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명숙의 선택 - 이프 여성경험총서 2
김신명숙 지음 / 이프(if)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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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사소한 물건 하나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선택이 그물처럼 얽혀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인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김신명숙의 선택>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심리치유에세이라고 하면 좋을까? 우리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책은 하나의 문제를 놓고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막 대학원에 입학한 여성의 남자친구는 복학생에다 결혼은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라 낙태는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그 후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할 길 없어 보이는 여성은 살아있는 생명을 자신의 의지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피임을 제대로 못한,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한 데 대한 상처가 컸다. 남자친구도 미안해 하지만 자신이 겪는 고통의 10분의 1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약 남자들이 피임에 대해 철저한 공동책임 의식을 갖고 여자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포기할 줄 아는 양식을 가졌다면, 폭력적 섹스가 사라지고 성행위의 주도권을 '임신하는 몸'을 가진 여자들이 가지고 있다면, 공식적 발표만으로도 한 해 34만여 건에 이른다는 낙태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순결을 지키지 못해 낙태를 자초했다'는 식으로 당신을 힐난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는 겁니다. 성인인 님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니까요. 오히려 시대착오적 순결 이데올로기가 여자들로 하여금 '성 경험이 많은 여자'로 몰릴까봐 철저한 피임 준비나 요구를 못하게 해 원치 않는 임신을 부르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요? - 126쪽

세상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여성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나야 할 아기가 축복은커녕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참혹한 일이 한 해 그토록 많이 일어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와 아이는 물론, 남성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수술을 받는 당사자일 것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과 그릇된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더 이상 낙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낳지 않을 아이라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생명을 두고 실수 어쩌고 하는 일은 정말이지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이 부담스럽고 두렵다?

오래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있고 내년이면 서른이라 결혼 얘기가 구체적으로 오가지만 결혼하기 두려운 여성이 있다. 결혼 후 있을 아이문제, 시가문제, 가사노동 문제 등이 여성에게 훨씬 더 큰 부담으로 던져질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다는 여성의 고민은 결혼 전 대부분의 여성이 생각하는 일이다.

저자는 평등하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혼전계약서를 함께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사실 결혼 전에 혼수를 보러 다니느라 분주하게 보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혼전계약서에는 주택 공동명의 등 재산관리나 수입관리에서부터 가사와 육아, 일상생활을 꾸리는 문제, 시가와 처가 관계 문제, 성생활 문제 등 결혼생활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부부 간의 합의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혼하게 될 경우 어떤 원칙에 따라 재산이나 아이 문제 등을 정리할 것인지, 또 폭행이나 속이기, 외도 등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기로 할 것인지 등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 176쪽

저자는 '계약서에 담는 항목이 꼼꼼할수록 남자친구 뿐 아니라 스스로도 어떤 결혼생활을 기대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며, 둘의 입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런 논의들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결혼이 두렵다면 저자는 잠시 결혼을 미루라고 권한다. '시야가 흐릴 때는 굳이 앞으로 나가기보다 눈을 감고 쉬는 편이 낫다'고 남자친구의 재촉에 쫓기지 말고 자신의 느낌과 판단을 존중하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사랑과 성, 결혼과 직업, 엄마 되기에 걸쳐 많은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본문에 소개된 페미니스트 32명의 생애와 사상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 태어나 차별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은 태어났다. 걷잡을 수 없는 불행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척박한 땅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책은 여성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교재로 남성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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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왕자 2007-08-0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해드리고 갑니다.. ^^

연잎차 2007-08-0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왕자님, 감사합니다 ^^
 
유 콜 잇 러브 - [초특가판]
클라우드 피노티유 감독, 소피 마르소 외 출연 / 월드디지털엔터테인먼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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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영화를 두고 누가 18세 이상 판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래 리뷰를 보니 삭제된 부분이 있다고 하니, 그런가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이 영화가 문득 궁금해진 건 주제가 유 콜 잇 러브의 영향이 크다. 물론 사춘기 시절 소피 마르소에 대한 기억도 한 몫을 했고.

중학교 때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걸리는 친구네 놀러갔을 때였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즈음 아이들이 영어 가사를 적어 따라 부르며 해석해보는 재미(?)를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텐데. 내 친구도 그랬다. 덩달아 나도 함께 따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때 뉴키즈온더블록의 노래도 있었고, 영화 주제가 였던 유콜잇러브도 있었다. 라붐은 티비에서 보았는데, 이영화는 볼 수 없었다. 비디오는 있었을텐데 18세이상이어서 못봤나? 어쨌든 노래때문에 영화가 엄청 궁금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두배쯤 흐른 후 이 영화를 본다.

그때 봤더라면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사실, 지금은 별 감흥이 없었다. 사랑에 대한 망상이 많이 희석되어서 그런건가. 영화 내용은 솔직히 진부했다. 

그럼에도 추억 속에 깃들어 있는 영화 주제가와 주연 배우의 모습은  빛이 났다. 진부하지만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예나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나 보다.

그때 함께 노래불렀던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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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2007-10-1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비슷한 추억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서슴없이 다녀갑니다~

연잎차 2007-10-12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반가워요! 부엉이 사진이 넘 이쁘네요^^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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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유쾌하다. 뭐든 처음이 가장 크게 각인되듯, <공중 그네> 만큼은 아니었지만 <면장선거>도 그에 버금갈 만하다.

<공중그네>< 인더풀>에 이어 고정 패널로 이라부와 마유미가 등장한다. 첫번째 손님은 거대신문사 대표이자 인기구단 구단주로 누가봐도 범접하지 못할 위치에 있지만 그는 언제나 불안해 한다.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라부를 만나러 온 두번째 손님은 청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안퐁맨이다. 성공을 향해 매진하다 결국 그러한 병까지 얻은 안퐁맨, 세번째 손님은 유명 여배우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지만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말도 못할 종종걸음을 치듯 수면위의 고고한 모습과는 달리 미모를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표제작인 면장선거에서는 온갖 비리가 팽배해있는 선거의 과정을 담았다.

주지하듯 이라부는 권의적인 의사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인은 저마다 위치에서 말못할 고민 속에 삶을 연명한다. 답답하면 점집을 찾듯, 정신과 상담도 필요하다. 마음의 병이 치유되지 않으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 우리는 몸의 건강 만큼이나 신경을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안겨주고 있었다. 우리 인생에 이라부와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가 친구이든 부모 형제든 간에.

면장선거는 가벼운 필체로 독자를 이끌고 있지만 행간에 숨은 씁쓸한 기운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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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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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 인터넷의 유혹에 더 현혹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책 읽는 책>은 좋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음은 늘 있지만, 정작 퇴근 후 피로하기도 하고, 만나야 할 친구도 많고,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막연하기만 하다.' 이런 저런 핑계거리야 찾으려면 솔직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책을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1부와 2부에서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책 읽는 생활, 3부와 4부에서는 책을 고르는 지혜와 책을 읽는 지혜로 구성된 책은 선배 책벌레가 후배들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하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연애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읽어야

책마다 사람마다 그에 알맞은 독서법이 있겠지만, 저자는 연애편지를 읽듯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우리가 연애편지를 읽을 때는 절대로 속도를 내어 빨리 읽지 않는다. 의미를 거듭 되새기며 읽고 또 읽는다. 정성을 다해 읽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행간과 여백까지 읽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책읽기가 될 듯하다.

"연애편지를 읽어 본 경험을 잘 상기하면, 독서의 원초적인 필요와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연애편지는 글이 개인과 내밀한 관련을 가질 때, 사람을 얼마나 감격시키고 흥분시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나아가 글의 정보 전달 기능은 뒤로 물러가고 암시의 힘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체험하게 해 준다. 단어와 단어가 만들어 내는 정서적인 공간 사이에서 온갖 사물들, 나아가 세계가 재창조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글만이 생성해 낼 수 있는 고유한 지적 작용이고 매력이다."(32~33쪽)

배움에 때가 없는 것처럼 책을 읽는 데 때가 어디있으랴마는 저자는 <어린왕자>와 <데미안>을 예로 들며 전자는 어린 시절에, 후자는 사춘기 시절에 읽어야 제 맛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번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젊어서 책을 읽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읽기 어렵다고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듯, 젊어서 책 읽는 버릇을 들여 놓지 않으면, 늙어서 책 읽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눈이 어두워져 돋보기를 쓰고 오랫동안 책을 보기란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젊어 좋은 책을 많이 읽어두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의 입시 교육 하에서는 즐기면서 하는 책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고작 해야 논술을 위해 철학이나 문학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읽는 게 아닌가. 공부에 쫓겨 한가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매달 일정액만큼 책을 구입하라

"방에 책이 없는 것은 몸에 정신이 없는 것과 같다"는 키케로의 말처럼 우리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도 없다. 생계비 중에서 책값이 차지하는 비율을 미리 정해두자고 저자는 조언한다. 몸의 허기를 위해 식비를 책정하듯, 마음의 허기를 위해 책값을 할당해두자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돈을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을 쓴 것이 아까워 그것을 실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책을 위해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책을 읽게 될 테니 우선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매달 책값을 책정해두고 일정 기간 동안 책을 사보는 습관을 들이면, 언제인가 밥은 굶어도 책은 사보자는 정신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즉 몸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를 참는 게 더 힘들어지는 시점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독서의 수준은 조금씩 향상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도약하기도 한다. 그런 도약은 자신의 힘에 부치는 책을 뚝심 있게 읽어 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아마 열정적인 독서가라면 그런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읽되, 끊임없이 보다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143쪽)

쉬운 책이 나쁜 것도 아니며 어려운 책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쉬운 책부터 읽어 차음 어려운 책에 도전하지 않으면 고급독자가 될 수 없으며 독서에 대한 열정도 유지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읽되, 어려운 책에도 도전 해야

'어려운 책을 힘겹게 읽고, 문득 세계를 이전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눈을 가지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에 대해 저자는 그것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독서가 권태로운 사람이 있다면 쉬운 책만 반복적으로 읽은 데에 그 원인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며 권한다.

한정된 시간 동안, 한정된 비용으로 가장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양한 답이 기대되지만 그 가운데 책읽기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읽기도 습관이다. 마음의 키를 키울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바로 책읽기다.

책을 읽고 나니 기실 독서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만 빼곡하게 채워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벌레가 들려주는 책읽기 방법, 책이 고프지만 선뜻 책읽기에 빠질 수 없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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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왕자 2007-08-0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말 잘 읽고 갑니다... 추천 하고 갑니다.. ^^

연잎차 2007-08-06 19:05   좋아요 0 | URL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려요!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
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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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면 4살이 되는 내 핸드폰은 메시지를 보낼 때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글자를 보지 않고 빠르게 누르면 글자가 제멋대로 써진다.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인내가 조금 필요한 것과 내장 카메라의 화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 말고는 불편한 게 없다.

그럼에도 내 휴대폰만 보면 이제 제발 좀 바꾸라고 친구들이 입을 모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장 나면 바꾸려고 하는데 고장 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아직 할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핸드폰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더 좋은 기능, 새로운 디자인, 고객들을 끌만한 충분한 매력을 가진 신제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세상에 눈을 감고 귀를 닫지 않는 이상 잠재적인 구매자들에게 정보는 쉴 새 없이 흘러들어오기 마련이다.

신규로 하면, 번호이동을 하면 공짜로 최신 핸드폰을 준다는 광고는 왜 그다지도 현란한지 제아무리 돌부처라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아주 유용하다.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서 왜 핸드폰을 자주 바꾸면 안 되는지 명쾌한 이유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콜탄'이라는 물질을 정련하면 나오는 금속분말 '탄탈'은 고온에 잘 견디는 성질이 있어 핸드폰과 노트북 등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한다. 별 가치 없던 자원이 불티나게 팔리게 되자 돈벌이에 솔깃한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콜탄을 채취하게 되었다. 콜탄이 묻힌 곳이라면 그곳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고릴라의 마지막 서식지라 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꿀 때마다 고릴라의 보금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멸종의 위기에 놓인다는 이야기다. 단지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저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를 보호하는 거룩하기까지 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구의 2/3가 물이라도 지구는 목마르다?

지구는 2/3가 물로 덮여 있지만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물을 100리터라고 했을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고작 티스푼 반 숟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풍요로운 물질 속에 살며 에너지나 자원도 무한정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다.

물은 물론 전기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야말로 펑펑 쓰고 있다. 예전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물을 더 아껴 쓰며 살았다. 추운 겨울 물을 데워 머리를 감고 손발을 씻으니 찜통 하나로 온 가족이 씻으려면 얼마나 아껴 썼을까. 생활이 편리해지면서 우리는 아낄 줄 모르는 사람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듯하다.

양치질할 때는 물을 컵에 받아 입을 헹구고, 머리를 감을 때도 물을 받아 하자. 면도나 샤워할 때, 비누칠하는 동안은 수도꼭지를 잠그자. 양변기 물통에 페트병이나 벽돌을 넣어 물을 절약하자. 설거지는 그릇을 모아 한꺼번에 물을 받아서 하고, 쌀뜨물을 받아두었다 기름기 있는 그릇을 닦자. 양변기에 절수형 레버를 달고, 샤워기에 절수형 샤워헤드와 수도꼭지를 달자. 세탁은 빨랫감을 모아서 하고, 비누는 표준량을 넣자. 세탁기의 마지막 헹군 물로 바닥청소를 하자. 샤워용품보다 천연비누를 사용하자. 세차는 호스를 사용하지 말고 물통에 물을 담에 걸레로 닦자. 복도나 마당을 청소할 때는 한번 쓴 허드렛물을 뿌리자. 화단이나 정원에는 빗물을 모아 뿌리자.

이상은 저자가 들려주는 물 아껴 쓰는 법이다. 굉장하다. 습관이 되지 않은 지금은 불편해 보이지만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냉장고를 믿지 말자

쇼핑한 물건을 장바구니가 터지도록 담고 신용카드를 꺼낸다. 현금이 나가는 게 아니다보니 산더미처럼 쇼핑을 했지만 계산할 때는 무덤덤하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마일리지 적립이다 뭐다 해서 혜택이 많으므로 좋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쇼핑한 물건을 낑낑거리며 차 있는 데까지 들고 와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쇼핑을 하면 집안에 물건이 늘 풍족하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알뜰해지지 않는다. 모든 걸 헤프게 쓰게 된다. 할인마트에 가면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웬 궁상? - 178쪽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오다 보니 물건이 귀하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 푸짐하게 먹고 남은 음식은 냉장고로 들어가는데, 저자는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음식을 최소화하자고 말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오히려 음식이 상해 버리거나 헤프게 먹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냉장고의 60%만 채우고 음식물 간격도 일정하게 유지하면 냉장효과가 높다고 하며 알루미늄 호일이나 비닐 랩 대신 뚜껑이 있는 그릇에 담아 음식을 보관하고 가족이 여럿인 집은 냉장고 문에다 넣어둔 음식물 목록을 적어두면 전기도 절약하고 냉장효과도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아름 음식을 장만해서 냉장고에 보관하며 두고 먹으면 당연히 맛도 없다. 조금씩 요리해서 그때그때 먹는 게 최고다. 번거롭다는 게 흠이지만 그렇게 해야 버리는 음식이 줄어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 노력해야 할 일이다.

저자는 책에서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을 재치 있게 정리해두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온 종이컵, 나무젓가락,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려준다. 산에 가서 '야호'를 외치면 안 되는 이유나 중고품과 친구가 되면 좋은 이유, 내복을 입어 기대되는 효과와 나무젓가락과 황사의 상관관계까지 독자들은 다양한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책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둘 실천이 늘어간다면 그 효과는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으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읽어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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