 것과 연애를 하는 것의 공통점이라면 나의 일상을 어떤 대상에게 바치는 일, 나의 애정을 쏟는 일이다. 종종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은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친구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건 어쩌면 마크 롤랜즈가 책에서도 말했던 행복의 양가적인 모습을 모르고 행복을 그저 어떤 감정이라고 치부하는 데에서 나오는 태도, 혹은 무식함이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다. 마크 롤랜즈에 따른 행복이라면 그를(사람이든 늑대든 고양이든) 생각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포함해,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혹은 내가 먼저 그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등이 뒤섞인 상태일 것이다. 

 

복잡한 행복을 아는 것은 그 행복을 책임질 첫 번째 단계다. 이후는 이것을 알고도 책임을 질 수 있을거냐 하는 문제다. (지엽적으로 독서모임도 그렇다. 독서모임의 모집 글을 보고 ‘내가 찾던 스터디에요’라며 반가움에 메일을 보내는 것은 감정적이다. 쉬운 일이다. 행복이라고 말하기엔 미안할 정도의 모임이지만 이 모임에서도 어느 정도 감정적인 행복을 제공받을 거란 기대로서 지원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하나둘씩 카톡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책임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프린트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등등.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찰나의 행복에 따르는 더 긴 시간의 책임감과 불안함. 그것을 견디는 자에게 감정의 행복은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나의 늑대’를 안락사 시킨 것은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행복은 어려운 일이다. 내 친구는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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